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세월호와 우리안의 괴물들

by 격암(강국진) 2014. 4. 21.

어떤 사람들은 이런 시기에 글을 쓰지 않고 조용히 지내야 한다고 말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나에게 좋고 작게 나마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몇몇분에게 도움도 된다고 생각해서 글을 씁니다. 사실은 한동안 글쓰기를 절제할 예정이었는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게 없습니다. 공포와 우울증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 아내만 해도 세월호 사건의 기사들을 읽으면서 이러다가 우울증 걸리겠다고 말하더군요. 피해자 가족들이 있기에 감히 그것을 들어내 크게 말하지 못할 뿐 저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국민들이 작고 크게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삼키고 포기해야할 생각이 아니라 풀어내고 발산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기타치고 노래를 불러 본다던가 글을 쓰는 것이 도움이 되더군요.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이번 경험도 좋은 방향으로 승화된 힘이 되게 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더불어 거론되는 이탈리아 선장이 있습니다. 몇년전에 이탈리아에서 유람선을 포기하고 먼저 탈출한 선장입니다. 38명이 사망했다고 하는 그 사고에서 선장은 빨리 배로 돌아가라는 경비대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육지에 상륙한 후 택시를 타고 도망가려고 했다가 경찰에 잡혔다고 하더군요. 


그 선장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나지요. 그러나 우리의 세월호 선장 이야기는 화가 나게 하는게 아니라 그걸 넘어 저를 무섭게 합니다. 이탈리아 선장의 경우는 나쁜 짓을 하면서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 최소한 부끄러운 것은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알면서 하는 나쁜 짓입니다. 그러니까 도망가려고 하지요. 


반면에 세월호의 선장은 사복으로 갈아입고 배를 먼저 탈출해서는 치료받고 온돌에 젖은 돈도 말리고 했다고 하는데 그의 반응과 얼굴표정을 보면 마치 낯선 생물을 보는 듯한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즉 상식적인 정서가 작동하지 않는 존재, 마치 인간이 파충류를 들여다 볼 때느끼는 그런 느낌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파충류를 거론한 것은 굳이 그 선장을 인간 이하로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비난할때는 화가 날때이고 저는 그걸 넘어서 아예 두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악의 개념이 상식이 공유되는 느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벽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욕하고 화내고 대화하면 소통이 될것같은 느낌이 안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안의 괴물들 이라는 제목을 단 것입니다. 


한 게시판에서 어떤 분이 화가 나서 글을 올렸습니다. 술집에서 술을 마신 모양인데 누군가가 뒤에서 술마시면서 그러더랍니다. 미친놈들 박근혜가 뭘 잘못했나. 여기서 말하는 미친놈들이란 대통령 만나겠다고 몰려가던 피해자 가족들을 말합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말하는 것이죠. 저는 박근혜대통령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만 대통령이 잘못했다 아니다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에서 느끼는 섬뜩함은 그들은 자식들이 눈앞에서 수장되는 것을 몇일동안 보고 있어야 하는 부모의 마음에 대해 전혀 공감대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때문입니다. 저로서는 제가 존경하는 사람이 대통령인 시대라고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그 부모들이 청와대에 화염병을 던졌다고 하더라도 미친놈들이라는 말은 입에서 나올 수가 없을 것같습니다. 


또 다른 예도 있습니다. 한 장관이 현장을 방문했는데 어떤 말단 공무원이나 경찰이 외친 모양입니다. xxx 장관님 오십니다라고. 거기에 대해 학모들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외치면서 짜증을 냈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저는 정서의 소통의 단절을 느낍니다. 희망은 한없이 줄어들었는지 모르나 사건은 종결된 상황도 아니고 구조를 긴박히 벌이는 상황에서 높으신 분이 오니 학부형들이 일어나서 줄이라도 서서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걸까요? 상황의 간절함과 절박함에 대해서 교감이 없는 겁니다. 그저 높으신 분이 오면 이렇게 장관님 오십니다라고 외치고 편한 의자 가져다드리고 생각없이 마이크 들고 단상에 서서 체면치례의 말을 하면 사람들이 고마워하는 그런 '상황메뉴얼'에 익숙해서 경찰과 공무원들이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겁니다. 


피해자 가족의 분노는 낯선 거리감때문입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그들의 대표로서, 그들의 이웃이고 동료시민으로서 그들의 아픔과 절밤함에 대해 공감하는 인간을 만날줄 알았는데 그들이 만나는 것은 인간의 얼굴을 했을뿐 기계나 괴물이라서 그런 겁니다. 내 가슴에 피가 철철 나서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이 전달이 안되는 느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심하게 행동하고 무심하게 말하지요. 


방송에 나온 몇몇 전문가들과 인터뷰할때 손석희가 고생하는게 눈에 보이더군요. 구조가 끝난 상황이 아니니까 비록 아무리 희망이 작더라도 희망은 매우 작지만 그래도 끝까지 노력해야죠같은 말을 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설사 희망이 전혀 없다면 조심스럽게 그것을 말할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라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같았습니다. 그냥 불쑥 가망없죠라고 방송에서 뱉어버린다던가 하는 것입니다. 다음날 어이없어 하는 손석희의 침묵이 검색어 순위에 올랐더군요. 이미 시신으로 돌아온 자식에게 인공호흡 한번만 해보자고 매달리는 부모도 있습니다. 저 배안에 자식이 살아있을거라는 희망에 매달리는 부모에게 전문가적 지식이 뭐라고 한들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일은 아니겠지요. 


