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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눈에 보이는 가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by 격암(강국진) 2016. 12. 22.

16.12.22

때로 우리는 어떤 것이 우리의 삶에 너무 가깝거나 혹은 너무 복잡해서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를 알지 못할 때가 있다. 국가라던가 가족같은 것이 좋은 예이겠지만 또 다른 좋은 예에는 집도 포함될 것이다. 가치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여러가지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 보려면 이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 

 

내가 종종 집과 비교하곤 하는 물건은 자동차다. 자동차는 집에 비하면 통상 더 싸고 더 작은 물건이라 우리가 집에 대해서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 한가지 이유인데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자동차마저도 너무 피상적인 것이 되었다면 본인이 직접 보다 더 작고 간단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신발이라던가 핸드폰이라던가 양복이라던가 말이다. 

 

그러니 자동차에서 시작해 보자. 나는 어떤 차를 왜 좋아하는가. 자동차는 나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느끼는 가치의 상당부분은, 때로는 실질적으로 거의 전부가 우리의 기대감이나 상상력에서 나온다. 그 때문에 비록 보이지 않는 가치는 그대로 있을지라도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상상하지도 않을 때 그것의 보이는 가치는 상당부분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미 고정되어 우리 주변에 있는 것에 대해 점차로 인식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안다. 우리는 산소가 매우 가치 있는 물건이며 그것없이는 즉각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대개의 경우 산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며 산소를 매우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산소란 대개 그 용도가 숨쉬는데 필요한 물질이고 공기중에 포함되어 있어서 우리가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으로 인식되고 만다. 당신이 화학자나 잠수사나 용접공이 아니라면 말이다. 

 

당신은 아마도 대개의 경우 당신이 한국인이라고 기쁘다거나 슬프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그냥 주어져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나 시리아 난민에게 그리고 해방 이전의 조선사람들에게는 한국정도의 풍요와 안정을 가진 나라의 국민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큰 선물처럼 보일 테지만 우리는 그것을 매 순간 새삼 고마워하고 감사하며 살지는 않는다. 

 

생각해 보면 이런 예를 끝없이 찾을 수 있다. 부모나 형제가 그렇고 정수기나 아스피린같은 기계나 약이 그렇다. 그것없이는 우리가 큰 문제를 겪을 수 있고 그것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엄청난 것으로 여겨졌지만 어느새 우리는 일상에서 그것들에 대해 별로 고마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그냥 당연한 듯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험은 세상일에 대한 가치를 크게 바꾼다. 어떤 이성과 처음 데이트를 한다던가 어떤 음식을 처음 먹어 볼 때 그것은 첫 경험이므로 우리는 큰 기대감과 불확실성을 가지고 그걸 하게 된다. 따라서 그것은 매우 좋은 것으로 가치있는 것으로 느껴지거나 혹은 엄청나게 싫은 것이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걸 일단 경험하고 나면 이제 그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아무래도 처음과는 같을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해서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느끼는 가치는 실질적으로 거의 전부가 우리의 기대감이나 상상력에서 나오게 된다. 매일같이 당연하게 반복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가치를 실행하고 있는 것들은 우리는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상상력이나 열정이 죽으면 세상의 가치는 대부분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 한대의 자동차가 있다고 해보자. 내가 그것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린다거나 이건 멋진 물건이야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세차를 하고 수리를 하고 잘 관리하려고 하며 그것에 대해 공부도 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 물건이 아직도 나에게 많은 기쁨을 주는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일단 자동차는 설사 내가 그것을 타고 어딘가로 실제로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스포츠카는 굉장한 속력으로 달려나가는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고 SUV는 이런 저런 캠핑 도구를 싣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만든다. 자동차의 멋진 오디오는 그 안에 앉아서 최고의 음악을 듣는 나를 상상하게 하고 편안한 자리는 거기서 책을 읽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심지어 차를 마시고 연인과 대화를 나누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설사 일이 바쁘거나 여행비걱정이 드는 당신이 당분간 여행을 떠날 수 없다거나 차를 태워줄 연인 따위가 생겨날 가능성이 거의 없어도 그런 상상은 우리에게 만족감을 들게 하고 우리가 차를 사랑하게 만든다. 사실 그런 상상이 뭔가의 이유로 실현되지 않았을 수록 우리의 상상력과 기대감은 커진다. 그래서 뭐든지 너무 쉽고 빨리 경험해 버린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열 명의 여자와 연애해본 남자가 반드시 첫 사랑을 뒤늦게 경험한 남자보다 사랑의 감정을 더 많이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왜 사랑하는지, 왜 관심을 가지는 지를 이해하게 되었으므로 이제 이제 좀 더 복잡한 집으로 돌아와 보자. 도대체 집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좀 더 크고 복잡하며 잘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우리가 자동차에 대해서는 이해했던 것을 잊기가 쉽다. 만약 양말같은 간단한 것이라면 매일 다른 것을 신어 볼 수 있고 그때문에 생기는 나의 감정변화를 기억하고 평가하게 되지만 집이나 가족이나 국적같은 것을 양말 신듯이 마구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때문에 우리는 마치 산소에 대해 점차로 잊어가듯이 그런 것에 대해 잊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원래 이러저러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잊혀진다고 해도 우리가 산소를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듯이 우리가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른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어느 새 어떤 강력한 선입견에 빠져서 그건 이러저러한 것이다라고 단정짓고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상상력과 기대감을 발휘하지 않게 된다. 이 걸 자동차에 대해 말하자면 차란 결국 이동수단일 뿐이며 나는 이제와 딱히 출퇴근처럼 꼭해야 하는 이동말고는 어디 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차라도 그 사람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에서는 집에 대한 상상력이 거의 고갈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것은 한국에서 가장 비싼 물건인 집이 분명 매우 가치가 있는 물건인 것같은데 내가 말하는 문맥으로 보면 거의 가치가 없는 물건이며 집이 사람이 주거하는 공간을 의미한다는 우리의 상식과도 다른 물건이 되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집은 종종 세가지의 의미밖에는 가지지 않는다. 하나는 복권이다. 작은 원룸이라도 하나 산 사람은 그 원룸이 자기를 부자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 어떤 사람은 있는대로 빚을 내서 작은 아파트를 여러채 사놓고 복권당첨을 기다리기도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집을 사면 그 집값이 오르는지 내리는지에 몰두한다. 이것에 잘못은 없다. 다만 이러면 집이란 복권과 다를게 없다. 

