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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좋은 집과 공간의 분리

by 격암(강국진) 2015. 1. 22.

15.1.22

나는 좋은 집에 살아 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맨몸뚱아리 하나 말고는 다 부질없는 것이니 2-3평 방한칸이면 사는 데 족하다는 말에 공감을 하지만 또 나의 생각과 생활에 맞는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좋은 집이 될만한 집이 어떤 것인가를 발견하고 그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좋은 집이 뭔지 알아도 그런 집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형이거나 노력하여 도달하기에는 지나치게 공이 많이 드는 것일 수 있지만 그래도 그게 뭔지 알고 싶다. 나는 그래도 공부를 하는 사람이니 그저 남이 만든 것을 보고 그것이 왜 좋은 것인지도 모른채 와 이거좋네 하기 보다는 나 나름대로 생각해서 좋다는게 뭔지를 정리하고 싶다. 

 

그렇다면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일까? 오늘도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너한테 좋은 집이란게 어떤 집이지? 잠시 숨을 멈추고 생각해 보니 나에게 있어서 이런 질문과 함께 떠오르는 단어는 단순함, 가족, 재미 이런 것이다. 나는 집을 유지보수 하느라 매일매일이 바쁜 것은 싫다. 또한 나는 단순함이 우리 마음에 평안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안에 있을 때 내 머리가 총명해 지고 내 마음이 편안해 지는 집이다. 나는 외로운 것도 싫다. 우리 집안에 가족들이 있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 또한 나는 재미있는 것이 좋다. 집이 어떤 신비를 가지고 여러가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나는 마음에 든다. 이 모든 것을 곰곰히 생각하니 이 것들에 모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바로 공간의 사용과 분리다. 

 

공간을 무시하면 좋은 것도 좋은게 아닌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집의 규모를 잘 모른다. 한국는 여기저기에 가구단지 같은 곳들이 있다.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이런 곳들은 대개 아주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고 벽이 없다. 물론 파는 책꽃이나 책상에 너저분하게 물건들이 차있는 경우도 없다. 이런 곳은 가구를 보여주는 곳이지 공간과 가구가 어떻게 어울릴까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집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물건들을 좁은 보통의 살림 집에 가져다 놓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 물건들의 모습은 인테리어 카탈로그나 매장에 진열된 것과는 아주 달라지기 일수다. 그래서 이케아나 한샘같은 곳은 실제로 가정집같은 공간을 만들어 물건을 전시한다. 그래야 각각의 가구가 어떻게 쓰이게 되는지가 실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의 공간이 닫혀 있는 공간이며 그 공간안에서 어느 정도가 비어있는가 하는 것이다.  공간은 엄청 넓은데 텅텅 비어있으면 쓸쓸한 집이 될 테지만 빈 공간이야 말로 가장 빛나는 인테리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촘촘히 공간을 채워버리면 심난한 집안이 된다. 그런 경우라면 하나 더 가져다 놓을 수도 있을 것같은데 꾹참고 안가져다 놓는 것이 미덕이다.

 

 

이걸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수납공간과 생활공간을 분리하는 일이다. 우리가 만약 수도승이나 가난한 선비처럼 정말 아무 것도 가진게 없다면 텅빈 방한칸에 최소한의 가구인 앉은 뱅이 서탁이나 있는 집을 상상할 수 있지만 대개의 현대인은 그리고 나 자신은 그렇게 까지 물건이 없지 않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즐긴다. 그러므로 수납공간을 따로 만들어야 그 물건들을 치워버릴 수가 있고 내가 있는 공간이 비교적 단순해 진다. 가지고는 있지만 그 대부분을 내가 직접 볼 수 없는 장속에 넣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집은 단순함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받을 것이다.

 

가족들간의 분리도 필요하다. 나는 가족과 함께 살고 싶지만 동시에 가족으로부터 떨어져서 나 혼자만의 시간도 가지고 싶고 반대로 다른 가족들에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주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집은 다른 가족들에게는 최고의 집이 아닐 수도 있으므로 각자의 공간이 있어서 그 안은 자기 좋은 대로 꾸미도록 하고 싶다. 그런 이질적인 공간들은 잘 구분되어 있지 않으면 경계를 넘어 서로 뒤섞이게 된다. 그러면 좋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한국식 아파트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중앙의 거실주변에 방을 배치하는 구조에서는 사생활이란 걸 가지기 어렵다. 아이들 친구라도 한번 온다면 부모는 집바깥으로 나가야 하거나 감옥에 갇힌 것처럼 자기방에서 나올 수가 없다. 

 

공간의 분리를 위한 수단중의 하나는 2층집에 사는 것이다. 공부를 하건 뛰어놀건 층수를 분리해서 서로 다른 층에 있자고 하면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터가 넓은 집이라면 옛날의 한옥이 그러했듯이 작은 집들을 짓고 그것을 공동의 공간으로 연결해서 짓는 것을 생각해 볼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오늘날 이런 집을 짓는 것은 어렵고 또한 단순함의 원칙을 어기게 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한다. 관리하기 힘들고 비싼 집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층구조를 가진 것 이상의 방법은 찾기 힘들 것이다. 

 

재미라는 것은 그 집이 여러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미는 단순함이라는 원칙과 충돌한다.그래서 여기서도 분리라는 원칙이 중요하다. 우리가 그 안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정도의 공간단위로 집이 나뉘어져 있고 각각의 공간은 단순함의 원칙을 지킨다면 그 집은 여러가지 용도를 가진 작은 공간 여러개가 모인 것같은 집일 것이다. 

