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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무분류 임시

달의 뒷편, 사물의 뒷편

by 격암(강국진) 2015. 3. 25.

2015.3.15

달은 언제나 앞쪽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달의 뒷편이란 존재하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은 책을 읽다가 문득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작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세상은 즐거운 곳이라는 입장에서 말하는 작가와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입장에서 말하는 작가다.

 

사람들에게 널리 공감을 얻어내는 사람은 후자다. 다시 말해 많은 작가들은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나서 그 고통을 벗어날 희망을 말한다던가, 그 고통을 줄일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 때로 특정한 구절이나 특정한 글에서 사랑이나 인생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고통이 그 본질인 삶에서 한줄기 즐거움을 찾았다는 문맥을 취한다. 어둠이 없으면 밝은 곳이 빛나지 못한다. 밝은 곳을 빛나게 하기 위해 그들의 어둠은 오히려 더 깊다. 사실 고독과 고통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글따위를 쓰고 사색을 할 것같지도 않다. 많은 인기작가들은 인생의 고난의 극치는 이러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처절한 고통을 보여준다. 시니컬한 태도를 취하고 그렇게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많은 지식인들이고 이들은 때로 멋져보인다.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라고 말하는 대사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이 세상은 확 불살라버리고 싶은 지옥이다라고 외치는 소리에 사람들은 곧잘 열광한다.

 

여기서 우리가 보지 못한 것, 달의 뒷편에 해당하는 것은 바로 그 작가들의 입장 그 자체다. 우리는 여러가지 글을 읽으면서 인생의 본질은 고통이라는 말 그 자체를 아주 자연스레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일단 무의식적으로건 혹은 의식적으로건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이고 나면 우리는 인생에 대해 더 적은 행복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건 마치 탐사해야 할 아주 넓은 땅을 가진 사람이 탐사를 하기도 전에 이 땅은 기본적으로 쓰레기이며 아주 작은 수의 좋은 곳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서 일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땅에 대한 사랑이 없고 기대가 없으니 탐사작업은 지겨울 것이며 하나 마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오늘의 탐색도 쓸데 없는 것이었다는 실망을 달래는 좋은 방법일 수는 있으나 탐색 그 자체의 의미를 갉아먹어서 오늘의 위안을 삼는 방법이다. 오늘도 망했군, 원래 그럴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태도다. 이것은 생명을 갉아서 오늘의 즐거움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마약과도 비슷하다.

 

나도 인생의 본질은 즐거움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 말은 인생의 본질은 고통이라는 말만큼이나 맞는 말이며 그만큼이나 틀린 말이다. 인생의 본질은 무지다. 즉 고통도 즐거움도 우리의 해석일뿐 모르는 것, 아직 경험해 보지도 못한 것을 미리 이런것이다 저런것이다 말하는 것에 공감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우리가 무지하다고 믿는 만큼 살아있을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본 것같을 때, 이미 인생에 대해 알만큼 다 안 것 같을 때 우리는 자살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고려하게 된다. 나는 작가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의 작가들을 피상적으로 대충보면서 이러저러한 입장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는 것이다.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유치한 이야기가 하나 생각 난다. 얼마전에 우연히 몇년전에 보았던 일본영화 전차남을 다시 본 적이 있었다. 이 영화는 유치하다. 찌질하다. 게다가 찌질한 남자의 희망사항을 찌질하게 그려놓은 영화라서 부분 부분 보고 있기 민망할 정도다.

 

그러나 사실 사랑이야기라던가 어떤 성장스토리같은 것은 대개가 유치하고 찌질하다. 그것들을 공감하면서 볼 것인가 아니면 참 유치하고 찌질한 이야기로군 하고 볼 것인가 하는 것은 상당부분 그것을 보는 우리가 삶과 세상에 대해 뭘 기대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대개 청춘 소설을 유치하다고 생각한다. 만화책은 유치하다. 그러나 사실 유치한 것을 유치하지 않다고 집중하면서 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하고 나는 때로 생각한다. 그들은 허황된 꿈이건 건강한 희망이건 뭔가에 잘 빠져드는 것이다. 아름다운 소녀와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꿀 수 없는 자가 로맨스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는 자에게 너는 유치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은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인생은 고해라고 단정짓는 것이 나쁜 일이듯, 인생의 딱딱한 진실들에 빠져들어서 더이상 꿈을 꾸지 못하는 것도 재미가 없다. 딱딱한 이론과 사실들만을 늘어놓으며 세상의 개혁을 외치는 자칭 혁명가들은 때로 지독히 인생을 혐오하는 것처럼 보인다. 재미가 없다. 가치관이 어떤 쪽으로 제한되어져있다. 예를 들어 빈민을 구한다는 이상은 숭고한 것일지 모르나 거기에 너무 빠지면 결국 인생은 돈이라는 가치관밖에 남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올바르고 존경받을 만한 것만 하는 사람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다. 인생은 고해도 아니고 즐거운 놀이동산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패륜으로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만 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존경받을 만한 일만 하며 사는 것이 꼭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그건 어떤 함정에 빠진 것일 수 있다.

 

빛나는 달의 앞편의 뒤에는 어두운 달의 뒷면이 있듯이 앞편의 뒤에는 항상 뒷편이 있다. 앞편도 뒷편도 모두 진리이지만 그 중 하나에 빠지면 재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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