 

두번째 의미는 부부생활의 장소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섹스의 장소다. 한국에 모텔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한국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적고 섹스가 은밀한 행위를 넘어 터부시 되는 행위로 여겨지므로 모텔같은 곳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즉 자기 집에서 섹스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대개는 집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자면 집이 있어야 하는데 집값이 너무 엄청나다. 결국 러브호텔만 성업을 이루고 젊은이들은 이런 현실을 이따금 비참하게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세번째 의미는 육아의 장소다. 일정 나이 이상의 사람들에게 집은 이제 한국에서 거의 의미를 상실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는 다르다. 집이란 그들에게 온 세상과 같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작고 불편한 집에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말이다. 집은 아이에게 아주 소중한 장소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능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 거기서 아이는 살기 어렵고 이는 그 부모에게도 어려움을 주게 된다. 

 

이 의미들을 하나 하나 읽어보면 물론 투자도 섹스도 육아도 삶의 일부이지만 한 개인으로서 산다라는 의미에서의 삶이란 주거의 의미에 거의 포함되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당신이 투자도 섹스도 육아도 하지 않아도 여전히 거기에는 많은 삶이 남아 있는데 그것이 요즘 집의 의미에서 망각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 집은 과거에 비하면 그 기능을 굉장히 많이 상실했다. 조선시대 양반이 살던 큰 한옥들은 일종의 공동체 주거 같은 곳이었다. 집은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생산의 장소였고 교육의 장소였으며 오락의 장소였다. 그것은 하나의 작은 도시같은 곳이었다. 출근하지 않고 집에만 있다고 해서 논다는 뜻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신은 이제 집이 거의 의미가 없는 청소년에서 나이든 중년의 사람들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들에게 집이란 잠을 자는 곳이며 뭔가를 먹기도 하는 곳이고 티비를 보기도 하는 곳이지만 심지어 전업주부로 집안일을 많이 하는 장소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마치 우리가 산소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 것같은 상태에 있다. 이런 경우라면 집은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집은 더 이상 아무 기대감을 주지 못한다. 심지어 전업주부도 자기 집에 대해 아무런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직장이었다면 달랐을텐데 말이다. 

 

여기서 부터 우리는 집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고 혹은 집처럼 어느 새 소중한 것이지만 잊혀져버린 어떤 다른 예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의 의미도 혹은 또 다른 예들의 나열도 글 하나에서 모두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두가지를 기억하자라고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촉구하면서 이 글을 정리하고 싶다. 

 

첫째로 사물의 가치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상상력과 활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시시한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어느새 식어버린 것이다. 자동차든 집이든 그것은 우리가 거기에다가 무슨 상상력을 더하는가에 따라 다른 물건이 된다. 우리가 오랜동안 알아온 친구나 가족도 그렇다. 예술가나 인문학자는 물론 과학자도 세상 이것저것의 새로운 의미를 밝히려고 애써왔다. 

 

마을 앞 나무에 대해 시인이 시를 쓰면 그 나무는 이제 특별한 나무가 된다. 얼마전에 본 다큐에서는 담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작은 화단을 조성하여 동네에 공동텃밭으로 내놓은 일이 나왔다. 그러면 같은 공간이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역사를 알게 되면 똑같은 산과 강도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고 같은 밤하늘도 과학을 알고 보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모든 것이 그러하겠으나 나는 특히 집에 대해서 한국인이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해 주었으면 한다. 그럴 때 그것은 덜 비싸면서 우리를 더 많이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물건이 되지 않을까. 지금으로서는 집이란 인간이 착취당하고 속박당하는 수단만 되고 있는 것같다. 

 

둘째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보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가치가 있는데 우리는 어느새 너무나 많은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소유하고 살고 있다. 이것은 팔이나 다리나 눈을 잃어버리면 엄청나게 고생하지만 우리가 평상시에 팔다리나 눈에 감사하며 살지 않는 것과 같다. 건강이란 있을 때 지켜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우리가 뭘 가지고 있는 건지 생각하면서 그것들의 가치를 잊지 않으려고 해야 할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있는 그것들중의 하나가 우리의 게으름때문에 유실되는 일이 생기면 우리는 그 한가지 없이는 우리의 삶 전체가 없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마움을 너무 늦게 느끼는 일은 물론 슬프고 아까운 일이다. 하나를 더 소유하려고 하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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