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일본에 사는 사람 : 단골 커피숍의 정서

by 격암(강국진) 2015. 1. 15.

15.1.15

일본 사이타마 와코시에 있는 우리 동네에는 내가 자주 가는 커피숍이 하나 있다. 이 커피숍은 도토루라는 체인점인데 주유소의 한구석에 붙어 있어서 창밖의 경치가 좋은 곳은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이 커피숍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한두번 가게되자 결국 내가 아주 자주 찾는 커피숍이 되어버렸다.

 

이 커피숍의 최대 장점은 그 커피값이 싸다는 것에 있다. 드립커피가 작은 사이즈는 190엔이고 가장 큰 사이즈도 290엔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아무래도 가격따위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취할 수 없는 사람이니 커피값이 싸다는 것은 분명 장점중의 하나다.

 

그러나 단순히 커피 값이 싸다는 것은 어느 커피숍의 단골손님이 되는 것과는 아직 큰 거리가 있는 것이다. 싸기로 치면야 맥도널드의 커피가 더 싸다. 나쁘지 않은 드립커피를 주지만 100엔밖에는 하지 않는다. 물론 상대적으로 시끄럽고 기름냄새에 햄버거 냄새가 나기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커피숍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거기도 아주 나쁘지는 않다. 그래도 나는 맥도널드를 내가 단골로 커피마시는 장소로 삼고 싶지는 않다.  

 

가격이 싸서 부담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 또 그 싼 커피가 나름 그럴듯한 맛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뭐가 좋아서 이 커피숍에 나는 다니는 것일까? 나도 궁금하다. 일단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커피숍에 있는 커다란 목재 테이블이다. CD를 4분의 1로 잘라놓은 것처럼 생긴 이 테이블에는 5개의 의자가 그 주변에 놓여 있다. 나는 이 테이블을 좋아해서 거기에 빈 자리가 있으면 대개 거기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평평하고 널찍한 목재 테이블은 내 마음에 든다. 이따금 손가락이 탁자를 두드리면 생기는 둔탁한 소리는 신기하게 내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것이다. 나는 그 탁자 위에 가져간 책이나 아이패드 혹은 노트북을 올려놓고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한다. 실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거기에 앉아 있다.

 

이 커피숍이 가지는 두번째 장점은 이 커피숍은 그리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좁지도 않다는것이다. 너무 좁은 커피숍은 답답하고 종업원이나 주인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이래서는 아무리 커피숍 종업원이 천천히 드세요라고 강조해서 말해줘도 탁자에 마음껏 앉아 있기가 불편하다. 마치 종업원에 의해 감시를 당하는 느낌이 들기 떄문이다. 너무 넓은 커피숍의 문제는 아늑함이 없고 마치 무슨 광장에 온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 어떤 커피숍에서는 파티션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나눠놓는다. 그래서 자기 자리에 앉으면 가게가 거의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이젠 그것대로 재미가 없다. 가게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면 자동차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과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적절한 규모의 커피숍이란 그저 15개 정도의 의자가 있는 그러니까 탁자로 치면 4-5개의 탁자가 있는 커피숍이다. 이 도토루는 사실 이보다는 더 크다. 그러나 흡연석 쪽과는 큰 벽으로 나눠져 있기에 그쪽의  존재는 거의 무시할 수 있다.

 

커피숍의 크기를 말하다 보니 그것이 분위기나 냄새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난다. 오늘도 이 커피숍에 들어설 때 나는 좋은 느낌을 받았다. 추운 바깥 공기속에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게 안에서 따뜻한 기운과 함께 커피향이 내 몸으로 밀려오는 것이다. 비록 자리에 앉으면 우리는 몇분지나지 않아 거기에 익숙해지지만 가게에 들어설때의 그 기분이 좋아서 나는 이 가게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게가 너무 크면 커피의 향이 이렇게 나지 않는다. 입구와 커피만드는 곳의 거리가 멀뿐 아니라 큰 가게에는 보통 큰 문이 달려 있는 법이라 문쪽의 공기는 이미 절반이상 바깥의 공기와 다를바 없다. 그러니까 바깥에서 들어올 때 갑자기 어떤 분위기와 냄새의 차이를 확 느끼게 되는 일은 드물다.

 

그러고 보면 작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 커피숍은 인기있는 몇몇 커피숍이 그렇게 하듯이 종이컵에 커피를 주지 않는다. 이 커피숍에서 나오는 커피는 커피받침대에 올려진 자기 커피잔에 담아서 나온다. 나는 설거지를 하는 비용이 더 비싼지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비용이 더 비싼지 경제적인 것은 잘 모른다. 그러나 진짜 커피를 마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역시 커피는 커피잔에 마시는 쪽이 좋다.

