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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아들과 전국여행 2

by 격암(강국진) 2017. 8. 12.

춘심에서 차려주는 조식을 먹고 길을 떠났다. 인사를 하면서 내가 쓴 책을 기념으로 한권드렸다. 자기가 쓴 책을 숙소주인에게 기념으로 한권준다는 것은 평생 처음해보는 것이라 왠지 어색했지만 그래도 나름 무난히 드리고 떠나왔다. 지금은 설악산을 보고 강릉의 경포솔향온천 찜질방에서 하루를 자고 포항을 거쳐 경주까지 온 참이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 전에 몇시간 쉬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기억이 날아가기 전에 몇자 적고 싶다. 


춘천에서 설악산으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타는 길과 국도를 타는 길이 있는데 그 국도라는 것이 과거의 고속도로가 아닌가 하여 그냥 공짜 길로 달렸다. 그 결과 춘천에서 설악산까지 110킬로미터쯤 되는 길을 가는데 두시간쯤 걸렸는데 이정도면 그냥 무난한 것 같다. 고속도로를 탔더라면 조금 더 빨리 올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대신 마을이며 산을 더 많이 본 드라이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모처럼 설악산에 왔으니 천천히 비룡폭포정도까지는 등반하고 싶었으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또한 날씨가 너무 나빠서 사실 설악산 구경은 그냥 포기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다음 기회는 어렵다 싶어서 빗속을 뚫고 설악산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보니 주말도 아니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이미 점심이 되기도 전에 주차장은 만차에 가까웠고 케이블카에도 손님이 가득했다. 우리는 우산을 든 채 케이블카에 올라타고 권금성으로 올라갔다. 


나는 가장 아름다운 설악산이 어떤지는 잘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빗속을 뚫고 올라가서 본 설악산 권금성의 모습은 좋다는 말이 나오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산이 다 산이지 좋은 산 나쁜 산 알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경호도 설악산을 올라가서 좀 걷다보니 마음에 든 것처럼 말한다. 한국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설악산에 무리해서 온 보람이 있었던 것같다. 우리는 우리 가족의 숫자만큼 작은 돌을 모아다가 작은 돌탑을 쌓아두고 내려왔다. 우리 가족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설악산 권금성


설악산을 뒤로 하고 강릉으로 오는 길에 우리는 알쓸신잡에 나와서 유명해진 박이추 커피숍에 들렸다. 나는 하우스 블랜드를 경호는 핫초코를 마셨으며 따로 호밀빵을 시켰다.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이 방문을 꺼렸지만 그래도 나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유명하다는 커피를 마셔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것은 기대대로 였다고 할까.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풍경도 좋았으며 내가 커피숍에 갈 때마다 비판하는 카페의 의자도 이 카페는 매우 좋았다. 하지만 일단 손님이 너무나 계속 오는 바람에 그런지 점원들이 행동이며 말은 공손하고 친절한데 어딘지 영혼이 느끼지지 않고 지쳐있는 것같았다.  호밀빵에는 크림치즈를 줬는데 양이 너무 적다. 하지만 그런 걸 부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좋은 카페 인테리어가 만드는 분위기는 지친 점원과 많은 손님때문에 거의 무의미했다. 장터분위기라고나 할까. 나같은 뜨내기 손님들이 이리저리 떠밀리는 분위기다. 시스템을 잘 모르는 가운데 줄서고 불려다니고 해야 하니까 그렇다. 커피맛도 핫초코맛도 깊고 섬세한 것이 역시 전문가답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래서야 감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역시 분위기까지 따지자면 좀 더 작고 손님도 이렇게 까지 북적이지 않는 곳이 좋다. 이렇게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계속 마시고 싶은 커피는 아니다. 커피뽑는 실력은 자신없지만 집에서 사가지고 온 콩으로 뽑아 먹어봐야겠다.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공장의 의자와 호밀빵


박이추 커피공장을 뒤로 하고 우리는 에디슨박물관으로 향했다. 일인당 만이천원씩 내는 비싼 입장료가 좀 부담이 되지만 그대신 해설자의 설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그런 설명이 없었다면 사실 똑같은 전시품이 있었어도 다들 그냥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해설자들이 열심히 그리고 좋은 유머감각으로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준다. 약간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박물관관장의 자랑이 박물관 전체에서 좀 티가 난다는 것이다. 이영애나 이명박을 포함하는 수없이 많은 유명인사와 찍은 사진이 눈에 띈다. 심지어 에디슨과 사진을 같이 찍은 것처럼 포토샵한 사진도 있다. 엄청난 돈을 들여서 사모았을 거대한 스피커는 사실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역사적 의미는 축음기 소리에서 더 많이 느꼈졌고 음질로 말하자면야 그냥 요즘 영화관에 가면 더 좋은 소리가 들리는거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정도는 그냥 눈감아 줄만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더운 여름에 바깥에서만 움직이고 싶지 않다면 가볼만한 박물관이다. 



