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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책 이야기

프랭크 맥클러스키의 소방관이 된 철학교수를 읽고

by 격암(강국진) 2015. 11. 17.

15.11.17

소방관이 된 철학교수는 철학교수로 일하면서 자원소방관으로 일한 맥클러스키의 책이다. 그는 소방관으로 일하는 것과 철학을 하는 것은 매사에 꼼꼼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주 비슷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물론 이 두가지의 일은 서로 많이 다르다. 철학교수는 가장 이론적인 일을 한다. 반면에 소방관은 가장 육체적인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가장 실천적인 일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불을 끄지 못하는 소방관은 쓸모가 없다. 이 두 개의 다른 직업을 동시에 가지면서 저자는 자기가 배운 것들의 의미를 현실의 현장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은 이제 행복하다라는 것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어렵지 않고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소개와 여러 재미있고 극적인 사건의 묘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사실 이 책의 말미에 이를 때까지 이 책이 과연 무엇에 대한 것인지를 분명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같다. 재미있으니 시간 죽이기로는 안성마춤이지만 그 이상의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여러 좋은 말들은 많이 나오지만 이런 말들은 그가 소방관의 경험속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을 제외하고 나면 흔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러나 책의 말미에 가서 나는 그가 말한 것의 핵심에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야 이 책 전부를 전부 새롭게 느끼게 될 수 있었던 것같다. 그가 말하는 행복의 비결이란 결국 좋은 사람들속에서 서로 신뢰하면서 살고 지금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소개의 말은 위험할지 모른다. 책을 지나치게 뻔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어떻게다. 어떻게에 대해 그는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어렵게 말하고 있지도 않지만 요점만 말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 지식은 쓸모없다는 말만 거듭 반복한다. 그 이유는 우리는 우선 우리가 가진 생각들을 지워버릴 필요가 있고 느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저자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체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자의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되지 않으면 도움이 되질 않는다. 삶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들 필요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메세지는 아주 여러가지지만 내게 인상깊은 메세지는 공동체에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세가지다. 그것은 느리게 살고, 자기의 마음을 살피면서 살며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교감이 이어지는 전통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느리게 살기에 대해 말해보자. 우리는 뭔가가 너무 쉽고 빠르게 이뤄질 것을 기대한다. 예를 들어서 인간사이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하면 그걸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적의 처방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없다. 신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어떻게 말하면 기다리지 않을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신뢰가 형성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자꾸 비법을 찾고 지름길을 찾으며 더 좋은 곳으로 떠나려고 한다. 그러나 인생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한 여행이 아니다. 그러니까 빨리 빨리 뭔가가 이룩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느긋하게 살 필요가 있다. 씨앗이 나무가 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적의 비료로 순식간에 키우려고 하면 씨앗을 오히려 망친다.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던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이다. 자기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행복이란 결국 내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뭔가가 자기에게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모순적인 행위다. 더 좋은 곳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은 부질없다. 행복은 그것을 찾지 않을 때 우리 안에서 발견된다. 

 

최근에 나는 자유에 대해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것과 연결해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사실 행복이나 자유는 같은 말이 아니지만 다른 말도 아니다. 자유없는 행복이란 이상한 개념이다. 행복없는 자유도 마찬가지다. 자유도 내적인 문제다. 쇠사슬에 매여있어도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는 반면에 최고급 리조트에서 한가롭게 빈둥거리면서 살아도 인간은 완전히 부자유스러울 수 있다.  

 

쇠사슬에 매여도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원하면 그 쇠사슬을 순식간에 치워버릴 수 있다거나 그 사람이 쇠사슬에 매여있는 것을 좋아하는 변태라는 말이 아니다. 인생의 쓴 맛은 기적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 맛을 다르게 느끼게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아이를 위해 힘든 노동을 하면서 자기가 얽매여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삶의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은 자기가 좋아서, 선택해서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의 억지에 입을 닥치고 있을 수가 없어서 감옥에 갇힌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고 그런 몸이 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자유롭게 느낄 것이다. 오히려 참고 굴욕적으로 사는 것을 부자유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자유도 행복도 결국 우리가 뭘 보고, 느끼는가에 달려 있다. 보람과 자부심과 의미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삶의 고난을 부자유로 느끼지 않고 자랑스럽게 지불해야할 보람있는 댓가로 생각한다. 행복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여러선택을 해서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자기가 해온 선택들이 모두 당첨된 복권같은 것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좋건 나쁘건 그것들이 모이면 그 이야기들, 그 선택들은 나만의 것이 된다. 저자는 인생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생각하라고 말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해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에 대해 맥클러스키는 나이든 사람들이 존중받고 전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항상 하나의 지역에 있어서 학교가 공동체의 중심이 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 이유는 학교는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연결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해 주는 장소이며 이렇게 어른들이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함께 행동하다보면 지역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 책은 자원소방소도 공동체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방소는 그 지역의 화재와 싸우기 위한 곳이다. 여기에 그 지역의 사람들이 대를 이어서 자원봉사를 하고 그러면서 선배 소방대원에게 경험을 배우고 존경을 표하는 전통을 유지한다. 그것이 행복한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고 그는 말한다. 

 

이 두가지의 예에는 결국 나이가 다른 세대들간의 소통과 연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이가 다른 세대들이 이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 순환이 우리를 영원한 공동체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나이가 들어 변할 수 있지만 순환하는 연결고리를 가진 공동체는 그렇지가 않다. 그 순환이 끊길 때 우리는 불안해 진다. 미래가 보이질 않게 된다. 사람들은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은 나이로 있으려고 하고 욕심많은 기성세대의 눈에는 미숙한 젊은이들이 쓰고 버릴 자원처럼 보이게 된다. 결국 우리는 외롭고 불행한 개인이 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대개 여기서 말하는 것과는 반대로 살고 있다. 빨리 빨리 로또복권에 당첨되서 지긋지긋한 여기가 아니라 행복한 어딘가로 떠나버리려고 한다. 어쩌다 그렇게 되도 이것저것 건드리다가 그 행운은 날아가고 만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대화하지 않고 자유와 행복을 바깥에 찾는다. 우리는 나이든 사람과 대화하지 않고 더 어린 사람과 대화하지 않는다. 그 결과 어린 사람은 불안하고 기성세대는 경쟁에 지치며 노인들은 불행하다. 

 

이 책은 소방관의 삶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행복의 문제를 섞은 후 그것을 철학적으로 쉽게 쓴 책이다. 비록 이 책이 30년뒤에도 읽히는 고전이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마땅히 추천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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