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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학생방의 문제

by 격암(강국진) 2015. 2. 7.

15.2.7

산다는 것이 습관이 되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게 된다. 그러다가 어떻게 기회가 생겨서 생각을 해보게 되면 비록 제대로된 대안을 찾기는 어려울 지라도 아 이게 문제가 있구나 당연한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나에게 있어서는 방들이 그렇다. 

 

새 집에 새 가구를 넣을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게 싼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아무래도 두번 생각하게 된다. 꼭 필요한 것인지, 이게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그런데 두번 생각하게 되면 자꾸 그게 세번이 되고 네번이 된다. 뭔가가 찜찜하다. 그러다가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나는 내가 뭐가 찜찜했던 것인가를 알게 되곤 한다. 

 

좀 이기적인 것이지만 나는 안방에 대해서 거실에 대해서 부엌에 대해서 먼저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서 음. 이래서는 안되겠군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다. 생각은 생각을 부르고 나중에는 심지어 분노를 부르게 된다. 예를 들어 도대체 장농같은 걸 가지고 이사를 가는 것은 미친 짓 아냐?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아이들방 차례가 되었다. 아이들방이야 뭐 책상에 침대에 옷장에 책꽂이 뭐 이런거면 되지. 적당히 사. 나는 아내에게 그렇게 말해 두었다. 그러나 시작은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마찬가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적당히 이런게 어떠냐는 아내의 제안을 보면서 그럼 적당히 이렇게 가구를 놓겠구만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가구회사의 홈페이지에 가서 학생방이라고 모델을 만들어 놓은 것을 구경하게 된다. 물론 가구회사가 새 가구로 채워넣은 학생방 모델을 보면 대개는 야 역시 좋은데 하는 감탄을 한다. 

 

그리고 다시 나는 찜찜함에 빠지는 것이다. 이 알수없는 찜찜함이 다시 나를 고민하게 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하고. 그리고 다시 몇일이 지나고 나서 나는 내 찜찜함의 정체를 좀 알게 된다. 그러면 기쁘기 조차하다. 방이란 것도 연구하는 재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방에 대한 찜찜함의 근원은 바로 학생방이란게 애초에 아주 무리한 방이라는 사실에 있다. 아주 부자집의 경우는 예외도 있겠지만 대개 학생은 자기방 하나를 가진다. 그래서 학생방이라는 것은 물론 공부방이다. 따라서 책상이 들어간다. 그것은 또한 침실이다. 그래서 침대가 들어간다. 자기 방이니 붙박이장이 없다면 작은 옷장정도는 넣어줘야 한다. 또한 방에 책이 많이 있으면 책을 볼거라는 부모의 기대가 있어서 대개 학생방에는 책꽂이를 그것도 대개는 키 큰 대형 책꽂이를 넣는다.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학생방이라는 것은 공부방이며, 서재이며, 침실이고 드레싱룸이다. 그런데 예외도 있지만 대개 학생방은 그 집에서 안방말고 더 작은 방을 쓰기 마련이다. 안방을 한번 생각해 보라. 안방이란 대개 침실이다. 그 안에 장농같은 거대한 수납공간을 넣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침실이다. 그러면서 방은 제일 크다. 그러니 가구넣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넣을 것도 없다. 대개는 침대넣고 끝이다. 학생방은 자리도 좁은데 넣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오늘날의 학생방이 대개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온돌방에 이불펴고 사는 고시생을 상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해보라. 작은 온돌방 한켠에 있는 이불은 개지도 않고 펼쳐져 있다. 그 앞에 작은 앉은 뱅이 밥상을 두고 공부를 하는 고시생이 있다. 방의 사방에는 옷이 걸려지거나 널부러져 있고 그보다 많은 양의 책들이 여기저기에 쌓여있거나 널부러져 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이런 방에서 공부에 집중이 될까? 잠은 편안하게 자게 될까? 공부할때는 이불의 유혹을받고 물건들때문에 정신이 흐트러지고 잠잘때는 주변을 둘러싼 책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까?

 

책상이며 침대며 옷장같은 가구들이 있으면 정리가 된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사실이지만 실은 침대란 아무리 멋지게 만들었어도 개지않은 이불이나 마찬가지다. 책장도 쌓여있는 책과 다를것이 없다. 게다가 아이들은 대개 살면서 이런 저런 자기 물건들을 잔뜩 가지게 된다. 그것까지 아이들방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대개 아이들방은 그냥 쓰레기 더미가 되기 쉽다. 어른들은 좀 치우고 살라고 말하고 그런 현실은 치우지 않는 아이들의 잘못도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애초에 모든 물건을 그 작은 방에 집어넣으려고 했던 것과 기능에 따라 공간의 구분이 없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내 기숙사는 2인1실 구조였지만 방을 중간에서 정확히 반으로 잘라서 쓰기 때문에 1인 1실이나 거의 마찬가지였다. 그 공간은 물론 그리 크지 않았다. 그 작은 공간에는 벽쪽으로 길게 붙인 침대가 있고 침대발치에 철제캐비닛이 있었다. 그리고 침대의 옆에 약간의 공간을 두고 침대와 나란히 책상이 있었다. 그 책상은 위에 책꽃이가 달린 구조였다. 사실 대개의 학생방이란 이것보다 조금 형편이 좋을 뿐 이 구조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기숙사는 학생방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기숙사란 집떠나서 임시로 사는 곳이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는 학생이 가진 모든 짐을 거기에 가져다 놓지 않는다. 옷도 잡동사니도 책도 집에 학생이 가진 모든 것을 가져다 놓는 경우는 별로 없다. 짐이 별로 없으니까 그런 시스템이 그럭저럭 참을만한 수준이 되는 것이다. 짐이 많아지면 이런 기숙사방구조는 쓰레기장이 된다. 

