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모시고 암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의 종합병원을 다니다 보니 현대인의 삶이란게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대개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고 온갖 세금을 내고 자격증을 따고 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대개 그런 일은 매일의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큰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므로 병원을 출입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을 크게 바꿉니다. 그리고 나면 갑자기 병원의시스템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과연 현대인의 삶은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과연 이런 시스템을 노인들이 혼자서 이용하는게 가능할 것인가. CT촬영을 하려고 조영제 주입준비를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앞순서로 나간 한 노인에게 한 간호원이 친절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고 하는 설명을 늘어놓습니다. 그 간호원은 매일같이 같은 소리를 할 테니 줄줄 외울테지만 듣는 사람입장에서는 인터넷가입이나 보험가입할 때 복잡한 약관을 늘어놓는 소리를 들을 때와 비슷합니다. 이러면 되시구요, 저러면 되시구요, 이러니까 이렇게 하시고 아니면 저렇게 하세요라고 하는데 노인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뿐입니다. 젊은 저도 따라가기 힘든데 저 노인이 과연 저걸 따라갈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병원은 아픈 사람들이나 저교육층도 오는 곳이니 이건 가망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설사 따라간다고 해도 겨우 겨우 따라가서는 결국 병원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게 됩니다. 즉 복잡하고 빠른 일정속에서 나의 편의를 고려할 여지가 거의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 것도 그렇게 안하면 큰일이 나나 싶어서 시키는데로 해야할 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든 생각은 병원에도 새로운 직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의무사나 의무원이라고 불려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법률 시스템에 대해 서비스를 받아야 할 때 우리는 종종 법무사나 변호사에게 갑니다. 왜냐면 너무 법률이 복잡하기 때문이죠. 조선시대의 사또의 판결처럼 개인이 직접 판사에게 가서 이건 저렇습니다, 저건 이렇습니다라고 말을 하면 사또가 판결을 내리는 그런 사법체계는 이제 없습니다. 누구나 압니다. 법률 시스템에 익숙한 변호사의 도움이 없이 현대인은 길을 잃는다는 것을.
현대의 병원은 전산화가 이뤄지면서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변했고 그만큼 더 빠르고 복잡해 졌습니다. 그것은 마치 DIY, 즉 Do it youself 치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병원은 그저 온갖 것의 전문가만 있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의사까지 포함해서도 전부 자기 자리에서 전문화하여 자기일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조선시대의 의원을 보여주는 사극 허준에서 의원에게 병자가 가서 아픈데요하면 방법이 어찌되건 병이 무엇이건 아픈 것을 고쳐주는 그런 식의 의원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좀 과장하면 알아서 환자가 나는 폐암 3기고 전이는 없으며 체력문제가 있으니 방사선 치료만 해주시요라고 말해야 하는 수준인 것입니다.
우리 아버님만 해도 혈액검사결과 암이 의심되니까 검진을 받으라고 해서 종합병원에 갔는데 그 병원의사는 대장암 전력이 있는 아버지의 대장부위만보고 대장검사결과 암은 없습니다라고 판정내려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몸은 계속 안좋으셨고 따로 또 계속 시간을 쓰고 검사를 다른 병원에서 받다가 몇개월이나 지나서 폐암판정을 받으 신것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의사는 몇달 먼저 알았어도 똑같았을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정말 그 의사가 자기 아버지가 똑같은 상황에 처해도 한치의 차이도 없이 똑같이 느낄 것인지 궁금합니다. 진단후 1년안에 사망하는 사람도 흔한 폐암에 대해 암진단이 몇달 늦어도 똑같다라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당연한 일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병원은 이제 의사가 환자를 보고 합리적인 판단하에 필요한 진료를 한다라는 상식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하지요. 그러나 점점 더 그저 환자가 오면 매뉴얼대로 이검사 저검사 받으시고 저리로 가세요 하는 식으로 변해왔고 그렇게 변한 면도 큰 것같아 보입니다. 그 매뉴얼 속에서 환자가 겪는 고통은 망각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돈은 둘째치고 검사받다가 병이 심해져 죽을 판인 것입니다.
더구나 암전문의는 암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노인의 경우는 대개 여러가지 병을 한꺼번에 앓습니다. 고혈압에서 전립선문제, 당뇨문제등 여러가지 병이 있어서 고통을 겪습니다. 그럴때 물론 의사는 자기의 치료가 그런 다른 지병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신경은 쓰지만 환자가 이런저런 고통을 호소하면 그건 암치료 때문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암이나 암치료때문이 아니니 내 일이 아니라는 식입니다. 노인중에는 이런 식으로 증상들에 따라 각자 고민하고 서로 다른 곳에서 약처방전을 받아서 그걸 다 한꺼번에 먹다가 문제가 나는 일도 많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현대의 환자가 겪는, 특히 재벌이 아닌 보통의 서민이 겪는 의료시스템이란 마치 현대 법률시스템처럼 복잡해 졌는데 법무사도 변호사도 없이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사람이 겪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환자들은 인터넷 찾아가며 스스로 병에 대해 공부하고 안간힘을 다해 병원 시스템안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딜가나 저리로 가세요, 여긴 잘못오셨습니다, 여기계세요,같은 말을 할 뿐입니다. 즉 계속 사람을 돌리는 것입니다. 왜 예전에 관공서에 인허가 같은거 떼러 가면 생기는 그런 일들, 바로 그런 일들이 병원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거 의무사가 있어야겠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나마 친인척중에 의사라도 한명 있어서 조언을 받지 않는다면 길을 잃어버릴 것같은 것입니다. 심지어 의사도 전체 시스템에 대해 잘 아는가에 대해 회의가 듭니다. 그리고 갑자기 걸려온 지인의 전화에 조언을 주는 의사가 그 환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얼마나 도움되는 조언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의심스럽습니다. 일반론, 원칙론밖에 말해 줄수 없겠죠.
저는 꼭 자 이런 새로운 직종을 만듭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생각은 들지만 그것이 이 글의 핵심은 아닙니다. 다만 현실이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현대에 있어서 가장 좋은 의사는 젊고 부모님을 걱정하는 자식이 같이 살면서 보살펴 드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노인들은 마치 타임머쉰을 타고 현대에 온 구석기 인간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내버려두면 스위치 조작을 잘 못해서 집이 다 타버리는 일이 있거나 교통사고가 날지도 모르죠. 다시 말해 많은 학식을 가진 의사가 병을 고치는게 아니라 옆에서 이 DIY의 시대를 살아갈 수 있도록 일상의 작은 일들을 처리해 주는 사람이 있는 쪽이 애초에 병을 만들지 않게 하고, 병도 치료될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현대의 의사들이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은 점점 인간의 얼굴을 가진 존재이기 보다는 스위치를 누르면 편리하게 물건을 잘라주는 전기톱같은 최신식 기계가 되어간다는 느낌입니다. 좋은 기계는 성능이 좋을 수록 잘못쓰면 오히려 다 위험합니다. 그게 현대의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글을 현대인의 삶을 병원이 잘 보여준다고 말한바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허둥대면서 우리는 우리가 잘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느낍니다. 일을 잘 처리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병원바깥에서 병치료가 아닌 일에 대해서는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요. 또 어디서건 빠르고 단호하게 들려오는 이건 이렇구요, 저건 저렇구요, 저건 원래 그래요 같은 말들에 휘둘리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떻게 살것인가를 다들 고민하고 생각해 보고 있을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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