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족은 이번 토요일에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가서 촛불집회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은 당연히 현정부에서 터져나오는 부패에 대한 보도들을 보며 화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울집회에서 하나의 촛불이라도 더 켜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조용히 가서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하나의 촛불이라도 더 켜고, 한 번의 외침이라도 더 더하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런 결정이 단순히 이제와 화가 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미에서 이명박이 당선된 이후 언제나 화가 나있었다고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어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지만 저는 이명박이 당선될 때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설마 한국 사람들이 저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지는 않겠지 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명박이 한국을 망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패가 창궐하고 엄청난 양의 돈들이 낭비되며 언론은 권력지향적이 되었고 선거의 투명성은 한없이 위협받았습니다. 노벨상을 받았던 김대중이나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노무현 정부때와는 달리 선진국은 한국을 내내 무시했습니다. 4대강 공사같이 실익은 없이 나라를 망칠 공사는 결국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새 몇십억이나 몇백억이 아니라 몇천억 몇조 나아가 몇십조가 낭비되었다는 말을 듣는데 익숙해 졌습니다. 도무지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 였습니다.
그래도 이명박시기를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사람들이 이런 이명박 시대를 지내고 나면 어떤 정부가 나쁜 정부인지 제대로 체험한 것이니 민주정부가 들어 설 것이라는 기대하나였습니다. 그냥 5년만 참고 기다리면 이것보다는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미국 국민들도 벌써 다음 대선 날자를 카운트다운 하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다음 정권이 되면 이명박 정권은 사법처리될 것이라고도 믿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번 대통령은 박근혜가 되더군요. 이제 저는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보다는 이따금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개인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변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개인과 일상생활 수준에서이지 어떤 정책이나 선거 차원의 일이 아니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그런 모든 이야기가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사람이 대통령된다고 당장 천국이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리 노무현이 답답했다고 한들 한국에서 이명박에 박근혜를 뽑은 다음에 왜 경제가 어렵나, 왜 살기가 어렵나를 질문한다는 것은 엄동설한에 문열어 놓고 왜 춥냐고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명박을 겪고 이명박이 뭘 잘못했냐고 묻는 국민이 한국의 다수를 계속 차지한다면 한국은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정치가가 좋은가를 논하기 전에 좋고 나쁜 것에 대한 기준자체가 한국에서 망가진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현실에 화가 나서 언제나 약간은 화가 나 있는 상태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트럼프가 당선되는 것에도 엄청난 충격을 받지 않았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한 뉴스가 터져나올 때도 엄청나게 분노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저로서도 터져나오는 뉴스들이 언제나 상상이상이구나 하는 놀라움은 있었지만 말입니다.
저는 지금의 한국의 현실에서 오히려 희망을 느낍니다. 어두운 밤인 것은 지금 이 순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명박 당선 이래 쭉 그랬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가장 어둡죠. 그러나 그 어둠이 너무 깊어서 이제 새벽이 오려나 보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긋지긋한 봉건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이제 한국에서 끝나려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직업이나 가진 것에 상관없이 평등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책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닌 시대가 이제는 오려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권력이나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대통령이나 회장님에게는 굽신거려야 하고 그들은 뒤에서 쑥덕거리며 최순실같은 무능한 여자가 인사나 국방, 올림픽같은 국가적 행사도 주무르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말입니다.
리더나 영웅의 가치를 지나치게 신격화하는 나라에서 일반인은 고통받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그런 관점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죠. 모든 것은 박정희같은 대통령이 하셨다는 관점에서 왜 일반인들이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하겠습니까. 그런 관점에서는 그것은 오직 리더나 영웅의 자비의 결과일 뿐입니다. 일반인들은 구걸하는 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자연스런 파이의 분배는 지배권력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들이 굴리기에 이 사회는 이미 너무 복잡해서 그런 리더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며 오직 나라나 회사를 망칠 때에나 큰 힘을 발휘하는 데 말입니다. 예를 들어 한류가 일어나서 문화수출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역시 선견지명있는 어떤 정치가나 기업인의 힘이라고 이해하면 그 결과물은 대부분 그 사람들의 몫으로 분배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박근혜의 자비가 있어야 잘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최순실의 자비가 있어야 잘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정을 저지르는 최순실의 딸에게 니들도 부모 잘 만나지 그랬냐는 모욕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노비가 아니니까요.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걸 깨닫는 순간, 그래서 갑질이나 부패나 담합이 줄어드는 순간이 저에게는 새벽입니다. 세상이 조금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돌아가는 시대입니다. 대통령이 반권위주의적이었던 시대는 이미 노무현 정부때 왔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언론들이 반권력적이었습니까. 그 때는 공직자 임명에서 베란다 불법증축까지 거론되었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1조니 10조니 하는 사업이 실패해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역시 대통령은 전두환처럼 거만해야 제 맛이라고 느꼈던 것같습니다.
저희 가족은 촛불집회에 갑니다. 살다가 이런 날은 여러번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위기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그 위기에서 벗어나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가지게 되는 때는 그리 여러번 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두고 두고 기록될 역사적인 시기를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역사에서 최순실 박근혜 사건이 미국역사에서 말하는 보스턴 티파티사건이 될지도 모르죠. 물론 어떤 것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또 한번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역사가 펼쳐지건 그때 그 순간에 최소한의 참여는 해야했었다고 후회하는 일이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잠시 민주주의 학습 여행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여러가지 다른 상황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촛불집회에 나오지 않는 분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형편이 된다면, 이런 날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시고 동참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만한 가치는 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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