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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큰 집 거지와 작은 집 부자.

by 격암(강국진) 2013. 10. 28.

큰 집 거지와 작은 집 부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구직의 문제나 장래문제로 고민을 한다. 자영업자들이 벼랑에 몰려있다는 이야기, 퇴직자들이 치킨집하다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우리귀에 들려온지가 오래다. 돈도 없는 젊은 세대는 더 하다. 까 먹을 돈도 없고 취직할 길도 없으니까. 당연한 거지만 그들 대부분은 우등생도 엘리트도 아니다. 그들은 어떻게 앞으로 살아갈 것인가.

 

우리가 먹고 살기 어렵고 장래문제로 고민하게 된 이유는 각 개인에 따라 다 다를 것이지만 좀 더 거리를 두고 멀리서 천천히 생각해 보면 하나의 문제가 크게 뒤에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적게 가지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고 그런 방법은 애초에 없다고 포기한다. 그리고 당연하게 모두가 무한한 소유와 지출로 1등하는 누군가의 복제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본래 1등은 드물고 항상 1등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그러니 모두가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삶의 형식이 어딘가에서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이 문제를 작은 집의 문제, 다양성의 문제, 공유 경제의 문제, 돈의 흐름의 문제, 마을 만들기와 공동체파괴의 문제와 더불어 다시 정리해 보고 싶다. 이런 정리를 통해 답하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가난해 졌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미래에 대해 덜 걱정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가

 

지금의 노인세대는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이다. 서울이 아니더라도 시골을 떠나서 도시로 왔다. 그 도시도 변해왔다. 달동네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집들은 헐리고 여기저기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제 적어도 도시에서 한국주거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아파트, 그것도 고층아파트다.

 

그들이 도시로 온 이유는 도시에 일자리가 있고 돈이 있기 때문이며 그 바탕에는 물론 많은 노동자를 써서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외국으로 수출해서 돈을 버는 공장경제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도시에 몰리고 한국에 돈이 많아지면서 국가내수도 증가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국은 수출해서 돈을 벌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부자가 되었다. 돈은 수출을 통해서 흘러들어오기도 했지만 부동산이나 주식 가격상승같은 것을 통해서 허공에서 돈을 만들어 지기도 했다. 그런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한국이라는 땅위에 돈이 부어졌고 그 돈이 쌓여서 우리는 전보다 부자가 되었다. 우리 중 일부는 더 그렇다.

 

그런데 두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는 공장경제가 끝났다는 것이다. 모두가 박사고 고급 엔지니어가 되어 삼성에서 핸드폰개발사업에 종사할 수는 없다. 외국으로 공장이 이전되고 한국에 개발사업만 남으면, 심지어 그 개발사업도 외국에 아웃소싱되거나 외국에 연구소를 세우면 한국사람은 일할 곳이 없다. 수십년전에는 대학생들이 졸업하면 취업자리를 골라서 갈 정도였지만 요즘은 최고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자리가 없어서 고민하며 학비로 진 빚에 대한 고민에만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과거식의 경제는 이미 문이 닫혔다. 물론 최고 우등생은 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닫힌 문앞에서 우왕좌왕해야 하고 직장을 잃은 기성세대도 마찬가지다.

 

두번째는 한국 사회의 체질적 변화다. 우리는 한마디로 가난해지기 좋은 사회, 생활 수준이 떨어지기 쉬운 사회로 변했다. 돈은 들어만 오는게 아니라 나가기도 하고 허공에서 만들어지기도 하는가 하면 허공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그간 우리는 대개 돈을 만들어 내는 것에만 신경을 썼을 뿐 돈이 새는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수입이 늘어나는 것에만 신경을 쓰느라 지출이 어떻게 되는가에는 신경쓰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그럴 것이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나는 이 체질의 문제를 이 글에서 명백하게 정리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는 어떻게 가난해 졌는가.

 

우리가 돈을 벌기 쉬운 때는 우리 주변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있을 때다. 이 말은 우리가 머무는 마을, 도시에 돈이 흘러 들어와도 그 돈이 빠르게 그 마을, 그 도시에서 빠져나간다면 우리가 가난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돈은 우리 마을을 거쳐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빠져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고 다양성이 파괴되면서 돈이 그 지역에 머물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가정의 문제에서 부터 살필 수 있다. 여기 두개의 가정이 있다고 하자. 한 가정은 맞벌이 부부의 가정으로 당연히 집안일을 하기가 어려우므로 돈을 써서 그것을 해결한다. 더 많은 옷을 사야하고 더 많은 사교육비를 들인다. 아이들에게 쓰지 못하는 시간에 보상을 해준다고 비싼 캠프도 더 많이 보내고 가정에서 간식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대신 비싼 곳에서 외식을 한다. 바쁜 사람들은 휴가를 가건 쇼핑을 하건 그게 꼭 필요한지, 제일 좋은 조건에 사는 것인지 따질 시간이 없다. 그래서 돈을 쓸때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다. 차를 사고 부동산 투자를 한다. 비싼 가구가 집으로 들어온다. 적절한 규모를 생각하지 않은 보험을 마구 든다. 지출항목은 끝없이 길고 매달 어디에 나가는지 잘 파악도 안되는 뭉텅이 돈이 통장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가정은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가정의 조종석은 비어있다. 이런 가정은 많은 돈을 벌어들이지만 그 돈은 빠르게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또 하나의 가정은 맞벌이도 아닐뿐더러 기본적으로 부모 모두가 집안에서 더 많이 시간을 쓰는 집안이다. 더 많은 일들을 가정 내부에서 처리한다. 부모가 종종 자식을 직접 가르치고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무엇보다 이 가정은 수입이 작을지 모르나 지출이 훨씬 더 신중하게 이뤄진다. 큰 사고에 해당하는 지출을 하는 일이 적다. 따라서 돈이 흘러나가는 속력이 다르다.

