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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새 시대의 여명

by 격암(강국진) 2016. 10. 28.

어떤 사람들은 현재의 대선 제도에 대해 상당히 안일하게 판단하는 것 같다. 즉 그것을 쉽게 이리저리 만지는 것이 가능한 것, 예를 들어 총리 내각제같은 것으로 고치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총선과 비슷한 정도의 중요성을 가지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대선이나 대통령직이라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현재의 한국은 87년 이후 대선을 직선제로 치루며 우리들은 그것에 승복한다는 합의에 기초하여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합의는 책상앞에서 상상되어져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피와 희생에 기초하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이 합의가 무너진다면 공부고 직장이고 다 소용없다라는 판단이 가능할 정도로 심각하다. 그야 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이다. 사실 전두환 노태우가 4483억의 추징금을 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대통령 직선제 이전의 한국 사회는 정상적인 시장질서가 있는 나라라고 할 수가 없었다. 왕이 그 나라에서 가장 부자이듯이 대통령이 모든 걸 소유하는 나라라고 할까.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이건희에게 삼성전자 헌납하라라고 요구해서 삼성전자를 대통령 일가가 집어삼키거나 SBS보고 당장 문닫으라고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그런 나라였다.


이런 나라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뭘하고 저축하고 승진하면 뭘하겠는가. 사실 이런 나라는 필리핀같이 가난한 나라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필리핀의 지금 국민소득이 딱 1985년의 한국 국민소득이다. 한국이지금처럼 부자가 된 것도 다 87년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87년에 법이고 뭐고 공부고 뭐고 국민들이 전부 길로 나와서 데모에 나선 것이다. 특히 대학생들이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나서 합의에 이른 것이 바로 우리는 대통령을 직접 뽑으며 그것에 승복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많은 권한을 가지지만 정권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을 맘대로 휘두를 수 없을 것으로 믿어졌다.  뽑힌 대통령이 마음에 안들어도 대선불복을 한다는 것은 87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이었다. 바로 이것이 노태우에서 시작해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시기를 사람들이 수긍하고 견딘 이유였다. 


