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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일본에 사는 사람의 생각 : 알바천국 알바지옥

by 격암(강국진) 2015. 1. 20.

15.1.20

일본에 살면서 아이들을 통해 연구소 바깥의 일본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살고 있는 와코시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한두가지씩 알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중의 하나는 결혼한 많은 여성들은 여기저기서 시급을받으면서 알바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안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이 그랬다. 

 

내가 여러번 말했듯이 일본에서는 알바비가 상당히 쎄다. 한일간의 환율이 워낙 왔다갔다해서 한국돈으로 환산했을때 그게 얼마인가는 좀 애매하지만 지난 10년간 시간당 8백엔 밑의 알바는 본적이 없고 9백엔이나 천엔을 할 때도 있었다. 이것은 상점이나 음식점들의 경우고 좀 특수한 직종은 어떤가 모르겠다. 일본에서 대중적인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면 이정도면 한끼 식사를 한다. 우동같은 것은 두번도 먹는다. 게다가 일본은 알바를 해도 교통비는 따로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은 시급제로 일하는 직종이 아주 많고 적어도 보기에는 그런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도 않다. 사방에서 알바구한다고 야단이니까. 그래서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도 그런 알바자리를 구해서 생활비를 버는 것으로 안다. 이와같은 풍경은 적어도 20년전의 한국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그때만 해도 알바자리는 보기 어려웠으며 구한다고 해도 받게 되는 돈은 정말 보수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돈이었다. 그래서 대학생이 학비나 생활비를 번다고 알바를 하는 풍경은 거의 없었다. 해봐야 시간만 나갈뿐 돈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학생은 과외선생을 해서 학비를 버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같은 현실은 이제 한국에서도 많이 바뀐것 같다. 한국에서는 요즘 비정규직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고 알바비도 일본정도에 이르지는 않지만 많이 올라서 알바를 하는 대학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직장이 그 보수를 제공하는 형식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야말로 일한 댓가를 치루는 것이다. 또하나는 돈으로 보수를 치루는 것이 아니라 승진과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보수를 치루는 것이다. 후자의 방법은 어떻게 보면 노동착취고 좋게보면 미래에 대한 투자다. 모든 사람들이 노동한 만큼 댓가를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월급을 모아서 로또복권에 당첨된 사람에게 몰아주자고 제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대개의 경우 로또복권의 주최자인 회사는 돈을 크게 절약하게 된다. 또 투자는 항상 결실을 낳지 않는다. 위험이 있다. 

 

한국에서는 정규직에 대한 열망이 아주 강하다. 그러므로 알바를 해서 혹은 인턴을 해서 혹은 비정규직으로 일해서 돈을 아주 적게 받거나 심지어 하나도 받지 못하고 자기 돈으로 교통비내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보수로 제공되는 것은 상당부분이 열심히 하면, 잘하면 정규직으로 승진시켜주겠다는 희망이다. 

 

불행히도 이런 약속의 사다리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말단 사원이 되면 너도 시키는 일 잘하고, 계속 승진하면 결국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드디어 이사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대박이 터진다는 말을 듣는다. 회사원들은 이사가 되어서 엄청난 돈을 받는 꿈에 부푼다. 그들은 땅콩항공의 조현아 같이 집안의 후광으로 순식간에 이사가될 수는 없지만 열심히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그런 꿈을 이루지 못하고 퇴사하게 된다. 결국 나중에 승진하면 지금 못받은 봉급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은 공수표가 된 것이다. 미래에 투자한게 아까워서 아둥바둥 매달린게 억울해진다. 그러나 설사 이사가되어도 순식간에 해고 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이런 현실에 체념하고 사는게 원래 이렇다라는 말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한국이 이렇다라고해야 한다. 내가 보기엔 미국이나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더 이런 방식으로 보수를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아내와 친하게 지내는 한 일본인 여성에 대해 아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 분은 남편을 사별하고 알바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데 그녀가 알바로 일하는 상점에서 그녀를 정직원으로 채용하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그녀가 그걸 거부했고 사실 그걸 승낙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회사가 정직원을 구하지 못해 곤란하다는 이야기였다. 

 

정직원이면 한국에서 누구나 원하는 것인데 왜 그런가라고 물어봤더니 그 대답이 정직원이 되어봐야 혜택은 얼마없고 해야할 일만 잔뜩 늘어나서 정직원이 되기 싫다고 하더란다. 내가 보기엔 일본의 현실은 이런 것같다. 알바는 일한 만큼 돈을 받는다. 그런데 정직원은 보수의 일부분을 미래와 승진에 대한 약속으로 받는다. 그러니까 승진같은 먼 미래따위 관심없는 사람에게는 정직원이 되라는 제안이 오히려 귀찮은 것이다. 일한것보다 오히려 보수가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되돌아보면 20년전의 과외자리도 그랬다. 대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해서 취직할 생각이지 과외선생을 오래해서 거기서 승진하고 연금받으려고 하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과외비는 비쌌다. 학부모는 승진을 약속할 수는 없으니까 다른 비정규직 처럼 미래를 약속하는 달콤한 말로 유혹해서 일은 시키되 돈은 안주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일본은 한국의 미래라는 말은 참 흔하다. 알바나 비정규직에 대한 것도 그럴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사람들은 점점 더 미래에 대한 약속이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같다. 그러므로 나중에 주겠다는 약속보다는 지금 돈을 줘야 한다. 어쩌면 한국도 나중에는 적어도 지금보다 정규직이 가지는 매력은 줄어들고 알바비는 올라가서 비정규직이 보편화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게 어떤 세상일까? 알바천국? 알바지옥? 일본에 10년을 살아도 천국인지 지옥인지는 말하기 쉽지 않다. 단지 게임의 법칙이 다르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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