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인과론
세월호 참사는 현재도 진행중이지만 배가 인양되는 몇개월후까지 지리하게 사람들의 속을 특히 피해자 가족들의 속을 찌르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같다. 따라서 그전에 사람들은 보다 본격적으로 도대체 이게 누구 때문인가, 무엇때문인가를 묻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답은 앞으로 밝혀지게될 여러가지 사실들로 인해 바뀌어 지게 될 것이며 특히 법적인 책임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참사의 인과관계의 문제는 앞으로 보도되고 알려질 사실 이상으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여기 자동차가 있다고 하자. 자동차같은 기계의 경우도 대개는 사고의 이유는 이 부품때문이다라고 딱잘라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정부품만 고장나고 낡았으며 나머지 부분은 완벽한게 아니라 차가 노후되면서 여기저기 다른 부품도 다 낡고 성능이 저하되어 고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부분에 무리한 하중을 가하게 만들어 다른 부분을 고장나게 만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을 더 넓혀서 사고를 자동차 바깥의 것, 그러니까 도로 사정이나 날씨 운전자의 운전방식과 자동차 관리습관에 까지 넓히면 이 자동차가 고장나서 사고가 난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에 답하는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죽이고는 그때 브레이크가 조금만 더 잘들었더라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텐데 브레이크를 납품한 회사가 이 사고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브레이크에 왜 책임이 없겠는가. 하지만 왜 이게 전부 브레이크 때문이겠는가.
사고의 인과관계는 상상이상으로 우리가 사고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달린 문제이고 앞으로 언론을 중심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인과관계를 포함한 이야기가 만들어 질 것이다. 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마치 역사가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사관에 달려 있듯이 사람들의 눈을 확인하는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눈은 건강한 것일까.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실종자가 생겼고 기적이 있다고 해도 수많은 사망자를 생산하게 될거라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 참사는 누구 때문일까. 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린 학교? 배에탄 승객을 뒤로하고 탈출한 선장? 위험한 코스에서 운전을 한 3등항해사? 20년이상된 낡은 배를 무리하게 운행하고, 무책임한 선장을 고용한 회사? 20년 이상되면 배를 쓸수 없게 되어있던 법을 2009년에 바꿔서 30년으로 만들어 세월호를 운항하게 만든 이명박 정권? 우리사회의 부정부패와 대충주의?
물론 우리는 이밖에도 많은 것들을 나열하면서 모든 것이 문제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제대로 된 이야기가 아니다. 인과관계가 없다시피 한다. 모든 것이 책임져야 한다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배운게 하나도 없다면 우리는 몇년 후에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일에 놀라고, 무슨 새로운 일이 일어나면 그 예상치 못한 것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조용한 마을에 성추행범이 나타나서 여자를 희롱하면 사람들은 그 성추행범을 주로 욕하지만 성추행범이 언제나 득실대는 우범지대에 연약해 보이는 여자가 야한 옷을 입고 들어가서 희롱을 당하면 그 여자는 거기에 왜 들어갔대라고 말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도 한국이 원래 그렇다며 몇년에 한번씩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나는 한국사람이고 한국정부고 안믿는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는 세월호참사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국민은 이번 사건을 통해 놀랐다. 모두는 아니라고 해도 나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한국에 미친 선장이 한명 있다거나 과적에 낡은 배가 운항되는 일이 있다는 점은 아니다.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한국의 이름을 불명예스럽게 만든 대한민국 정부의 무능이다.
어느 나라나 사고가 있고 따라서 사고가 없기를 바라기 보다는 사고의 방지를 위한 장치가 작동하기를, 사고가 나도 그 사고가 큰 것으로 번지지 않을 재해 방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배나 비행기 지하철이 얼마나 자주 다니는가. 그렇게 자주 다니고 타는 교통기관이 단 한사람의 미친짓으로 전원사망에 가까운 참사를 항상 부른다면 우리는 그런 것들을 탈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사고도 보면 그런 몇 겹의 안전장치들을 다 풀어헤친 끝에 나온 것이다. 교육받지 못한 승무원, 제대로 수리되지 못하고 과적된 배가 그렇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육지에서 불과 3.3킬로 떨어지고 수심이 30여미터인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 배에서 신속히 사람들을 구조할 국가다. 그 국가의 무력함과 무관심이다.
