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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판단과 한국 사회

by 격암(강국진) 2014. 4. 25.

세월호의 여파때문에 낡은 문제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 문제중의 하나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걸 처리하는 능력이 지나치게 나쁘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시스템, 이런 저런 메뉴얼의 부재를 한탄합니다. 그건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진짜로 중요한 것의 반대방향을 가르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상황에 직면하여 자신의 눈으로 보고 머리로 판단하는 개인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의 반성이 없으면 문제는 좋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나빠질 것입니다. 1993년 서해훼리호사건때 지금 나오는 이야기와 거의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만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발전은 커녕 오히려 후퇴한 것같다고 말하는 판입니다.  


이 사건의 관계자중에 몇백명이나 죽는데 살려야하지 않겠냐고 하면 그럴필요가 있냐고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적어도 일반시민들의 눈에 비친 모습은 타성과 관습에 젖어서 급한 상황앞에서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습관대로 움직이는 로보트 같은 인간들의 반응이 많았습니다. 자기동료는 배 밑에 있는 사람까지 불러서 다 살리면서 학생들보고 배위로 올라오라는 방송도 제대로 하지 않는 선장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배가 가라앉는다는 신고를 받으면서 한가하게 위도경도를 학생에게 묻고 보고는 문서를 작성해서 보고하는 해경도 그렇습니다.  사건현장주변에서 대기만 했을뿐 출동도 하지 않았다는 특공대며 헬리콥터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권한을 가지고 있거나 현장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중에 깨인 사람이 있었더라면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을 거라고 느낍니다. 


이 문제가 우리안에 뿌리깊은 문제라는 사실은 반복해서 지적되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서도 대한항공의 사고에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이 영향을 미쳤다라는 점이 나오지요. 부기장이 기장에게 한국어로 위험을 이야기하면 어느새 난 자신이 없지만 이거 아닐까요하는 식으로 이해가 되어서 혼선이 온다는겁니다. 그래서 사고율이 올라간다는 겁니다. 결국 대한항공은 비행기 사고이후 기장끼리는 영어로만 대화하라고 했다는 군요. 이번 사고의 급박한 상황에서 느릿하고 한심한 대처가 나온데에 과연 똑같은 문제가 없었을까요? 


그러니까 이 문제를 대처 메뉴얼상의 문제와 교육 정도로 느끼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배의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서 물이 새는데 물을 빨리 퍼내지 않거나 물을 빨리 닦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구멍이 있는 것이 문제죠. 관행과 관습에 젖어서 드물게 있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썩어가는 현실이 문제인데 가끔 사건이 터질때마다 잘하자, 메뉴얼잘지키자고 다짐만 하면 과연 10년후에 같은 말을 안하게 될까요? 지금 대통령이 그때도 대통령합니까? 지금 메뉴얼 만든사람이 그때도 같은 자리에 있을까요? 메뉴얼이 문제가 아니라는게 아니라 어떤 메뉴얼이건 그걸 만들고 유지하려면 우리는 로보트가 아니라, 망각의 동물이 아니라, 깨어있는 인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번 사고후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이일은 내책임이 아니다. 누구보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그렇게 말했죠. 하부조직이 안돌아가면 재빨리 개입해서 일을 잘돌려야 할 책임이 있는 청와대가 우리가 책임지는게 아니다라는 말이나 합니다. 사실 메뉴얼도 시스템도 인간이 만드는 겁니다. 세월호 같은 규모의 비극은 매년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사건의 현장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랬다간 큰일날텐데 하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고, 그저 이건 내일이 아니야, 누가 또 뭘 하겠지, 이런거 누가 생각해 놨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메뉴얼이 만들어 지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게 만들어져도 금새 잊혀질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몇십년전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는 발전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너 자신의 눈으로 보고, 너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라라고 하는 인간의 독립성을 키우는 문제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과연 발전했을까요? 


우리는 남이 좋다고 하는 인생이 아니라 곰곰히 생각해서 내가 좋다고 느끼는 인생을 삽니까? 우리는 그렇게 하기 위해 뭐가 필요할까 생각하는 인생을 삽니까? 그렇기는 커녕 한국은 유달리 유행에 민감하고 추세를 따라가는 일이 많아서 다 똑같이 똑같이를 강조하는 사회가 아닙니까? 요즘의 청소년과 대학생이 30년전의 청소년과 대학생보다 더 독립적인 사고를 한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습니까? 


한국의 교육은 말하기와 글쓰기는 강조하지 않습니다. 외우는 것은 강조하죠. 이런 교육을 열심히 받으면 받을 수록 우리는 어떤 인간을 만들어 낼까요. 표현하고 생각하는 것은 필요없다. 정해진 답을 열심히 외우라는 것만 배우지 않을까요? 이러면서 한국의 신문들은 한국에는 왜 노벨상 수상자가 없을까를 묻습니다. 노벨상 많이 받기로 유명한 유태인은 내가 본 바로는 정확히 이 반대로 아이를 키웁니다. 그들의 교육은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국에 인문학 열풍이 불면, 그 말은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열풍이 분다는 뜻이 아니라 독서 열풍이 분다는 뜻입니다. 남이 쓴 것을, 더더 어려운 것을 더 가열차게 읽는 것만 강조됩니다. 외국인이 쓴것이라도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긴 하지만 정의란 무엇인가도 우리는 주로 외국인에게 배웁니다. 


한국인의 사고, 한국인의 삶은 너무나 위태로울 정도로 날카롭게 다양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라디오를 틀면 광고가 온통 성형외과 선전이더군요. 부끄러운 내용을 잘도 말합니다. 우리가 돈에 얼마나 중독되어 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생은 당연히 취직과 돈을 위해 대학에 갑니다. 취직이나 돈과 상관없는 학과는 마구 문을 닫습니다. 이러니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란 결국 종종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됩니다. 인생의 의미따위는 생각해 본적도 없는 사람들은 좌절하고 힘들면 종종 사이비종교의 엉터리 교주에게 달려갑니다.  


어떤 사람은 물을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냐고. 있었고 있습니다. 있는게 당연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돈돈돈하다가 그걸 잃어버렸을 뿐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돈돈돈하는 그 중독때문에 한국 사회의 전체적 부는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이 그걸 보여주지 않습니까?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독립적 판단이 안되는 권위주의 사회에서 빠른 대처가 필요한 일에 그렇게 하지 못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손해를 입고 있는 걸까요. 부동산 투기 바람이 왜 일어나겠습니까? 국정원 정보조작같은 것에 우리가 왜 당하겠습니까? 


누군가가 빚을 잔뜩 내서 비싼 집을 산다면 그 사람의 성공은 겉보기만 화려할 뿐 실은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무너질지 모릅니다. 우리는 한국이 발전했고, 성공했다는 말에 취해있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가 가진 것은 전부 모래성일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이 똑바르다면 통일은 왜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세월호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언뜻 보여줍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또 어떤 위선이 그걸 덮어버리고 우리를 잠들게 할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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