우리 모두가 그런 것은 분명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호물자를 보내고, 자원봉사를 하고, 성금을 보내서 우리가 모두 괴물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항상 같은 태도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럴때 냉정하다가 또 다른 상황에서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은 우리안의 괴물들을 언뜻 언뜻 보게 만듭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괴물은 화를 낼 대상이 아닙니다. 손이 얼어버리게 차디차서 화를 내서 말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을 것같은 그런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사건을 어떤 선장이나 어떤 회사의 일탈행위 혹은 부패로 보는 사람도 있고, 사회 전체의 시스템 문제로 봐서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말들은 모두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가장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목격하는 괴물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스템이나 몇몇 미친 사람들때문에 우리가 행복하게 살거나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스템은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같지만 이 세상에 그런 시스템은 없습니다. 아무리 멋진 시스템도 그 끝에는 인간이 서있습니다. 인간이 조작하는 것이죠. 이 세상에 언제나 있는 얼마간의 이상한 사람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래도 돌아가는 것은 중심을 잡고 세상을 지켜주는 인간의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인간의 무리에 대해 저는 두가지만 지적하고 이글을 맺고 싶습니다. 첫째로 인간의 무리라는 애매한 표현을 쓰기는 했습니다만 그것은 정확히 말하면 문화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소통이 안되는 것은 문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상식으로 짜여져서 세상을 보는 방식, 세상에 기대할 것이 뭔가를 제시합니다. 우리가 우리안에서 괴물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문화가 분열하고 상식이 분열하기 떄문입니다. 문화가 우리에게, 적어도 우리의 일부에게 저들은 우리중 하나가 아니라고 속삭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적 이교도는 서로 다른 것을 믿고, 서로 다른 것을 '당연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층층의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만 사교육문제나 부동산 문제를 가지고 정치나 종교문제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말이 안통하는 느낌을 받아본 분은 많을 것입니다. 비록 언제나 그것이 분명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런 대화를 통해서 어딘가 표면적인데가 아니라 저기 깊은 곳의 어떤 가정이 기본적으로 나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경우 표면적인 사실이나 지식을 이야기해도 소통은 이뤄진다는 느낌을 받지 않지요. 문제의 뿌리는 훨씬 더 깊은 곳, 문화적 근본원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경제적 팽창의 시대를 살면서 이 문화나 정신의 문제를 지나치게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팽창의 시대가 아니였던 조선시대같은 시대에는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것은 평생동안 계속해서 이뤄낼 업적같은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거품을 거론할 정도로 팽창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는 우리가 문화나 정신의 문제를 스스로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그것을 하찮게 생각하는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흔히 말해지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기 멋진 아파트에 사는 행복한 가족이 있다고 해봅시다. 어떤 사람은 멋진 아파트라는 외형이 서면 그 안에서 행복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간단한 일이며 그저 '우리 행복하게 살아 보자!'하는 구호를 외치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파트 같은 물질, 외형을 세우는 것은 행복한 가족을 유지할 정신적 관계를 이룩하고 유지하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지극히 간단하며 그런 정신이 서면 물질은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즉 물질이 저절로 정신을 만들어 내는가, 정신이 물질을 만들어 내는가의 생각차이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의 입장은 대개 물질 강조입니다. 즉 문화나 정신의 문제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그 같은 것은 그저 그래 우리정신 차리고 내일부터 잘해보자라고 구호 몇번 외치면 될걸로 생각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물질에 아무 관심없이 정신만 이야기하는 부족앞에 거대한 항공모함급의 배가 나타났는데 그 부족장이 말하기를 그래 우리도 큰배 가져보자, 내일부터는 열심히 배를 만들지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말은 틀리지 않지만 항공모함을 만드는 물질적 지식의 축적에 대해 지나치게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는거 아닐까요? 그렇게 사소하게 생각하는 태도 자체가 물질적 축적을 실패하게 만드는 첫번째 이유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반대는 어떻겠습니까. 예를 들어 좋은 아버지 되는거. 그저 짧은 반성과 구호한번이면 되는거 맞습니까? 


한국은 해방이후 많은 물질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오히려 정신이 그것을 감당할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도 하지 않은채 원하면 몇년안에 4대강변을 모두 바꿔버릴수 있는 물질적 능력만 키웠습니다. 아파트만 세우면 마을은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이고, 강변에 자전거도로만 깔면 자전거를 타는 문화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물론 과학도, 심지어 예술도 모든 것은 그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누가 노력해서 좋은 음악가가 되고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되어도 묻습니다. 그래서 얼마번데?  이번 참사가 일어난 첫날에도 보험금을 먼저 계산합니다. 일인당 1억이면 3백명이라고 해도 3백억이죠.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는 순식간에 3백억짜리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저축은행 사태로 몇조가 움직이는 것에 비하면 갑자기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게 우리안에 있는 괴물의 목소리인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정신, 우리의 문화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여기에 다 쓸 수도 없거니와 제가 결정할 일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정신과 문화의 문제를 너무 내팽겨치고 있다는 것은 기억해 둬야 할 것입니다. 긴급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대통령오십니다라고 하면서 대통령영접에 최선을 다하고 내일 아닌것 처럼 그저 얼굴이나 비추려고 하는 그런 것도 다 문화의 문제입니다. 백성의 부모인 왕과 기능적 관리직인 대통령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민을 위해 대통령이 있는것이지 대통령을 위해 시민이 있는게 아니니까요. 이번 비극을 통해 우리안에 반성이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