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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책 이야기

루이스 레넌드의 메타피지컬클럽 1 : 홈스

by 격암(강국진) 2013. 10. 5.

2013.10.5

루이스 메넌드의 메타피지컬 클럽 : 올리버 웬델 홈스의 경우

 

들어가며

 

나는 최근 루이스 메넌드의 메타피지컬 클럽을 읽고 있다. 미국의 역사에 있어서 남북전쟁은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남북전쟁은 미국을 바꿨고 훗날 전세계 유일의 슈퍼파워가 되게 만든 힘이 생긴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전쟁에 의한 것만은 아니고 그 전쟁을 일으켰던 상황과 그 전쟁 이후 미국이 길러낸 정신적인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메타피지컬 클럽은 남북전쟁이후의 미국의 정신적 사조를 네 사람의 중요한 인물인 올리버 웬덜 홈스, 월리엄 제임스, 찰스 S 퍼스 그리고 존듀이라는 사람들을 통해서 설명하는 책이며 프래그머티즘은 어떻게 탄생했는가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읽기 시작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나는 이 책이 매우 흥미롭다고 느꼈고 따라서 각각의 인물에 대해 따로 정리해 보기로 했다. 약간의 첨부를 제외하고 이런 정리는 기본적으로 이 책에 나온 것만을 기본으로 해서, 즉 루이스 메넌드의 정리를 기본으로 한 내 나름대로의 정리가 될것이다.

 

저자인 루이스 레넌드는 뉴욕시립대 대학원 영문과 전임교수이며 뉴 리퍼블릭, 뉴욕커등의 필진이고 모더니즘의 발견, T. S. 엘리엇의 연구, 어메리칸 스터디등을 썼다. 테타피지컬 클럽은 2002년 퓰리쳐상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이다.

 

 

올리버 웬델 홈스 쥬니어 ( 1841-1935 )

 

홈스는 가장 영향력을 크게 남긴 미국의 법률가중의 하나로서 누구보다 오랜간 미국의 대법관으로 재직했고 그가 졸업한 하버드 법과 대학의 교수이기도 했다. 그는 남북전쟁에 참전했으며 그 경험이 그의 사상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전쟁후 법관으로 일하면서 사회적 소수자의 주장을 보호해 준다던가 시장에 경제적 제약을 가하는 것에 찬성하는 판결을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그러한 당대의 진보주의적 관점에 대해 사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했었다는 점과 그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그의 개인적 철학이다. 그를 철학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만든 것은 개인적 믿음에 대한 그의 태도였으며 그것은 남북전쟁이후 미국이 사회적으로 융합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힘이 되었다. 결국 프래그머티즘이건 뭐건 모든 정신적 사조의 기본 목적은 개인적 사회적 유용성에 있다. 다시 말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홈즈뿐만 아니라 미국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남북전쟁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남북전쟁의 기간은 1861년 4월 1일에서 1865년 5월 10일까지다. 링컨 대통령의 취임일자가 1861년 3월 4일이었으므로 링컨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남북전쟁이 일어난 셈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전쟁인 남북 전쟁은 산업화 이후의 최초의 전쟁중의 하나였으며 따라서 기차나 증기선, 자동화기등이 사용되었고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그 희생자는 군인만따져도 75만명이었고 일반인의 피해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역사가 존허들턴에 따르면 북부의 경우 20-45세의 남자인구중 10퍼센트가 죽었고 남부의 경우는 18-40세의 남자인구중의 30퍼센트가 이 전쟁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미국의 남부와 북부가 갈라져서 싸운 이 전쟁은 일반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해 일어난 전쟁으로 이해되지만 상황은 훨씬 더 복잡했다. 예를 들어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북부에서는 몇가지의 사상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을 대표하는 것은 1800년에서 1840년정도까지 미국의 뉴잉글랜드와 뉴욕주 북부를 휩쓸었던 두번째 큰 각성운동 (the second great awakening)이었다. 이것은 사상적 종교적 운동이었고 결국 남북전쟁은 이런 사상적 종교적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준비되었던것이다. 이 운동은 칼뱅주의를 버리고 유니테리언 종파가 득세하게 만들었으며 다시 유니테리언종파를 넘어서 에머슨이라는 인물이 문화적 영향력을 가지게 만든다. 홈즈는 평생 이 에머슨이 자기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젊은 홈즈는 내가 뭔가를 이루게 된다면 그것은 모두 에머슨때문일 것이라고 까지 말하면서 에머슨이 그에게 준 가르침을 고맙게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기본은 기성사회 혹은 굳어진 제도에 대한 저항이었다. 당시 이미 칼뱅주의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악하다고 말하면서 전통을 지키자는 보수주의가 되어 있었는데 유니테리언은 인간을 긍정하고,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믿고 이성의 힘을 믿었다. 예수를 높게 평가하지만 예수를 신격화하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며 신앞의 평등을 강조해서 여성과 노예의 인권을 강조하는 흐름이 나타나게 된것이다. 이것은 인본주의라는 점에서 르네상스운동을 연상하게 만든다. 홈즈의 아버지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중심으로 믿었던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은 남북전쟁전에 이미 이러한 유니테리언들의 대학이 되어 있었다. 참고로 한국의 기독교는 통상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유니테리언을 이단으로 여긴다. 어떤 의미로 한국은 미국으로 치면 남북전쟁 이전의 시대에 있는 것이다.

