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 외국으로 이민을 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도 이런 저런 일로 한국의 현실에 대해 가슴아파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에서 살고 싶다. 물론 그렇게 느끼는 가장 큰 두가지 이유는 첫째로 내가 애초에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거기서 자라났기 때문이고 둘째로 내 부모님을 비롯한 친척들이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뭔가를 사랑하는데 객관적 이유는 있기 힘들겠지만 외국에서 벌써 15년째 살고 있는 내가 한국에 대해서 이게 바로 내가 한국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고, 거기서 살고 싶은 이유라고 다시 정리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같다. 언제나 그렇지만 나도 그게 궁금해서 쓴다. 한국은 뭐가 좋은 나라일까.
긴 역사
내가 외국에 살아보니 역사가 길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역사가 길다는 것은 단순히 그 곳의 땅을 파보았더니 만년전부터 사람이 살던 흔적이 있더라 같은 것이 아니다. 수천년된 고대문명의 유적이 남아있다는 것정도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는 기록으로 남고 문화로 이어지며 중단없이 변화해온 정체성의 역사다. 우리 민족은 한반도에서 오랜동안 살아오면서 그 문화적 연속성을 이어왔다. 나도 외국에 오래 살아보기 전에는 이런 말이 가지는 의미를 그렇게 실감하지 못했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가 어떤 것인지를 몇마디 더 쓰기전에 그 역사가 끊어져 버린 예를 한두가지 들어보자. 역사가 끊어져 버린 예에는 미국 인디언의 역사가 있고 북해도의 원주민의 역사가 있다. 미국에 가면 물론 박물관에서 미국 인디언의 역사를 찾을 수도 있지만 그건 상당히 드문일이다. 그래서 미국대륙에 오랜동안 사람이 살았지만 미국이란 땅은 역사가 굉장히 짧은 땅이다. 연속성이 없기에 그 이전의 역사가 거의 대부분 유실되고말았다.
북해도에 가도 나는 마찬가지의 것을 발견한다. 일본이 정복한 북해도는 그나마 원주민의 역사가 남아있는 오키나와와는 달리 원주민의 역사가 거의 없다. 그래서 북해도에 가면 미국에서도 가끔 느끼는 어떤 문화적 진공을 느낀다. 모든 것이 일본 본토에 있는 것을 이식하고 복제한 것이며 그것을 제외하고 나면 인간의 숨결이라고는 없는 대자연만 남은 땅처럼 느껴진다.
중단없이 이어져온 역사는 그 땅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남기고 문화적 정신적 유산을 남긴다. 우리가 그것의 가치를 낮게 보는 것은 마치 최근에 나온 자기 개발서 한권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면서 수천년동안 내려온 고전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유행이 지나고 나면 인기좋았던 최신의 책은 사라지고 남아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대개 고전인 것이다.
세상에는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변화가 있고 그에 따라 어떤 지식이나 문화적 풍조가 인기를 얻고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또 시간이 지나면 바뀐다. 그들은 대개 고전의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나는 미국 사회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들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그들은 위대한 미국문명을 건설했지만 그래봐야 몇백년된 문명인 것이다. 만약 최근에 그들이 누렸던 경제적 군사적 강점이 약화된다면 미국에서의 삶의 질이란 급격히 악화될 것이다. 이것은 예측이 아니라 내가 이미 어느 정도 그렇게 되었다고 실제로 느낀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야만국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미국이 스스로를 멜팅폿 즉 여러 인종, 문화의 사람들을 녹여내는 곳으로 부르지만 그것은 경기가 좋을때나 그런 것같다.
그게 바로 문화의 깊이와 문화적 융합의 힘이다. 음식문화, 언어 문화가 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형편이 좋을 때는 그런 문제가 표면화되지 않지만 형편이 안좋아지면 냄비식듯 식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선진국 국민답지 않게 무질서해지고 반인륜적 범죄가 창궐하게 될수 있다. 마치 연비가 안좋은 자동차나 보일러같은 느낌이다.
오래동안 내려온 문화라는 것은 말하자면 굉장히 효율이 좋은 것이다. 김치같은 음식을 보라. 모두가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돈이 넘쳐나는 호황일때는 김치가 별거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힘들게 되어 가난해 지면 김치의 힘이 나타난다. 밥과 김치만으로도 우리는 즐거운 식사를 한다. 그러나 오래된 문화를 가지지 못한 지역은 형편이 나빠지면 삶의 질이 더 급격히 떨어질수 밖에 없다. 싸구려 술에 파전을 곁들이고 평상에 앉아 술한잔 하면 세상 사는 시름이 사라지는 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다.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구들방에 앉아서 고구마라도 먹으면 행복해지는 것이 문화의 힘이다. 저비용 고효율로 사는 방식을 축적한 것이 바로 오래된 문화다.
작은 땅이라도 오래된 문화를 가진 곳은 여기 저기에 배울 것 볼 것이 많다. 그렇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국악이 있으니 국악공연이 있고 설날이 있으니 설날 장사가 있으며 효도하는 문화가 있으니 효도관광사업도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가진 문제도 많고 한국이 선진국과 비교해 부족하고 아쉬운것도 많지만 세계의 많은 지역은 한국보다도 못하다.
