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작고 큰 집 만들기

by 격암(강국진) 2015. 2. 13.

15.2.13

나이든 사람들은 지겹게 들어봤을 새마을 찬가라는 노래의 가사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동산 만들어 알뜰 살뜰 다듬세'. 또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을 만들기 운동은 여러가지를 의미하지만 단골처럼 등장하는 것이 벽화그리기 같은 마을 미화사업과 텃밭만들기 같은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마을과 집을 개조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특히 외양을 말이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집바깥이 아니라 집안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까 우리는 집안을 개조하는 것에 대해 너무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개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라고 하면 팔자좋아서 사치하는 사람의 일정도의 이미지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경우에 따라 분명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치가 아니라 절약하기 위해 집안을 꾸미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이유가 커지고 있다. 

 

첫째로 한국인의 소득수준 소비수준도 상당히 올라가서 이제 단순히 방이 몇개있다거나 먹고 살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수준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생활의 질이나 형태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문을 연 이케아 같은 매장이 과열증상을 보일 정도로 사람을 끌어모은다는 것은 이를 보여주는 한가지 증거중의 하나일 것이다. 소비수준이 이미 어느 정도 올랐는데 생활의 어떤 면에 대해 무관심해지면 그 것이 발생시키는 불만족을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 

 

둘째로 이미 한국에는 집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파트가 아주 많이 있다. 새로 좋은 집을 건축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겠지만 저렇게 많이 이미 지어져 있는 집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걸 잘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새로 집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집안에 무엇을 채워야 할 것인가라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생활의 형식 혹은 생활문화에 대한 고민이다. 아래에도 쓰겠지만 이런 것은 단순히 공간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주제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반성하고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고민이 없이 집을 짓는 것은 마치 옷을 입을 사람의 몸은 없는 데 멋진 옷을 일단 만들고 그 옷에다가 몸을 맞추겠다는 생각과 비슷하다. 

 

세째로 한국은 집값이 비싸다는 것이다. 사실 전세계 많은 곳에서 집값이 비싸다. 많은 사람들이 집의 노예로 산다. 따라서 효율적이고 현명한 공간의 활용이 많은 것을 절약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인테리어에 대한 고민이란 사치스런 소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내 주변에 뭘 놓을 것인가, 뭘 치워버릴 것인가에대한 고민이다. 적은 돈으로 더 높은 생활의 질을 달성하기 위한 고민이다. 

 

우리의 생활은 집의 구조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같은 평수의 집이라도 하나의 집은 거대한 스튜디오처럼 구분이 없는 공간이라서 아주 넓게 보이지만 동시에 가족간에 개인공간이 전혀 없는 집이 있고 또 하나의 집은 미로처럼 칸막이가 형성되어 가족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살아가는 데만 최고로 집중했다면 두개의 집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의 인간관계나 예절은 시간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이다. 

 

집이란 가장 작은 단위의 마을이며 따라서 집을 꾸미는 것은 가장 작은 단위의 마을 미화사업이고 마을 만들기 사업이 아닐까. 그렇게 말해본다고 할 때 우리는 집안에서 새마을 운동을 하고 마을 만들기 운동을 해야 하는거 아닐까. 요즘 우리는 공동체를 자주 말하지만 정작 하나의 집 안에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에는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간 가족의 생활이라는 것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것은 아닐까?

 