 

나는 고민끝에 다음과 같은 구조를 그렸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왜 이런 구조인지 설명해 보자. 여기서 말하는 책꽂이는 높이가 3단정도밖에 안되고 옆으로 긴 책꽂이다. 그래서 그 위로는 그 너머가 보인다. 따라서 작은 방을 너무 답답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 긴 책꽂이는 학생이 필요한 최소한의 수납공간을 제공하고 교과서라던가 언제나 보는 책이라던가 하는 것을 가지고 있을 공간이다. 

 

중요한 것은 넣는 것보다 빼는 것이다. 학생방에서 뭘 뺄수 있는가. 나는 책상위에는 책꽂이를 놓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정신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책상위에는 지금 볼 책만 있는게 제일 좋다. 인간의 집중력은 쉽게 흐려진다. 나는 키 큰 책꽂이도 넣지 않고 아이들 책을 대부분 거실같이 바깥의 어딘가에 놓기로 했다. 나는 옷을 거는 스탠드 옷걸이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런 옷걸이가 있으면 옷이 산처럼 쌓이게 된다. 문이 있는 옷장안에 넣던지 아니면 바닥에 던지는 수밖에없다면 옷장안에 옷을 집어넣는 버릇이 생길 것이다. 

 

이 공간의 최대의 특징은 침실공간을 책꽃이로 분리하고 벽으로 밀어부쳐서 최소한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침대는 책꽂이로 가리기로 했다. 책상쪽에서 보면 방이 전부 공부방이나 서재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나는 한번은 전교1등의 책상이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었다. 외고에서 전교1등을 한다는 여학생이 자기 공부방을 공개한 것인데 그 방의 특징은 침대가 안보이고 탁자가 3개나 있다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방이 독서실처럼 보인다. 그 학생은 과목별로 탁자를 옮겨다니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나는 반드시 그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기사의 사진에서 한가지 점을 느끼게 되었다. 크고 넓은 책상 공간이 방의 분위기를 바꾼다는 것이다. 카페에 가도 우리는 크고 넓은 원목탁자를 보면 그 앞에 앉고 싶어하게 되고 도서관의 분위기도 결국 넓은 탁자가 만들어 낸다. 그래서 키높이 옷걸이를 빼고 책꽂이도 되도록 빼고 그대신 탁자를통상의 학생탁자보다 더 큰 걸로 넣는것이 학구적인 분위기를 만들지 않나 생각한다. 꼭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앉고 싶은 탁자, 시간을 보내고 싶은 탁자를 넣어주고 싶다. 통상의 구조처럼 조그마한 탁자와 부드럽고 따스한 침대매트가 나란히 보이는 구조에서 왜 침대에서 뒹구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 아닐까? 공부방 공간이 넓고 유혹적이며 침실은 안보이게 가리는 것이 합리적으로 생각되었다.

 

물론 방이 작은 것에도 정도가 있다. 방이 너무 너무 작아서 침대하나와 책상하나 넣으면 뭔가 더 넣을 것도 없을 정도라면 이런 구도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침대에 워낙 중독이 되어서 침대를 포기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학생방에 책상도 안넣을 수는 없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작은 방이라면 애초에 침대를 넣는게 잘못된 사용법일지도 모른다. 그런 방은 이불을 펴고 다시 개는 시스템이거나 침대를 접어서 치우는 시스템이 바람직 할지 모른다. 물론 침대와 책상을 꼭 맞게 꽉채운 방도 실제로 보면 아늑하고 좋아보일수 있다. 그러나 그 매력은 실은 대부분이 침대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그런 방은 실질적으로 침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방의 풍경이란 대개 서구식이다. 그것도 제대로된 서구식도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사람들은 지금도 한국 사람보다는 넓고 좋은 집에 사는 경우가 많다. 땅도 넓고 한국보다 부자 나라니까. 게다가 그들의 방의 풍경은 과거의 귀족의 집을 소규모로 만들어 낸 엉터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나는 한다. 실은 귀족은 침실과 서재와 드레싱룸같은 것을 모두 다른 곳에 가지고 살았는데 그 가구를 모두 모아다가 한방에 풀어놓은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 결과 물건들이 주인을 차지하려고 서로 싸운다. 그들은 애초에 그렇게 가까이 있을 물건들이 아니다. 주인은 그안에서 마치 소비에 중독된 사람처럼 이물건 저물건들을 뒤섞어 사용하고 나중에는 자기가 뭘 가졌는가도 알수 없게 된다. 물건 밑에 물건이 깔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구도 없는 빈방에 이불펴고 사는 삶을 사는게 꼭 최선은 아니겠지만 물건에 휘둘리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구분과 소유에 대해 고민할 것은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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