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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동네에서 놀다

by 격암(강국진) 2017. 2. 27.

오늘은 모처럼 봄다운 날씨였다. 나는 집을 나서서 전주대 캠퍼스를 거치고 삼천 마실길을 걷는 길로 산책을 나섰다. 아직 꽃이 피는 날씨는 아니었으나 나무마다 꽃몽우리가 맺혀 있는 것이 곧 화려한 봄이 올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대학교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이라서 전주대 캠퍼스는 활기찬 대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는데 내게는 그것도 봄이 올 것을 말해주는 한 징조처럼 보였다. 


길을 걷다보니 나는 문득 자동차란 참 몹쓸 물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드라이브를 좋아하고 자동차가 있어서 우리가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동차에 타는 것에 익숙한 우리는 어느새 동네에서 놀지 않게 되었다. 자동차가 없던 시대에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살 던 동네에 갇혀 있다시피했다. 그러다보니 걷는 일에 익숙했을 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을 그 걷는 거리 안에서 일하고 즐기는 일에 익숙했다. 


나는 외국 생활을 하던 중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종종하곤 했다. 가족은 외국에 나가서 살면 아예 끝장이 나도록 사이가 나빠지지 않으면 사이가 좋아진다고 말이다. 또 부부가 사이가 안 좋을 때는 먼 곳으로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떠나는 것이 좋다고도 말했었다. 


이 모든 것들의 이유는 단순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족과 부부는 외부로 부터 격리된다. 그러므로 좋건 나쁘건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고 그것이 가족을 단합시키고 부부를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 설사 남편이 무뚝뚝하다고 해도 혹은 아내가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해도 같이 놀 사람이 서로 밖에 없으면 그런 배우자와 어떻게 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마련이고 고민한 만큼 그들은 서로 가까워진다. 그런데 더 좋은 환경속에 있으면 우리는 쉽사리 다른 일에 의지하게 되고 서로를 뭔가나 누군가와 비교하는 일이 생기게 되어 오히려 관계는 나빠지기 쉽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자동차가 생겨난 이후의 사람들은 동네와 친해지기는 더 어려워진 셈이다. 그들은 자기가 사는 동네와 친해질 방법을 고민하는 대신에 차를 타고 훌쩍 멀리 떠나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어느새 현대인에게 논다는 말은 어딘가 사는 곳이 아닌 특별한 곳으로 떠나는 일과 같은 것이 되었다. 


네비가 처음 나왔을 때 길치인 나는 그 기계에 반하게 되었다. 그래서 네비를 가지고 이런 저런 검색을 해보다가 보니 한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나는 내가 사는 동네의 지도를 거의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몇년이나 살았던 신월동의 지도를 펴보니 나는 우리 집에서 정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은 공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집과 학교를 오갔을 뿐 더운 여름날에 그런 공원에 산책을 나가는 놀이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공원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도 산책을 하다보니 새로 생긴 커피숍이 보이고 전주대학의 옆쪽 길이 깨끗하게 단장된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면 추운 겨울에 한동안 가지 않았던 그 길위에 이런 저런 변화들이 생겨나 있었다. 내 산책은 1시간 반정도가 걸렸다. 그정도면 성인이 7킬로미터쯤 되는 거리를 걷게 된다. 그런데 지도를 펴고 3.5킬로미터를 걸으면 얼마나 먼 곳까지 가게되는가를 확인해 보면 우리는 대개 놀라게 된다. 우리는 어느 새 몇백미터 이상의 거리는 걸어가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고 그보다 더 먼 곳에 가려고 하면 아예 차를 타기때문에 주변 몇킬로미터 안에 있는 것에 매우 무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노는 일은 좋은 일이다. 동네에서 논다는 것은 동네의 어느 술집이나 찻집에 주저앉아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비록 우리 동네가 제주도나 하와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동네를 이리저리 산책하고 살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여러모로 장점이 있다. 첫째로 부질없는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안하게 된다. 거리가 있는 곳에 가는 일이란 결국 오고 가는 것으로 상당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되기 마련이며 운전은 우리를 상당히 긴장되게 한다. 둘째로 조금만 걷는 것을 각오하면 뜻밖에 우리 주변에도 우리가 몰랐던 좋은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동네에 대한 무지는 대개 우리의 상상보다 크다. 세째이자 마지막으로는 동네에서 노는 일이 반복되면,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결국 그런 일은 우리 동네가 살기 좋은 곳이 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동네에서 놀기란 참으로 권장할 만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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