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민족주의는 멍청한 사람들만 믿는 것일까?

by 격암(강국진) 2017. 2. 17.

망치는 살인도구일까 아니면 못을 박게 해주는 고마운 도구일까. 물론 답은 둘다다.  쓰기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그 둘 다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망치를 금지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휘두르거나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놀게 하지 않는다. 이렇게 구체적인 도구의 경우에는 우리는 분명히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하지만 추상적인 영역으로 가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지는 것같다.


민족주의는 위험한 폭탄이며 민족이란 개념은 실체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민족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개념일까. 아니 답이 이 둘 중의 하나이기만 할까? 앞의 예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민족주의나 민족이란 개념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가 보이는 것도 같지만 사실은 민족이란 개념이 도구라는 생각이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 이것은 특히 민족을 성스런 개념으로 중요한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데 왜냐면 그들은 민족이란 확고한 실체로 현실과 역사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므로 그것을 일종의 도구로 파악하는 시각과 처음부터 부딪히기 때문이다. 도구란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민족을 믿는 사람은 우리가 그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원래부터 존재했으며 우리가 그것에 의존하며 살아왔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민족이 현재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민족이란 개념이 도구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도 대개 그리 우월감을 가질 일만은 아니다. 그들은 민족을 말하는 사람앞에서 잘 난척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거기에는 아주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들은 남이 민족같은 개념을 믿는 것을 종종 폄하하지만 자기도 결국 어떤 개념을 확고한 실체로 믿는다는 점에서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평등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개념을 믿는 것과 민족같은 개념을 믿는 것은 지금 말하는 문맥에서는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모든 개념을 도구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개념은 절대적이고 자명한 것이고 남이 믿는 것은 원시적이고 근거없는 개념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불교를 미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 그런 말은 기괴하게 들릴 뿐이다. 


이 문제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대다수 외국에서 특히 미국이나 유럽이나 일본이 만든 개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도록 교육받았다는 것과 합쳐질 때 더욱 심각하게 보인다. 그들은 그런 지식체계속에서 그냥 국가란 '원래' 이런 것이고, 사업이란 '원래'이런 것이며 정치란 '원래' 이런 것이라는 인식에 빠지기 쉽다. 예를 들어 서구가 만든 좌익과 우익, 근대와 전근대같은 개념을 가지고 사람들을 나누기 쉬운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체험은 미약한 역활을 하고 남의 역사와 체험으로 만들어 진 개념을 단단한 실체로 여기는 동시에 우리 민족은 없다라고 해버리면 우리는 매국노가 되기 일보직전에 서있게 된다. 다른 걸 떠나 한국사람들은 열등하다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한국에서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핸드폰통화가 되고 인터넷이 될 때 미국에서는 그게 안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럼 한국 사람들은 이건 그래도 한국이 좋네하고 자부심을 가질지 모르지만 미국사람들은 그시절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그런 걸 쓰면 안된다, 그건 필요없다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상황이 정반대였다면 역시 미국은 발전된 나라인데 한국은 후진 국가라서 그런게 안된다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남의 눈으로 우리를 보면 우리가 못가진 것은 전부 열등한 증거가 되고 우리가 좀 더 뛰어난게 있어도 그걸 알지 못하거나 그런 건 본래 필요없는거라는 평가를 내리기 쉬운 것이다. 이게 사람의 마음이다. 


민족주의를 간단히 부정하는 둘째 문제는 그들은 자신이 대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그 대안에 대해 남들이 동의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대안이 없거나 그것이 대안이 안되는 경우는 무책임한 언동이 되버린다는 것이다. 민족이건 국가건 가족이건 이런 공동체에 대한 개념들은 결국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혼자서 살수 없고 공동체를 이뤄서 살아야 힘을 발휘할 수 있기때문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공동체의 문제를 무시하거나 인류공동체라던가 국가공동체따위의 어떤 것을 자명하게만 생각하면서 민족의 개념을 무시할 경우 이것은 심히 어리석은 일이 되기 쉽다. 쉽사리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보면서 생각을 해야 한다. 공동체가 허물어져 힘이 없을 때 우리들은 매우 허약해지고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한국이라는 국가가 어느 날 사라진다면 그걸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은 바로 한국에 빚을 진 사람들이다. 부채가 있었는데 한국이 사라지면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 그러니 얼마나 좋겠는가. 민족의 개념도 그렇다. 한국에는 일제시대에 민족을 배반하고 그로 인한 이득을 취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민족이란 사실 없는 것이며 따라서 조선이란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나라라는 인식은 얼마나 좋겠는가. 중국이 북한지역을 차지하고 싶은데 남한이 스스로 민족개념은 무의미하며 따라서 북한도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면 중국은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이제껏 한국국민에게 국민기업을 지원해 달라고 하던 대기업들은 외국시장이 중요한 요즘은 과연 어떤 세상을 원할까?


우리는 물론 공화국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말 대한민국이 튼튼히 존재하는 가에 대해 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만약 문화적 민족적 국민통합의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의 규칙이라는 것이 작동할까? 만약 중국의 한족이나 일본인이나 미국인을 4천만명정도 한반도에 데려와서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엄청난 혼란이 생기지 않을까? 정의로운 사회가 될까? 이런 예측을 가르켜 인종차별이나 외국인 혐오라고 부르는 행위는 정말 현명한 것일까? 


일제시대를 거치면서도 한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우리는 조선인이다라는 민족의식이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 의식을 간단히 던져버릴 수 있을 만큼 안정된 사회에 있는 것일까? 그렇게 할 때 한국인은 과연 미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유럽인이나 중국인들만큼 대접받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많은 사람들이 느낄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한국인이기에 한국기업이나 한국정부에게 역차별을 받는 일을 종종 겪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나라에도 소위 직구라고 하는 일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있는지 모른다. 이건 한국에서만 그런 것같다. 이게 한국인이 가장 '호갱'취급을 받는 다는 증거가 아니면 뭔가. 한국인들이 인터넷 상거래에 대해 불평할 때 그건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전지현코트를 인터넷쇼핑으로 구할 수 없다고 하면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하라고 압력을 가한다. 한국남자들은 다 병역의 의무를 진다. 그런데 취업에 있어서 국적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이것도 역차별이 되는거 아니겠는가. 소위 머리검은 외국인들이 잘 살수 있는 나라를 만들면 그게 역차별이 아닐까? 


한국이나 한국의 역사에 대해 지나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문제다. 그런데 한국은 상식적으로 당연히 가질만한 자부심을 이야기하는 것도 부정당하는 일이 많다. 미국 사람이 미국에 대해, 일본 사람이 일본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건강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남편이나 아내에 대해 우리 자식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것과 같다. 애정이 있으면 완전한 공평이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보수단체는 성조기를 휘두를 때가 많다. 이게 어떻게 보수 일 수가 있을까?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 종종 국가고 민족이고 다 부정하는 듯한 이미지를 풍길 때가 있다. 그들은 한국인이 외국인 혐오에 빠지면 안되고 지나친 자부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가 많은데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지만 사실 한국인이 진짜 자부심을 가진 적이 얼마나 있기에 이런 태도인지 모르겠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국에 대한 사랑이다. 이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 당연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유명세를 얻거나 권력이나 돈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당연한 일이 아닌 것같다는 것이 문제다.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서 참여하는 애정이 없었더라면 이 나라는 진작에 형편없는 무법천지에 가난하기 짝이 없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누가 정말 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인지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지금 상황이라면 민족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폄하하는 행동이 이 나라를 진짜 사랑하는 일이 되지 않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