87년 이후 가장 인상깊었던 국민궐기는 바로 노무현 정권 때의 탄핵정국속에서 일어난 촛불집회였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고 집무정지를 시킨 사유는 아주 미미하다. 이정도면 국정원을 동원해서 선거지원한 이명박은 구속시키고 박근혜는 예전에 탄핵되어 없어졌어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탄핵 정국속의 촛불집회가 그렇게 대단했다. 만약 그때 노무현이 진짜로 탄핵되었더라면 그것은 한나라당의 대선불복과 다른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기본적 합의의 붕괴로 헌정은 중단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도 법질서를 존중하지 않고 다시 반정부투쟁에 나서는 사회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나라에서 열심히 살면 뭐하겠는가. 그런 노력은 권력자에게 하는 아부의 몇마디 말보다 못할텐데. 다시 합의가 복원되지 못한다면 한국은 서서히 국민소득 2천5백불의 나라로 변할 터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은 탄핵될 수 없었고 탄핵정국후 후폭풍속에서 국회 과반을 넘기는 여당이 탄생되게 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명박은 너무나도 형편없는 대통령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기를 버티며 살게 한 것은 바로 선거로 뽑힌 대통령의 직위가 가지는 권위때문이었다. 대선에 불복할 거냐는 주문때문에 국민적 저항에는 어떤 제한선이 있었다. 결과가 형편없었어도 대선에서 당선된 당선인의 정책은 명분을 가진다는 주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 최순실 박근혜사태가 중요한 것은 이 대권의 권위가 아주 심각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질서를 지키는 근원이 되는 것이 대통령의 권위인데 그 권위가 실종되었다. 최순실의 딸이 니들도 부모 잘만나지 그랬냐고 떠드는 모습은 우리가 이미 전두환 시대로 돌아가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흘러가건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세금을 올린다던가 사드를 추진한다던가 어떤 외교적 협약을 맺는 것에 누가 동의하겠는가. 사교집단에 홀리고 자기 연설문도 스스로 못쓰며 나아가 기자들에게 질문도 못받는 사람이 내린 판단에 누가 동의할 것인가. 게다가 이미 박근혜 정권에서 해놓은 여러가지 일에 대해서 이것은 과연 최순실이 결정한 것이 아니냐는 항의가 나올 것이다. 개성공단폐쇄나 세월호때 반응이 늦었던 것이 다 이것이 아니냐는 주장은 그 예들에 불과하다. 혹시 사드도 최순실이 결정한 것이 아닐까? 한진해운사태는 어떤가. 대통령의 정상적 업무진행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또 다른 중요한 질문은 대선의 권위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도 엄청난 의미를 가진 것이 대권인데 어떻게 박근혜가 뽑힐 수 있었냐는 질문에 빠진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겠지만 나는 두가지가 떠오른다. 국정원 선거개입과 토론회없는 대선이다. 공산국가인 중국이 한국의 최고 교역국인 시대에 빨갱이 잡기는 계속되고 박근혜는 이렇다할 토론회도 몇번 가지지 않고 순전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만으로 당선되었다. 지금 뽑힌 대통령도 문제지만 다음 뽑힌 대통령은 어떨 것인가. 새누리당은 물론 지난번 대선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말은 앞으로도 우리는 박근혜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대선을 계속 치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현재의 상황이 청와대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그저 사소한 일로 여겨지고 넘어가게 된다면 그건 그럴 것이다. 어떤 불공정이 행해져도 어떤 말도 안되는 후보의 흠이 등장해도 우리는 그것으로 대선후보를 자격상실 시킬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이래도 대선의 결과에 수긍해야 할까? 이래도 87년 합의는 유효한 것으로 믿고 살 수 있을 것인가? 이미 87년의 합의는 무효가 되어버린거 아닐까? 박근혜도 대통령인가?


나는 현재의 상황이 여권과 야권의 대립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보다는 전근대와 현대의 대립이다. 현대사회는 정밀기계와도 같아서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어느 이상을 넘어가면 망가진다. 세월호때 정부가 무능했던 것이 그것을 보여주지만 땅콩회항의 사태나 최순실이 이화여대를 망치는 일도 그것을 보여준다. 과연 현대한국이 이 이상 전근대적 사고방식으로 훼손될 때 부자들은 계속 부자일 수 있을 까? 삼성전자나 현대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만들어 낸 재정적자는 200조를 가볍게 넘는다. 그 피해액이 상상이 안된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해도 정말 우리 사회의 부자들이 계속 부자로 있을 수 있으며 부동산 가격 지킬 수 있을까? 


87년 합의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된 현재는 한국에게 있어서는 역사적 순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적어도 두가지를 다시 명백히 해야 한다. 하나는 대선의 권위를 다시 되돌리는 것이다. 이런 엉터리 대통령은 용납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다음 대선부터는 대통령을 보다 수긍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서 뽑히게 해야 한다. 또하나는 전근대와 작별하고 현대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스템에 따라서 합의하고 처리하는 것을 부정하고 절차와 법이 사람에 따라 멋대로 흔들리는 것을 용납하면 모두가 불행할 뿐만 아니라 모두가 가난해 진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중요하다. 당장 이번주말의 서울 집회나 시민들 반응을 보고 경찰이며 검찰이며 사법부며 재벌의 상황판단이 결정될 것이다. 이 시민들이라는 사람들이 이정도 대우 해주면 다독여서 지배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인지 아니면 반칙한 것을 인정하고 새시대를 받아들일 것인지 여러 사람들이 여러 방식으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우리는 갈림길에 선다. 이번에는 정말 결정적이고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다. 새 시대로 가는가 아니면 전근대에 발목잡혀서 영영 무시당하고 못사는 나라로 남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갈림길이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최순실-박근혜 사태는 중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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