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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관용과 박근혜

by 격암(강국진) 2017. 3. 29.

안희정의 협치 이야기가 대표적이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와 그 일당에 대한 사법적 판단에 대해서 사회적 관용 차원의 접근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같다. 인간적으로 말했을 때 우리는 모든 인간에게 희망을 가져야 하고 그 인간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가정을 버릴 수는 없다. 따라서 심지어 대량학살범을 사법적으로 처리할 때도 우리는 법의 판단과는 별도로 그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아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관용이란 무한대일 수 없다는 말을 할 때 그것은 반드시 양의 문제 즉 너무 나쁜 짓을 크게 했으므로 용서가 안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그보다 질의 문제 즉 이러저러한 일은 사회적 금기로 용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 적폐청산이라고 할 때 이것을 양의 문제보다는 질의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 


지금의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은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그저 단순한 부패사건의 재판으로 볼 것이 아니라 미국의 남북전쟁처럼 한 나라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싸움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 싸움이 제대로 결말지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망할 수도 있다. 이미 상당한 위기에 있다. 


이 싸움의 본질은 한 개인의 권력욕이나 물질에 대한 욕심이 아니다. 박근혜나 최순실에 대한 미움과 그에 대한 복수가 핵심이 아니다. 이 싸움의 본질은 언제까지 우리나라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운영되어져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근대적 사고방식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세상의 명확한 인식이다.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현대 과학을 이룬 혁명의 본질은 사물을 정밀한 측량에 의거해서 계량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즉 나쁘다 좋다라던가 좌파다 우파다 같은 이분법적인 이해를 뒤로 하고 구체적으로 측정가능하고 증명가능한사실에 의거해서 사물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별거 아닌 것같지만 그렇지 않다. 커다란 벽돌로는 섬세한 모양의 물건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인식과 말의 방식 자체가 단순한 사람들은 제 아무리 열심히 생각을 해도 박근혜나 최순실처럼 그 말과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전 근대적 사고방식은 왜 위험한가. 오늘날 하나의 사회는 마치 거대한 항공기나 우주선같은 기계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긴밀하게 조립되어 빠르게 반응하고 강력한 힘을 낸다. 그 덕분에 오늘날 인류는 한두세기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속력으로 일들을 처리할 수 있다. 전근대적 사고방식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치 왕조때나 있었을 것같은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왜냐면 세상에 대한 인식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팀으로서,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로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문제 해결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 맘대로 행동하려고 한다. 그것은 마치 원숭이가 제트기 엔진 속으로 물건을 던져넣는 것처럼 위험한 장난이 되고 만다. 


우리는 이 전근대성을 여러군데서 발견한다. 박근혜의 집앞에서 마마를 외치던 지지자도 있었고 박근혜를 궁궐에서 쫒겨난 여인으로 파악하는 국회의원도 있었지만 그건 사소한 예들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시민들이 경악하는 것은 전체국가가 얼마나 사소한 일에 휘둘렸나 하는 것이다. 이화여대라는 명문대가 정유라라는 한 학생에 대한 특별취급을 위해 흔들리는 것은 정말 시작에 불과했다.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정유라 말사주고 정유라 개 관리하는 문제가 나라를 휘둘렀다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실은 처참했고 그때문에 사람들은 상처입었다. 최순실과 박근혜는 현대적 사회에 대해 무지했다. 지금도 박근혜가 했다는 발언들을 보면 그런 인식이 가득하며 그때문에 박근혜는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가 뭘 잘못했는지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떤 특혜로 이어진다는 것의 중요성을 아주 사소하게 생각한다. 대통령 기록물을 얼마나 심각하게 다뤄야 하며, 국가 기밀을 얼마나 엄중히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없다. 대통령처럼 바쁜 사람이 출근도 안하고 근무시간에 미용시술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아무 직책도 없고 스스로 그저 가정주부라고 말할 만한 최순실에게 국가기밀이 줄줄 세고, 그들의 기획과 청탁이 그대로 국정에 반영되도록 하면서도 그걸 사소한 것으로만 생각한다. 최순실이 돈을 받으면 그건 내가 안받은 거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은 할머니들 친목회가 아니라면 친목회를 운영해도 박근혜가 하는 것처럼 하면 분란이 난다. 사람들이 비선실세에 극진한 대접을 해주는 것이 설마 최순실이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서 그랬다는 말인가?  


