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작 에세이들/우리시대의 새로운 생각

2. 인간의 크기 1

by 격암(강국진) 2016. 2. 1.

2. 인간의 크기

 

‘서쪽으로 탈출하기’의 한 예를 생각 해보자. 마을 만들기 사업이란 것이 지금 한국에서는 열풍적으로 퍼지고 있다. 수도인 서울시에서는 시장의 적극적 추천하에 일이 진행되고 있고, 뿐만 아니라 제주, 대전, 수원, 경기도등 여러 곳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자생적으로 또는 관의 주도하에 이뤄지고 있다. 다만 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잠깐만 둘러봐도 알수 있듯이 사람들마다 이것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르고,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여러가지 변화들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새마을 운동의 부활이냐면서 비아냥 거리기도 하고, 벽화를 조성하고 텃밭을 만드는 것이 곧 마을 만들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너무 외형적인 것만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을 만들기란게 뭘까. 수원시 마을만들기 추진단의 민완식단장은 마을 만들기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생활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며 그 궁극적인 목적은 주민들간의 소통을 통해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마을 만들기에 대해 문자 그대로 찬동하건 조금 다른 어감을 가지는 설명을 하건간에 공동체 복원과 생활환경개선이 마을 만들기의 공통된 특징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연 왜 지금 마을 만들기 사업이란게 주목을 받을 가치가 있으며,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마을 만들기나 공동체의 회복이 거론되는 첫번째 이유는 우리가 자치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이상 정부나 국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세세한 생활을 전부 살펴주기를 기대하고 그들에게 권력을 준다던가, 그들에게 실망한다던가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능력도 없고, 선하지도 못하다. 사실은 아무도 그렇게 능력이 있을 수 없으며 이런 면에서 보자면 스스로의 무능을 고백하고 권력을 내려놓고 지금이 자치시대, 탈권위주의 시대라는 것을 말하는 리더가 좋은 리더다. 그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바보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야 말로 사회적 악의 탄생이 일어나는 가장 흔한 방식이다. 

 

지난 전임 서울 시장들의 임기동안에 혹은 그밖의 다른 지자체장들의 임기동안에 이것만 하면 마술처럼 우리 고장이 살아날 수 있다면서 온갖 사업이 벌어지고 우리 사회는 그 뒷처리를 못해서 고생했다. 여기저기에서 몇천억 몇조 나아가 몇백조가 그런 사업의 비용으로 지출되어졌다. 일례로 LH공사는 2006년에 부채가 50조였는데 2012년에 빚이 138조로 늘었다고 한다. 불과 몇년만에 한 회사의 빚이 몇십조씩 늘어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무능하기때문 만은 아니다. 애초에 단순한 거대공사로 성장을 기대하기에 한국은 이제 너무 복잡하고 민감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거대한 공사는 종종 쓸모가 없어졌으며 실패할 경우 그 댓가가 너무 엄청나 진 것이다. 이런 예는 거대한 주택단지의 개발같은 것이 경쟁력을 잃어서 여러가지 아파트 미분양사태가 벌어지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작은 집단들로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돕는 소공동체들의 활성화가 있지 않고서는 생활의 질을 올리는데 한계가 크다. 이 것이 마을 만들기의 한 이유다. 

 

두번째 이유는 단순화, 다양성 파괴로 인해 거대한 자본에게 사람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으며, 마을 살리기가 곧 일자리 창출이고 수익의 창출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크게 보면 지방은 수도권의 종속변수에 불과했다. 지방은 그저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 중앙정부에서 결정하는 일에 따라 지방에 떨어지는 돈을 보고 사는 것이 과거였다. 하지만 지방자치 시대이후 지자단체들은 큰 규모에서 일종의 지방만들기를 해왔다. 더이상의 인구유출과 직장감소를 감내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문화운동이 되어, 지방 축제가 열리는 등 지방의 문화적 특색을 살리는 움직임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제 그같은 변화가 큰 지방의 단위 아래로 퍼져서 각 마을로 퍼지는 것이 바로 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성미산 공동체는 마을 만들기 사업의 모범사례로 자주 거론되는데 성미산 공동체를 보면 마을 만들기 사업이란 그저 마을 미화사업이 아니라 여러가지 가게를 열고, 공동 육아를 하고, 동아리 활동을 통한 문화활동의 증대를 통해 수입과 생활의 질을 동시에 증대시키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같은 마을 만들기가 뒤쳐진 곳은 어떻게 되는가. 표준화 규격화된다. 그말은 거대쇼핑몰이나 프랜차이즈, SSM 같은 거대 자본이 만들어 낸 유통구조의 침입을 받기가 쉬워진다는 말이며 결국 다양성의 감소, 일자리의 감소, 외부 자본에 종속으로 이어진다. 이런 것이 경우에 따라 나쁜 것만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대부분의 경우 좋은 것으로 추천할만은 것은 아니다. 

