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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설득과 삶의 방식

by 격암(강국진) 2015. 1. 24.

15.1.24

남을 설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늘날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설득이 바로 광고라는 것을 생각해 봐도 이것을 알 수 있다. 광고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어떤 상품을 사도록 설득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과학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설득작업중의 하나는 바로 연구비를 타내는 일이다. 연구비를 신청하고 타내는 작업은 그 비용을 내는 사람들에게 이 연구는 해야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설득하는 작업이다. 그 설득이 성공적이면 연구비가 나오고 그렇지가 못하면 연구비는 없어지고 나아가 아예 연구팀 자체가 없어진다.

 

문제는 오늘날 과학연구에서 일상 생활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것들이 소비적이고 비싼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냥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거나 과학연구를 하는 것이 많은 나라에서 모두 돈이 많이 드는 일이 된다. 따라서 남에게 설득을 하고 설득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요즘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돈이 많으면 뭐든지 되게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어떻게 말하면 본질과 껍질이 뒤집어 지는 것같은 세상이기도 하다.

 

과학연구의 본질은 자연의 질서를 탐구하고 밝혀내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있어서 현장경험이 있는 과학자는 약간씩 주춤거릴 수 밖에 없다. 실은 과학연구에 있어서도 그 핵심에 있는 것은 돈인 것처럼 보이는 일은 많다. 연구비가 없으면 연구도 없는 것이 현대사회니까. 연구원도 먹고 살아야 할뿐만 아니라 요즘은 대개 연구를 하기 위한 장비가 매우 비싸다. 그러니까 집에서 망원경을 만들던 갈릴레오나 광학실험을 하던 뉴튼도 당대에 돈걱정할필요가 없는 사람이었거나 돈문제를 후원자를 통해서 해결한 사람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강입자가속기만들고 싶다면 당신은 이론을 가진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것을 만들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설득에 성공하면 입자가속기가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것이며 결과도 만들어 내어 업적도 세울 것이다. 설득에 성공하지 못하면 일자리도 없고 업적도 없다.

 

이것은 언뜻보면 그저 자명한 게임의 법칙이지만 과연 설득하는데 성공적인 사람이 업적에 가까이 간다는 사실이 언제나 옳은 것일까? 이런 답에 회의를 주게 만드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정치인들이다. 정치인이야 말로 설득이 하는 일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자기 돈을 가지고 댐이나 고속도로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복지혜택을 주는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이걸해야 한다고 설득하는게 그들의 일이다. 그러면서 명성과 업적과 보수까지 받는 것이 그 직업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설득을 잘하는 정치인이 언제나 올바른 생각을 가진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설득을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당연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에 대해서 아무런 고민도 생각도 정말 필요없는 것일까?

 

그게 민주주의고 그게 자본주의이며 그런 방식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의견은 나도 알고 있다. 나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반대하거나 그것에 대한 확고한 대안을 내놓으려고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느끼는 위화감, 불합리성을 무조건 억누르는 일이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나는 그게 민주주의건 자본주의건 무슨 무슨 주의가 언제나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첫째로는 그것도 인간들이 만든 수단일 뿐이며 둘째로는 그것들의 의미는 생각보다 애매모호하다. 실상 민주주의가 뭔지 자본주의가 뭔지 나는 확고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걸 잘 모르는 사람이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흘렀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하다. 그런 설득이란 것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때로 우리의 내부를 공허하게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설득이란 우리의 먹거리와 우리의 생활비를 만들어 내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너도 나도 다 그렇게 하다보면 결국 경쟁이 생기고 허풍이 생기고 거품이 생기기 마련이다. 

 

너도 나도 뻥을 쳐서 물건을 팔아서 먹고 사는데 그 뻥이 통하는 세상처럼 보인다면 당신은 둘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남들이 하는 것처럼 나도 뻥을 쳐서 물건을 팔고 돈을 버는 일이다. 그게 남들도 다하는 일이고 관례라고 하면서 자신의 양심을 마비시킨다. 또하나는 생활비를 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원하는 일을 포기하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모범적인 답안을 흔히 듣는다. 그것은 진실은 언젠가 통하기 마련이다라는 말이다. 즉 과장하지 않고 진실되게 살면 그것이 언젠가 신뢰를 만들어 진짜 설득력을 발휘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성실의 법칙이라고 하자.

 

많은 사람들은 현대사회에서 성실의 법칙이 진짜 통하는지 의문을 가진다. 현대사회는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일어나고 자꾸 다음 것으로 바뀌어 간다. 연예인들이 말한다고 한다. 나쁜 댓글보다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고 성실하게 행동하면 언젠가는 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비현실적이다. 실은 그런 성공이 오기전에 당신은 전혀 아무일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크다. 가게를 접어야 하고 직장을 관둬야 한다. 가게를 접고 직장을 관뒀는데 어떻게 성공을 하겠는가.

 

결국 이런 것같다.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명확히 둘로 갈린다. 다른 사람이 하는 삶의 방식, 게임의 법칙을 따르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서 상대방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인가나 마찬가지다. 상황이 극단적이라서 중간은 없다. 그저 멀거니 서있으면 죽임을 당할 뿐이거나 살기위해서 상대방을 죽일 수 밖에 없을 테니까. 그냥 어정쩡히 중간을 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택하고 그것대로 살아야 한다. 그 방식이 세상의 게임의 법칙과 같은 경우는 다행한 일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아예 성공이라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건 마치 로또를 맞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기 때문이다. 주류적 삶의 방식에 등을 돌리면 당신은 아예 게임을 계속 할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내 방식대로 살겠다는 사람이 많다면 그중에서 운이 좋고 참을 성이 좋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로또를 맞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세상의 게임의 법칙을 바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로또다. 다시말해서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우리식의 삶의 방식을 고수해서는 안된다. 그런 헛된 희망은 우리를 더 비참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확고히 얻을 수 있는 것은 그저 작은 내적인 보상이다. 나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다. 삶의 어려움에 시달리다보면 그까짓것이 뭐가 중요한가 나도 남들처럼 하면서 살 것을 하고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남들처럼 한다고 해서 또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저 영혼과 양심만 깨어지고 결과는 같았을 수도 있다. 또 성공을 했다고 해도 정신없이 끌려다니다가 은퇴하고 나이가 들어 뒤를 돌아보면 정말 내가 그렇게 산게 다 뭐였을까 하는 후회가 들수도 있다. 보기에만 화려하고 기쁨과 보람이 없는 삶의 예는 세상에 흔하다. 가지 않은 길은 누구도 어쩔지 모른다. 우리는 삶의 고비고비에서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선택할 자유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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