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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아파트와 공사론의 역습

by 격암(강국진) 2016. 12. 19.

16.12.19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죠. 그래서 아파트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한국의 주된 주거는 여전히 아파트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도 이미 여러가지로 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 답중에서 가장 중요한 답중의 하나는 바로 공공시설의 사적 구축론(공사론)입니다. 

 

공사론이란 이렇습니다. 한국은 70년대에만해도 북한보다도 못사는 정말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그 이후에 수출중심의 경제를 키우면서 돈이 들어왔지만 이렇게 들어온 돈은 한국 전체를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한 공공시설을 만드는데 쓰이지 않습니다. 즉 도로, 공원, 도서관, 국토의 균형발전같은 곳에 쓰이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단 돈이 들어오기는 오니까 부자들 중심으로 이제는 좀 잘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것과 아파트 단지라는 발상이 결합합니다. 

 

이것은 아파트 단지라는 제한된 공간에 돈을 투자해서 공공시설을 확충하고 깨끗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주거공간을 만든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국민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니까 당연히 그 아파트를 짓는 집주인들이 자기 돈을 들여서 공공시설을 확충하는 모양이 됩니다. 그런데 말했다시피 당시의 아파트 주변 환경은 매우 열악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아파트단지 내의 삶이 자랑할 만한 것이 되었고 이 때문에 아파트의 가격상승이 생겨납니다. 개인적으로 돈을 들여서 환경인프라를 만들면 수익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개발 기제는 매우 큰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공사론이 말하는 이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한국을 아파트 숲으로 채워온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개발을 한다라는 말은 낡은 저층 주택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아파트 단지를 만드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만 해도 사람들은 그런 동네에 가면 종종 습관처럼 '여기는 아직 개발이 안됐네'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사론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공사론의 전제를 다시 되돌아 보면 아파트는 시대착오적인 장소가 되어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사론의 전제는 바로 아파트 단지 바깥은 공공 시설이 열악하여 주거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며 공공의 세금이 아파트 바깥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바깥쪽의 주거환경은 계속 열악하며 정부도 아파트 짓는데만 도움을 준다는 것이죠. 아파트 단지의 삶이 눈부셔 보이게 되는 것은 아파트 단지 바깥의 환경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의 가격이 올라가고 아파트의 가격이 올라가니까 건축주의 불만이 생기지 않는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집을 짓고 싶으면 공공시설 짓는 돈까지 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내가 그걸 왜 개인 돈으로 지어야 하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공사론의 전제를 둘러싼 환경은 이미 상당히 바뀌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지자체의 활동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만 한국의 정부는 대기업에게 좋은 것이 한국인들에게 좋은 것이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왔습니다. 너무 모든 것을 거시적으로만 보는 그들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마치 공장과 공장인부용 집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보였던 것같습니다. 문화나 인간의 감정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무시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작은 단위에서 지자체장이 선거로 당선되고 활동하게 되자 당연한 상식이 현실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당연한 상식이란 첫째로 그 지역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주거환경의 전반적 개선에 돈을 쓰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파트란 결국 흉물이라는 것입니다. 아파트는 그 지역 전체가 살기 좋은 곳이 될 때는 평가 받을 수 없는 주거형태입니다. 마치 숲에 캠핑카 끌고 가면 캠핑카가 매우 좋은 주거이지만 모두 도시에서 캠핑카에 살고 있지 않듯이 그 지역의 주거 환경이 어느 이상으로 올라가면 아파트는 비싼 흉물이 되고 맙니다. 아파트는 진정한 고향이 되는데 한계가 있고 사람들을 붙잡아 두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약간 돌려서 제가 사는 전주를 한번 봅시다. 지인들이 오면 저는 한옥마을에 갈 때가 많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은 여러가지 비판이 있으며 이제는 주거의 장소라기 보다는 관관테마 파크처럼 변해버린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비판이 있다고 해도 전주가 십여년전에 하천을 정비하여 오염을 제거하고 한옥마을을 보존하기로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전주 한옥마을은 전국 최고의 관광명소중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일 뿐만 아니라 전주의 상징으로 전국에 전주란 이런 곳이다라는 얼굴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도 런닝맨같은 것을 한옥마을에서 찍기도 했었죠. 그런 방송을 통해 사람들은 전주에 대해 듣고 보게 됩니다. 당연히 한옥마을은 전주 음식점들을 먹여 살리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이 아니었다면, 그곳의 집들을 싹 밀어버리고 공장이나 아파트 단지를 지었다면 전주는 훨씬 더 쓸쓸한 도시, 어쩌면 죽어가는 도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한옥마을이 인기있는 관광지가 된 것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옛날 처럼 청와대에서 우리나라 수출양이나 아파트 가격따위만 보고 있었더라면 그런 거대 경제 수치속에서 지방색을 가진 문화의 의미는 잊혀지기 참 쉬웠을 것이며 그저 공장이나 회사의 위치 그리고 그 공장이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올려놓을 아파트 가격이나 따지기 쉬웠을 것입니다. 

