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세월호 좌초사건이 일어났다. 지금도 3백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실종된 상황이다. 이번 사고가 아무쪼록 많은 기적과 함께 한명이라도 더 적은 피해자를 만들고 끝나기를 바란다.
진도 세월호 좌초사건은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때문에 나에게 더 크게 다가 온다. 사실 이번 사고에 대한 진실은 아직도 극히 일부만 밝혀졌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해서 다행스럽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가 정신적인 흉터를 남길 것같은 느낌을 주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꼽을 것은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대처할 기본적 정보를 주는 언론의 부족함이 있다. 무엇보다 내가 주로 언론보도를 통해서 세상을 보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언론 보도 행태는 그야말로 볼만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에게 큰 찡그림을 준 MBC의 보험금 계산 방송을 생각해 보자. 아직 수백명의 생사가 불명인 상황에서 그 사람들이 죽으면 부모가 얼마를 받게 되는가가 그렇게 절박한 계산 일까. 자기 아들이 생사불명으로 죽어가는 판에 그래서 내 아들이 죽어요라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외치는 판에 거기에다 대고 아 아드님이 돌아가시면 보험료 3억5천까지 받으시겠군요라고 표까지 만들어 설명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정도가 인간적 예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국의 간판급 거대 방송사가 모른다는 사실이 나에게 정신적 흉터를 남긴다. 단순히 한두사람이 그 보도를 준비하는데 관여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중에 야 이런 보도는 인간이 할 기본에 어긋나는거야라는 말을 떠올린 사람이 없다는 말인가.
반면에 언론은 정말 국민들이 알고 싶고 알아야 할만한 것에 대해 보도하는데에는 매우 느리거나 틀려있다. JTBC 방송을 보면 9시 방송이 시작되고서야 그 배의 구조와 도면이 나온다. 그나마 전문가를 섭외하고 도면을 보여주는 JTBC의 방송을 보면서 상식이 이제야 성립한다는 느낌이었다.
기자들은 사고해역의 지형이나 상황, 배의 구조, 이런 사고가 났을 때 구조할 수 있는 방법등에 대해 관심을 거의 가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정보가 나와야 전문가로 도움을 줄수 있는 사람들이 또 무슨 손길을 뻣치지 않을까. 방송을 본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제공하지 않을까. 오랜동안 사고현장의 수심도 보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사고장소나 학교에 몰려가서 구조된 학생에게 친구가 죽었는데 어떻게 느끼냐고 묻고 자식이 죽은 부모에게 가서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묻는데 바빴던것 같다. 손석희가 철판을 뚫고 진입할수는 없냐고 물었을때 그것에 대해 왜 안되는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는 생명이 될수 있는 시간은 그냥 간다. 배의 일부분이나마 물위에 배가 나와 있는데 공기를 주입하지 못한채 시간은 그냥 간다. 아마 그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서 그럴 이유를 쉽게 설명해 줄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정보도 판단도 지극히 부족해 보이는 어떤 좁은 방을 맴도는 느낌이다.
여러가지 정보가 나왔고 그 정보들은 기자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다 틀려있고 방향도 잘못되어진 것같았다. 탑승자나 구조자의 숫자가 맞지 않았던 것은 그래서 한때는 다 구조되었다고 보도 되었던 것은 대책본부의 잘못이라고 하자. 가치없는 기사만 양산되었다. 예를 들어 사고난 배의 선장이 대체된 선장이었다는 정보를 크게 보도했지만 본래 유람선에 대체 선장이 타는 일은 흔히 있어서 별일이 아니라고 한다. 배가 통상의 루트를 벗어나 암초지역으로 들어갔다고 떠들었지만 나중에 보니 배는 통상의 루트로 운행했으며 거기는 암초지역도 아니라고 한다.
이번 사고 방송을 보면서 지금 예측되는 것과 같은 대참사를 생각한 사람은 극히 적었을 것이다. 왜 그런가. 배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현장을 생중계할 정도 였으며 중계를 보면 뒤에 다른 섬이 보인다. 가까운 섬과는 고작 3.3킬로미터의 거리밖에는 되지 않은 곳에서 배가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배가 빠진 곳은 망망대해가 아니라 수심이 30여미터정도 되는 곳이다. 유람선에는 구명정도 있었고 몰려온 어선도 많았다. 심지어 사고난 상황에서 인터넷으로 채팅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나 사고직후 조난신고를 한후에 전부 바다로 뛰어들었으면 살았을 거라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이번 사고에서 첫번째로 물어야 할 핵심적 질문은 사실 암초는 있었나 없었나가 아니다. 도대체 왜 사람이 이렇게 많이 실종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진작에 바다로 뛰어들어거나 구명정을 썼으면 그들이 살아남을 확률이 아주 컷기 때문이다. 사건 현장의 사진에 보면 사람들을 살려야 할 구명정은 배에 그대로 있다. 사고를 신고한 것도 학생의 전화를 받은 부모가 한 것이었다고 한다. 즉 제일먼저 탈출했다는 선장은 사고신고도 하지 않았거나 늦게 한 사람이었다. 생각해 보라. 승무원이나 선장이 아닌 일반인이 배가 사고 났다고 신고하면 그 신고가 얼마나 즉각적으로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여질까.
그런데 이런 의문에 답할수 있도록 승무원 특히 선장과 인터뷰를 한 기사도 없었다. 그저 친구가 죽고 자식이 죽었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대한 기사가 많았을 뿐이다. 기자들의 궁금함은 슬픈사람의 심정과 보험금에 몰려있다는 말인가.
나는 선장과 승무원의 책임을 묻고 있으며 그들의 책임회피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나의 씁쓸함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나의 씁쓸함은 사건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비인간적 모습에서 주로 기원한다. 사실 사고는 어느것이나 안타까운 것이지만 일어나기 마련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들릴때마다 정신적 피해를 입는다면 살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 예의라는것이 있지 않은가. 우리집 초상이 아니라고 초상집에 가서 춤추고 놀아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사고가 났으면 최대한 피해자를 줄이는데 노력을 해주는 모습을 봐야 그래 그래도 한국에는 인간이 있구나 할터이다. 물론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렇게 하는 분들도 많이 보인다. 일반시민이나 구조대원들이 그렇다. 그러나 나와야 할 정보가 나오지 않고, 정보는 왜곡되고, 유언비어가 퍼지고, 장난을 치고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믿음이 흔들린다. 그건 나아가 한국사회 전체에 대한 믿음,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라는 믿음에 상처를 내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 피해자들의 생존기원을 빈다. 당장 그들만큼 생명이 위급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생존해 돌아와도 그들은 한국이라는 배에 타게 된다. 과연 위험에 빠져 있는 것이 그들 뿐일까. 한국이라는 배가 기울고 있다고 할때 방송은 제대로 나올까. 제자리에 있으세요라고 말하고 도망가는 선장이 또 나오지 않을까. 부자들만 먼저 돈을 뺐던 저축은행 사건을 생각해 보라. 아이엠에프를 생각해 보라. 한국전쟁때 도망간 이승만을 생각해 보라. 이번 사건을 뒤로 밀려난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을 생각해 보라.
그런 나라에 살지 않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세상은 참 무섭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악함이 아니라 감수성의 부족이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남을 밟는 사람이다. 세상 문제의 대부분은 사악함이 아니라 둔감함에서 기인한다. 나는 이것이 장난감 같은 정체불명의 무인기 보다 훨씬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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