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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거 너무 티내지 마라.

by 격암(강국진) 2014. 10. 29.

얼마전에 한 한국 여자 연예인이 중국인과 결혼을 하는 기사를 여러번 본 적이 있다. 제목 뿐이지만 말이다. 워낙 여기저기서 기사를 써내는것도 있지만 제목만 봐도 알수 있는 것이 결혼식도 성대하게 여러번 여기저기서 한 모양이다. 나는 그다지 그런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게다가 그녀의 일은 생각의 실마리가 되었을뿐 내 생각은 곧 그녀의 일 너머로 풀리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것은 행복한거 너무 티내는거 좋지 않다는 거였다. 


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표현하는 것이 찬양받는 시대에 왠 촌스런 감성이냐고 할지 모른다. 게다가 아마 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도 여러가지 다른 의유로 그렇게 할 것이다. 나는 이 주장에 대해 여러가지 잡다한 이유를 가져다 댈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오직 한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행복을 너무 표현함으로써 그 행복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다. 행복을 표현했을 때의 통쾌함을 즐기는 것이나 다른 사람이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보다 내가 좀 더 지속적으로 행복한게 더 중요한거 아니겠는가. 표현을 하는게 전적으로 나쁘다는게 아니다. 오히려 표현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자기 내부를 위해서 그 행복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안으로 삼키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따지고 보면 이미 여러 사람들이 그런 조언을 주고 있지만 내식으로 말하자면 행복을 극적인 정점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은 행복을 유지할 힘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사람이 유명해 질 수록,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록,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록 아무리 자제력을 발휘 해도 허영과 과장에 빠지지 않기는 점점 더 힘들어 진다. 정도의 문제일뿐 전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한다.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고 하는데 숙이고 싶지 않아도 그 사람이 어느 정도 현명하다면 살기 위해서 숙여야 하는 것이다. 유명해 지면 수많은 사람들이 바람을 넣으니까. 무명일때는 자유롭게 허풍좀 쳐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일단 사람들이 주목하는 자리에 서면 사력을 다해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가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아마 결혼식을 해본 사람은 이런 것에 대해 어느 정도 경험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무슨 유명인사가 아니라도 결혼식이라는 상황에서 신랑과 신부는 당연히 주인공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객이라도 몇십, 몇백 불러서 결혼식을 하겠다고 한다면 수백명이 모이는 집회나 공연의 주인공들이 된 셈이다. 


자신이 결혼안해 봤다면 주변에서 결혼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라. 겨우 수백명앞에서 주인공이 되는 그런 상황도 대개는 일이 주인공의 의지와는 거의 무관하게 풀려나가기 쉽거나 주인공의 허영이 무한대로 폭주하기 쉽다. 그래서 학자금 융자나 전세보증금 걱정하는 사람들이 남들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위해 이런 저런 사안마다 쉽게 몇백만원씩을 날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건 원래 이런 거라고 한다. 그 원래라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맥에서 원래 그런 것인지를 고민하고 살펴볼 시간은 별로 없다. 요즘은 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전에는 신혼부부가 새살림을 전부 장만하지 않으면 우울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즉  각자가 쓰던 세간이 있어도 그걸 다 버리고 다 근사한 걸로 장만하는 것이다. 일단은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이런 것들 하나 하나가 절대적 의미에서 틀리거나 맞는 것은 없다. 사람들의 상황과 능력은 다르니까. 하지만 일반론적으로 말하자면 언젠가 썼듯이 결혼은 적어도 겉으로는 가난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은 많은 자제력을 요구 하지만 그렇게 할 수록 그게 더 좋다. 이제 그 부분의 인생에서는 올라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산타가 선물주는 날이 아니듯 산혼여행이란 본래 결혼같은 좋은 행사뒤에 부부가 남들 다가는 익숙한 공간에서 사치 한번 해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갓 결혼한 남자와 여자가 하나의 부부로 탄생하기 위해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공간으로 떠나는 일이다. 둘만의 판단으로 결정하고, 둘이서 여행을 떠나서 둘만의 판단으로 이것저것을 선택해 보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성숙한 어른으로써 협동하는 부부로서 같이 사는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크다. 


