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전주 생활

아들과 전국 여행 3

by 격암(강국진) 2017. 8. 14.

경포대 자전거 타기를 마치고 우리는 경포솔향온천 찜질방으로 갔다. 여행에 임박해서 숙소를 찾았기 때문에 강릉에서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숙소를 발견하지 못했던 우리는 찜질방에서 하루밤을 자기로 했다. 어디가 좋은지는 모르고 인터넷에서 강릉 찜질방이라고 검색하니 여기만 죽 나오기에 이곳으로 정했는데 경포대에서 멀지 않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찜질방은 그냥 잠만 자는 역할 뿐이었다. 하루 만이천원인데 들어가보면 시설이 다 낡았다. 식당도 대부분 문을 닫고 남아있는 구내식당도 참 손님이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게 누추하다. 메뉴도 얼마 안되고 맛도 그저 그렇다. 게다가 작은 맥주 한캔에 3천원이라고 하니 맥주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문열고 나가서 슈퍼에 가면 반값도 안하는 캔맥주가 아무 노력도 없이 저렇게 비싼 것으로 둔갑해야 하나. 


한국에는 찜질방문화가 있지만 일본에는 온천문화가 있다. 일본에는 정말 목욕탕이 많아서 일본의 목욕탕 유람기를 그린 드라마나 책들도 나는 몇번 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낮의 목욕탕과 술이라는 드라마가 그렇다. 일본의 목욕탕 중에는 건강센터라고 해서 찜질방처럼 잠을 잘 수 있는 곳도 있는데 온천여관같이 곳형식을 갖춘 곳은 아니고 찜질방처럼 잠을 자는 곳이다. 그러므로 물론 싸다. 일본의 비싼 숙박요금이 부담되는 여행객에게는 고려해 볼만한 선택지다. 


비교하자면 한국의 찜질방은 아무래도 찜질 자체에 강조점이 들어가 있는 것같다. 반면에 일본의 건강센터는 먹고 마시는데에 좀 더 강조점이 있다. 일본의 방송을 보다보면 일본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표적 멋진 시간이란 욕조에 몸을 담그고 나와서 시원한 생맥주를 맛있는 술안주와 함께 마시고 먹는 것이라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된다. 목욕과 먹는 것이 한국보다 더 깊숙히 연관되어져 있달까? 일본에 오래 살아서 일까. 목욕을 하고 나니 나는 일본의 목욕탕에서 마시던 그 얼음 생맥주가 그리워졌다. 


아침 5시가 되기 전에 경호를 깨워서 경포해변으로 나갔다. 해뜨는 것을 구경할까 해서 였는데 구름이 많아서 인지 일출 자체는 볼 것이 없다. 사실 내가 어릴 때에는 일출 일몰에 노을이 지고 해가 뜨는 것이 아주 멋졌는데 언젠가 부터 한국의 하늘이 흐려지더니 멋진 일출 일몰을 보는 일이 아주 드물어 졌다. 일출을 본다는 계획은 실패다. 





경포해변



하지만 그래도 강릉에 왔는데 해변 산책도 안하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해변에는 한 번 나와야만 했다. 아침에 나와본 해변은 멋졌다. 수영하기에는 나쁘겠지만 큰 파도가 치는 바다도 멋졌고 주변을 나는 갈매기도 보기 좋았다. 해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침공기를 즐기며 산책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해변에 거대하게 보이는 큰 건물이 눈에 띈다. 짓고 있는 중이었는데 싱가폴의 유명한 호텔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고층빌딩위에 배를 올려놓은 것같은 빌딩 말이다. 해변에는 가끔은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감시요원이 와서 그런 사람을 불러 낸다. 그리고 그 감시요원이 가고 나면 또 뛰어든다. 감시요원이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용하다. 그 다음날인가 나는 삼척에서 바다에 뛰어든 사람이 죽었다는 기사를 봤다. 확실히 동해바다는 수영할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바닷가에만 가면 고해소에서라는 음악을 듣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는데 난데 없이 쓸쓸한 음악을 틀고 분위기를 잡는 아빠에게 아들은 다행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와 이런 음악을 듣는다고 내 인생을 한탄하는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젊었을 적부터의 습관이다. 젊었을 때 몇번 그랬던 것의 추억때문인지 바닷가에만 오면 나는 이 음악이 그립다. 그리운 것은 아마도 젊은 나쪽일 것이다. 

 



아침바다를 산책하고 우리는 맥도널드 강릉점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내 취향은 아니고 아들의 취향이다. 맥도널드 강릉점은 좀 기이한 곳이었다. 일단 내가 먹어본 전세계 아침세트 중에서 최악의 맛을 보여 준다. 그런데 맥도널드에서 먹어본 커피중에서 커피만은 이 맥도널드 강릉점이 제일 맛이 좋았다. 아침에 새로 뽑은 커피라서 그런 걸까? 이 맥도널드로만 판단해 보자면 강릉은 음식문화에서는 기본이 안되어 있는데 이상하게 커피만 발달한 곳처럼 느껴진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인 경주를 향해서 출발했다. 동해안쪽에는 멋진 바다 풍경이 계속 나타났지만 옆에 앉은 경호는 자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일에 바쁘다. 바다 한번 보는 일이 정말 대단한 일이었던 세대와의 세대차이일까? 


