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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무분류 임시

철학공부의 어려움

by 격암(강국진) 2014. 10. 17.

2014.10.17

이 세상에서는 이제까지 많은 직업적 철학자가 활동하고 죽었다. 아주 유명한 철학자들만을 생각한다고 해도 세상에는 아주 많은 철학자가 있었다. 우리가 가진 문제중의 하나는 죽은 사람이건 살아있는 사람이건 그들이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는것이다. 물론 과학계에도 의견의 차이는 있지만 철학자들의 의견이 갈리는 정도에 비하면 과학계는 완전히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서구 철학의 아버지쯤으로 말해져야할 그리스 시대의 인물이 아니라면 철학자들이란 대개 그들보다 앞서 나온 철학자들의 글을 읽고 그것을 평가 종합하는 일을 했다. 골치 아픈 것은 상당한 존경을 받는 그 지성인들은 대개 그들을 추종하지 않는 다른 누구에게 '그는 누구누구의 철학을 잘못 이해했다'라는 평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티는 콰인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같은 문장을 우리는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할수 있다.

 

누가 누구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안 했는지를 따지기 전에 이러한 현실은 새로운 세대 특히 비서구권의 사람들에게 매우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비록 실수를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세계적 명성을 가진 철학자들은 한결같이 엄청난 독서량과 비범한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철학적 오류를 저질렀다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을 볼 때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은 과연 그 많은 관련 서적들을 읽어야 할까?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읽는다면누구의 것을 읽을까? 모두 플라톤으로 돌아가서 시작해야 하는 걸까?

 

물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하지만 다시 과학의 경우와 비교해 보자. 나는 어떤 유명한 수학자나 이론물리학자가 계산을 하는데 있어서 실수를 저질렀다같은 말을 하는게 아니다. 그런 실수는 과학을 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들 이유가 못된다. 왜냐면 그런 실수는 그야말로 사소한 실수이지 대개 과학자로서의 그의 삶을 기본적인 것에서 부정하는 실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실수는 대개 쉽게 지적되고 쉽게 수정된다. 과학도는 과학을 배우지 이제까지 살았던 과학자들의 생각을 하나 하나 배우는 것이 아니다. 뉴튼의 프린키피아를 읽지 않아도 물리학박사를 따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철학자들의 경우 종종 그들의 평생의 업적의 상당부분은 이런 저런 미친 생각에 혹은 쓸데없는 고집에 근거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자의 오류란 집 자체는 견고하지만 창문틀에 약간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식이라면 철학자의 오류란 마치 집을 다지었는데 알고보니 이 집에는 기둥이 없더라 같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아무도 아인쉬타인의 계산실수때문에 상대성이론이 오류라는 것이 밝혀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인간의 과학이 잘못된 길을 걸었다고 해도 아무도 우리가 현대과학을 버리고 다시 그리스 시대의 과학이나 뉴튼시대의 과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자의 오류란 그런데 그렇다. 앞에도 말했듯이 철학자는 과학만큼 실험으로 증거를 보이는 것도 아니고 정교한 수학적 계산으로 논증을 해나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뉴튼은 위대한 과학자지만 뉴튼의 과학이 위대하다고 할 때 그것은 이제 역사적인 의미로 그렇다는 것이지 과학의 내용자체로 봐서 이제와 뉴튼의 과학을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는 없다. 그러나 현대의 철학자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같은 식으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20세기 철학은 모두 헛소리로 판명나고 우리는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같은 말이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 고전은 수천년을 버텨왔지만 20세기 철학이란 고작 백년도 안된 것인데다가 철학자간에 합의도 없으니까 말이다. 윤리학 분야에서 추천서적중의 하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사실만 봐도 이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아직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진지하게 읽는다. 반면에 서구중세의 신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한 신학적 논의들을 이제 몇사람이나 기억 할까? 물리학전공한 사람도 대부분 그리스 사람들의 4원소론같은 걸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런 걸 생각하면 그때 그 사람들은 쓸데없이 평생을 낭비한게 아닌가?

