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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장농과 집

by 격암(강국진) 2015. 1. 17.

장농이 뭘까. 국어사전을 찾아봤더니 옷따위를 넣어두는 장과 농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요즘은1인가구가 늘어나는 등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장농에 익숙하다. 대개의 집에서 가장 큰 안방에는 한쪽 벽을 가득 채우는 이 장농이 있다. 그만큼 장농이란 한국의 보편적 문화다. 

 

 

 

 

 

그러나 장농이 진짜 뭘까를 생각해 보면 입맛이 점점 써진다. 내가 보기엔 장농이란 바로 한국사람들은 대충지은 집에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 중의 하나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파트건 빌라건 단독주택이건 어느 집에서도 사람이 사는데 그냥 빈몸만 들어가서 사는 일은 없다. 사람이 살면 여러가지 물건이 같이 사용되기 마련이고 따라서 모든 집에는 그런 물건들을 넣어둘 수납공간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수납공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집은 지저분하거나 실질적으로 작은 집이 될수 밖에 없는데 제대로 수납되지 못한 물건들이 집을 지저분하게 보이게 만들고 또 각자 공간을 많이 차지하게 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공간을 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자면 수납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이니 궁극적으로 잘 지은 집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은 따로 수납장 같은 것을 사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잘지은 집에는 수납공간이 충분해서 거기에 물건들을 잘 보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수납은 집의 기본적 기능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작은 수납장이나 책꽃이 같은 가구들이라면 개인의 취향의 문제로 돌려서 집을 짓는 수준에서 설치되지 않은 것에 대해 변명을 할 수나 있다. 안방의 한쪽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장농은 안방에 장농을 가져다 놓는게 아니라 안방을 리모델링 한다고 해야 맞는다. 다시 말해서 가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한국인은 이사를 외국인들보다 훨씬 더 자주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장농은 단지 그 가격이 수백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가구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크기가 너무 커서 이사하기가 쉽지 않고 해체와 재설치 과정에서 상처가 나거나 부서지기 쉽다. 게다가 새로 이사간 집의 구조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장농을 그 집에 들어가 사는 사람이 사야 한다는 것은 집을 잘 못지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장농은 보편적인 문화다. 이 둘을 합치면 한국의 주거문화는 엉망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집의 필수적 기능에 대한 고민도 없는데 다른 것을 뭐 그리 잘 지었겠는가. 

 

이렇게 장농을 들고다니는게 어떤 것인가를 알고 싶다면 이런 상상을 해보도록 하자. 어떤 나라에서는 집을 짓는데 변기도 창문도 문도 싱크대도 설치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나라 사람들은 변기도 창문도 문도 싱크대도 이사할때마다 뜯어가서는 새로 설치한다고 하자. 때로 변기가 설치된 집에 이사가면 집주인에게 그사람들은 말한다. 이 변기좀 뜯어내겠습니다. 우리는 더 좋은 변기를 들고 다니거든요. 

 

우리는 그 사람들을 비웃을 지 모른다. 그러나 비웃어서는 안된다. 말도안되는 것을 가구라고 부르면서 장농을 들고 다니는 한국인들 비슷할 정도로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 사실 장농규모의 수납공간이라면 집을 지을때 설치하는 쪽이 가격도 싸고 공간도 더 넓게 만들수 있을 거라는 것은 뻔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사도 자주하면서 그 엄청난 규모의 장농을 뽑아다니면서 살까? 한국사람 집 참 쉽게 짓는다. 

 

물론 한국에서도 요즘은 좋은 집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집에 붙박이 장이 있고 드레스 룸이 있다. 좋은 집에서는 구조에 대한 상식적인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런게 없는게 당연한게 아니다. 집은 기본적으로 물건과 사람이 있는 공간이다. 수납공간에 대한 고민이 없는 집은 기본이 안된 집이다. 

 

한국의 집이 어떤가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다른 기회가 한번 있었다. 작은 집에 대한 다큐에서 한번은 한국사람이 집안에서 어떤 동선으로움직이는가를 확인해 본 것이다. 그 결과 집의 전체면적에 비해서 아주 작은 면적만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쓰고 있었다. 그 다큐는 작은 집에 대한 다큐이므로 이런 결과를 가지고 사람은 그리 큰 면적이 필요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해석했지만 나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집은 너무 매력이 없어서 사람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창가를 생각해 보자. 그 창가가 그저 창가로 있으면 사람들은 그 창에 잘 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창턱을 좀 길게 만들고 그 앞에 바의자 같은 것을 놓아둬서 그곳을 커피마시고 책보기 딱좋은 간이책상처럼 만든다면 사람들은 그 창턱에 가서 좀더 시간을 쓰지 않을까?

 

집이라는 공간에서 각각의 부분에 어느 정도의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집어넣는가에 따라 그 각각의 부분은 한번 쯤 거기 가보고 싶은 공간이 될것인가 아닌가가 달라진다. 더럽고 황량한 베란다와 인테리어의 아이디어를 넣은 베란다는 활용도가 다르다. 그런 부분이 많은 집은 작지만 크고 재미있는 집이고 그런 부분이 없는 집은 크기가 크더라도 뭐 아무 것도 재미가 없고 둘러볼 가치가 없는 집이다. 사람들이 집안을 골고루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실험결과는 내게 그 집은 참으로 재미없는 잘못지은 집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어떤가. 재미있는 집인가? 

 

또 다른 걸 생각해 보자. 요즘에는 1인이나 2인이 사는 집이 점점 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대개 4인용가족이 사는 것을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 크고 작은 방이 3개정도니까. 집값이 비싼 우리나라는 그래봐야 그 평수가 대개 25평에서 35평정도다. 그렇다면 티브이를 설치할 곳은 대개 거실밖에 없을테고 그 집에는 공부하는 학생이 있을 것이 뻔하다. 

 

그런데 4인이 어떻게 그렇게 좁은 공간에서 같이 살수 있을까? 어떻게 살긴 그냥 살지라는 것은 답이 아니다. 집을 짓는 사람은 그걸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나? 그걸 고민하지 않으니까 수험생 자식이라도 가진 부모들은 집에 돌아가도 사는게 사는게 아니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면 집안 전체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아이가 공부를 해야 하니까. 티브이는 커녕 대화하기도 어렵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다른 공간과 공간적으로 분리되고 소리도 안들리는 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공부할 사람이 거기로 가든 다른 사람이 거기로 가든 해서 편안히 살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민이 보이는 구조를 가진 아파트가 얼마나 되나.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집을 대충 짓는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괴로워 한다.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싱크대 뜯어내고 먼저 리모델링부터 하는 여자들이 있다. 그만큼 대형건설회사부터구조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아파트는 안한데가 없다고 할정도로 베란다 확장이 된 아파트가 많다. 외부로 노출된 베란다는 별로 쓸모가 없다. 한국은 지붕과 난방이 없이는 여름과 겨울에 그런 공간을 활용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이 아직도 정착이 안되서 아직도 베란다 확장공사 같은 것을 나중에 하는 경우가 많다. 

 

식민지 시대를 거친 것이 그 한 이유겠지만 우리는 주거문화가 단절되었다. 갑자기 한옥을 포기하고 이상한 족보도 없는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제와 한옥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도 비현실적일 것이지만 지금이 정상이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다. 우리는 몰라서 그렇지 돈을 낭비하고 괴로워하면서 산다. 주거문화가 발달되지 못해서 그렇다. 아직도 장농을 들고 이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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