 

나는 맞벌이면 무조건 낭비하고 산다는 말을 하는게 아니다. 나는 가정에는 수입이 있으면 지출이 있기 때문에 수입의 증대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정과 소비에 대한 고민 쪽에 치중하는 가정을 대비시키고 싶었을 뿐이다. 둘다 신경써야 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투자가 그러하듯 삶의 방식도 높은 비용을 들이되 높은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 있고 낮은 지출을 하되 낮은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 있다. 그 둘은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사회는 그간 더 많이 벌면 그 돈이 쌓인다는 것에만 치중한 면이 있다. 어느 새 가장 작은 공동체로서의 가정같은 개념은 약해지고 맞벌이를 선호하고 각자 자기 일에 바빠서 서로 잘 만나기도 어려운 부부가 멋진 것으로만 생각되는 풍조가 생겼다. 어떤 삶의 형태가 최적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고 그저 수입을 증가시켜서 그 돈을 쓰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에 빠진다. 돈과 생활의 질이란 당연히 수입뿐만 아니라 그 돈이 어떻게 지출되는가에 달려있다. 그런데 후자를 잊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돈을 받지는 않는다. 우리 텃밭에서 키운 상추도 그렇고 동네 공원을 산책한 것도 그렇다. 가정내부, 공동체 내부의 생산과 소비는 돈으로 잡히지 않으며, 돈으로 계량화 할 수 없는 가치도 있다. 미국에 살던 때 나는 미국인의 수입은 지난 수십년동안 크게 증가했지만 삶의 질은 증가하지 못했거나 떨어졌다고 말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수십년전에는 사람들은 집에서 만든 파이를 먹었고 지금은 동네가게나 슈퍼에서 파이를 사먹는다. 모든 선입견을 뒤로 하고 과연 우리가 더 좋은 것을 먹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볼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서민은 오히려 점점 더 싸구려 제품, 싸구려 음식에 둘러 쌓인다. 우리도 안정성이 의심되는 먼 외국에서 온 식료품을 먹고 살지 않는가?

 

외국계 회사가 지배하는 시장, 각종 체인점과 대기업 슈퍼가 꽉 들어찬 마을은 기본적으로 맞벌이 부부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마을은 지출에 신경쓰기 보다는 수입을 늘리는데 신경쓰는 마을이다. 하지만 우리는 물어야 한다. 첫째로 과연 지출에 신경쓰지 않고 수입만 늘려서 부자 될 수 있을까. 시골마을이라도 대형마트와 체인만 들어오면 좋은 걸까. 그들이 지역상권을 초토화시키고 나면 돈은 그 지역에 머물지 않고 쉽사리 바깥 쪽으로 빠져나간다. 투자가 외부의 자본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지역은 과연 계속 부유할 수 있을까.

 

둘째로 그 마을에는 여러 사람이 산다. 그중 일부는 과연 수입이 높아서 그런 마을에서도 잘 살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고수입-고지출의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이 있을까? 개발사업이 그 지역의 가난한 토착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몰아낸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 전체가 그런 경향이 있다면 이제 사람들은 갈 데가 없다. 결국 그들은 높은 생활비를 내면서 착취당하는 삶을 살게 된다. 잘 살던 사람도 결국 하나둘씩 탈락하여 매우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하는 처지로 떨어지기 쉽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 나라는 점점 자생능력이 사라지고 공동체라기 보다는 기숙사같은 곳으로 변해 갈 것이다. 그런 곳은 외부의 충격에 매우 약하다. 경제적 환경적 변화가 발생하면 한순간에 폐허가 될 것이다. 한국은 재벌 대마 불사를 외치다가 IMF사태가 오자 여러사람이 고생한 기억이 있다. 지금은 더 심각하지 않을까?

 

자발적 가난이 우리를 부자되게 한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대책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반성하고 공동체를 되살리는 것이다. 그것은 종종 오해되듯이 그저 폐쇄적으로 바깥의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를 바꾸고, 자기를 찾는 것이다. 자기를 찾는 것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원칙중의 하나는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모두가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역경제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집집마다 백미터짜리 근사한 풀이 있는 동네가 있다고 하자. 그 동네에서 수영장 영업을 하려면 집집마다 있는 수영장보다 훨씬 좋은 곳이 아니면 말이 안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자기 집을 나와서 동네 수영장에 가야할 이유가 없다.

