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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도시의 미래, 낡은 것의 미래

by 격암(강국진) 2016. 3. 21.

2016.3.21

반세기 전이나 한세기 전의 사람들이 미래를 상상할 때면 그들은 머리는 괴물처럼 크고 몸은 아주 빈약한 사람을 상상하기 쉬웠다. 그들이 느끼기에 가면 갈수록 사람들이 머리는 많이 쓰는데 몸은 쓸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변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과거의 중국에서는 손톱이 길고 뚱뚱한 사람이 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귀족이 푸른 피를 가졌다고 말해졌는데 그것도 노동을 하지 않는 귀족들이 창백한 피부를 가져서 핏줄이 그렇게 보였던 것에서 기인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다 근육질의 몸이 노동의 결과였던 시대의 이야기다. 

 

그러나 요즘보면 키도 크고 몸도 근육질인 사람이 많다. 과거의 연예인들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현대인들이 더 몸이 좋은 것같다. 이것은 사람들이 돈을 들여서 체육관에 다니고 단백질 음식을 먹어서 근육을 키우기 때문이다. 인간의 근육이 심한 노동일을 장시간하거나 밀림같은 데서 죽도록 노력해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고 적절한 식이요법과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른 무엇보다 배우들의 변신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불과 몇달만에 뚱뚱한 몸에서 전사의 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의 미래상상이란 현실과는 오히려 반대가 되기 쉽다. 우리는 금속성 기계가 집을 전부 뒤덮은 그런 것이 미래의 집이라고 상상한다. 거리에 수없이 많은 기계가 돌아다니는 곳이 미래의 마을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빈민들에게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좀 생활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사는 미래의 집과 마을은 완전히 그 반대가 되기 쉬울 것이다. 

 

기술이란 발달하면 숨길 수가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만 해도 예전의 피씨에 비하면 훨씬 덜 기계같은 기계다. 그것은 훨씬 작은 부피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끈한 표면을 가지고 있으며 물건을 옮기듯 터치를 통해 조작된다.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면 우리는 다시 우리가 익숙한 가죽이나 나무 혹은 실크 느낌의 재질로 우리 주변을 채우게 될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면 할 수록 기계의 소음이나 자동차의 매연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더 많이 걷고 뛰고 직접 몸으로 물건들을 나를 것이다. 직접 음식을 만들고 집안의 가구도 직접 만들어 쓸 것이다. 오늘날에도 마치 원시인처럼 장작불이 타오르는 집에서 사는 사람이 실은 종종 더 부자다. 낡은 기술과 현대의 기술이 조합되어 표면적으로는 과거의 방식을 따르는 것같은데 내부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일들이 점점 더 늘어 나는 것이다. 

 

우리가 집앞의 텃밭에 씨를 뿌리고 야채를 키운다고 해도 그 밭에 물을 주는 것에서 어떤 비료를 주는가 그리고 그 씨는 어떻게 개량된 것인가 하는 것에는 현대적인 기술이 숨어 있다. 그런데도 표면적으로 보면 농사짓는 사람들은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같아 보일 것이고 어쩌면 사람들은 진짜로 수백년전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다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론 진짜 과거는 현재와 매우 다르다. 과거의 사람들은 병충해나 가뭄을 걱정해야 했고 필요한 물건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바로 받아 볼 수 있지도 않았다.  

 

먼 과거가 가까운 과거로 변할 때 그리고 그 가까운 과거가 다시 현대로 변할 때 그 변화의 방향이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다. 때로 우리는 낡은 것이 이제 정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면 기술이 더욱 더 발달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도시화했다. 그리고 지금도 중국같은 곳은 빠르게 도시화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국 온 세상이 도시화하는 것을 상상하게 되고 미래로 가는 길은 도시화를 진행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도시가 달라지고 있다. 요즘에는 도시 농업이라는 것이 인기가 있다. 여기저기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 도시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다. 도시농업은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지역마다 상황은 다르기는 하지만 반드시 고층빌딩을 높게 세우고 더 많은 자동차가 다니게 만드는 것이 미래로 가는 변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점점 더 많은 도시에서 자동차 없는 거리를 만들겠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 차없이 걸어다니는 도시가 미래도시라는 것이다. 

