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16
토이스토리에 보면 두 주인공인 우디와 버즈가 과연 버즈가 날 수 있는가에 대해 싸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버즈는 자신이 날 수 있다고 말하고 우디는 그건 나는게 아니라 그저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건 그저 멋지게 떨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나의 은퇴를 생각하면서 이 논쟁이 생각이 났다. 나의 나이는 아직 50이 되지 않았으므로 통상적으로 말해서 은퇴를 할 나이는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은퇴를 하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과학잡지에 논문을 통과받으면서 사는 일이 재미가 없어서다. 오늘날 직업적으로 말했을 때 논문쓰기가 싫어졌으면 연구원으로 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들처럼 하는 일을 그만두고 시민운동을 하기로 했다거나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짓는다거나 하고 뭔가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나는 빌게이츠처럼 어떤 사업을 하기 위해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는 것도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중에 확신이 드는 것은 그저 남편을 잃고 혼자되신 어머니에게 보다 가까이 가서 위로가 되어 드려야 겠다는 것밖에 없다. 물론 나는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뭔가를 하게 될 것이다. 그게 커피숍알바일지 과외선생일지 책을 번역하는 일일지 알 수 없다. 재미삼아 아내와 만들어 둔 미래상상이라는 출판사를 재미삼아 진짜 출판사로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본다. 한 때 출판사에서 일했던 아내는 종종 철학을 하지 않는 닭이란 내 글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해왔었다. 닭 사진을 좀 찍을까 싶다. 그 닭사진을 글과 함께 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게 돈을 만들어 낼 리 없으므로 항상 미래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를 것이다. 뭘하던 나는 그것들을 당장은 진지한 직업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부자는 아니지만 당장 먹을게 없어 다음달이면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므로 천천히 보고 시험삼아 조금 해보는 정도일 것이다. 어쩌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독서하고 그 감상문을 쓰며 사는 것이 내 목표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나의 선택에 대해 추락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이것은 추락이다. 나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 뛰어 내리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추락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궁금하다. 나는 과연 하늘을 날 수 있는 존재일까? 비행기날개를 붙들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알 수 없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게 재미가 없어서 손을 놓아버리기로 했다. 사람들은 인간은 원래 날 수 없는 거라면서 대롱대롱 매달리는 싸움을 그만두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말할 테지만 나는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건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건 여전히 고작해야 그저 좀 멋지게 떨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아니면 운이 아주 좋다고 말할 것이다. 주관적으로는 내가 스스로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느끼게 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어차피 인간은 30이 넘으면 조금씩 약해지다가 60이 되면 본격적으로 기력이 떨어지고 8-90이 되면 그럭저럭 살아갈 뿐이며 백살쯤이면 높은 확률로 죽는다. 다시말해서 비행기 날개를 여전히 붙들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착각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모양으로 떨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는 가운데 생각보다 더 빨리 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또다른 삶은 없을까. 너무 늦기 전에 자기가 날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앞에서 말했듯이 은퇴후에 뭘할까에 대해 나는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닥치는 상황에 나로서 반응하려는 것뿐이며 다만 한국에 돌아갈 것 그래서 지금보다 더 어머니 근처에 있을 것정도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너무 막연하다. 그래서 아주 소박하고 소비적인 것에, 사는 것 자체에 시간을 좀 쓰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도시 하나를 골랐다. 시골에 사는 것은 아이들때문에라도 그렇거니와 불편하고 이르다. 그렇다고 번잡한 대도시도 싫다. 그 번잡함은 둘째치고라도 대도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사는 것은 원래 이렇다면서 우리 가족에게 사는 방식을 들이밀고 그것과 다투는 것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원래라는 말과 싸우는 일이 싫다.
그렇게 해서 내가 고른 것은 전주다. 전주를 고르게 된 것에는 나름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 대단한 고심끝에 골랐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저 인연이다. 이런 저런 이유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미 결정하고 보니 그런 이유도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고르고 보니 식탐이 있는 내가 한국에서 먹을 것으로 제일 유명한 도시를 고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나는 집을 골랐다. 나는 한국에는 주거문화가 나빠서 사는데 답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수도승처럼 생각하자면야 먹는거 사는 거 다 부질없는 일로 생각할 것이요 돈많은 부자가 사치하는 쪽으로 가면 좋은집이 왜 없겠는가 만은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살기에는 한국에서는 결국 아파트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파트는 싫다. 아파트는 물론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다. 게다가 아파트는 이미 많이 살아봤고 구경했다. 그렇다고 전원주택이나 단독주택이 확실한 답이 되는 것도 아니고 빌라가 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잘 지은 저층빌라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건설현장의 현실이 그렇게 만든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확실히 빌라는 좀 부실하게 대충 짓는다. 구조나 재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것도 저것도 다 문제가 있었지만 나는 전부터 2층이 있는 집에 살고 싶어했으므로 결국 원룸건물의 복층이 있는 주인세대라는 집을 빌렸다. 전주에는 특이하게 4층정도의 빌라건물 수백 수천동이 촌락을 이루는 곳이 있다. 그 건물들의 맨윗층에 있는 복층구조를 가진 집들을 가르켜 주인세대라고 부르는데 아마 전국의 주인세대집중의 절반은 전주에 있을 것이다.
아내는 날따라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곳에서 영원히 살지는 않을 것이며 한국에 돌아갈 것이라는 암시속에서 살았다. 그래서 언제나 떠날 것처럼 살다보니 새 것을 쓰는 일이 별로 없었다. 가구도 줏어온 것이나 낡은 중고를 쓰는 일이 많았고 가전제품도 그랬다. 나는 농담삼아 우리는 아주 긴 여행을 하고 있는거라고 말하곤 했다. 간단하게 사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믿는 나지만 여자마음이란게 왜 허영처럼보여도 좋은거 써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같아 제대로 신혼살림도 차려본 적도 없는 아내에게 이번만큼은 사고 싶은 것을 사서 신혼처럼 꾸며도 좋다고 말해 두었다. 요즘 아내와 나는 그 집을 꾸미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그 집에 들여놓을 의자며 탁자 침대에 대해 말한다. 책읽을 공간이며 손님을 받을 침실에 대해 말한다. 지금 쓰는 것들은 다 버리고 갈 계획이라 정말 밥솥과 후라이팬부터 사는 수준이니 처음 결혼하는 것같은 기분이다.
스타일을 가진 추락이건 스타일을 구기는 추락이건 시간은 지나고 인생은 흘러간다. 돌아보면 이제까지는 나름 재미있게 살았다. 정신적으로 재미있는 것을 구경했다. 물리학에 인공지능에 뇌과학을 공부했다. 육체적으로도 지구 한바퀴를 천천히 돌았다. 이스라엘에서 미국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다시 한국이니까. 전주에서의 다음 생활도 재미있었으면 한다. 일단은 전주의 실내포차나 대학로의 연극부터 아내와 즐기는 것이 내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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