 

에머슨은 여기서 한발더 나아가서 아예 조직화된 기독교를 부인한다. 그는 너 자신에게만 기대라고 외치며 조직화, 이념화를 거부하고 자기 수양을 강조한다. 진정한 천재성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보편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니테리언 기독교조차도 거부함으로서 하버드에서 30년간 초대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홈즈가 감명받았던 에머슨은 이렇게 자기의 인생을 자기의 머리와 가슴으로 살 것을 강조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문화적 운동의 영향하에서 남북전쟁이전에 이미 북부는 여러개로 갈라져 있었다. 연방주의자들은 사실 노예제도의 부도덕성에 관심이 없었으며 노예제도의 문제로 인해 남북의 연합이 깨어지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연방주의자들은 산업의 기반을 가진 기득권세력이었으며 1850년 타협법을 만든 대니얼 웹스터가 그 대표적 인물이었고 홈즈의 아버지도 이런 연방주의자였다. 반면에 양심적 휘그당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말하자면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면서 노예제 폐지에 찬성하면서도 개혁은 천천히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본격적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그와는 달리 노예제 폐지에 대해 강력한 신념이 있었다. 폐지론자가 아닌 사람들은 악한이거나 알고 있는대로 행동하지 않는 바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남북전쟁은 산업화세력의 전쟁이며 그들의 승리라고도 할수 있지만 명분으로 보았을때 남북전쟁은 또한 폐지론자의 전쟁이었고 그들이 승리자가 되었던 셈이다. 그 스스로가 폐지론자였지만 여러모로 공산주의자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폐지론자들을 홈즈는 전쟁이후 비판적으로 보게 된다. 물론 그는 폐지론자가 아니었던 사람들도 비판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세한 미국의 역사가 아니라 결정적 파국이 되었던 남북전쟁은 결국 사상적 종교적 운동으로 준비되었던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운동덕분에 사람들은 사람이 사는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지켜야 할 사회적 가치에 대해 이전과는 다르게 느끼게 되었다. 사회적 변화는 전쟁같은 단일한 사건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많은 사람들이 동조한 문화적 변화가 축적된 가운데 결정적 선택의 순간이 생겨나는 것이다. 결국 가치관과 철학이 혹은 구체적 삶에서의 작은 실천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삶의 실천 방식에 있어서 근원적이고 구체적인 차이가 생겨나지 못한다면 아무리 현실을 미워한다고 해도 결정적 변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사실 같은 사람이니까. 마치 남한의 반공주의자가 가장 김일성의 추종자들과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말만 약간 다르게 할 뿐이다. 

 

그런 가치관의 차이는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이라는 다른 한가지 요소와 만나면서 극적으로 증폭되었다. 남부와 북부사이에는 경계선이 있었던 것이다. 이걸 이렇게 생각해 보자. 만약 일부다처제를 시행하고 여자를 잔혹하게 억합하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의 남자가 한국으로 도망친 자기 아내를 잡아가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한국정부가, 한국의 대통령이 경찰에게 명령하여 한국내에서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들에게 협조한다고 하자. 그럴때 남녀평등에 대한 도덕적 문제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외국인들이 한국내에서 권리를 주장하면서 자기맘대로 행동하는것을 용인해야하는가에 대한 문제 즉 외국과 우리나라간의 구분일 것이다. 설혹 여자를 차별하는것에 대해 별로 문제없다고 생각하던 한국남자라고 하더라도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자기 규칙대로 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분개해서 기꺼이 싸울 준비를 할 것이다. 같은 일이 남부와 북부사이에 일어났던 것이다. 

