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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KBS 은퇴 그 후를 보고

by 격암(강국진) 2013. 11. 18.

KSB 파노라마 은퇴 그 후를 주말에 봤습니다. 은퇴한 50대말 이후의 남자들의 삶에 중심을 맞추어 그들이 어떻게 힘든 삶을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방송 의도라고 봤습니다만 저에게는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 방송이었습니다. 


방송은 50대의 퇴직한 아버지들을 여러명 보여줍니다. 그들이 퇴직하고 하나서 어떻게 작아졌는지, 어떻게 힘든 가족 부양의 짐을 지고 있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를 보여주고 2부에서는 일본의 경우 퇴직자들이 어떻게 몰리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했으므로 이 방송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보다는 뭐가 아쉬웠는가를 몇자 적겠습니다. 사실 그 내용은 퇴직자 아버지는 불쌍하다 같은 메세지의 반복에 가까워서 자세히 설명할 것도 별로 없습니다. 


일단 제게는 이 방송이 누가 왜 괴로운 인생을 사는가 하는 것에 대한 구분이 애매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기 60살이 된 한 남자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남자는 술을 너무 많이 먹고 건강을 해칩니다. 그런데 누가 이 남자를 가지고 방송을 하면서 60살이 되어 이제 건강도 나빠진 이 남자라고 소개한다면 우리는 어리둥절해 할 것입니다. 이 남자의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술을 너무 많이 먹은 것이었으니까요. 


은퇴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한 아버지는 대형 제약회사에서 26년이나 근속을 한 아버지인데 퇴직한지 몇년안되어 불쌍한 삶을 산다고 나옵니다. 저는 도무지 그 인생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분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기는 하겠지만 26년간이나 그럴듯한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 퇴직하자마자 경제난에 빠지는 경우 이걸 퇴직때문에 어려운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분이 어딘가 투자에 실패했거나 혹은 가족 문제로 커다란 지출을 했거나 하는 다른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이분이 이렇게 사는게 정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분의 인생문제는 퇴직이나 나이가 든게 아니라 방송에서 보여주지 않은 뭔가 다른 것에 있는 것을 아니었을까요. 인과관계가 잘못 설정된 것 아닐까요. 


방송에서는 돈은 어느정도 있지만 퇴직하고 집에서 큰소리 못치고 외롭게 살고 할일을 못찾아 방황하는 퇴직자들도 나옵니다. 이분들의 삶이 무료하고 외로운 것은 직접적으로 퇴직때문이라고, 전만큼 돈을 많이 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과연 그게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정상일까요. 


예를 들어 여기 스포츠 슈퍼스타로 인기를 얻고 방탕한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이 있다고 해봅시다. 남녀문제 복잡하고, 그저 인생이란 인기를 얻고 소비를 하고 돈을 뿌려서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스포츠 스타로 인기가 떨어져서 밥은 먹고 살지만 전처럼 주변에게 인기가 없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가족을 돌보지 않았기에 가족에게서도 따뜻한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럴때 이 남자의 문제는 스포츠 스타로서의 능력이 떨어진 것이 문제라고 말해야 할까요. 


그 남자의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것들과 욕망들에 마음을 빼앗겨 이리저리 시간과 에너지를 다 쓰고, 가족이나 건강, 바른 철학과 바른 생활습관, 취미활동등 자신에게서 잘 사라지지 않을 것들은 고민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베이비부머가 스포츠스타처럼 흥청망청 살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그들은 직장이 전부인것처럼 살았기에 직장이 없어지자 무력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된 것이 아닙니까. 


평균수명이 짧았을때 농부는 농부인것이 전부로 사는 것이 괜찮았을지 모릅니다. 농부로 일할수 없을때가 되면 죽으니까요. 요즘은 평생수명이 60세보다 훨씬 깁니다. 그런데 20년근속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런데 20년 다닐 직장에 인생의 모든 것을 다 걸어버리면 그 20년이지나고 나면 무력해 지는 것이죠. 이런 것을 우리는 단순히 이제 나이들고 퇴직해 힘든거라고 정리해야 할까요? 