 

즉 지역경제란 개인들이 어떤 것을 가지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집에다 갖춰두지 않고 나가서 쓰니까 지역경제가 있다. 또 지역 경제란게 있으니까 일자리도 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서로 서로 의존하면서 살게 된다.

 

한국사회의 체질변환이란 이 부분을 말한다. 우리는 돈을 벌면서 조금 부자가 되었는지 모르나 그 이상으로 빚을 내서라도 사치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래서 내 집이라는 곳 주변에 테두리를 긋고 마치 우주가 끝나도록 혼자 살 것처럼 성으로 만들어 버렸다. 진정한 능력으로 뭔가를 사는 것은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가계부채는 천조가 넘었다고 한다. 본래 가계는 은행을 통해 기업에게 돈을 대출해주는 것이 정상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엄청난 지출을 하고 우리의 생활수준을 끌어 올렸다. 이 사치는 사치로 끝나지 않는다. 이 사치는 지역상권도 죽게 하고, 일자리도 없애고, 다양성도 소멸시킨다. 이 사치속에서 거대자본이 만들어 낸 백화점이며 놀이공원이며 레스토랑만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되돌아와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실직하게 만들거나 아예 직장을 구할 수 없게 만든다.

 

한국사람은 대부분의 자산을 부동산으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가난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은 자발적으로 작은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이다. (작은 집과 마을 만들기 참조)

 

그 핵심은 모두 열평정도의 작은 독립주택에 사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공용공간에 여러가지 시설, 그러니까 도서관, 목욕탕, 공동식당, 극장, 커피숍, 탁아시설등을 만드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공용공간은 그 마을 주민들의 멤버쉽에 의존해서 움직이는 것이므로 보다 싸게 할 수 있고 작아진 주택들의 구조상 그 공용공간의 활용도는 올라갈 것이며 그 공용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므로 고용이 창출될 것이다.

 

이 글의 문맥에서는 이 마을을 만든다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이 마을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어떻게 다른가를 이해하는게 중요하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자. 이 마을에 과연 외부거대 자본의 슈퍼가 쉬운 조건으로 입점할 수 있을까? 이 마을은 그 자체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마을들은 지역과 인구구성에 따라 다른 특성을 나타낼 것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다양성을 증대시키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런 마을의 주택은 몇천만원이면 될 것이다. 신혼부부가 전세를 구하려고 해도 서울에서는 그 가격이1억을 훌쩍 넘어서 융자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이런 마을은 그럴 필요가 없다. 몇천이면 작아도 아예 자기 땅과 집이 있는 집의 소유주로 살수 있다.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런 마을은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폐쇄적 구조를 가진 아파트와 다르고 거대한 저택으로 이뤄진 전원주택 마을과도 다르다.

 

이렇게 보면 자발적 가난이 우리를 부자만들어 준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은가? 우리는 지나치게 허세를 부리느라 공동체를 파괴하고 스스로나 우리의 자식들이 일할 일자리를 파괴하고 따라서 대기업이 일자리를 협상하는데 있어서 훨씬 유리한 입장에 처할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빚에 찌들려서 일찌감치 이자내는 노예가 되는 길에 몰려 있다. 하지만 그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개인은 약하지만 뭉치면 살아갈 수 있다.

 




맺는 말

 

우리는 소비가 우리를 부자되게 한다는 경제론에 익숙하다. 그래서 정부가 돈을 뿌려서 사람들이 돈을 쓰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식의 논리에 익숙하다. 미국만 해도 엄청난 돈을 뿌려대고 있고 우리나라도 이명박 정부 이래로 엄청난 속력으로 정부에 빚이 쌓여가고 있다. 그리고 정부가 하는 것은 바로 사대강 공사가 보여주듯 다양성을 파괴하고 수입을 올려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비가 우리를 부자되게 한다.’는 말에는 진실도 있겠지만 그 진실의 반대 측면도 있다. 모든 사람이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해대면 대기업은 좋겠지만 그 소비때문에 가난해 지는 것은 물론 이거니와 그 사치가 극소수 부자들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평범이하의 보통 사람들을 몰락하게 만든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돈을 벌어서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오히려 자발적인 가난이 우리를 부자되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우리는 부족한 듯이 작은 집에 살아야 한다. 절제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공유의 경제를 실천하고 공동체를 유지해 나갈 때 젊은 사람들은 희망이 생기고 나이든 사람도 노후 걱정을 안하게 된다.

 

이 글에서 대안적 삶의 형식으로 나는 작은집 마을을 들었지만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는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그 집과 마을이 어떤 구조여야 하는지, 어디에 그런 마을을 만들 수 있는지, 실제로 어느 정도의 비용으로 그런 집을 소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계산이 필요할 것이며 무엇보다 그런 마을의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아이디어도 필요할 것이다. 공용시설을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공동 운영한다던가 하는 것말이다. 우리는 지역화폐의 활용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의 문맥에서는 작은집 마을을 만들자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거품을 빼고 검소와 무소유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고 우리경제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시커먼 절망에 빠지기 전에 우리 사는 모습에 대해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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