 

지자체들은 다른 지자체들과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경쟁이 단순히 싸구려 노동력팔기식이 되면 전망이 좋지 못합니다. 그건 마치 집안재산 내다 팔아서 하루 하루 먹고 사는 식이 되고 맙니다. 그러다 더이상 팔게 없어지면 망하는 것이죠. 지역의 공공 자산을 재벌에게 헐값에 넘기고 아파트를 짓게 하거나 공장을 짓게 하는 식으로 경제를 돌리면 당장은 돈이 들어오고 경제가 사는 듯 보이지만 그 지역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집니다. 그 지역을 사랑하게 만들 정체성은 없어지고 오염된 강철과 콘크리트의 숲만 남으니까요. 바로 한옥마을장소에 아파트 짓고 공장짓는 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자체들은 자기 고향을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요즘에는 전국을 차를 타고 돌아다녀보면 20년 30년전과는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시골은 정말 지저분하고 길도 제대로 안되어 있고 하천도 엉망인 곳이 많았습니다. 청결상태가 엉망인 슈퍼에서 유효기간 지난 빵을 팔고는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편의 시설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깨끗해졌습니다. 각자 자기 지역을 홍보하기에 열심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지자체에서 아파트 단지 이외의 장소에 세금을 쓴다는 말입니다. 전주천같은 하천을 깨끗하게 해놓으면 그건 특정 아파트 단지 사람만 쓰라는 것이 아닙니다. 전주는 전국에서 인구당 도서관의 수가 1등이라고 하더군요. 이것도 아파트 주민만 쓰라고 있는 시설이 아닙니다. 

 

지자체에게 아파트단지란 기묘한 마약과 같습니다. 먹으면 즉각적으로 힘이 마구 생깁니다. 그런데 사실 그 지역은 왠지 모르게 망가집니다.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걸 생각해 보십시요. 본인은 전주나 군산에 가서 혹은 부산이나 서울에 가서 아파트를 구경하고 싶습니까? 

 

최근에 티비 드라마 보면서 아파트가 얼마나 나오는지 주목해 보십시요. 아파트만 가득한 나라인데 드라마에는 아파트가 거의 안나옵니다. 그 이유는 아파트는 거기 사는 사람간의 다양한 교류를 막으며 다양성이 부족하여 볼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드라마는 부자는 부자라서 단독에 살거나 부자 저층 빌라에 사는 것으로 나오고 가난뱅이는 가난해서 옥탑이나 낡은 집에 사는 것으로 나옵니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주로 아파트에 사는데 20평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드라마에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건 보기나름에 따라서 우리의 현실이 아주 끔찍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중의 하나입니다. 낭만이 없는 현실이라는 거지요. 

