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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무분류 임시

잡담에 대한 잡담

by 격암(강국진) 2014. 12. 12.

14.12.12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 블로그의 글을 읽은 사람들 중에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몇일 전에도 그렇게 한 분이 다녀갔다. 누구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나는 요즘은 그런 걸 걱정하지 않는다. 언제나 만나면 자연스레 잡담이 시작된다. 내가 지나치게 피곤하다던가 뭔가의 일로 걱정거리가 가득하지 않다면 그렇다. 시작은 날씨가 춥다던가 일본은 이런게 좋다던가 나쁘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그러다보면 이야기는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가 오겠다고 하면 나는 아예 오시면 차를 마시고 잡담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만화 이야기나 여자 이야기만 할지도 모른다. 그게 부담없고 즐겁기도 하지만 가장 생산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잡담이라는 것은 그냥 생각나는대로 말한다는 뜻이다. 이야기는 시작도 없이 시작해서는 어떤 결론까지 가지 않고 끝난다. 만남을 마치고 나서 보면 때로는 나이라던가 직업이라던가 무슨 대학을 나왔다던가 하는 그런 흔한 질문도 잊은 것을 알게 되는 일도 있다. 그래서 아내가 '그래 이번에 찾아온 그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래? '라고 물으면 그러고 보니 잘 모르겠네 하고 자각하게되는 일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잡담도 형식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잡담을 하려면 나는 한번에 너무 많은 사람과  만날 수는 없다. 대여섯명 이상이 되면 그건 잡담이 아니라 강의가 된다. 언젠가 경기도에서 마을만들기를 하시는 분이 일본에 견학을 온 김에 열명정도를 데리고 오시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기겁을 하고 그런 방문은 무리라고 말씀 드렸다. 열명이 오게 되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강의가 되고 자 내가 모르는 지식이 뭔지를 한번 말씀해 보시라 뭐 그런게 된다.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도 중요한 것이며 유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식을 전달한다는 것은 이미 어떤 기본 가정을 깔아 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건 마치 축구를 할 것인지 야구를 할 것인지 아니면 장기를 둘 것인지를 결정한 다음에 우리 한 게임 할까요? 하고 제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게임을 잘하는게 아니라 우리 각자가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과 말이 정확한 의미를 가지고 이어지는 딱딱한 상황이 되어서는 안된다. 잡담을 한다는 것은 상대는 바둑을 두고 있는데 나는 알까기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어도 상관없다. 분위기만 나쁘지 않으면 된다. 

 

우리 동네에는 체인점도 아니고 화려한 내장이 있는 것도 아닌 일반 가정집 1층을 꾸며놓은 커피숍이 있다. 나는 손님을 주로 거기로 데려간다. 클래식음악을 흔히 틀고 동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주 오는 그 커피숍에서 우리는 잡담을 이어간다. 커피를 앞에 두고 서비스로 주는 키쎄스 초코릿을 빨아 먹으면서 말이다. 

 

때로 이야기는 결론없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중에 뒤돌아보면 핵심이 있었다면 그건 어떤 결론을 말하는게 아니라 그저 한쪽이 어떤 말을 하고 다른 쪽은 그걸 들었다는 것이 핵심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때로 핵심은 말의 내용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찻집을 좋아한다던가 내가 어떤 옷을 입었다던가 내가 어떤 어투로 말을 한다던가 하는 것이 핵심일 수도 있다. 

 

한국남자들은 참 잡담을 못한다. 일대일로 잡담 파트너를 주선해 주는 잡담클럽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강사를 모셔다가 잡담의 기술에 대한 강의라도 듣고 말이다. 수다스런 동네 아주머니가 강사로 제격일지 모른다.  잡담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일종의 어떤 이데올로기를 광신적으로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그 사람은 세상은 특정한 게임의 규칙에 따라서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그렇게 해석하려고 하고 그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세상에 중요한 것은 부동산 재태크나 아이들 사교육이야기나 프로야구 게임 이야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부동산 이야기나 프로야구 이야기 혹은 아이들 사교육이야기를 할게 아니라면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잡담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잡담이란 시작도 우연하게 시작해서는 결론도 없으니까 시간만 버린 것이다. 마치 언제나 나는 바둑을 둬야 하는데 이건 분명 바둑을 두는게 아니니까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마치 자동차를 조립하려고 하는 사람이 자기가 필요한 재료, 예를 들어 엔진이 없어서 엔진을 구하러 다니는 식이다. 그들은 상대방을 볼 때 그 사람이 엔진을 가지고 있는가만 본다. 그게 아니면 할 말도 관심도 없다. 잡담은 엔진을 주는 것이 아니다. 잡담은 나는 자동차를 왜 만드는가, 자전거를 만들거나 걸어다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종종 자기가 자동차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래서 엔진을 구하러 다닌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자기와 대화를 해 본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우연한 일이겠지만 나를 방문한 몇사람은 대화를 하다가 공동체라는 것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놀랄 일은 아니다. 내 블로그도 공동체 이야기가 가득하니까.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문제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만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공동체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즐겁고 행복하고 외롭지 않고 불안하지 않는 그런 삶을 만드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쉬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사람이라면 그걸 쉽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행복한 부부를 만드는 것은 높은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것도 쉽지 않다. 우리가 범하는 흔한 실수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욕망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잊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적인 규칙을 가지고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면 만들 수가 없거나 만들어도 그 안에서 생각만큼 행복하지가 않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볼 생각은 없냐고, 마을 만들기에 직접 참여해 볼 생각은 없냐고. 생각은 많다. 그러나 그저 뭉치는 것이 공동체의 시작이고 마을운영에 참여하면 마을 만들기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공동체 만들기를 이미 수년전부터 하고 있다. 무엇보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이제까지 나는 실패했고 그런 걸 의식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내 글중에 정말 많은 사람이 공감한 글이 있어서 베스트셀러라도 나왔더라면 공동체 만들기는 훨씬 더 구체적으로 진전되었을 것이다. 

 

공동체만들기는 인연이 되어 자연스럽게 시작되기를 나는 바란다. 시작되지 않으면 그게 인연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뭐가 좋은 것인가를 찾고 물론 작게 생활에서 실천도 하는 것이 좋다. 요즘은 그것이 어떤 마을이고 어떤 공동체건 내가 어떤 공동체에 참여한다면 거기에는 잔소리나 어려운 말은 적고 맛있는 음식과 음악과 영화처럼 즐거운 일은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했던 자칭 혁신가의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하지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이 수도승처럼 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했던 것같다. 그런 사회는 즐겁지가 않다. 그게 문제다. 나는 조용한 걸 좋아하지만 즐거운 것도 좋다.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으면서도 때로 파티가 있는 마을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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