 

세부사항은 당연히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한 움직임은 전에도 있었고 한국 이외의 나라에도 흔하게 목격된다. 서구에도 생활공동체들을 만드는 운동이 있으며 일본에서도 지방이나 외딴 섬으로 사람들이 들어가서 그 지역사람들과 함께 지역경제를 일으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일찌기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던 시대에도 간디는 마을 자치 운동이라고 할 수있는 스와라지 운동을 했었다. 

 

또한 이러한 것의 궁극에 이르면 우리는 마을만들기가 아니라 가족만들기, 나를 만들기 운동이 퍼지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그리고 가족은 많은 것을 외부로 흡수당하기만 해왔다. 부모로서의 역할, 가족으로서의 역할, 친구로서의 역할, 자식으로서의 역할, 이웃으로서의 역할이 모두 자본주의 시장에 흡수된 것이며 따라서 그만큼 현대인의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예를 들어 현대의 부모는 잘 발달된 교육기관과 식당, 전자 조리기구들와 슈퍼마켓에 의해 자식을 교육하는 의무와 좋은 식사를 준비해줘야 하는 의무에서 해방되었는지도 모른다. 발달하는 개인주의는 현대인을 전근대적인 가족관계가 만들어 내는 고통에서 해방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장은 댓가를 요구한다. 3대가 모여살던 조선시대에 집이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았고 한번 지으면 고쳐가면서 오래오래 썼다. 육아와 식사준비등은 대가족을 위해 공동으로 행해졌다. 그런데 모두가 독립하여 따로 집을 가지려고 하고 그 집의 가격이 거의 평생 노동해야 벌 수 있는 돈과 비슷할 때 우리는 독립이 옳은 것이라고 해도 우리가 그것을 값비싸게 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육비와 외식비는 또 어떤가.

 

결국 현대인은 전통적 가족공동체가 주는 노동과 제약에서 해방되었지만 그 댓가를 치루기 위해 바깥 노동에 매이게 되었다. 이것은 종종 발전일테지만 반드시 일률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게다가 어느 쪽이든 정도가 심해지면 모순이 생긴다. 분가하여 집한채를 얻자고 평생을 일해야 한다던가 맞벌이 부부로 일하지만 나가서 버는 돈보다 집에서 소모하는 돈이 더 많거나 생활의 질이 하락하는 폭이 더 크다면 그것이 당연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물론 오늘날 현대인이 가지는 생각은 바깥으로 나가서 직장을 가지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는 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다. 집에 있는 것, 지방에 있는 것은 종종 무능하다는 의미처럼 여겨진다.   

 

현대인들의 생활수준이 과거의 그것에 비해 더 높다는 것은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설국열차라는 영화에 보면 기차 뒷칸에 사는 미래인들은 벌레를 가지고 만든 음식을 먹고 산다. 우리는 그것을 허구로만 볼 것이 아니다. 영양학적으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데 거의 비슷한 음식이 출현하고 그것이 싸다면 대중은 돈을 절약하기 위해 점점 더 그걸 먹게 된다. 싸구려 주거를 만들 수 있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돈을 절약하기 위해 싸구려 주거에 살게 된다. 그런데 돈이 부족한 이유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을 빼앗겨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자식의 학원비를 대기위해 파출부일을 한다는 엄마 이야기나 기러기 아빠로 외롭고 가난하게 살면서 외국으로 떠난 자식들 학비를 대다가 불행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어딘가에서 합리적 균형이 깨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경제의 문제만도 아니다우리는 우리의 역할에 의해 자신의 의미를 파악한다그런데 전통적 역할이 상당부분 시장에 의해 흡수되면 자기 자신의 의미를 상실당하고 외로워 진다우리는 그만큼 서로에게 무의미해진다그리고 우리 모두는 우리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아갈  행복하다는 자명한 진실이 잊혀진다. 가족의 고향의 고국의 맛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만큼 언제나 대체가능한 표준화된 인간이  것일 뿐만 아니라  외로워  것이다그런 문화적 경험의 공유가 테두리를 설정하고 우리를 특별한 인간으로 만들고 우리가 특별한 관계를 가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연작 에세이들 > 우리시대의 새로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4. 다원화 시대의 자기 찾기 1  (0) 2016.02.15
3. 인간의 가치  (0) 2016.02.05
2. 인간의 크기 2  (0) 2016.02.01
1. 불안의 시대  (0) 2016.01.29
0. 우리 시대의 새로운 생각  (0) 2016.01.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