그들은 아내와 대화는 잘하냐는 말에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게 나이와 퇴직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요. 애초에 더 잘했어야죠. 직장은 20년다닐지 몰라도 부부는 50년이상살게 되는 요즘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은퇴는 노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그리고 세상의 변화가 빨라서 20년근속같은걸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면서 이것은 보편적인 모두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저런 신세한탄을 합니다. 때로 고민상담을 해주다보면 은근히 직설적으로 혹은 잠재적으로 그래서 내인생에 대안은 뭔데라고 하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미리 미리 이런거 저런거 했었어야 하는거 아니냐던가, 잘못살았다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의미없다는 겁니다. 지금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아가 너의 조언들은 모두 내가 실행할수 없는 어려운 것들만 말하고 있다. 그래봐야 되겠는가 라고 말합니다. 


우선 그런 상황에서 로또를 바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곤궁이 정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서 우연히 생긴 불행이며 다시 어떤 로또당첨 같은게 일어나서 좋았던 그날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다면 그런 상황인식 자체가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당연히 그런 경우는 백에 하나 천에 하나고 대부분 문제는 고질적입니다. 젊어서 부터 남의 빚얻어 쓰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부채를 마구 늘리다가 어느 순간에 가서 그 부채가 뻥하고 터진 것같은 문제라는 겁니다. 도박좋아하다가 중독이 된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일단 빚을 갚는 것도 중요하지만 빚을 마구 내는 것을 중단하라고 하겠죠. 그런데 이 사람이 네 방법을 따르면 한순간에 이 빚을 다 갚을수 있는가라는 식으로 질문할뿐 더 빚을 내지 말라는 조언은 되지도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 고통이 사라질리가 없을 것입니다. 도박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도박을 이기는 방법을 묻고 다닌다면 안된다는 것이죠.


이 방송에서 아쉬운 것은 이 문제에 있어서 사회와 개인의 역할입니다. 은퇴문제를 사회적인 시각으로 다루자면 이제 노년층에게도 직장을 줄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던가, 그들에게 의료적인 지원 상담이나 정신적 치료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틀리지 않은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그들이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강좌를 듣거나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공부를 하라고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직장도 상담과 위로도 필요한 일이지만 자기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성숙해 지는 일이 없으면 그런 도움은 매우 비효율적일 것입니다.


지금 은퇴하는 베이비부머의 위에는 요즘 빈곤률이 아주 높아지고 있고 자살률이 엄청나게 높은 고령노인층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대할때도 어떻게 돈을 주는가, 어떻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가 하는 면을 생각하는데 집중하기 쉽습니다.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면 그것이 잘쓰일까요. 노인은 밥만 먹으면 행복할까요. 그들은 오히려 인문학강좌를 듣고 수학공부를 하는 등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인터넷을 배우고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혀야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진짜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같은 말이 60대에게도 40대에게도 20대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내가 배워야 한다는 것을 잊고 사회적으로 환경적으로 어떤 것이 있으면 좋아질거라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찾기를 공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뭔가의 이유로 시대에 뒤지거나 삶에 문제를 쌓아온 중장년에게 더 중요합니다. 뭐가 문제였던가를 배워야죠. 


그들은 은퇴하고 돈은 있지만 그것뿐 큰소리 칠일은 없고 산에나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자세로 세상을 살면 5년 10년 가면서 점점 더 굳어질 것입니다. 책을 읽고 강좌를 듣고 어떤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는 등 새로워진 세상을 배워야죠. 배우는 일은 큰 돈 안들이고 할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자기가 몰랐던 어떤 다른 세상이 열릴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둥거려서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50-60살은 요즘의 수명으로 생각했을때 살아갈날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은 버둥거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버둥거리는 것을 멈추면 죽지못해 사는 상태로 빠져들어갈 뿐입니다. 자기연민에 빠져서 내가 옛날에 잘나갔는데 왜 그리로 돌아가지 못할까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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