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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한옥의 바닥 우리의 바닥

by 격암(강국진) 2015. 2. 16.

15.2.16

조선한옥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는 바로 좌식 생활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한국 사람들은 침대와 의자를 쓰는 입식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좌식생활이란 종종 가난하고 미개했던 과거에 불편한 것을 모르고 살았던 풍습처럼 여겨지곤 한다. 예를 들어 입식생활과 좌식생활 즉 의자 생활을 하는 것과 바닥에 앉는 것중 어느 것이 더 편한가를 묻는다면 아마도 현대의 많은 한국인들, 특히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의자에 앉는 생활이 편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때로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의 행동을 배신한다. 나도 얼마전 나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기전까지는 내가 좌식을 싫어하는 줄 알았고 좌식생활은 무조건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재미있는 사실을 기억해 내게 되었다. 한국도 어떤 식당에 가면 좌탁을 놓고 식사하는 자리와 의자와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하는 자리가 모두 있는 경우가 있지만 일본도 그렇다. 그래서 식당에 가면 탁자에 앉을 것인지 아니면 다다미자리에 앉을 것인지를 묻곤 한다. 일본은 짚으로 짠 바닥인 다다미가 바닥에 깔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가는 식당도 그런 곳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단 한번도 스스로 탁자를 택한 적이 없었다. 항상 나는 다다미 자리를 선택했던 것이다. 빈자리가 있다면 당연히 다다미 자리가 좋았다. 다다미 자리가 편했다. 항상 좌식으로 바닥에 앉기를 선택하면서도 나는 좌식생활이 입식생활보다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고 알아왔던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세뇌의 결과일까? 나는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곰곰히 과연 뭐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질문이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만약 이렇게 묻는다고 하자. 여기 두개의 자리가 있다. 하나는 높고 넓은 평상위에 좌식으로 앉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평상보다 낮은 자리에 있는 1인용 의자에 앉는 것이다. 평상의 높이가 높기때문에 평상에 앉으면 좌식으로 앉아도 의자에 앉은 사람을 내려다보게 된다. 1인용의자는 당연히 평상보다 훨씬 좁다. 당신은 어디에 앉고 싶은가?

 

이 질문에 대해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평상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두가지 측면이 포함되어져 있다. 첫째로 넓은 평상은 1인용 의자보다 훨씬 넓다. 발을 쭉 펼수도 있고 가지고 있는 옷가지를 옆에다 던져둬도 된다. 사실은 이게 내가 다다미자리를 좋아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두번째로 평상에 앉으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형국이 되고 의자에 앉으면 그 평상에 앉은 사람을 올려다 보는 형국이 된다. 실제 내가 자주가는 식당의 다다미 자리는 높게 놓여진 평상처럼 높이가 높았다. 거기에 앉으면 의자 좌석에 앉은 사람보다 오히려 머리의 높이가 약간 더 높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좌식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할까. 우리는 혹시 입식이냐 좌식이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가 가장 흔히 만나는 장면을 연상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바로 의자나 소파를 포함한 서구식 가구로 채워진 현대 한국인의 집에서 바닥에 앉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바닥에 앉은 사람은 소파에 앉은 사람을 올려다보게 된다. 우리는 어느 쪽을 선호할까.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어느 쪽을 선호한다는 것이 입식과 좌식간의 공정한 비교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한옥을 다시 떠올려보면 한옥의 방이란 마치 높은 곳에 위치한 평상 그것도 따뜻하게 난방이 되는 평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 한옥의 방에서 좌식으로 생활하던 사람은 문을 열면 대개 마당이 바로 보였다. 그리고 한옥의 방바닥에 앉아있어도 마당에 서있는 사람보다 방안에 앉아 있는 사람의 머리 위치가 더 높은 경우도 많았다. 즉 방바닥의 높이가 길이나 마당의 높이보다 훨씬 높다. 이점은 현관을 열고 들어와 바닥에 앉은 사람을 보면 아래로 내려다 보게 되는 오늘날의 현대 아파트와 다르다. 

