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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이사이야기

by 격암(강국진) 2015. 2. 17.

이사는 언제나 악몽같다. 나같이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그리고 외국으로 이사를 가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마치 10년정도 자라난 나무 같은 것을 강판에 대고 갈아서 톱밥으로 만드는 느낌이랄까. 10년의 때를 벗기는 일이 어렵다. 여간해서는 물건을 모으는 일로 인해 생기는 번잡함을 두려워 하지 않는 아내도 이번 이사를 하면서는 가진다는 것에 대해 질려버렸다면서 다시는 이렇게 많은 물건을 가지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 이사라는 것은 보낼 것을 분류하고 남은 것을 처분하는 일을 말한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냥 대충 아무데나 넣어서 다음 이사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 보면서 가지고 갈 것인지 버릴 것인지 아니면 누구를 주거나 팔 것 인지를 결정해야 하고 누구를 주거나 팔아볼 생각이면 그럴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일단은 집을 뒤져서 일차적으로 버릴 물건을 보이는 데로 버린다. 쓰레기는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그렇게 버리는 일을 몇번이고 계속해도 쓰레기는 엄청나다. 도대체 이 작은 집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물건들이 있었는지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게 때를 밀듯이 쓰레기를 버려나가다 보면 이젠 앞에서 말한대로 돈을 들여서라도 가져가야 할 물건들이 쌓이고 가져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냥 던져버릴 수도 없는 물건들이 쌓인다. 


놀라운 것은 어딘가에 구겨넣어져서 잊혀져 있을 때는 집안 어딘가에 있던 짐들이 바깥으로 풀어헤쳐져서 늘어놓게 되면 마술처럼 부피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야 상상할 수 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다. 마치 마술 같다. 아내는 열심히 물건을 줄 사람을 구하고 물건을 팔아보려고 인터넷에 물건을 올렸다. 그것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에서 미국으로 이사를 가거나 미국에서 일본으로 이사를 올 때는 이정도로 일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나라에서 그저 몇년밖에 살지 않았고 아이가 어려서 자기 물건을 덜 만들었으며 어차피 너무 길이 멀어서 정식 이사를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기에 다 버리는 것 이외에는 답이 없었기때문이다. 


그런데 10년만에 이사를 준비해 보니 생각보다는 이사비용이 크지 않았다. 세계는 10년동안에 더더욱 작아진것이다. 우리는 여러군데 회사에 연락해본 가운데 서울 익스프레스라는 곳과 계약을 했는데 돈은 걱정했던 것보다 적게 들었다. 욕심을 내서 산 소파를 하나 보냈고 얼마전에 산 대형 티비도 보냈으며 책박스만 20개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생각보다는 훨씬 적게 나온 것이다. 


10년이나 일본에 살았으니 물건도 워낙 많이 늘었다. 그냥 버리는 것에 한도가 있었다. 일단 버리지 않고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이 전환되니까 가져가는 짐이 갑자기 엄청나게 늘었다. 엄청나게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때를 벗기듯 버리고 버리고 고르고 고르고 보내고 보내고 팔고 판다. 이따금 식은 동네에 있는 소각장에 집에 있는 가구를 가져다 줘야 한다. 누군가에게 줘버릴 수 없는 가구는 돈을 줘서 처분해야 하는데 소각장에 직접 가져다 주면 처분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키보다 더 큰 가구를 자동차 시트를 눕혀서 어찌저찌 운반해서 소각장에 가져 간다. 그렇게 해봐야 트럭처럼 가져갈수는 없기 때문에 몇번이고 그일을 해야 한다. 일본은 전등도 그냥 달아놓고 가서는 안된다. 몇개의 붙박이등 말고는 전등도 떼어야 하는데 때로는 그 전등이 아주 높은 곳에 달려있어서 그것도 쉽지가 않다. 지금은 그 전등도 다 떼어 다른 사람에게 주고서 촛불을 켜고 살고 있다. 휴대용 가스버너로 물을 끓이고 말이다. 집에서 하는 캠핑 생활이다. 