 

남북전쟁은 남부가 북부를 공격하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공격은 북부를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즉 많은 연방주의자와 온건한 개혁론자를 극렬한 폐지론자로 변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주된 행동의 동기는 그저 남부에 대항하자는 것이었고 따라서 링컨은 전쟁동안 명령체계에 곤란을 겪는다. 어떤 장군은 링컨을 비웃고 어떤 북군장군은 탈출노예를 잡아다가 주인들에게 돌려준다. 결국 그들은, 적어도 모두가 노예를 해방하기 위해 싸우고 있던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삶의 기본적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간의 불화는 점차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증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개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동네에서 살 때 그 다른 종교들을 공존하게 만들어줄 어떤 합의나 철학적 공감대가 없다면 불화는 커져만 가고 때로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폭력이 등장한다.

 

전쟁은 끔찍한 것이었다. 홈즈는 그 끔찍한 경험속에서 자신의 선택과 자신의 철학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과연 나는 이런 희생을 치루게 만든 믿음을 가졌던 것을 후회하는 가를 묻는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난 뒤에도 홈즈는 여전히 에머슨이 그에게 주었던 관점을 유지하고 노예폐지론자로 남지만 홈즈의 신념에는 한두가지의 새로운 점들이 추가 된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무지를 느끼는 것이다. 그는 도덕적 회의론자가 되었다. 그는 확신이 인간을 폭력에 이르게 한다고 말한다. 그는 나는 자신이 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을 혐오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결국 남을 지배하는 도구가 되는 이데올로기에 반대하고 자기 이웃들의 소망이 다소 자멸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을 지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자기가 뭔가를 안다고 확신했던 바보들의 예가 바로 폐지론자들이었다. 그들의 확신이 결국 끔찍한 전쟁을 일으켰다고 홈즈는 생각한 것이다. 노예제폐지에 대한 신념이 옳은가 틀린가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가 또하나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경험 혹은 체험이다. 홈즈는 법의 생명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느끼는 옳고 그른 것은 경험에 따라 종종 너무 쉽게 바뀐다. 인간은 경험의 결과물이며 자연에 원래 부터 존재하는 어떤 자연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는 없다. 그러므로 확신은 금물이다.

 

홈즈가 폐지론자를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해서 연방주의자나 점진적 개혁을 말했던 양심적 휘그당이 옳았다고 말하게 된 것은 아니다.  홈즈는 다른 누구보다 전쟁중에 후방에 앉아서 전쟁의 경험과 동떨어진 관념을 말하던 아버지와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은 어떻게 하건 진짜 체험이 없으므로 행동이 있을 리 없다. 내일부터는 잘해야지라고 말만 하고 있는 사람은 진짜로 그것을 잘하려고 하는 도덕적 체험을 하지 않은 것이다.

 

비록 우리의 경험이 다르고 해석이 달라서 우리의 믿음은 모두 다르게 되지만 우리는 결국 어떤 개인적 믿음에 의존해서 살 수 밖에 없고 자신의 믿음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다만 모든 믿음은 회의적 태도 아래서만 안전하다. 홈즈는 미국이라는 나라자체가 실험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사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던 진보적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관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홈즈는 사회적 분쟁, 예를 들어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분쟁을 중재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는다. 그의 그러한 능력은 전쟁의 경험을 그의 철학적 성취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 때문일 것이다.

 

홈즈의 것을 포함해서 누구의 인생도 몇줄의 글이나 몇페이지의 글로 표현되는데 문제가 있다. 그것을 전제하고 홈즈의 삶를 통해서 내게 보이는 것을 말하라면 다른 무엇보다 혁명의 구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혁명은 어떻게 일어나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가를 홈즈의 삶은 보여준다. 홈즈는 혁명의 시대를 살았고 고민했으며 그 혁명과 고민이 바로 미국을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만들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혁명의 시기는 문화적 영향력의 축적이 없으면 오지 않는다. 그리고 혁명을 이끄는 것은 여러가지 우연과 무지도 있지만 결국은 체험이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라는 답답함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든다. 냉정한 논리가 그것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체험은 개인적 경험이므로 혁명은 항상 자기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같다. 허물을 벗고 관습을 버리고 자기눈으로 세상을 보자는 것에 공감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그저 현실이 그렇다면서 좋은 사람인척하면서도 끝없이 점진적 미래를 외치고 현실을 유지시킬 뿐인 사람, 현실과 부딪히지 않는 사람은 세상은 바꿀 수 없다. 우리는 항상 무지하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더 많이 알기에 그것을 더 뼈저리게 안다. 체험없는 관념의 축적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관념이 없는자는 무지하지만 관념에 대한 확신만 있는자도 무지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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