초가집을 없앤다던가 벽화를 그리고 텃밭을 만든다던가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어떤 문화적 목표를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을 꾸미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어떤 형태적 지향점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작고 큰 집만들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작고 큰집 만들기 인가. 작고 큰 집이란 단순히 작은 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공간안에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의 공간을 가지면서도 공유하는 공간을 가지는 집을 의미한다. 그것은 재미있는 집이며 공동체의 집이고 관리하기 효율적인 집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개인이 있을 수 있는 집이다. 이 말은 혼자서 그 집을 쓴다는뜻이 아니라 개인적인 공간을 가질 수 있게 효율적으로 공간을 씀으로써 개인을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개인은 태어나는게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 개인의 공간, 자기 물건의 독점적 소유등 개인의 권리와 공간이 없으면 개인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집이란게 가족이 살면 당연히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의 공간을 가지면서 공유하는 공간도 가진다고 생각할 것이고 개인 공간이 없는 것은 집이 작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집값이 비싼 한국에서 40평정도의 아파트는 서울지역에서 5억도 가볍게 넘긴다. 장소에 따라 10억도 넘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비싼 40평 아파트도 사실 그 구조가 어떠한가에 따라 별로 살기좋은 집이 아닐 수 있다. 10억짜리 집에 살아도 손님하나 초대하기 부끄러운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가족들은 서로 뭘 하는지 다 알게 되고 그래서 입시생이라도 있으면 가족의 생활은 엉망이 되거나 학생은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남편은 집에 돌아와서 자기가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르며 집은 넓으면서도 좁아서 사람들은 특정한 장소 예를 들어 티브이 앞에만 옹기종기모여서 시간을 쓰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신혼부부가 30평이 넘는 집에 살면 그 공간이 넘치도록 넓어서 안쓰는 방도 생기고 아주 풍족하게 살 것같지만 사실 짐을 이리저리 늘어놓고 살다보면 사람이 쓰레기인지 짐인지 알 수 없는 것에 밀려다니면서 살게 되기 쉽다. 이것은 개인적 게으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집의 구조가 물건과 인간이 충돌하도록 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생활문화다.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한 이케아는 기본적으로 스웨덴의 생활문화에 기반한다. 그런데 인구는 천만이 안되고 1인당 국민소득이 5만7천불이 넘는 스웨덴의 생활문화는 아파트 숲이 즐비하고 인구는 그보다 5배는 많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절반도 안되는 한국에 정말 어울리는 것일까? 또 스웨덴의 것이 더 고급이고 좋은 거라고 생각해야 할 이유도 없다. 생활문화는 긴 역사적 산물이기도 하다. 이케아 가구는 스웨던 역사 혹은 서구 역사의 산물이다. 나는 한옥을 보면서 오랜간 온돌이라는 최고급 난방장치를 사용한 집에서 살아온 한국의 생활문화가 더욱 고급이고 사치스런 면도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온돌은 바닥난방이고 실외에서 난방하기 때문에 그을음이 집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신발을 벗고 실내에 들어가며 작은 방 혹은 초미니 집들이 나무마루로 연결된 구조의 한옥을 지을 수가 있었다. 이것은 바로 작은 돈을 들여도 가족들이 분리해서 살 수 있는 형태로 집을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방예의지국은 집이 그런 형태였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형태가 예절을 만든다. 해변을 혼자서 독차지 할수 없으니까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서로를 보고 놀라지 않는것이다. 공중목욕탕에서 서로 나체를 보여주면서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이다. 가족간의 사생활이 가능한 구조를 쉽게 만들게 할 수 있었던 온돌은 한민족의 예절의 근원이었을 것이다. 

 

한국인의 생활문화는 오늘날 아주 뒤죽박죽이 되어 있어서 어디서 정리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작고 큰 집 만들기가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는 한국 생활문화의 발전적 계승이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면 다리가 달린 침대란 바닥이 더럽고 난방이 잘 안되던 집에서 기원한 것이다. 바닥난방이 되고 집안에서 신발도 신지 않는 한국에서 그리고 특히 집값이 비싸서 공간 자체가 비싼 물건인 집에서 사방을 거대한 침대로 채워버리는 일은 과연 합리적인 일일까? 침대를 안쓰거나 침대를 접어치울 수 있거나 침대를 중요한 수납공간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침대공간을 최소한으로 만들어 공간을 절약하거나 하는 식으로 어떤 아이디어를 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작고 큰 집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들이 모여들고 그래서 여러 집들의 내부 구조를 바꾸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돈을 절약하게 하고 가족관계를 좋게하고 개개인들이 보다 행복하게 여유있게 살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또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요즘 늘어가는 독신자들이 쉐어하우스의 형태로 살아가는 것을 더 쾌적하게 만드는 것이다. 

 

타이니 하우스 운동의 선구자로 말해지는 제이셰퍼는 자신을 위한 작은 집을 지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도 되었다. 우리도 고민한 끝에 좋은 답을 찾고 그것을 알리면 그것이 남을 돕는 일이 될 것이다. 

 

 

 

 

'주제별 글모음 > 집에 대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사람들이 잃어버린 것, 대청마루  (0) 2015.07.05
한옥의 바닥 우리의 바닥  (0) 2015.02.16
학생방의 문제  (0) 2015.02.07
좋은 집과 공간의 분리  (0) 2015.01.22
장농과 집  (0) 2015.01.1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