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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자본주의와 노동 그리고 자기찾기

무엇을 위한 외국인 개방정책인가.

by 격암(강국진) 2012. 4. 9.

4월 25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은 아시아계 이민을 200만명쯤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사회로 한국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131642) 삼성연구소에서는 천만명운운했다는 이야기도 들은적이 있다. 나는 솔직히 말해 이런 말을 듣자 한동안 화가 나서 진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람이지만 그걸 언론에서 퍼뜨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랬다. 그럼 나는 왜 화가 났을까. 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지만 또해야겠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화가나는 이유는 핑게는 여러가지로 가져다 붙이지만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경쟁하지 않고 편안하게 돈을 벌면서 비교적 잘 못먹고 자녀교육에 시달리고 취업걱정이며 노후준비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한 경쟁구도로 몰아가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란 말을 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그런말을 하지 않을 터인데 말이다. 


이 문제는 그런데 미묘하면서도 위험한 주제이다. 자칫하면 나찌같은 외국인 테러하는 극우파로 몰리기 쉽다. 실제로 진중권은 불체자 추방운운하는 사람은 현대판 네오나찌라고 단언하기도 했다고 한다. (http://blog.naver.com/fangoria/100045396812). 우리나라를 살피면 자칭 우파인 새누리당은 친기업적 정당으로 이민자 수용에 찬성이고 좌파로 말해지는 기타 반대세력은 소위 '진보적' 시각에서 (뭐가 진보인지 모르겠지만) 외국인들의 인권을 강조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결국 한국 정치지형에서 이 외국인 문제는 삼성이 밀면 개방되게 되어있는 구조랄까 그런 것이다. 그에 대해 어떤 이유로 우려를 표명하건 그들은 단순히 폐쇄적 민족주의, 나찌, 극우파 등등으로 분류되고 말게 된다. 외국인 노동자문제가 바로 한국인 노동자의 경제문제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한 것인데도 그들의 우려는 사소한 것으로만 여겨지며 미국같은 다민종 사회의 찬양목소리만 드높다. 


나는 현재 일본에 살고 있고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 나의 이런 경험에 따르면 이런 태도는 매우 무책임한 것이며 문화와 인간에 대한 고민이 지극히 결여된 친기업적 시각이라고 밖에 볼수가 없다. 


외국인 차별을 주장하는게 아니다. 


대량의 이민에 대해 뭔가 이야기하기만 하면 그렇게 몰고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는 가장 먼저 이러한 주장이 외국인 차별을 주장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 한국에 들여오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조차 아니다. 다만 변화는 매우 매우 완만해야 하며 국민적 공감대에 기반해야 하는 것이지 기업적 공감대에 기반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주인으로서 주체적 문화, 사회적 정체성, 우리만의 가치판단을 가진 윤리를 튼튼히 하고 그것들이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외국인들을 수용하면서 변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때만이 우리는 외국인을 진짜 인간으로 친구로 대접할수 있다.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할말이 너무 많다.  나는 우선 몇가지 친숙한 가설들이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미국이나 유럽이 살기 좋은 곳이며 그들은 다양인 인종을 받아들여서 문제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선진국들이다. 그나라들이 우리나라보다 살기좋다. 우리가 그들을 배워야 한다는 말은 우리가 너무 지겹게 들었기 때문에 자명한 진리처럼 들린다. 


또하나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사는 일은 물론 조심해야 하는 일이지만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기만 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뤄낼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외국인도 우리도 인간인데 너그럽게 마음을 가지고 평등하게 대해 줘야 한다는 말은 거부했다가는 나쁜 인간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가지 가설중 첫번째 것에 대해 몇마디 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다. 일본조차 아니며 중국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 문화, 우리 국가의 수용능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 미국이나 유럽의 문화는 현재 세계 문화의 주류다. 다시 말해 미국이나 유럽에 간 외국인들은 자국문화의 설득력이상으로 미국이나 유럽문화에 쉽게 포섭된다. 더더구나 그들은 물론 부자이며 그들은 오랜 식민지기간동안 천천히 변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한때 세계정상을 노렸을 정도로 부자이며 인구도 우리나라 3배가까이 된다.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만큼 외국인 노동자가 많지도 않다. 일본은 개방적인 것이상으로 폐쇄적인 나라다. 중국은 엄청난 인구가 가진 문화적 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찻잔속의 물같은 문화다. 해리포터를 쓴 작가는 세계적 부자가 되고 한국사람들이 그걸 읽는다. 한국의 판타지작가가 외국에서 얼마나 팔리나. 그 작가가 부자가 되나?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시장의 크기를 말하면서 영어권문화의 거대함에 비해 한국어권 문화는 정말 작은 우물에 불과한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한류열풍때문에 너무 크게 과대망상적 오해를 하면 곤란하다. 