에디슨 박물관과 해설자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차에서 두 대의 자전거를 꺼냈다. 에디슨 박물관은 경포호수변에 있기에 그 주차장에 차를 그냥 두고서 우리는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경포대 주변을 자전거로 돌 수 있다는 말 때문에 자전거를 싣고 왔지만 날씨가 어쩔지 몰라 걱정했는데 흐린 날씨는 오히려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날씨로 변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경포호수를 한바퀴 돌다보니 새삼 지자체들이 일을 참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도 그랬지만 강릉도 아주 깨끗한 모습이었다. 적어도 도심이 아니라 경포호수쪽은 말이다. 게다가 이런 저런 구조물이며 데크며 연꽃밭들이 감상하기에 아름다웠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해지는 경포호수를 돌았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아버지는 아들과 왠지 이게 하고 싶었다! 마침 비가 멈춰줘서 계획은 어긋나지 않았다. 


경포호수


이 다음의 일정은 다시 다음 편에 이어서 쓸까 싶다. 여기서는 하나만 더 적어두고 싶다. 아직 일정이 좀 남았기는 하지만 여러곳을 보고 나서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계속 춘천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게 왜 그럴까를 줄 곳 생각해 봤는데 그것은 춘천의 강변풍경이 더 아름다워서도 아니고 춘천의 도심이 더 아름다워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나는 함께 사는 사람들을 춘천에서 가장 잘 느꼈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내게는 춘천사람들이 제일 행복해 보였달까.


물론 이것은 실제로 어느 도시의 사람이 행복한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아주 작은 경험을 통해서 내가 받은 인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무의미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내가 박이추 커피공장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그 점원들이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커피를 사랑하고 커피를 만들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렇다면 맛은 일단 어느 정도는 될 것이고 그 맛은 행복한 기분에 훨씬 더 맛나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 관광객을 끌고 싶은 지자체들은 아무래도 손님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신경쓰기 마련이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이 제일먼저 포기하는 것은 대개 그들 스스로의 기분이다. 그리고 한국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그래야만 장사가 되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대개 돈을 버는 댓가로 내 기분이 더러워지는 것이 공평한 거래라는 식으로 사고 한다. 


하지만 내가 춘천에 가건 강릉에 가건 경주에 가건 나로서는 기본적으로 그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보고 깊다. 예를 들어 내가 맥주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곳사람들은 평소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어설픈 맥주집을 잔뜩 만들어 나에게 맥주를 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 입맛에는 좀 맞지 않는 면이 있어도 최고의 막걸리를 마셔보고 싶은 것이다. 내 입맛에 안맞는데 그게 최고의 막걸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까? 중요한 점은 그 막걸리가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막걸리라는 점이다. 즉 현지사람들이 충분히 만족하면서 마시는 것이 최고의 막걸리다. 나는 그런 걸 체험하고 싶다. 나는 행복한 삶을 체험하고 싶다. 누군가를 노예처럼 부려서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여행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전주 닭갈비가 더 맛있어도 춘천사람들은 이걸 더 좋아한다고 하면 나로서는 그걸로 충분히 좋다. 


그러므로 여러 지방의 사람들이 나같은 관광객을 부르기 위해서 그들의 행복부터 먼저 포기한다면 뭔가 앞뒤가 맞질 않는다. 요즘같은 시대에 뭔가를 흉내내기는 쉬운 일이다. 가장 맛있는 고기도 술도 사실 금방 타지역으로 가져올 수 있다. 춘천닭갈비를 왜 서울에서 못만들겠는가. 하지만 가져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있다. 그것은 행복한 사람의 네트웍이다. 행복한 공동체다. 우리는 경치보다 음식보다 멋진 박물관보다 사실은 행복 바이러스가 더 좋다. 그렇기에 수고스럽게도 뭔가에 미쳐서 그게 행복하다는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같은 맥주를 마셔도 독일가서 마시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독일인의 맥주에 대한 열정때문이다. 


그런 것이 없이 그저 돈벌겠다고 각자 아귀다툼을 하는 것같은 모습만 보게 되면 입맛이 쓰다. 그런 태도는 결국은 비효율로 이어진다. 그 지역의 정체성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옥마을에 고층빌딩짓겠다는 태도로 표현되는 것이다. 진정한 고부가가치 산업은 행복이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도 아주 많은 것같다는 것은 한국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 사람들은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스스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뭐가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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