자기가 유지가능한 삶의 수준보다 더 호화스럽게 결혼을 시작하면 그것은 빚이 된다. 그것도 이자가 큰 빚이다. 결혼자금은 양가에서 대줘서 나는 빚없이 그런 일을 했다고 하면 빚이 없는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빚은 소비수준에 대한 기대치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워낙 적응을 잘해서 일주일만 호화판 호텔에서 서비스 받아가면서 살면 마치 평생 그렇게 살아온 사람같고 이젠 그런 서비스 안해주면 못살것 같은게 사람 마음이다.물론 상황이 힘들어지면 힘들어지는대로 적응도 하지만 그게 훨씬 더 고통스럽고 길다. 일단 소비수준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면 그걸 조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그렇다. 일단 당장은 조절안해도 살수는 있으니까. 미래를 저당잡히면 말이다. 


화려한 행복의 표현이란 대개 나는 이정도의 사람이야라는 것에 대한 기대치를 올린다. 일단 올리고 나면 내리기가 싫다. 그래서 방법이 있으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올라간 것을 많이 내리지 않고 살고 싶다. 선생님 소리 처음들으면 쑥쓰럽지만 여러번 들으면 존칭이 아쉽고 자신을 막부르는 사람에게는 화가 나게 된다. 화려한 옷을 입고 주목받은 경험이 있으면 이젠 그래도 좀 유명 브랜드 옷이라야 입을만하고 낡고 싸구려 옷은 왠지 창피하다. 그런데 세상은 사람들의 그런 허영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빚내라는 광고가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허영에 들떠서 서로 잘났다는 비교하기가 넘쳐나고 당신도 한번 뭔가 보여달라고한다. 그런 허세에 떠밀려서 살기가 워낙 쉽다. 


그러니 극한적 행복의 표출은 좋지 못한 것이다. 세상의 왕이나 여왕이 된거 같은 기분은 좀 아껴서 즐겨야 하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 아니니까. 이것은 특히 2,30대의 사람들이 기억해야 한다. 너무 어린 아이들은 아직 넘쳐나는 기회와 젊음이 있고 어른들의 속박속에 있다. 중년이상의 사람들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세상 살아본 경험이 있다. 그런데 2,30대의 사람들은 어른의 속박에서는 벗어나고 아직 세상이나 자신에 대한 경험은 없는 것이다.


때문에 논문 한편에 금방 노벨상 수상자 될것같고, 칭찬한번에 누구 아들이라도 된 거같고, 수십명이 박수쳐주면 자기가 세상의 왕이 된거같이 느껴질때 브레이크가 없다. 아직 세상 넓은 것을 잘 모르니 더더욱 그렇다. 좋게 말하면 아직 주눅들지 않은 패기가 있는 것이고 그런 무모함과 용기는 분명 때로 재산이 되는 것이지만 그게 도전정신에 쓰이는 게 아니라 허영에 쓰이기도 하니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한번의 성공으로 나의 힘은 무한하다같은 구호의 마약에 빠져들기 딱 좋다. 그래서는 안된다. 20대에 파티 한번 열고 나머지 여생동안 그 파티값을 지불하면서 우울하게 사는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이다. 행복한거 너무 티내지 않는 게 좋다. 잘난거 너무 티내지 않는게 좋다. 잘난 젊은이는 사회가 노리는 좋은 먹이감이기도 하다. 때로 우리는 무능해서 성공하고 자유를 얻는다. 이미 오래전에 장자가 지적한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표현도 필요하다. 다만 일정부분은 삼켜서 나만의 비밀로 하는게 좋다. 우리가 좀 더 길게 그리고 더 많이 행복하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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