 

철학공부를 하는데 있어서는 무엇을 공부해야 할것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내가 물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생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라서 그렇다는 것을 전제하고 말하면 나는 한국의 풍토에서 수학자나 과학자로 훈련을 받지 않고 서구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깊은 회의감을 느낄 때가 있다.

 

한국의 문화적 풍토는 분명 서구의 합리주의적 풍토와는 다르다. 말과 기본적 행동이 다르다. 크게 관련이 없어보일지 몰라도 한국의 대학에서는 숙제를 베끼거나 시험때 컨닝을 하거나 하는 일이 참으로 가볍게 다뤄지는 부끄러운 면이 있다. 이러한 것은 비슷한 행위를 했을때 심하면 퇴학을 당하기도 하는 미국에서의 풍토와 다르다.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이것이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는 행위와 관련이 없을까? 나는 이런 부분을 간과하면 철학공부는 모래성이 되고 말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많은 친구들이 수학공부가 싫어서 문과를 선택하는 것을 봤다. 그런데 내가 느낀 바에 따르면 서구철학의 정수중의 정수는 수학이다. 플라톤이 수학을 모르면 자기 아카데미아에 오지도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수학은 진리를 인간의 이성으로 찾을 수 있다는 증거로 그리스시대 이래 서구철학의 핵심적 자리에서 사고를 이끌었다. 그런데 수학공부는 딱딱해서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엄밀성이 요구되는 추상적 철학논의를 배우고 싶어하고, 특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번역된 단어들로 가득찬 복잡한 철학서를 읽는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것일까? 다이아몬드를 캐기 위해 바위산에 간다면서 나무삽이나 고무삽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닌가? 기하학 책을 읽으면서 폰트의 아름다움에 빠지는 거 아닌가?

 

수학공부를 안해본 사람에게는 '철학적으로 말해서' 수학이란 기본적 공리가 주어지면 그것들을 조합해서 연역적으로 여러가지 논리적인 결과들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라는 것 정도면 수학을 다 이해한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는 내가 대학원 시절 들었던 말을 전해주고 싶다. 대학원에는 수리물리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내가 대학원에 있을 때는 아프켄 (arfken)이 쓴 교과서가 대학마다 많이 쓰던 교제였는데 우리는 그냥 그 책을 아프켄이라고 불렀다. 한 선배가 말하길 아프켄에 나오는 문제들을 모두 풀면 세계가 달라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아프켄을 다 풀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후 계속 수학적 모델을 세우고 분석하는 일이 나의 직업이 되어왔기 때문에 그 선배가 하는 말에 공감하는 면이 많다. 마라톤 완주를 한 사람과 안한 사람에게 세상은 같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완주 못해봤기 때문에 그럴거라고만 생각할 뿐이지만). 마찬가지로 수학을 진지하게 공부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세상은 같아 보일 수가 없다. 철학공부를 위해 마라톤을 꼭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구철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수학이 싫어라고 말하는 것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

 

오늘날 적어도 서양철학자로서 진지하게 다뤄지려면 칸트의 비판서를 통독하는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해진다. 그것은 마치 신학자가 성경을 안읽고는 말이 안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한국에서 칸트의 비판서를 통독한 과학자를 직접 만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만큼 드물다는 이야기다. (나도 안읽었고 적어도 당분간 그럴 예정이 없다.). 한국의 이공계사람들에게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관심밖의 일이거나 지나치게 어려운 일이다. 쉽게 적절하게 소개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인문계 사람들이 과학과 공학, 수학을 쉽게 말하는 것은 여러번 들었다. 별다른 공부도 없이 그들은 과학은 이거고 수학은 이거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그들은 훈련의 차원에서 그런 분야를 보는 것은 없고 그저 그것은 잡다한 지식이라고만 생각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현실을 보면 결국 한국에서 이과건 문과건 철학공부 제대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 아닐까. 그 뜻에 비하면 지나치게 언어가 과잉사용된 것같은 글들, 모짜르트의 아름다움에 대해 물었더니 모짜르트에 대한 백과사전 부분을 읽어주는 듯한 글들, 형식에 집착하기 때문에 번지르르해 보일 뿐 요리라기 보다는 요리재료만 쌓아둔것 같아 보이는 글들, 관점의 빈약함을 단순히 팩트의 양으로 숨기려고 하는 글들이 넘쳐나고 칭찬받는 것은 이때문이 아닐까.