 

이걸 단순히 관광산업을 위해서는 아파트가 약점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아파트는 원래 주변 생활환경이 열악할 때 만들어 지는 착시만 없어지고 나면 캠핑카나 컨테이너 집처럼 열악한 주거입니다. 그래서 어떤 지역을 그런 걸로 채워버리면 그 지역은 산업폐기물을 마구 산에 버린 곳처럼 미래가 소멸됩니다. 백년된 한옥은 문화재가 되지만 백년된 아파트는 흉한 쓰레기일 뿐입니다. 거기에는 문화가 없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치가 더해지는 것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가 편하다고 말합니다. 저층빌라나 단독주택이 주인을 여러가지로 귀찮게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마치 저금과 같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쌓여서 하나의 마을은 세월과 더불어 가치가 오히려 높아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런 노력이 원천봉쇄되는 고층 아파트는 낡으면 거대한 쓰레기가 되고 마는 것이죠. 아파트도 노후했을 때를 대비해 돈을 모아놓을 수 있지만 제가 알고 있기로는 아파트들 중에 현실적인 금액을 모으는 곳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낡은 아파트는 그 지역사회의 과제로남고 맙니다. 결국 오늘 할 일을 안하고 문제를 미래로 미뤄서 편해지는 폭탄돌리기가 아파트인 것입니다. 서울의 아파트가 전부 은마아파트가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때문에 그 지역의 미래를 진짜로 고민하게 되면 답은 자명해 집니다. 당장 자금이 부족하니 마약 딱 한번만 더 먹자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그렇게 벌어 들인 돈은 아파트 단지 바깥 쪽에다 써서 지역 전체의 주거 환경을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때문일 것입니다. 요즘은 협소주택을 짓거나 낡은 집을 리모델링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보다 훨씬 자주 들립니다. 이것은 이미 아파트 단지 안이 아니라도 사람이 살만하게 살 수 있는 환경들이 만들어졌다는 신호이며 이 추세가 본격화하면 아파트는 결국 도시안에 가져다 놓은 캠핑카같은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 질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캠핑카도 필요하지요. 문제는 가격입니다. 공사론은 아파트의 가격은 엄격히 말해 건물가격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앞으로 단지 바깥의 환경이 개선될 수록 굳이 아파트단지를 만들면서 개인들이 자기 돈으로 공공시설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론이 일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런 변화와 더불어 우리는 더더욱 폐쇄적으로 변해가는 아파트 단지도 목격하고 있습니다. 즉 외부의 주거 환경이 괜찮아지니까 더더욱 초호화판의 시설을 내부에 만드는 것입니다. 외부 사람들이 이걸 쓰게 만들면 논리적으로 개인돈을 들여서 지역에 자선사업하는 일이 되므로 요즘 아파트 단지들은 종종 더 높게 벽을 세웁니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것이죠. 

 

그러나 과연 이런 폭주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요? 이런 폭주가 현실성이 있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뭐하러 섞여 살겠습니까. 그냥 0.01% 부자들만 나라세워서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살지. 이런 류의 아파트로 초기에 나와서 유명했던 타워팰리스도 옛 명성을 잃었습니다. 몇십억씩 하는 아파트가 10년만에 가격이 반토막이 나면 월세를 천만원씩 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위험부담을 그렇게 좋지도 않은 주거에 왜 투자합니까? 음식배달도 택배받는 것도 어려우며 관리비가 엄청나게 나오는데. 요즘 자주 나오는 아파트 통행에 대한 분란은 뒤집어 말하면 아파트의 경쟁력이 떨어져가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주거문화는 갑자기 바뀌지 않습니다. 있는 집이 갑자기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람은 어떤 것에 익숙해 지면 자기 합리화를 많이 하기 때문이지요. 일단 특정 주거에 코가 꿰이면 탈출이 어렵습니다. 지금도 아이들 교육때문에, 직장 문제때문에, 들어간 투자비가 아까워서, 아니면 그저 익숙해서 현재의 주거를 탈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5년이나 10년만에 주거변화가 크게 바뀐다고 해도 그렇게 천천히 날아오는 칼날을 피하지 못할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에서 부동산 거품이 꺼질 때 그 집을 그냥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다 엄청난 바보겠지요. 어쨌건 지금 이순간에도 공사론의 역습은 우리를 향해 다가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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