경주에 가는 도중에는 포항공대에 멈춰서 점심을 먹었다. 가볍게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정말 오랜만에 내가 다녔던 학교를 둘러보는 일이었기 때문에 내게는 나름 중요한 일정이었다. 중간에 군복무로 한두해 떠나 있었기는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10년 이상을 보냈다. 


포항은 내가 기억력이 나빠서 인지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바뀌어 있었다. 공대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여기가 어디지 하는 생각만 계속 들었다. 하지만 포항공대는 놀라우리만치 십오륙년전에 비해 바뀐게 없다. 그저 큰 건물 몇개가 더 들어서 있고 전에는 물이 흐르던 곳을 막아서 공사를 해놓았을 뿐이다. 


나는 게르브와라는 미술동아리의 회원이었는데 학생회관에 올라가보니 그 동아리가 그대로 있다. 아틀라스라는 디스코 파티를 하던 곳에는 여전히 아틀라스라는 이름의 입간판이 서있었다. 요즘도 하나보다. 학생회관에 피아노가 놓여져 있어서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곤 했던 곳에는 지금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나는 포항공대 2회다. 그래서 포항공대에 있는 동아리나 전통이 만들어지는 장면에 있었던 세대인데 그런 입장에서 보니 게르브와는 물론 낯익은 동아리들이 아직도 그냥 있다는 사실이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신기하다. 그 동아리를 만든 사람들 그리고 그 이름을 정한 사람들은 그렇게 긴 전통을 만들 생각이 없이 그냥 이거어떨까 싶어서 한번 해본 것인데 그게 30년을 유지하면서 흘러간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포항공대를 떠날 때 작은 나무를 한그루 심었다. 거칠게 심어진 그 나무는 아마도 죽었을 테지만 이번에 방문해서 그 자리에 가보니 전에는 없던 거대한 나무들이 몇그루나 있다. 혹시 그 나무중의 하나가 내가 심은 나무가 아닐까? 게르브와를 볼 때도 그랬지만 나무를 볼 때도 뭔가를 심었던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것이 우연이다. 그저 어쩌다보니 그곳에 나무를 심은 것이다. 하지만 그게 자라나서 커지면 그것은 바꾸기 어려운 전통이 되고 역사가 된다. 



내가 살던 기숙사. 1988년에 입학할때와 차이가 거의 없다.


대학때 동아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다.

전통의 유지 그리고 그 초극이란 이런 여행에서도 아주 자주 만나게 되는 주제다. 처음 포항공대가 설립되던 시절 포항공대를 만든 사람들 그러니까 고 김호길학장같은 분은 나름대로 비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설대학은 아무래도 남을 쫒아가야 하는 추격자의 입장에 서기 마련이다. 세워지면서 부터 남들이 따라가야할 면으로 가득 찬 대학을 만드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데 명확한 비전이 있기도 어렵지만 무엇보다도 그 비전을 실현시킬 사람과 자원이 처음부터 모두 있다는 것은 진짜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비전이 있어도 그 비전을 모든 사람들이 100%이해하고 그렇게 움직이는 거대한 집단을 하루에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새로이 출발하는 것은 아무래도 잘나가는 것을 흉내내기 쉽다. 말하자면 한국의 중소도시가 일본이나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 관광도시를 흉내내서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식이 되기 쉬운 것이다. 추격은 이미 답이 있는 것이니까 효율도 좋다. 그런데 추격자의 입장은 언젠가는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미 1등이 되어서가 아니라 나만의 것을 계속 만들어 가지 않으면 결국은 존재감이 없어진다. 결국 흉내는 흉내의 한계가 크다. 다른 곳과는 상황이 다르니까 그렇다. 교토 흉내낸다고 교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일단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추격자의 입장에서 나만의 것에 도전하는 사람으로 변화해야 하는데 이것을 하기란 매우 힘들다. 어떤 의미로 이미 어느정도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을 버리고 실험을 해야 한다는 뜻이며 이제까지 내가 비전을 명확히 아니까 나를 따르라고 하던 사람이 사람들에게 각자 스스로 새로운 생각을 해보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종간을 쥔 사람이 그걸 놓기란 힘들다. 처음에 만들 때는 그냥 목표를 향한 전진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창조를 위한 파괴를 해야 한다. 있는 걸 버리고 처음부터 이걸 왜 이렇게 해야 하나를 고민해야 하는데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려워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상황은 조금씩 더 안좋아진다. 흉내는 나만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혁신을 하겠다는 의지도 때를 놓치면 줄어든다. 그런 사람들이 지쳐서 빠져나가게 되면 남는 것은 더욱 더 그저 살던대로 살자는 사람뿐이 되니 우리는 민주적으로 그저 살던대로 살기로 결정하게 되기 쉽다. 이건 포항공대만의 일이 아니라 춘천도 강릉도 경주도 모두 겪는 일일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둘러본다면 그들은 어쩌면 그냥 잘 혼합된 한 색깔의 한국을 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본 한국은 여러가지 색깔의 물감들이 혼합되지 못한 채 겉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 많았다. 그것이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인지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비명인지는 세월이 흘러가 봐야만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여행 > 전주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포해수욕장과 신지명사십리 해수욕장  (0) 2017.09.23
아들과 전국여행 4. 끝  (0) 2017.08.14
아들과 전국여행 2  (0) 2017.08.12
아들과 전국 여행 1  (0) 2017.08.11
동네에서 놀다  (0) 2017.02.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