이사 과정은 마치 무슨 고행길 같다. 가진다는 것이 고통이라는 메세지를 주는 고행말이다. 아내는 아는 사람이 사는 방식이라고 들었다고 한마디를 거든다. 그 집에는 옷장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옷들이 그 옷장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면 수납공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옷을 버린다는 것이다. 즉 헌옷을 없애기 전에는 새옷을 사지 않는다. 과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실제로 실천하려면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아내는 새집에 이사가면 나도 그렇게 살겠노라고 다짐한다. 물건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고 버리기 아까워 하는 아내가 과연 달라졌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짐이 늘어난 것에는 내 욕심도 기여한 바가 있다. 일본에는 중고가게가 발달해 있는데 요즘에는 왠지 그런 중고물건도 줄어버린 듯하지만 내가 일본에 처음온 10년전만 해도 좋아보이는 물건이 참 많았다. 특히 그릇이 그랬다. 


딱히 그걸 다 쓸것도 아니면서도 중고가게에 가서 그럴듯한 컵이며 그릇을 보면 나는 이렇게 좋아보이는 것들이 이렇게 헐값으로 있다니 나도 이것을 가져야 겠다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꼭 뭔가를 가진다는 것이 핵심이 아닌 적도 많았다. 그것은 내가 일본에서 사는 즐거움중의 하나였다. 주말에 중고가게에 가서 이리저리 물건 구경을 하다가 녹차 주전자나 컵 한쌍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 집에 들어왔건 일단 우리집에 들어오면 쉽게 버리지 못하는 우리 식구가 된다. 그러다보니 짐은 늘었다. 


우리 이사짐에는 특이한 것도 하나있다. 바로 소파다. 나는 게을러서 그런지 소파나 침대를 워낙 좋아한다. 워낙 좋아하면서도 나는 좋은 소파나 침대를 써본 일이 거의 없다. 무엇보다 언제나 내년에는 이사갈 것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파를 보고 나는 참 좋다면서 아내에게 강권해서 사고 말았다. 우리 집의 가장 비싼 가구가 된 이녀석을 가져가는 일이 번거로울 것을 알았지만 말이다. 


가지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또한 가지는 것이 삶의 낙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 주전자건 커피메이커건 하나를 가지면 온갖 종류의 즐거움이 생길 수 있다. 가지는 것과 가지지 않는 것, 종종 그렇듯이 이 두개의 상반된 진실에 대해 엉성한 중간 타협을 보는 것은 좋은 답이 아니다. 그러니까 적당히 가지자고 하는거 말이다. 적당하다니 누구기준에 적당하다는 말인가. 내 생각에는 그저 마음 가는데로 사는 것이 좋은 것같다. 사람이 어떻게 계속 똑같이 살것인가. 가지는 것이 지겨워 지면 빈 손으로 살고 빈손으로 사는 것이 심심해 지면 다시 가지면서 살고 그런 것이 아닐까? 없으면 없는대로 즐거움을 찾고 있으면 있는 것을 고마워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보내 줘야 할때 보내지 못하고 변화를 줘야 할때 변화를 주지 못하는 것만 조심하면 될 것이다. 집착이란 고통의 원인이니까 말이다. 


아직도 짐은 많이 남았다. 그렇게 많이 주고 버렸는데도 캠핑처럼 살려고 하면 살수도 있을 것같다.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이 뭘까? 이사란 것이 생각보다 훌룡한 수행이 되는 것같다. 또 여러가지로 살아보게 된다. 짐이 거의 다 나간 거실에 자리를 깔고 앉아보니 이렇게도 살 수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차를 몰고 일본의 절반을 운전해서 시모노 세키까지 가는 여행을 하기로 했다. 중간에 오사카 유니버셜 스튜디오 구경도 하고 벳부 온천도 들리는 여행이다. 그리고 시모노 세키에서 차를 배에 올려서 한국으로 가는 것이다. 몸은 아직 집에 있지만 여행은 이미 시작된 느낌이다. 아니 어쩌면 여행은 십수년이상 전부터 시작되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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