둘째로 그럼 그 미국이나 유럽에서 정말 여러인종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는가? 지금 유럽에서 거리에 자동차가 불타오른다. 다민종정책은 유럽에서 실패한 것을 판정났다고 하는 쪽이 진실에 가까울것 같다. 미국에서 백인과 흑인 주거지를 지도에 표시한 적이 있다. 그 오랜기간동안 흑백인종은 미국에 같이 살아왔지만 여전히 그들은 각자 따로 산다. 흑인은 미혼모에게 태어나 감옥에 가는 것이 매우 흔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에 가보라. 그 잘난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료보험없어서 죽기직전이고 음식물 쿠폰받아서 생활하며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쓰레기 같은 싸구려 전자제품이며 음식들로 넘쳐난다. 고학력이거나 부자들은 확실히 행복한 나라일지 모르나 미국인이 과연 가장 행복한 나라인가 하는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더구나 그건 세계 최강국 미국의 이야기다. 같은 사고방식, 같은 이민정책을 폈을때 우리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그 땅넓고 부자고 강국인 미국인들만큼 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과 FTA하고 마약갱들에게 사람들이 마구 죽어나가는 멕시코의 삶이 더 현실에 가깝다. 


친 기업적 시각


기업이 곧 국가인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 한국에는 마치 그런것처럼 쓰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조금 과감하게 단순화하면 그들의 사고는 삼성이 곧 국가이며 따라서 삼성에게 좋은 것이 한국에게 좋은 것이고 삼성이 망한다는 것은 한국이 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식의 사고를 한다. 이건 전혀 그렇지 않다. 삼성이 망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에 엔진만 있으면 앞으로 달려간다는 사고는 얼마나 위험한가. 구동축도 타이어도 자동차씨트도 문도 핸들도 변속기도 와이퍼도 다 필요하다. 엔진이 곧 자동차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라고 말한다고해서 그럼 엔진없이 자동차가 앞으로 간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하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럼 타이어나 변속기나 구동축이 없어도 자동차가 엔진만으로 날아가는가? 국가는 자동차같은 기계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가 뭘 지적하는지는 분명하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아이폰이 매우 늦게 들어왔다. 스마트폰이 들어오고 트위터가 유행하고 하면서 한국은 때늦은 변화를 겪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때 한일 환율은 지금의 절반정도에 불과했던때도 있었는데 현정부들어 환율이 폭등했다. 그때 나는 도요타 자동차 전시장을 돌면서 이렇게 좋은 차들이 한국돈으로 얼마나 하는가를 보면서 한국자동차 시장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 적이 있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한국을 완전 개방하자는 것도 아니고 완전 폐쇄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경쟁이나 개방을 이야기할때는 분명한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한국의 기업은 덜 경쟁할수록 좋다라는 원칙과 한국의 노동자는 더 경쟁할수록 좋다라는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은 모두 한국의 재벌기업에 좋다는 라는 원리로 수렴되고 최종적으로는 한국의 재벌기업에 좋은 것은 한국에도 좋다라는 결론으로 나가는 것이다. 


인구가 줄어들고 여러 공장에서 노동자를 구하지 못해 문제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따라서 외국인 노동자를 들여와서 노동자를 싼 임금에 고용하고 그걸 기반으로 기업의 시장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주 당연한 것일까? 이 주장은 정도문제로 실제로 옳은 것일수도 있다. 


그런데 그럼 재벌기업들의 총수들의 운영능력이나 윤리가 부족하므로 외국에서 전문 경영인을 불러다가 한국의 기업을 운영하게 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거 본적있는가? 한국의 학생들은 국비로 유학을 가야할까 아니면 그 돈을 한국대학에 투자해서 한국대학을 발전시키고 한국학생들은 한국에서 공부해야 할까? 물론 한국의 대학교수들은 다 한국대학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이나 재벌기업에 대한 주장의 뒷면에는 그것들이 한국의 자산이며 한국의 저력이라는 시각이 깔려있다. 나는 이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 진실성이 다분히 있다. 다만 외국인 노동자 불러다가 기업의 노동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할때 과연 한국 사회의 자산과 저력은 한국의 노동자, 중산층이라는 시각은 얼마나 깊게 들어가는가를 고민해 보라는 것이다. 