 

내가 진짜 커피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크림이나 카라멜은 물론 설탕도 넣지 않은 그냥 커피만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커피믹스로 탄 커피도 맛있게 마신다. 하지만 커피 위에 산더미처럼 토핑을 올려서 커피를 마시는 것을 보면 도무지 저게 진짜 커피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커피가 아니기 때문에 그걸 자기잔에 마시는가 종이컵에 마시는가의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블랙커피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자기잔에 커피를 마시는 쪽이 좋다. 비록 그다지 비싸지 않은 둔탁한 커피잔이라도 말이다.

 

슬픈 것은 원래 커피값이 싼 가게인데다가 토핑도 올리지 않아서 가장 값이 싼 커피를 마시는 나같은 손님은 커피숍의 매상에 별로 기여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커피숍들은 달콤한 커피들을 여러가지로 개발하고 판매하며 그런 것을 파는데 집중하는 것같다.

 

이 커피숍이 가지는 또하나의 장점은 그 시시함이나 평범함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커피숍은 무슨 대단한 커피전문점이 아니라 대중적인 커피 프랜차이즈 점중의 하나다. 게다가 주유소 한구석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누군가에게 내가 좋은 커피 숍을 알고 있으니 가자고 할 그런 커피숍은 아니다. 나는 이제까지 이 커피숍의 탁자며 크기며 향기따위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하기는 했지만 이런 것은 사실 실제로 보면 그저 평범해 보인다. 말하자면 어디 티브이 방송같은데서 이렇게 좋은 커피숍이 있다면서 소개될 그런 커피숍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

 

그런 평범함이 나에게 장점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이런 저런 다른 장점이 있는 특이한 커피숍보다 더 자주오게 되는 것은 마음이 편해서다. 결국 커피숍의 최대장점은 그 안에서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영화로 치자면 아주 신기한 스토리나 특수효과같은 것도 없이 그저 밋밋한 영화인데 그저 틀어두면 심심하지 않아서 좋은 영화같은 커피숍이다. 멋진 호텔이나 근사한 절경을 가진 관광지 같은 느낌보다는 우리집의 한구석에 붙은 테라스에 있는 기분이다.

 

그러나 우리집과는 물론 다르다. 만약 우리집에 이와 똑같은 공간이 있다고 해도 나는 이만큼 편안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집을 편안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사람이다. 즉 종업원과 손님들이다. 이 집은 위치때문인지 젊은이가 오는 일이 드물다. 노인도 많고 중년층의 손님도 많다. 젊은 손님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인구분포때문인지 왠지 이 집의 분위기는 차분하다. 노인이라고 전부 조용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노인들은 대개 상당히 조용히 있다가 커피숍을 떠난다. 만약 떠들석한 분위기였다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이에 관한 것은 심지어 종업원도 그렇다. 나이가 가장 많이 드신 종업원은 머리가 하얗게 세신 노인분이다. 그밖에도 중년의 남자나 여자가 종업원들이고 종업원중에 젊은 남자나 여자는 없다. 이 곳에서 일하는 종업원중 하나는 우리 아내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애를 키우는 30대후반정도의 결혼한 여자이다. 종업원의 면면이 대개 그런 식인 것이다. 나라고 해서 젊고 예쁜 여자가 따라 주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은 그런 것나름의 불편함이 있다. 젊은이들을 보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이들은 어느 정도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그 긴장감은 종종 기분좋은 긴장감이다. 하지만 그런 기분 좋은 긴장감도 때로는 완전히 편안하게 되는데는 방해가 되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한국적 정서때문에 나이가 많은 머리 허연 노인이 날라다 주는 커피는 황송해서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나이들어서 험한 일한다면서 동정의 감정을 표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거의 없다. 훨씬 개인주의적이므로 자기일을 자기가 한다는 식이요 서비스를 받는 쪽이나 제공하는 쪽이나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다. 커피숍에서 솜씨좋게 일하는 할아버지가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이고 재미있게 사시고 있는 느낌이다. 

 

이게 단골 커피숍의 정서다싸고 편안하다별로 좋은 것을 말할 것이 없어서 언제든지 부담없이 오고 실망도 하지 않는다요즘은 집꾸미기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를 많이 하고있다. 나는 가장 평범해 보이면서도 속으로 알찬 그런 편안한 집을 꾸며보고 싶다. 신기한 것은 없지만 자꾸 가고 싶은 그런 집을 꾸밀 있으면 좋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