나는 온 세계가 수백명의 목숨이 걸린 이번 참사에 대해 충격을 받는다고 반응하는 가운데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 국가기관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한가하게 반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한가하게 반응하는 부분들이 정보수집과 판단 과정의 중간 중간에 박혀서는 전체 시스템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피해자의 가족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정보가 부정확하고 현지 사정에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사고는 초단위로 심각해져 가는데 반응은 일주일 단위로 이뤄지는 느낌이랄까. 그걸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바지선과 조명탄 문제였을 것이다. 바지선을 띄운다던가 조명탄을 터뜨린다던가 하는 일을 신속히 결정하고 실행에 옮길 사람이 없었고 구조작업은 지극히 한가롭게만 보였다. 왜 선체를 뚫고 들어가면 안되는가, 왜 잠수함이 가면 안되는가, 왜 민간 잠수업자와 신속히 협력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답은 지극히 한가롭게 처리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교통체증이 심각한데 앞에서 똥차가 길을 막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거기서 구조하는 실무자들이 절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물살의 세기와 상관없이 무조건 잠수부가 물에 들어가게 하겠다는 말이나 이번 사건을 못 해결하면 옷벗을 각오를 하라는 말을 하는 상관밑에서 구조작업하는 실무자들이 오히려 안타깝다. 포크레인을 옆에 세워두고 숫가락으로 땅파는 인부를 닥달하는 사람을 보는 것같다. 사람들이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은 포크레인은 왜 안쓰는가지 실무자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으라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구조원중의 누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놀라는 것은 명령권자,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군부대에서 졸병은 군화도 자기 맘대로 못하는데 현장에 있는 실무자에게 조명탄쏴라 왜 안쏘냐고 한다고 그 실무자가 그걸 할 능력이나 권한이 있을리가 없다.
결국 이런 느린 반응은 권한을 가진 명령권자가 사태의 심각성을 신속히 느끼고 제한조건을 책임지고 풀어버리지않은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돈이 어디까지 들어도 되는지, 어느 정도의 위험까지 감수해도 내가 책임질 건지, 개입하지 않고 뒷자리에 앉아서 권한만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야말로 개입은 안하고 간섭만 하고 있었달까. 300백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도 그들은 현실감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저 한두명이 물에 빠졌을때 행하는 구조 메뉴얼이 생각없이 진행되는 느낌이다. 느끼고 머리를 쓰는 자가 없으니 피해자 가족은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중에는 누구보다 대통령이 있다. 이번 참사를 통해서 박근혜대통령은 긴박한 상황에서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아주 극명하게 들어났다. 누구보다 많은 권한을 가진 대통령은 어떻게 보면 바로 이런 상황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모든 일들이 천천히 지극히 메뉴얼대로 일어난다면 최고 명령권자는 있을 필요가 없다. 그냥 법과 메뉴얼과 시스템이 자동으로 일을 처리하면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예측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은 인간적인 요소를 필요로 한다. 즉 인간의 판단력이 즉각 개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부분이 이번 참사를 통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때문일 수도 있고 그녀를 둘러싼 관료들의 인적장막이 그녀를 무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이야기가 그 이야기다.
한국사회는 이명박 대통령이래 즉 현 여당의 집권이래 권위주의의 강화로 역사를 역주행해오고 있다. 전문가의 의견은 무시된다. 언론은 상식적이지 않고, 권한은 아래로 풀려서 자치와 소규모 공동체의 시대를 열기보다는 대규모 공사로 윗사람이 일을 저지르면 아래 실무자가 죽어나는 사회로 역진했다. 4대강건설이 잘 보여주는 것 처럼 말이다. 그것과 세월호 사건에서 보여지는 반응속력의 차이와는 관련이 없을까? 소리만 지르고 권한을 독차지 하는 상관에게 실무자는 정보를 숨기는 버릇이 생긴다. 열을 하면 왜 백을 못하냐는 말만 들게 되기 때문이다. 백을 하건 천을 하건 일이 잘 풀리면 상관은 그것을 모두 자기 공으로 만든다. 일이 안되면 물론 그것은 실무자의 탓이다. 박근혜가 보여주었듯이 현장에 사진 찍으러 가서 열심히 하세요라고 돌아오면 신문은 속보로 그것을 보도하고 나중에 일이 잘되면 그것은 박근혜 공이되는 것이다. 물론 잘안되면 그것은 실무자탓이 된다. 그러니까 실무자는 항상 자기능력을 숨기고 정보를 변형하는 버릇이 생긴다. 죽도록 뛰라고 해서 정말로 죽도록 뛰다가는 언젠가 보상도 없이 죽는다. 왜냐면 상관은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사회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을까?
우리는 과거 이상으로 미래를 바라보면서 질문하게 된다. 미래에 세월호 사건이 또 일어난다고 하자. 그 때를 위해 우리는 뭘 바꿔야 할까? 해경이나 군인들 잠수실력을 더 향상시켜야 할까? 배의 안전검사를 철저히 하는 법안이 있으면 그 법이 우리를 잘 지켜줄까? 미친 선장을 엄격히 처벌하고 선장들 훈련을 열심히 시키면 될까? 구조 장비를 살 더 많은 예산을 짜면 될까? 지금은 법이 없고 상식이 없어서 예산이 부족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 배안에 현 정권의 실세와 재벌들 자식들이 들어 있었다면 대응이 전혀 다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일까? 나로서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다. 근래에 법원 판결에 있어서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게 실현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가? 한국에서 모든 사람의 목숨이 똑같이 존중된다는 사실은 믿기지가 않는다. 내가 보기엔 제일 바꿔야 하는 것은 청와대고 정권이다. 그들이 대표하는 낡은 사고방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 앞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인과론이 어떻게 전개되건 그 이야기는 이러한 점을 부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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