한국에 세계 최고의 기업이 있고 세계 최고의 대학이 있으면 한국은 좋은 나라가 된다고 하는 것이 사실일수 있다. 그런데 과연 국민이 없어도 그렇게 될까? 그렇게 된다고 한들 그나라가 외국인으로 넘쳐나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저질의 삶에 시달린다면 그게 좋은 나라일까? 


기업은 소중하지만 한국인은 그저 외국인으로 대체될수 있는 소비재처럼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들으면 나는 화가 난다.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한국에서 호화롭게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게 다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한 거라고? 뭐가 선진국인가? 인간을 소모품처럼 생각하는 사고가 뿌리깊은 전통으로 존재하는 나라가 선진국인가? 평균국민소득이 10만불이 되기만하면 그 나라가 어떤 지옥이든 상관없다는 말인가? 모든 것을 기업적인 시각에서 보고 말하고 기업의 광고비를 받은 언론은 그것을 국민들에게 세뇌하는 것이 아닌가? 


융합은 그리 쉽지 않다. 


한국에는 지역감정이란게 있다. 나는 이 지역감정문제도 해결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한국 사회의 역량을 눈앞에 두고도 다문화 사회, 개방사회운운하면서 대규모 이민같은 것을 거론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보기엔 그들은 대규모 이민에 반대하는 사람 이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해 관심이 없다. 외국인 노동자도 이민오면 한국인이 되는 것이다. 그들도 한국인으로서 권리를 가져야 하며 그들도 행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대한 사회적 규모의 비용이 지출되어야 하는데 기업들은 그런것에 관심이 없다. 고작해야 쥐꼬리만한 월급을 주고는 내할일은 다했다고 할것이며 그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오히려 한국에 좋다고 하거나 할것이다.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들 결국 그것은 세금이나 국민이 지불한다. 결국 대량이민은 간접적으로 기업이 사회를 수탈하는 방식이다. 수익은 자신이 먹고 비용은 사회에 돌려버리니까.


외국인 노동자가 무슨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고 말하는가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들이 한국에 정착하면 그들은 당연히 처음에는 조용히 월급정도에 만족하고 살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정당하게도 자신들도 한국인으로서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들이 한국이라는 공동체에 문화적으로 하나로 완벽히 통합된 상태라면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이것은 영호남 지역감정따위는 사소한 것인 나라를 쪼개는 전쟁상태가 된다. 그리고 나라가 분열되면 그 나라는 강력한 무력으로 다스려지면서도 끝없는 혼란이 계속되고 그 결과 잘 살수가 없게 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들과 유태인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것을 보면서 이걸 뼈져리게 느꼈다. 거기는 지성인이 없고 오랜동안 서로 안지내서 총칼로 싸우는것같은가? 차별이란거 나쁜 사람이 하는거 같은가? 그렇지 않다. 당신이 자동차 정비를 하는데 전라도 사람이면 동향사람이라고 50% 할인을 해주고 경상도 사람은 할인 안해주면 당신입장에서는 그저 동향사람에게 잘해준 것이지만 경상도 사람입장에서는 차별받고 사기당한 것으로 느낀다. (물론 경상도 전라도를 서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이 예에서 전라도 경상도에 대한 어떤 편향은 없다.)


이런 차별은 당신이 BMW나 벤츠를 타고 다닐때와 티코를 타고 다닐때도 느낀다. 사람들은 그저 비싼 옷이나 비싼 차를 가진 사람들에게 약간의 호의를 더 베푼것일수 있다. 그러나 티코 타고 다니는 사람은 극심한 차별로 느낀다. 이렇게 해서 계급의식이 생기고 부자-가난뱅이간에 차별이 생긴다. 


그러다가 불이 한번 당겨지면 즉 몇몇 이상한 놈들이 저지르는 이상한 일은 그쪽편 모두의 문제로 인식되고 보복이 가해지면 편나누기는 더 심해지며 불신은 더더욱 강해지고 따라서 차별은 더더욱 강해진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임대 아파트와 분양아파트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는게 싫다고 벽도 쌓아서 서로 안섞일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동남아에게 가서 부끄러운 인종차별 열심히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베트남 아가씨는 무슨 인신매매하듯 사와서 결혼이란걸 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전에는 조선족 중국인이 엽기토막살인사건을 저질러서 조선족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당장 인터넷에 나오는 것을 본다. 조선족은 애초에 애국심이 없으며 윤리의식이 없다는 둥 하는 식의 이야기말이다. 


이 모든 것을 다 묶어서 우리 좀더 관대해 집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문제의 심각성에 고의로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거나 거짓말 장이다. 주유소에서 담배피고 모닥불피우면서 이거 위험하다고 하는 사람에게 그러니까 우리 좀 더 조심합시다라고 답하는 사람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가. 