 

공장이 망하면 공장기숙사도 변하기 마련이다. 산업구조와 인구 연령분포의 변화는 도시의 변화를 만든다. 우리가 생각하는 잘 발달된 도시라는 것은 말하자면 거대한 기계와 같다. 그것은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고 많은 물건들을 외부로 부터 받아들이고 많은 쓰레기를 생산해서 바깥으로 내보낸다. 우리는 그런 도시의 발달만 봤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미래의 도시는 더욱 더 거대하고 더욱 더 복잡하기만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도시를 하나의 기계로 본다면 전통적인 도시는 구조변경을 잘 허락하지 않는 기계라는 것이 문제다. 특히 고층빌딩으로 이뤄진 곳은 더욱 그렇다. 세상이 변할 때 그 변화에 따라갈 수가 없다. 뉴욕의 지하철은 낡아서 매우 불쾌하다. 공기도 좋지 않고 물이 떨어지고 쥐가 돌아다닌다. 일단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나자 똑같은 빌딩을 세우는 것도 불가능했다. 기술이야 더 발달했지만 도시의 상황이 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지금있는 고층빌딩들도 그렇게 수지맞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존재하기에 변화할 수 없었을 뿐이다. 뉴욕같이 활력이 넘치는 부유한 대도시도 변화를 하는데에는 능력의 한계가 있다. 

 

더 거대화되는 것이 언제나 정답이었다면 인류역사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 거대제국들이 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로마제국이 거대화되었다가 언젠가는 무너지듯이 거대화 되는 도시의 변화 방향도 뒤집어 질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변화의 속력은 거대화가 끝날 때 더 빠르다. 거대화된 도시가 일단 인기가 없어지면 그 쇠락은 무척 빠를 수 있고 그 가치는 아주 형편없어 질 수도 있다. 한때 세계적인 도시였던 디트로이트는 지금 거저 줄테니 가져가라는 집으로 가득 차 있다. 근사한 단독주택이 1불이다. 커지기만 했던 도시를 유지할 유지비용이 없으니 치안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연비를 자랑하는 자동차 광고에 익숙하다. 도시를 하나의 기계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대도시가 과연 연비가 좋은 기계라고 할 수 있을까? 수도권에 사시지만 전주에 자주 들리시는 어머니는 여기서는 재래시장이며 공원같은데 가는데 어디나 반시간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러워 하신다. 수도권에서는 뭘 하던 나가겠다고 하면 큰 일이 되기 때문이다. 시간도 걸리고 돈도 더 든다. 

 

대도시의 삶에는 물론 장점도 있다. 그리고 그런 장점이 단점의 문제점을 상쇄해 왔다. 그러나 그 장점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반면 단점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자리의 창출은 도시의 큰 미덕이었다. 도시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누군가가 그것을 위해 일해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창출하게 된다. 농촌의 젊은이들은 바로 그때문에 도시로 갔다. 

 

그러나 점점 더 거리가 무의미해지고 일들이 자동화되는 시대에 도시만이 일자리 창출을 한다는 말은 계속 옳은 말일까? 소위 아웃소싱이 시작된지는 한참되었다. 미국 사람들은 인도에 사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전화상담을 한다. 미국 도시에서 소모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중국산 물건들이다. 얼마전에는 피자배달을 하는 자동운전차량이 호주에서 시범운행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났다. 도시가 더 많은 기능을 외부로 보내고 자동화되는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이란게 언제까지 도시의 장점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신발공장이 가난한 나라로 옮겨갔다는 사실은 확실히 인식하면서 도시는 계속 신발공장같은 모습으로 사람을 많이 쓸 수 있는 장소로 남아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게 정말 그럴까? 