게다가 한국의 문화와 역사는 단순히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21세기의 세계의 보편적 문화와 이어져 있다. 즉 한국인은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등 세계적 부자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우리의 힘을 과신하거나 지나치게 높게 평가할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적어도 한국 문화가 세계의 보편적 문화와 소통가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소통가능성은 단순하게 볼게 아니다. 특히 인터넷시대에 더 중요한 문제다. 나는 한국이 이점에서 일본보다도 중국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민주주의가 가능한 나라지만 일본과 중국은 가능하지 않거나 실패하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적 위험요소를 안고 있고 일본이 그랬듯이 중국도 한계를 보이게 될 것이다. 중국사회를 어느 이상 외부에 노출시키면 사회자체가 붕괴할 것처럼 흔들리기 때문이다.
오래되면서도 발전적으로 세계를 수용해서 가장 첨단의 보편성과도 닿아있는 문화를 가진 나라는 세계에 정말없다. 그 작은 인구를 생각할 때 한국이 영화, 드라마등 문화상품을 수출하는 나라라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합리를 추구하는 문화
한국문화는 단순히 길기만 한 것이 아니다. 한국을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때 두드러지게 차이나는 문화적 특징이 바로 합리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즉 기록하고 따져서 옳은 것을 찾으려고 한다. 이걸 어느 나라나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나는 오직 한민족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문자인 한글을 사용하고 있으며 오직 조선만이 그렇게 방대한 기록물을 남겼다는 점은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정보를 수집하고 축적한다는 뜻이고 그것은 그런 정보의 축적안에서 어떤 법칙과 합리적 삶의 방식을 찾아 낼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그런 수고를 들여서 그런 짓을 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그렇게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한국은 왜 수많은 다른 빈민국과는 달리 지금 정도의 수준의 경제적 성공을 거뒀을까? 왜 남미나 필리핀이나 아프리카나동남아시아의 나라와는 다를까?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고 운이 좋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속에 사람은 배워야 하고, 책속에 길이 있다라는 것을 믿음이 없었다면 그런 다른 이유들이나 운도 통하지 않았을것이다. 가혹한 어려움을 참으면서도 자식들을 교육시키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한민족은 일제의 침략과 가혹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 정도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한민족이 보여주는 특징을 비슷하게 보여주는 또다른 민족이 유태인이다. 유태인도 기록을 중시하고 교육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들도 가혹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서 세계에서 가장 권력있는 민족으로 통하고 있다. 모든 민족이 다 한민족같은 것은 아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실망스러울지 모르지만 한국은 그래도 문맹률이 낮고 사람들이 여러가지 사회적인 일에 관심을 보이는 나라다. 인간답게 사는게 뭔지 고민하고 사회적 불의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이 많다. 독재를 허용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세계의 많은 곳에서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이같은 문화가 원래 우리 민족안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조선성리학의 영향인지 잘 모른다. 아마 두가지 영향이 다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 우리는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특징이 바로 자기 정체성의 각성으로 이어진다. 그렇지 못했다면 우리는 중국과 구분되지 못하고 언어적 문화적 특징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기에 많은 영향을 받아들였지만 결국 중국인이 되지 않고 따로 남아 있는 것이다. 즉 조선 성리학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것도 있지만 우리안에 이미 그런 학문에 대응하는 것을 좋아하는 면이 있었기에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여 유지해 왔을 것이다.
아직 남은 젊음
마지막으로 내가 한국에 대해 좋아하는 점은 한국은 그래도 아직은 젊음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월드컵때와 노무현대통령 탄핵때 광화문을 가득 채운 시민들을 보면 한국은 아직은 젊음이 남아 있다. 물론 한국 사회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사회이며 사회적 활력이 급격히 소진되어가는 느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과 세상에 실망하고 포기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국은 이런 점에서 더 절망적이면 절망적이지 더 희망적이지 않다. 어쩌면 단순한 말이지만 나는 재미있는 것이 좋다. 재미있는 것이 생겨나는 곳에서 살고 싶다. 모든 사회적 분란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 사회가 가진 활력에서 희망과 미래를 본다.한국에서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길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보니까 그런 것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한국사람들이 영화광이라는 사실도 일정 부분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인구는 5천만이 안되는데 천만 관객이 든 영화들이 있고 그 영화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대개 역사적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영화들이다. 이야기의 힘이 통하는 대중이라는 것은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진 대중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광신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도 있다는 점은 옳다. 하지만 모든 것에 대해 시큰둥한 나라는 바로 늙은 나라다. 이야기를 믿고 그것을 중심을 뭉칠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올바른 비전만있으면 앞으로 추진력을 가지고 변해 갈수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래도 여전히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다. 여기 저기서 문화 교실을 열고 모임을 만들어 한국 사회가 방향을 완전히 잃지 않도록 하자고 노력하는 소리들이 들린다. 외국도 물론 그런 사람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많은 희망을 가진 땅이며 조금만 더 노력하고 변화하면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진 사람들에게 매우 존경받는 국가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 힘이 재미있고 멋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맺는 말
이렇게 쓰고서 되돌아 보았다. 나는 말하자면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외국 가봐야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단순해서 사는게 재미가 없다. 게다가 그 나라들이라는게 이미 젊음이 없어서 물려 받은 재산가지고 천천히 망해 가는 나라 같은 나라들이 아니면 합리적인 세상을 추구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나라다. 그러니 돈많이 싸들고 양로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면 재미있는 일은 별로 없는 가난한 나라에 가서 사는 일이 되기 쉽다.
한국은 그래도 훌룡한 나라고 잠재력이 있다.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길 수 있는 나라고, 일단 그렇게 되면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다. 남북 자유왕래의 시대만 와도 그래서 대륙 자유소통의 시대만 와도 세상이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러니 현실이 힘들고 어려워도 한국의 미래에 투자를 하는 것이 옳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내가 한국에 사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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