한국은 개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적 중심이 서야하고 개방적일수 있는 내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런 문화, 그런 철학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것의 보급에는 관심도 고민도 없는 사람들이 아주 쉽게 다문화정책을 이야기한다. 어차피 잘못되도 자신들은 계속 잘살수 있고 피해는 국민들이 입는것이니까 그런 것인가. 그런거라면 어떻게 화가 나지 않을수 있는가. 


지금 한국의 과제는 국민통합이다. 지금 한국인들끼리의 국민통합도 안돼서 어처구니 없는 내적인 손실들이 벌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외국인 이민 몇백만 운운하는 소리가 영향력있는 사람의 입에서, 영향력있는 언론을 통해 나온다. 나에게는 주유소에서 캠프파이어하자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들의 무신경도 무신경이지만 그런 말을 해도 별 문제없이 지나갈수 있는 언론분위기가 참으로 기이하다. 


부자나라가 다문화니까 부자되었다고? 그말은 부자가 벤츠타고 다니니 가난뱅이인 우리도 우선 벤츠부터 타자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부자니까 벤츠를 탈수 있는 것인지 벤츠타니까 부자된 것인지 확실히 생각해 본건가?


맺는 말


개방은 어떤 방식으로건 확대되어갈수 밖에 없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어떤 식으로 되어가는가가 우리의 미래를 크게 좌우할 것이다. 그런데 국민 대부분을 이루는 사람들을 지켜줄 시각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또한 한류열풍등으로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한국의 현재 모습도 내가 보기엔 그리 좋아보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한국은 지역공동체가 크게 파괴되거나 (도시의 경우) 후진적 (시골의 경우)인것 같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은 전통의 지역공동체를 발전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은 한국 사회의 큰 당면과제다. 


좋은 마을이란 좋은 철학과 좋은 인간관계로 만들어 진다. 단지 건물들이 예쁘다고 되는게 아니다. 건물은 돈들이면 금방 다 예뻐진다. 문제는 그 지역과 그 집에 어떤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애착을 들이는가의 문제다. 집이란 그저 사고 파는 물건이며 그 지역의 공동체 활성화, 문화 활성화란 그저 귀찮은 일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 동네에 왜 이런 저런 장점이 생기는겠는가. 축제가 있고 재미난 가게가 많고 공원이 있고 자전거도 타고 자동차 소음도 적고 교육시설도 좋으며 도서관도 잘되어 있고 그런 마을에 사는 것을 사람들은 꿈꾼다.  그런게 돈만으로 되는게 절대 아니다. 문화와 공동체로 되는 것이다. 성미산 공동체같은게 주목받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아름다운 집도 아름다운 산도 많지만 아름다운 동네는 한국에 그리 많지 않다. 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폐쇄되어 사회적 변화에 무력하게 당할 것들이다. 그들이 살던대로 살려고 해도 재개발이며 기업형 슈퍼마켓같은 것들이 몰려온다. 노인들만 남은 지역도 살아있는 지역공동체라고 할수 없다. 결국 지역공동체는 파괴되고 마는 것이다. 


고민과 공부와 철학이 필요하다. 그런게 문화가 되고 주거환경뿐만 아니라 교육도 바꾸고 생활자체를 바꿀 것이다. 그런 것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고서야 외래의 문화가 몰려와도 자신을 지키면서 그때 그때에 맞춰서 변해갈수 있다. 그렇지 않을때 결국 이리저리 흔들리다보면 흩어지기만 하고 결국은 망할 뿐이다. 


한국에는 독일인 마을이나 프랑스인 마을이 있다. 얼마전에는 일본에서 방사능 피해지역 주민들이 한국에 대규모로 이주하는 것을 고려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나는 한국에 독일인 마을, 프랑스인 마을, 중국마을, 일본마을 다 생기는거 반대하지 않으며 그런것이 한국문화의 풍요로움을 더해줄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한가지 선제조건이 있는데 바로 주와 종이 바뀌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린 아직도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야 하는가? 역시 한국사람은 믿을수가 없고 한국이웃과 사느니 독일이나 미국인 이웃과 사는게 더 편한가? 우린 여전히 외국에게 배워야 하는가. 그런 배움이 얼마나 큰 댓가를 치뤄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는가. 답은 우리 안에 있다. 손님을 엄청나게 불러모으거나 이질적인 것과 무조건 합쳐지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뭐가 소중한 것인지. 뭐는 비본질적인 것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절대 잃어서는 안되는 것을 헐값에 팔아넘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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