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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화와 허풍의 끝, 탈권위주의가 옳다

by 격암(강국진) 2016. 10. 31.

작금의 최순실 박근혜 사태는 가슴 아프지만 쉽사리 끝날 문제가 아니다. 아마도 우리들은 적어도 몇달동안 답답한 소리를 듣다가 그 다음에는 적반하장의 소리를 듣게 되기 쉬울 것이다. 우리의 기대만큼 속시원하게 문제가 끝날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를 할 수는 없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그 책임자를 엄벌해야 하고 섯부른 동정론이나 양비론에 빠져서는 안된다. 일반론에만 빠져드는 것도 곤란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왜 이런 일들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 어떤 특정인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 이외에도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꼭 필요할 것이다. 


나는 전부터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유명인들이나 직위에 대한 환상이 크다고 느껴왔다. 즉 어떤 직위를 가지거나 유명세를 얻은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지나치게 대단하게 말해지고 그러다보니 그런지 몰라도 종종 그들 스스로도 너무 대단한 척을 한다. 


조금 희극적이면서도 슬픈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한국에서는 선후배 참 많이 따진다. 그리고 선배들은 종종 자신들이 뭘 대단히 아는 것처럼 군다. 사회에 나와 있는 일반인들에게 대학생은 전부 아기처럼 보이지만 대학교 4학년생은 대학교 2학년생앞에서 인생철학을 논하는데 거침이 없는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는 곳이 한국이다. 위로의 겸손은 흔한데 아래로의 겸손은 드물다. 직위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너무 내가 뭘 다 잘안다는 모습을 한다. 그러니까 국회의원들이나 기업의 사장이나 이사나 고위 공무원이 되면 참 부끄러울 정도의 칭찬과 예우에 둘러쌓인다. 


나는 예전에 국민들이 국회 청문회 중계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은 국회의원쯤 되면 적어도 어떤 수준이상은 되는 대단한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증인 불러다 놓고 호통치고 있는 것을 보면 보좌관들의 도움까지 받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어디 시골구석의 복덕방에서 날마다 장기나 두고 시시하게 싸움이나 하는 노인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이 사람은 그래도 국회의원 같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노무현이었다. 그런데 노무현은 누구보다도 똑똑했지만 탈권위주의를 가장 많이 보여주었던 사람이었다. 정작 똑똑한 사람은 고개를 숙이는데 별거 없는 사람들이 거들먹 거리는 일이 너무 많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문제는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는 문화다. 이것은 다른 사람 이전에 성공한 사람들도 불편하게 만든다. 권위주의적 관행은 전근대적인 것으로 전문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와 완전히 대립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도로 좁은 분야를 파고들어서 전문가적인 지식과 경험을 쌓는 일이 많으며 그런 걸로 종종 평가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전문화한 것 이외에 대해서는 책임질만한 일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그게 현대다. 직장상사가 직장바깥에서도 상사고 직장상사의 부인도 나의 상사나 다름없고 하는 것은 현대가 아니다. 공사구분이 확실해야 하는 것이 현대다. 


전문화는 전문화 나름의 문제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걸 비판하기 전에 그것이 복잡한 현대사회의 속성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뛰어난 야구선수나 가수가 역사의식도 있고 정의롭고 철학도 있으며 사회문제에 대해 제대로된 의견도 있기를 바라는 것은 환상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한두가지 분야나 조금 뛰어날 뿐 다른 부분은 그저 평범하다. 이것이 보통이다. 오늘날 이름을 알린 사람도 대부분은 이렇다. 이런 현대사회에서 사람을 뛰어난 분과 못난 놈으로 나누고 유명한 분과 유명하지 못한 분으로 나누는 식의 단순분류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이다. 따라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번거롭고 귀찮다. 