 

뭘 읽어야 할지도 알 수 없고, 읽는 법에도 큰 문제가 있는 철학공부는 그럼 역시 때려쳐야 하는 것일까. 나는 철학자라는 말은 이미 지나치게 오염된 말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실제로 장자나 노자 혹은 공자가 현대에 살아나 걸어다녀도 그들은 철학자라고 불리지 않을 것같다. 아마 그저 쓸데없는 백수나 마을만들기 운동을 하는 어느 마을의 이장쯤으로 취급될 것이다.

 

나는 우리가 작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철학자라는 말이 가지는 이미지에는 이런 것이 있다. 철학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이론을 다룬다는 것이다. 철학자는 모든 것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다. 뭔가 가장 일반론적인 것을 다루는 분야가 철학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때문에 철학자가 만든 이론은 종종 무지를 망각시킨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르게 한다. 나는 이것이 무척 나쁜 오류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철학자와 다르다. 작가는 대개 자신이 이 세상을 모든 일들을 수미일관하게 설명할 이론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이고 한그루의 나무같다. 어떤 것은 큰 나무고 어떤 것은 작은 나무이며 어떤 것은 사막에 있는 고독한 나무고 어떤 것은 시내한가운데 있는 가로수이지만 작가는 그저 자기가 키워온 자기를 보여줄 뿐이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자기가 팔이 닿는 부분까지를 말한다는 것, 자기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글을 쓴다. 즉 자기가 무지하다는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세의 영국에 대해 글을 쓰건, 과학에 대해 글을 쓰건, 미술이나 패션에 대해 글을 쓰건, 그들은 결코 철학자가 그렇게 하듯이 모든 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지 않는다. 그런 건 인기도 없고 작가는 그렇게 해야 할 의무도 없다. 철학자는 모든 언어는 사회적 관계의 소산이다 같은 문장을 쓰고 그렇게 쓰기를 기대당하지만 말이다.

 

이 점에 있어서 작가는 철학자보다 더 훌륭하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자신의 한계와 무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철학자는 대개 최종적 이론을 목표로 한다. 30살에 글을 쓰면서도 죽을 때까지 틀리지 않을 것같은 내용을 쓰려고 한다. 틀리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이 오히려 그런 글의 장점을 없애버리지 않을까? 일찍 쓴 글을 방어하려는 노력이 자신을 스스로가 만든 패러다임에 가둬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작가는 자신이 전에 춘천이 정말 싫었다라고 쓴 것에 대해 그렇게 까지 부담을 느끼고 방어를 할 필요는 없다. 작가는 이미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철학자인지 작가인지를 따지는 말 자체가 그렇게 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생겨나는 차이를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철학자를 꿈꾸는 사람, 철학을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오류없는 최종적 철학에 빨리 도달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가 쓴 정답이 적힌 답안지를 보려고 안달이 나있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종종 인생이 뭔지를 다 깨닫고 살기를 시작하려고 하는 식의 태도를 가진다. 그건 불가능하고 잘못된 것이다.

 

반면에 작가는 가장 훌륭한 작가라고 해도 남의 글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고 복사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남의 글도 소중히 읽지만 언제나 남의 글보다 내 글이 더 중요하다. 나는 나니까 그렇다. 남의 글은 하나도 읽어보지 못했으며 초등학교도 못 마친 분의 말과 글도 때로 훌륭할수 있다. 누구나 삶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저 자기가 느낀 것, 자기의 성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결국 따지고 보면 철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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