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을 찬양하는 사람은 많다. 걷는 것은 육체적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에도 좋다. 게다가 뭐든지 빨리빨리를 하는데 익숙한 현대인에게 다시금 약간은 느리게 살수있는 적응시간이 되기도 한다. 시간을 내서 걷는 것은 특히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 더욱 좋은데 그 이유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오히려 걷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어느새 자동차를 모는데 익숙해 지거나 활동성 자체가 줄어든다. 반면에 격렬한 운동은 해가 되기 쉽다. 그러니 걷기가 좋다. 은퇴하여 한가한 사람은 매일 매일의 중요한 일정이 걷는 것이 된다. 걷는 것은 건강을 지키며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주고 사색하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걷는 것이 노인이나 은퇴한 사람의 일인 것만은 아니다. 짧게 30분정도 걷는 것은 몸과 마음을 정돈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나 회사로 가는 통근길은 어쩔수 없이 해야하는 일처럼 느껴지지만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아주 중요한 리듬을 만들어 준다.
길게 참을성을 발휘하여 걷는 것은 아예 생활을 바꿔준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사는게 답답하다고 느끼면 걷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아오곤 했다. 그래서 포항에서 대학교에 다닐 때는 답답함이 극에 달한다싶으면 포항에서 경주까지의 야간 도보길에 나서곤 했다. 그 길은 야간에 걸어야 좋았다. 그 길은 당시에는 조명이 거의 없는 길이었는데 그 불빛도 없는 길을 걷는 것은 사는게 힘들고 지겹다 싶으면 나에게 다시 힘과 깨달음을 주는 경험이었다. 인생의 축소판이랄까.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대단해서 나라 끝에서 끝까지 걷는다.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쓴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아예 유럽에서 중국으로 대륙을 횡단하고 문제 청소년들과 함게 걷는 모임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걷는 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하는 말이 나올 법하다.
사실 걷는 것은 경제문제의 해결책이기도 하다. 단지 걷는게 무슨 경제문제를 해결해 주냐고 말하겠지만 제주도의 올레길이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제주도가 요즘처럼 인기좋은 섬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시기를 같이한다. 예전의 제주는 그저 예쁜 장소에 가서 사진찍는 신혼부부용 섬이었다. 하지만 올레길이 인기를 얻으면서 걷는 곳으로, 치유의 섬으로, 대안적 삶을 대표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길은 만드는 사람과 걷는 사람이 같이 만드는 것이다. 걷다보면 길은 생기고 변형된다. 그러니 지역민이 열심히 걷는 지역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당연히 전국의 지자체들은 너도 나도 마실길이니 올레길이니 하면서 산책길 개발에 나섰다. 거기에 길이 있다라는 것이 어떤 지역이 가볼만한 곳이 되는가 아닌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이제 길은 언제나 강조된다. 벗꽃을 말해도 벗꽃길을 말하고 측백나무 숲을 말해도 측백나무 숲길을 말하게 되었다.
이렇게 걷는다는 것의 중요성이 커지자 이제는 걷는 것도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같다. 걷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는데 거기에 무슨 전문가가 필요하겠는가라고 하겠지만 예를 들어 걷기 좋은 길이란 도대체 어떤 길인가에 대해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건 마치 좋은 인생이란 어떤 인생인가에 대해 설득력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과 같다. 사실 그러니까 걷기 좋은 길이 만들어지기 쉽지 않은 것이다. 겨우 좋은 곳이 만들어졌는가 싶으면 '개발'이 된다. 부동산가격이 오르고 술집만 늘어난다. 사람들이 우 몰려가서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실 한국에는 걷기에 좋은 곳이 별로 많지 않다. 한국의 주거를 대표하는 것이 아파트다. 아파트 숲사이를 걷는 것에 대해 감탄하는 사람은 적어도 나와는 정서가 매우 다른 사람이다. 한국의 아파트 개발업체가 뭐라고 설득하든 그런 길이 정말로 매력적인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길은 인생이고 예술작품이다. 빠르게 달리겠다면 고속도로처럼 넓고 직선으로 뻣어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설사 화려한 재료로 잔뜩 치장을 해놓다고 하더라도 직선으로 쭉쭉 이어진 길은 재미가 없다. 불과 몇백미터 가지 않고도 이젠 더 이상 걷기가 싫어진다. 저쪽이나 이쪽이나 비슷한데다가 저쪽까지 안가도 길이 직선이니까 여기서 다 보인다. 지금 이곳이 좋아도 저기 좋은 곳과 비교하고 빨리 저쪽으로 가야할 것처럼 된다. 아파트 숲길이 산책길로 매력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마치 판에 박은 듯 집들이 똑같이 단순하게 생겼으니까 아무 자극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구불구불한 숲길도 숲길 나름이지만 걷기 좋은 숲길이나 도시의 길을 걸어보면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작은 꽃이나 집앞의 장식물 하나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 길은 끊기지 않는다. 즉 신호등같은 것때문에 타의에 의해서 멈추거나 가거나 하지 않고 내 리듬대로 내 마음 가는대로 걸을 수가 있다. 지금이 좋으면서도 또 굴곡진 코너를 하나 돌아서면 새로운 뭔가가 튀어나와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길이다.
걷는 다는 것의 중요성은 대도시의 낡은 지역과 소위 개발된 지역의 이미지를 뒤집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제까지 개발되었다라는 말은 아프트 촌으로 변했다라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미개발지역이란 저층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곳이란 뜻과 거의 같다. 그런 마을은 불도저로 밀어서 고층아파트를 마구 세워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어졌다. 그런데 그런 낡은 '미개발 지역'이 걷는 맛은 훨씬 뛰어나다. 집들이 모두 같은 모양이 아닌데다가 길은 좁고 골목이 많아서 앞에서 말한 굴곡진 길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벽화마을을 만들고 카페를 짓고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 여기저기에 생기고 있다. 상대적으로 아파트는 그냥 잠이나 자는 곳으로 따분하게 보인다.
이제 걷는다는 것은 복지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걷기에 좋은 동네라는 것이 살기 좋은 동네인 시대이며 심지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길에 대한 고민과 공감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깊지 않아 보인다. 좋은 길을 만드는 일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 길의 중요성, 산책의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집은 멋지게 짓고서 동네 골목은 흉하게 내버려 둔 곳도 많다. 집안은 멋지게 꾸미고 싶지만 집 바깥쪽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인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길은 혼자서 만들지 못한다. 여러사람의 공감대가 있어야 만들어 진다.
길에 대한 인식, 걷기에 대한 인식은 바뀌고 있고 바뀌어야 한다. 새마을 운동하던 때처럼 시멘트로 길게 신작로를 깔면 그것이 발전인 시대는 지났다. 차가 못다니는 길이 있는 동네가 더 발전된 동네일 수 있다. 구불구불한 길이 있는 동네가 더 발전된 동네일 수있다. 세상에 좋은 길이 많이 생겼으면 싶다. 그러면 살기가 좋아질 것이다. 그러면 사는게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사람들이 한번 더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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