근엄하고 잘난체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나이드신 분들중에는 그래서 이중인격자 같은 사람이 많다. 나이가 좀 아래인 사람이나 후배앞에서는 격의없는 것같으면서도 왠지 근엄하게 굴다가 동기나 선배를 만나면 갑자기 사람이 돌변하는 사람이 하나 둘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피곤하니까 결국 한국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사람을 안만나게 되는 일이 많다. 부장 노는데는 부장만 있어야지 거기에 이사가 있거나 과장이 있으면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진다. 3학년 노는데에 2학년이 끼어도 마찬가지고 남편들 만남에 아내가 끼거나 아내들 만남에 남편이 끼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수없이 많은 가면들과 벽들속에서 오해와 신화와 부패가 만들어 진다. 그 극단에 있는 것은 바로 반인반신이라고 말해진 적도 있다는 박정희와 그 딸 박근혜다. 그 대단한 사람들도 굽신거리게 만드는 박정희는 더 대단해 보이겠으며 그 딸인 박근혜도 뭔가 있어 보였을런지 모르지만 대단하기는 뭐가 대단하다는 것인가.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도 자기 딸을 사교집단에게 잡혀 살게 한 박정희가 그리 대단한가? 박정희도 박근혜도 박지만도 그냥 인간일 뿐이다. 


우리는 신적인 권위에 의해 구원받지 못한다.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이성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눈과 귀로 좀 더 자세히 보고 기록해야 한다. 우리가 교통신호위반과 살인을 모두 범죄라는 이름으로 분류하면 세상은 신화와 환상에 가득 찬다. 우리는 그것을 어떤 정량적 스케일 위에서 기록하고 비교할 필요가 있다. 10조 손해를 본 거나 100조 손해를 본거나 똑같다는 식으로 나가면 이순신 장군이 역적이 되는 이상한 판단이 나온다. 세상을 잘 살피고 그것을 좀 더 세밀하게, 가능하면 정량적인 스케일로 기록하고 분석하는 것이 세상을 제대로 보는데에 꼭 필요하다. 


이게 바로 현대사회를 만든 기본철학이다. 세계는 요즘 이 현대를 넘어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아직도 전근대적인 신화에나 권위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너무 많아 보인다. 이번 사태에서도 무속신앙에서 무슨 사이비 종교가 엄청많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종종 아직도 누가 태어날 때 쌍무지개가 나타났다같은 말을 하면 그게 다 의미가 있을지 몰라하고 쉽게 생각할 것처럼 보일정도로 전근대적이다. 노무현의 시골집을 아방궁 운운하면 흥분하지만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쓰는 돈에 대해서는 무관심할정도로 기준이 없다. 


지금 당장의 문제는 최순실 박근혜지만 좀 더 작은 규모의 최순실 박근혜는 한국 사회에 가득차 있다. 나라를 구한 이순신을 괴롭힌 선조는 조선최고의 바보왕으로 말해지지만 한국 사회는 그 선조같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선한자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셀수 없다. 한국의 가정에서도 막장드라마가 펼쳐지는 일이 많다. 이런 저런 낡은 관행에 시달리는 사람들 이야기는 인터넷에 가득하다. 직장도 물론 마찬가지다. 땅콩회항을 보라. 부모 잘 만났다고 비행기를 돌리라고 하면 돌려야 하는 그런 일이 왜 일어나겠는가. 지금 얼마나 많은 직장인들이 땅콩회항같은 명령에 시달리고 있는가. 현대차도 한전부지를 사고 나서 주가가 반토막이 되었다. 하지만 회사를 살리려고 뛰어야 하는 것은 평사원들이다. 어떤 사람은 9급공무원 시험도 예전 사법고시처럼 어렵게 생각하며 공부하는데 청와대직원으로 들어가는 것도 간단히 일어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전근대와 현대는 지금도 한국에서 부딪히고 있다. 그리고 권위주의의 벽은 사방에 가득하다. 그것은 아마도 한국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력으로 현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못한 숙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대로 남아서 청와대까지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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