도대체 수천억 수조원에 이르는 예산이 들어가는 국가정책이  엄밀한 관리속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그건 마치 백층짜리 건물지으면서 측량도 안하고 눈대중으로 짓는 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건 화단에 30센치짜리 벽을 세우는 것과는 그 피해가 다르다. 박근혜와 그 지지자들의 최대 문제는 이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동네 친목회와 국가를 구분하지 못하고 따라서 국가 운영에 있어서 절차와 투명성의 문제를 지극히 사소한 것으로 생각한다. 기자에게 질문 안받는 것도 사소한 것으로만 생각할 것이다. 그 때문에 한국 사회가 얼마나 피해를 입는지 감이 없다. 단 하나의 판단으로 국민연금이 수천억이 손실이 났다고 해도 그저 그려려니 할 뿐이다.  무리한 사스추진이 우리나라에 끼치는 해악이 얼마일 것이며 개성공단 폐쇄 결정으로 우리나라가 입은 피해는 얼마인가. 


결정도 잘못된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으로 과정도 중요하다. 사실 어떤 결정도 실패가 없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결정이 비밀리에 졸속으로 밀어부쳐진다. 그런데 이런 국정 속에서 최순실과 그 일당들은 언제나 신원확인도 없이 청와대를 드나들고 대통령은 심지어 총리나 장관도 거의 만날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도 국가는 전진한다. 이러니 비극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꽤 있다. 그것이 상당히 많은 시민들을 경악하게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경악보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의 심각함을 공식화하고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앞에서 현대 사회를 거대한 항공기 같은 기계로 묘사했다. 원숭이가 몰고 원숭이가 정비하는 비행기는 추락할 것이다. 이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야당성향의 국민들 뿐만 아니라 여당성향의 국민들에게도 매우 중요하지 않은가? 심지어 재벌들도 이런 식으로는 몇년 한국에서 사업한 후에 외국으로 도망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박근혜를 겪고서도 이 문제를 깊이 느끼지 못한다면 정말 이 나라의 미래는 위험하다. 벌어진 일의 책임은 박근혜가 가장 크지만 보다 상위의 수준에서는 이런 사고 방식 자체가 문제다. 이제 더이상 거대한 시스템을 구멍가게처럼 운영해서는 안된다. 


박근혜와 그 일당들의 재판은 단순히 개인들의 죄를 판단하는 것이전에 우리 안의 전근대성을 심판하는 재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재판들이 한국의 미래를 좌우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심판은 차차 나중에 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니다. 도대체가 박근혜같은 사람이 21세기에 한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런 심판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도 조선시대나 해방직후 대통령과 왕이 구분이 안되는 상황에 살던 사람들이 현대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을 수렁에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박근혜에서 멈추지 않는다. 국민 다수는 탄핵정국을 통해서 이미 그들이 이런 전근대성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소수라고는 해도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소수라고 해도 공직이나 재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이 과거의 정권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사회적 관용의 의미란 무엇인가? 엄청난 돈과 인명이 오고가는 일을 이렇게 대충 처리한 사람들을 그저 사소하게 처분한다는 것은 우리들안에 아직도 있는 원시인들에게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나는 얼마전에 고등학생들에게 10억정도의 거액을 주면 범죄를 저지를 것이냐는 질문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상당수가 긍정적으로 답했다고 한다. 오늘날 돈벌기, 취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하면 몇년 감옥에 다녀오면 10억을 벌 수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이 다수라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 엄청난 돈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처벌은 관용적으로 행해질 거라는 메세지를 보낼 수 있을까? 왜 우리나라는 그런 권력이 없는 소시민들과 말단 공무원들에게는 만원이 오고간 것으로 처벌이네 뭐네 하면서 수천억 수조가 오고가는 일에 대한 판단에는 관용이 나오는가. 그런 범죄가 용산참사같은 비극을 만드는데도 우리는 그걸 사회적 관용, 인간적 동정의 차원에서 다뤄야 할까?


한국도 이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상식을 상식이게 해야 한다. 더 이상 축구를 하는데 누군가는 공을 들고 뛰는 일이 자꾸 벌어져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에 가득한 갑질과 반칙은 모두 박근혜와 최순실이 대표하고 있으며 대다수 국민들은 그 일에 분노하고 있다. 사회적 개혁의 첫걸음은 박근혜와 그 일당에 대한 엄중한 처벌에서 시작된다. 그 일에 실패한다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을 세우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고 그것은 아마도 아주 비참한 것이 될 것이다. 누구도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된다면 세월호 참사같은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나라에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된 후에 후회하는 것은 늦어도 너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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