 

우리는 멋진 소파나 침대를 보면 우리가 그 촉감이나 쿠션감때문에 그걸 좋아한다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높이가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이 사실은 높은 평상과 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집어넣은 침대를 생각하고 뭐가 매력적인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평상이 딱딱한 나무바닥이라도 평상이 매력적이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건 동물적 본성이건 우리는 높은 곳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좌식이란 낮은 곳에 있겠다는게 아니다. 좌식이란 방의 공간전부를 침대같은 공간으로 쓰는 생활방식이다. 방이 통째로 높다. 

 

높이 문제를 제쳐두고도 한번 생각해보자. 서구식의 입식생활이란 고작해야 작은 의자위에 앉는 정도인데 한옥에서의 자리는 방전체가 다 내자리다. 과연 의자에 앉는 것이 더 편하다는 말에 편견은 없는 것일까? 좌식은 불편한 것을 모르는 미개한 문화일까? 우리는 제대로 비교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실내가 다 침대고 평상같은 바닥난방의 집에다가 다시 의자와 침대를 들여서 바닥을 낮은 지역으로 만들고 많은 영역을 쓸모없고 매력없는 부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좋은 침대 사서 그 위에 평상올리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 아닐까. 

 

게다가 여기에는 아직도 지적되지 않은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과연 현대 한국인의 집 예를 들어 아파트의 바닥이 비록 바닥난방이 되는 바닥으로 따뜻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옥에 있었던 것과 같은 바닥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이사가기로 한 집의 옥탑 공간을 보면서 그곳을 좌식으로 꾸며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입식 부엌 즉 싱크대가 있는 아래층을 소파를 놓고 식탁을 놓고 침대를 놓는 입식가구들로 장식을 하고 나니 더 이상 소파를 사들이고 싶지 않았는데다가 옥탑공간이라 지붕이 비교적 낮은 부분이 있어서 바닥에 앉는 쪽이 유리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일단 머리가 좌식으로 돌아가고 나서 생각하니까 좌식방이란 기본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 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방이 들어오는 바닥은 쓸모 있는 공간이다. 거기에 아무 것도 가져다 놓지 않으면 그냥 좌식 공간이다. 다시 문제의 찜찜함이 나를 덥쳐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뭔가를 더 가져다 놓아야 할 것같았다. 그렇지 않고는 그 공간이 내가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되기 힘들 것같았다. 그래서 쿠션을 놓거나 좌탁을 가져다 놓거나 하는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역시 소파를 가져다 놓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내가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위에서 말한 다다미 자리가 있는 식당에 대해서 기억해 내고 난 이후의 일이다. 내가 다다미자리를 선택한 이유는 높이가 있기 때문이고 넓은 평상에 앉는 넓이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다른 이유 못지 않게 큰 이유는 바로 바닥이 짚으로 된 다다미이기 때문이었다. 다다미는 돌처럼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 아니다. 나는 바로 다다미 위라면 앉고 싶었던 것이다. 다다미가 좌식생활의 매력을 올려주고 있었다. 

 

실제로 만약 옥탑공간의 바닥이 전부 다다미라면 어떨까하고 생각해 보니 만약 그렇다면 거기에 가서 앉아있고 싶다는 생각이 내 안에서 훨씬 더 증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문제는 바닥재였던 것이다. 도대체 우리는 뭘하고 있는 것일까. 21세기에 우리는 대개 서구식의 주택에 산다. 그러므로 바닥도 어떤 의미에서는 서구식이다. 대표적인 것이 시멘트바닥 돌바닥이다. 

 