 

공간을 분리하고 공간을 채우는데 있어서 중요한 질문은 그 공간이 가지는 기능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과 인간이 평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하는 심리학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들은 추상적이므로 구체적으로 내가 불만으로 생각하는 예에서 부터 시작해 보자. 우리나라의 많은 집에는 통상 안방이라고 불리는 가장 큰 방이 있다. 그 큰방의 한쪽면은 커다란 붙박이 장이나 장농이 놓여있는 것이 보통이고 한국사람들도 요즘은 대개 침대생활을 하므로 부부용 퀸사이즈 침대정도가 놓여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2-30평대의 작은 집이라면 그 집의 가장 큰 방이라고 해도 이 정도 만으로 사실 거의 가득찬다. 침대와 장농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장농문을 열어야 하니 장농과 침대를 약간 띄워야 하고 안방에서도 티브이를 보고 싶어서 티브이하나를 더 들여다 놓는 정도를 하고 나면 방이 찬다. 방이 더 넓다고 해도 사람들은 거기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개정도를 들여다 놓는 정도다. 이것이 내가 종종 목격한 안방의 풍경이다.

 

나는 이런 방이 싫다. 이런 방은 기능면에서도 심리학적인 면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선 안방의 용도가 무엇일까? 주로 부부의 침실이다. 안방에서 손님맞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사실 침대를 들여놓고 나면 대개 그럴수 밖에 없다. 커다란 장농이 있으니 안방은 동시에 집안의 중요한 물건을 놓는 수납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그때문에 안방은 아늑하지도 않고 수납을 많이 하지도 않는 어정쩡한 공간이 된다.

 

침실로만 쓸거라면 침대사이즈의 공간이면 충분하다. 수납으로 쓸거라면 수납용으로 최대한 구획을 크게 하는쪽이 편리하다. 이 차이를 보기 위해서 나는 그림을 하나 그려보았다. 

 

 

(A)에 해당하는 것이 내가 자주 본 안방의 풍경이다. 침대 바깥쪽에 이런 저런 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들은 어디에 쓸데도 없다. 게다가 별로 아늑하다는 느낌도 줄수가 없다. (A)에서 왼쪽의 푸른 직선은 장농이 만들어내는 수납공간을 의미한다. 

 

나는 이보다 (B)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수납공간과 침실공간을 중간까지만 가로 막는 벽으로 분리한다. 중간까지만 가로막는 벽으로 분리하는 이유는 완전히 분리하여 두개의 방으로 만드는 것보다 그게 덜 답답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일단 침대위에 올라가면 잠을 자는 공간만으로 꽉차있으므로 아늑하다. 침대바깥은 잘 보이지않는다. 게다가 오른편의 공간은 그야말로 엄청난 양을 수납할 수 있다. 그 공간안의 구석안에는 작은 탁자를 놓아서 남편이나 아내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안방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면서도 탁자에서 뭔가를 할수 있는 공간을 또 만들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어떤 공간의 기능이 뭔지 생각한다음 그 기능을 만족하는 한도내에서는 최대한 공간을 빽빽히 채우는 집이 좋은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때 우리는 작지만 큰 집을 만들 수가 있다. 작은 공간에서도 서로 분리되는 집이면서 많은 기능이 있어서 재미가 있는 집이고 서로 분리가 잘 되어 있으므로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섞여서 마음을 심난하게 하는 일이 없는 집이다. 

 

인간이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어느 정도 크기일까? 사람에 따라, 가구의 존재유무에 따라 그 답은 다르겠지만 만약 가구가 없다면 그 크기는 보통 말하는 한평정도의 크기가 아닌가 한다. 한평은 가로 세로 180cm 정도의 크기다. 실제로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우리집에는 이런 방이 하나 있었다. 이 방에는 가구는 하나도 없고 나는 작은 밥상하나를 놓고 거기서 공부를 했는데 상당히 편안했다. 나는 이 사이즈가 어느정도의 보편성이 있고 그게 인간의 특성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식당이나 커피숍에서도 그렇다. 테이블과 가구 주변을 포함해서 공간을 나누고 각각 한 명의 손님이 앉게 한다고 할때 한평이 좀 넘는 정도가 편안하다. 그보다 훨씬 크면 왠지 공간의 낭비같고 썰렁하게 느껴지며 그보다 좁으면 개인적인 공간이 너무 작아서 옆사람과 충돌하는 느낌이다. 

 

물론 침대라던가 책상 책장 테이블따위가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면 그 공간은 더 넓어야 한다. 여러사람이 같이있을 공간이라면 또 그 공간은 더 넓어야 한다. 그러나 수납공간을 제외한다면 어떤 주거 공간도 가구도 없이 한사람만 쓰는 공간보다 작아서는 쓸모가 없을 것이다. 즉 한평을 기준으로 기능과 가구의 크기를 생각해서 집을 나눠가는 것이 좋은 집을 만드는데 핵심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이 이에 이르고 나니 두가지 생각이 난다. 첫째로 이런 것이 내가 최초로 발견한 새로운 것일리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한국에서 집을 지으면서 이런 거 고민하고 지은 집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방의 크기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 그저 작은 방 큰 방이라고 해서 아무 사이즈나 자유롭게 만들면 될까? 어떤 공간은 그냥 쓰기에는 너무 크고 분리해서 쓰기에는 너무 작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위에서 소개한 안방처럼 그냥 어정쩡하게 공간이 낭비가 되고 만다. 집을 지을때 좀 생각하면 (B)의 형태로 지을수도 있고 파티션용 벽이나 가구로 공간을 그렇게 구분할 수도 있다. 신축원룸들은 그렇게 해놓은 곳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냥 (A)로 쓴다. 평당 천만원이 넘는다는 아파트에 살면서 말이다. 내 답이 꼭 맞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주거문화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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