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기사를 읽다보니 요몇년간 자주 있었던 다문화정책에 대한 논란이 또한번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이 논란은 그 본질에 해당하는 부분은 그저 당연한거 아냐라고 말해지고 무시되어지며 잘못된 질문에 집중하는 느낌을 받아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최대한 짧고 분명하게 그 부분만 다시 이야기해볼까 한다.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답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종종 노력이나 관심의 부족이 아니라 질문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예는 일본의 개국에 대해 그린 료마전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거기서 보면 미국의 함선이 나타나 개국을 요구한다. 그러자 일본은 개국하자는 쪽과 맞서 싸우자라고 말하는 쪽으로 나뉘어 싸움을 벌인다. 개국할 것인가 말것인가. 분명히 이 두가지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개국이 옳다면 개국하지 말자는 쪽은 틀리다. 개국이 틀리다면 개국하지 말자는 쪽이 옳다. 그래서 두개의 답을 놓고 사람들은 고민한다. 한쪽이 틀리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그 반대가 답이라고 믿게 된다.
그런데 정답은 개국도 개국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정답은 일본이 뭉치고 일본이 그 정체성을 지켜낼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답은 일본이 개국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아니다. 그런데 이게 정답인 것이다. 즉 질문이 잘못되어 있었다. 어차피 시대의 흐름을 생각하나 국력을 생각하나 개국을 하지 말자는 사람이나 싸우고 몰아내자는 사람들이나 틀린 것은 다 마찬가지였다. 개국은 시간의 문제이며 싸우고 몰아내자는 운동은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 뻔했다.
중요한 것은 개국을 어떤 속력으로 하건 그 안에서 일본이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그걸 위해서 뭘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그 길로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국반대론자가 개국론자를 공격하거나 그 반대로 하는 것은 시간낭비요 국력낭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정체성을 지킬 수 없다면 외부로 부터의 영향속에서 괴멸적 피해를 입는다. 일본이 막부때 그랬던 것처럼 각 번으로 나뉘어 일본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지 못했다면 각 번은 각개 격파당하고 미국이나 유럽의 어느나라를 위해 충성심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일본말이나 일본문화따위 하나도 남길 필요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면 일본은 망하는 것이다.
다문화 논란은 이 개국론자대 개국반대론자의 논쟁과 매우 비슷해 보인다. 둘의 싸움은 대개 허구에 차있다. 다문화정책의 수용을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사람, 인종차별주의자쯤로만 말하거나 암시한다. 그들은 종종 국가나 문화적 정체성이란 말에 대단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프리카의 빈민국국민이 미국의 정치논선을 따른다고 미국인처럼 살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무시하고 마치 세상에는 이미 한개의 나라밖에 없는 것처럼 사고한다. 이들의 다수가 부유한 선진국 유학파라는 것은 놀랄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같은 나라에서 민족분열로 비극이 일어나는 현장따위에는 별로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문화정책 반대론자들도 종종 그들의 반대편을 매국노쯤으로만 생각한다. 문을 닫아걸고 계속 이대로 살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같다. 그들의 다수는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 따위에 큰 관심이 없다. 모든 한국적인 것이 다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일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발도 거부하고 짚신신고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뭐가 정의이고 뭐가 정말 우리 문화의 정수인가라는 것에 대한 계속적인 고민없이 그걸 지킬수가 있을리가 없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란 수백년전부터 이땅에서 살아왔던 사람에게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그걸 지키는게 한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일까?
우리는 우리안에서 뭘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우리 공동체의 정신적 정체성, 이것들이 가장 중요하다. 이게 남보기에는 별로 표시도 안나고 더 어려운 질문이지만 그래도 가장 시급한 문제이기도 하다. 개국이냐 쇄국이냐는 극단론이고 결국은 시간의 문제다. 우리나라가 다문화국가인지 아닌지를 선언하거나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떤 문맥에서 다문화라는 것은 당연하고 어떤 문맥에서는 다문화국가란 완전 허구다. 그것은 여러개의 다른 교통법규를 동시에 실시하는 나라가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일반론으로 어떤 카페는 무슨일에든 관심을 가질수있다. 그러나 밀리터리 카페에 가서 우리도 십자수에 대해 개방된 의견을 가져야 한다고 부득부득 우기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다. 공동체의 역사나 정체성 문제는 이런 문제가 있다. 과거에 대한 존중없이 공동체는 와해되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나 빠르게 냐고 묻는 것도 중요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그것에 집중하고 그걸로 편을 갈라서 반대편을 비하하는 것은 어리석다. 언젠가 부터 우리는 경제나 돈이야기만 하고 가치의 이야기가 실종되었다. 이것은 그 결과다. 다문화정책에 대해서도 경제나 돈 이야기를 주로 한다면 영구히 그 본질은 잊혀지고 필요없는 낭비만 계속되지 않을까? 개국을 하건 쇄국을 하건 망하는 건 매한가지 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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