서구식이란게 뭘까? 서구 사람들은 집안에서 집 바깥처럼 신발을 신고산다. 그런 집의 바닥이 앉고 싶은 바닥일 필요가 있을까? 서구 사람들이 앉고 싶은 바닥을 발전시킬 이유가 있었을까? 침대나 소파 위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서구식으로 바닥을 만들고 거기에 서구식 가구를 채운 다음에 그런 집에서 바닥에 앉아보고는 조선시대 사람들은 참 미개하고 불편하게 바닥에 앉아서 생활했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오늘날 좌식생활에 어울리는 바닥이 뭘까를 고민하고 그 바닥을 개발하면서 좌식이 매력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럼 전통 한옥의 바닥이란게 뭔가. 한옥의 바닥의 기본은 두 종류다. 하나는 마루 바닥으로 방 바깥의 나무바닥이고 또하나는 황토바닥이다. 전통한옥에서는 황토바닥위에 한지를 덮고 그 한지에 기름을 배이게 했다. 그리고 물론 방석을 놓거나 침구를 놓아서 쿠션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한옥에 사는 사람은 여름에는 마루에 자주 나가고 겨울에는 방안에 주로 머문다. 더운 여름에 그늘지고 바람부는 나무 마루는 머물고 싶을 만한 공간이다. 방석없이 그냥 바닥에 앉는다고 하더라도 겨울의 방바닥도 단순히 시멘트바닥을 데운 것과는 다르다. 나는 기름먹인 한지 장판을 덮은 황토바닥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매력적인 바닥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옥의 바닥은 단순히 앉기에 편한 것과는 다른 의미도 있다. 바로 바닥난방용 바닥이다. 거기에 다다미를 덮지는 않는다. 굳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황토의 효능운운하지 않더라도 황토바닥은 시멘트바닥이나 돌바닥은 아니다. 황토는 기본적으로 흙이다. 열전도율이 낮다. 천천히 데워지고 잘 안식는다. 그러니까 주저 앉는 다면 시멘트바닥과는 느낌이 다르다. 우리의 전통적 바닥은 황토위에 기름칠한 한지 장판을 덮는 것이거나 짚이나 나무껍질로 짠 자리를 까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가 반드시 조선시대와 똑같이 살아야 하고 좌식생활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문제가 뭔지를 알았다고 해도 오늘날에는 돈을 많이 들여서 그렇게 만들기도 어렵다. 21세기에 한옥을 집는 것은 좋고 나쁜 것은 둘째치고 대개 서양식 집보다 더 비싸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아파트 같은 서구식 주택을 엄청나게 지었다.  

 

다만 몇가지 노력은 해야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로 좌식생활이 될 것 같은 공간에는 탁자나 의자같은 것을 가까이 가져다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입식공간과 좌식 공간의 분리가 필요하다. 좌식공간에 서양식 가구가 높다라니 있으면 바닥의 매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둘째로 바닥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적어도 자리라도 펴는 성의가 있을 필요가 있다. 현대 가옥은 바닥난방을 한다고 해도 서구식 개념에 근거해서 지어진 집이므로 바닥이 항상 매력적이지 않다.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려면 바닥에 성의를 들여야한다. 실제로 조선사람들은 방바닥에 참으로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이불에 들이는 정성이상으로 방바닥이나 까는 자리에 정성을 들였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번들번들한 조선집의 방바닥을 보고 서양사람이 감탄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도 있다. 우리는 어느새 별로 바닥에 공을 들이지 않게 되었다. 서구식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닥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나는 사람이 얼마나 생각의 지배를 받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먹어보면 맛있고 누워보면 편해도 어떤 선입견에 사로 잡혀서 그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항상 좌식의 자리를 선택하면서도 의식적으로는 좌식은 불편하고 의자에 앉는게 편한거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는 생각없이 공간을 서구식 가구로 채우거나 매력없는 바닥을 보면서도 도대체 거기에 뭐가 없는건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 자꾸 다른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배반하는 것이다.

 

또한 나는 집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한가지 방향으로만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공간의 분할이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나의 분할이란 수평적 공간의 분할이었다는 것이다. 즉 수직방향으로의 분할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서구식 집에살았던 것이 이유일 것이다. 서구의 집은 가구로 높이를 만들고 한옥은 집이 마당과 높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옥과 서양집을 비교하면서 높이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것은 즐거운 발견이었다. 서구식으로 지은 한옥을 짓는 것에는 이런 것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거실바닥보다 안방이나 작은 방의 바닥이 높은 것이다. 마치 거실이 마당인 것처럼. 이런 아이디어가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옥이란 기와를 쓰고 황토벽을 만들고 하는 것이란 것도 선입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간분할과 좌식생활이 한옥의 영혼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과연 한옥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재료인가 공간분할인가? 기와집으로 지어서 침대 소파 들여놓고 입식생활을 하는 집도 정말 한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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