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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한국사람들이 잃어버린 것, 대청마루

by 격암(강국진) 2015. 7. 5.

15.7.5

우리집의 2층 옥탑에는 서쪽으로 난 작은 베란다가 있다. 길이 방향으로는 8미터쯤되지만 폭으로는 2미터정도밖에 되지 않는 공간이다. 그래도 옥상인지라 바람이 잘 통하고 나름 동네를 조망하는 맛이 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집주변에 아직 집을 짓는 곳이 있어서 완전히 조용하지는 않지만 가전제품과 이웃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컴퓨터나 냉장고, 변압기같은 것들이 내는 고주파수의 소음은 계속 듣고 있으면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정말로 없는 곳에 가보면 그 소음들이 알게모르게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옥탑 베란다에 부분적으로 나무타일을 깔고 평상을 하나 놓아 두었다. 평상을 처음 가져다 놓을때만 해도 나는 기대가 컸다. 여름이 되면 거기에 모기장을 펴고 캠핑하듯 잠도 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집에서 가장 근사한 곳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정작 살아보니 최근까지는 그 베란다가 우리 집에서 가장 활용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서쪽 베란다였기 때문에 오후부터는 해를 보게 되는 공간이었지만 오전에는 괜찮을 것같았는데도 그곳에 나가보면 왠지 정을 붙이게 되질 않았다. 일부러 2층까지 올라갈만큼의 매력은 없었기 때문에 점점 잊혀져 가는 공간이었다. 어느 새 아무도 거길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부부는 길건너편에 대각선 방향으로 있는 이웃집에서 옥탑 베란다에 차양막을 친 것을 발견했다. 이거다 싶었다. 우리는 서둘러 차양막을 주문해서 그걸 옥탑베란다에 설치했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그늘이었다. 실외공간에서 우리는 그늘이 필요하다. 그것도 깊은 그늘이 있어야 시원할뿐만 아니라 어느정도 안정감이 든다. 서쪽 베란다는 서향이었기 때문에 아침에는 분명 차양막이 없어도 건물이 만들어 내는 그늘이 들었지만 그늘이 깊질 못했다. 다시말해 여전히 양지에 너무 가까운 그늘이어서 반사된 빛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충분히 시원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질 않았던 것이다.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되면 말할 것도 없다.

 

차양막을 사다가 지붕에 이어붙이는 식으로 해서 그늘을 늘렸다. 그러니까 옥탑 베란다의 모습은 지붕처마밑에 놓은 평상이 되었다. 그 평상에 앉아보니 이런 좋은 공간이 따로 없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려고 한게 아닌데 평상을 놓고 차양막까지 치고 보니 아주 익숙한 모습이 되었다. 나는 이상적인 공간이란 결국 대청마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루는 한 쪽은 건물에 붙어있으니 당연히 빛이 들어오질 못한다. 그 위에 긴 처마를 가진 지붕으로 덮으면 한국사람에게는 익숙한 대청마루의 모양이 된다.

 

가난한 내가 이 베란다에 더 돈을 들이지는 않겠으며 이것으로도 충분히 나에게는 좋은 공간이지만 돈을 들여서 만든다면 비닐 차양막 대신에 캐노피를 달면 더 깔끔할 것이고 평상도 하나가 아니라 두개쯤 들여다 놓고 붙이거나 아예 나무 마루를 설치하면 근사한 대청마루의 모양을 갖출 것이다.

 

오늘날 대청마루가 있는 집에 사는 한국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한국사람이라면 가끔은 한옥에 가서 대청마루에 혹은 처마가 긴 지붕밑의 마루에 앉아볼 기회가 생긴다. 예를 들어 얼마전에는 담양의 소쇄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다녀왔다. 그 소쇄원에 있는 건물을 보면 정말 작은 온돌방 한칸에 동서남북으로 마루를 내고 처마가 긴 지붕을 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익숙해서 그려려니 하고 보게 되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마루에 미친 사람의 건물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마루의 넓이가 방의 넓이보다 훨씬 더 넓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은 대청마루가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능한한 마루를 많이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게 아닐까.

 

 

 

그런 소쇄원의 건물에 가보건 아니면 어떤 절에 가보건 그늘이 잘지는 마루에 앉아 잠시 쉴 기회를 얻게 되면 누구나 그게 참 좋은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깥인데 바깥이 아니고 안인데 안이 아니다. 그렇게 좋은 공간을 현대의 한국인은 다 잊었다. 아파트에 사는게 보통인데다가 서양식으로 짓는 집들은 한옥처럼 처마가 길지 않은게 보통이다. 전원주택에 데크는 많이 설치하지만 좌식생활을 이해못하는 서양에서 기원한 것이기 때문에 그 데크에 주저앉거나 눕는게 아니라 다시 탁자나 소파를 가져다 놓는다. 데크와 마루는 높이가 다르다. 물론 결정적으로 그늘이 대청마루하고는 전혀 다르다. 파라솔의 그늘같은 것은 한옥의 지붕이 주는 그늘과는 비교할 수 없다.

 

 

 

 

차양막이란게 비닐천이다비닐지붕에 비닐 장판을 바닥을 가진 공간이 화려하지는 못하다그래도 대청마루 공간 비슷하게 그곳에 앉아보면 대청마루가 정말 좋다는 것을 느낄 정도는 된다본격적으로 햇볕이 드는 저녁무렵을 제외하면 매우 근사한 공간이다게다가 집안쪽을 시원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바람도 잘드는 것같다우리집에 좋은 공간이 늘었다는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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