 

도시의 삶은 점점 더 비싸지고 있다. 도시의 삶은 복잡하다. 우리는 그 복잡함을 견뎌야 하고 그것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돈을 내면 다르다. 땅값이 비싼 도시에서도 돈을 많이 내면 집앞에는 산책로가 펼쳐져있고 여러 복잡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자면 돈을 내야 하니까 도시의 삶은 더 비싸지는 것이다. 돈을 내지 않으면 삶의 질은 떨어진다. 그래서 대도시의 복잡함에 시달리는 것보다 생활비가 싸고 삶이 더 단순한, 보다 작은 도시의 삶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늘어가고 있다.

 

도시는 우리를 부유하게 해줬다. 이것은 도시가 성장한 큰 이유중의 하나다.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도시화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준다. 실제로 지난 1997년의 아이엠에프 사태때에는 집값이 떨어지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탈출했었다고 한다. 거대한 도시의 생활이란 말하자면 많이 투자해서 많이 벌겠다고 하는 것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사람들은 더 많이 벌겠다고 도시로 몰려들지만 경기가 일단 나빠지면 도시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 된다. 지금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겠다는 사람은 그만큼 집값이 더 올라서 이득이 될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빚을 내서라도 좋은 집에 살아보겠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도시로 가서 집을 한채 사면 그것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줄거라는 것이 많은 사람의 희망이었던 적이 있었고 지금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임대업을 꿈꾼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나아가 세계의 경제가 과연 지난 시대에서처럼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세계의 인구가 얼마나 되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미국 사람들이 흥청망청 쓰던 때처럼 소비를 할 수가 있겠는가? 환경적 한계가 성장의 한계를 만든다. 중국의 매연때문에 한국의 푸른 하늘이 흐릿해진것도 오래되었다. 일본까지만 가도 하늘이 훨씬 더 푸른데 말이다. 얼마가지 않으면 인간들이 바다에 버리는 프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바다에 물고기보다 프라스틱 쓰레기가 더 많아질거라고 한다. 우리가 보통 성장이라고 말하는 그것이 과연 계속 될 수가 있겠는가? 

 

성장을 멈추면 도시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쪼그라 들 것이다. 사람들은 빚을 내서 집을 샀다. 집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소득없이 집에 매몰되어 있어야 한다. 이걸 월세로 해결하려고 하면 도시의 삶은 더 괴로워 질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탈출할 것이며 따라서 결국에는 공실문제가 부동산 가격 폭락을 부를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두면 대출이자만 내야 하니 팔려고 할 수 밖에 없다. 어느쪽이든 도시는 삼킨 돈을 토해내야 한다. 일본의 동경은 이 집이 비쌌을 때 현금화했더라면 평생 일하지 않고 살아도 되었을거라고 말하는 일본인들로 가득차 있다. 

 

나는 지금으로서는 중소도시가 좋다. 오랜동안 발전에서 소외되어져 왔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소도시의 규모면 도시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요즘은 지자체에서 여러가지 투자도 하고 있다. 때문에 산책로가 개발되었다거나 새로 도서관이 열렸다거나 문화행사를 한다거나 하는 일도 많다. 

 

세상은 이미 많이 바뀌었다. 30년전만 해도 사실 농촌이나 지방은 불편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더러운 경우가 많았다. 길에는 쓰레기가 가득하고 집들을 초라하기만 하고 슈퍼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어서 가게에 가서 빵을 사보면 유효기간이 넘어간 것을 파는 일따위가 흔했다. 그러나 지금의 지방이나 농촌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이때문일 것이다. 강남의 건물들이 공실률이 너무 높아서 야단이라고 하고 한때의 부의 상징이었던 타워펠리스 아파트의 가격이 반토막이 났다는 뉴스를 들은지도 한참되었다. 서울의 인구도 해마다 줄고 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그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지만 결국 그 추세가 점차 커지고 멀리까지 가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과연 10년후 20년후의 세상은 어떤 곳일까? 

 

세상은 너무 복잡해졌다. 입시도 복잡하고 주거도 복잡하고 경제도 복잡하다. 우리는 이제 단순함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기술적 발전은 지금도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마치 낡은 것이 미래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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