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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가장 어리석은 사람

by 격암(강국진) 2017. 4. 1.

17.4.1

전부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고통은 피하고 즐거움은 즐기려고 한다. 생각이 없는 사람은 단세포동물처럼 즉각의 즐거움과 고통에만 반응하지만 조금 더 생각이 있는 사람은 다가올 고통은 피하려고 하고 다가올 즐거움은 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행동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통상 지혜롭다고 생각되어지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는 열심히 고통을 피하지만 그러한 행위는 결국 고통을 진짜로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누적시키고 있을 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걷는 것이 귀찮다고 매번 차를 타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말한다. 걷는다는 힘듬을 계속 피하다보면 다리가 약해지고 건강이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지적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우리는 열심히 인생의 고통을 피하려고 아둥바둥대며 있을 수 있는 거대한 비극이 우리에게 닥쳐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려는 우리의 노력이야 말로 바로 걷는 힘듬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열심히 인생의 비극을 피해보지만 실은 그 인생의 비극을 피한 것이 인생의 비극을 만들어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런 면이 있다. 누구도 진정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지 않으면 죽자 사자 살게 되지는 않는 법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고통이란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 어른들로 부터 많은 충고를 들었다. 그리고 자라나면서 조금 다른 말도 듣게 된다. 그런 충고의 말들은 대개 어리석은 것이며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을 가지고 인생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중에 자식을 키우거나 제자를 키우는 입장이 되어보면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을 덜 겪게 하고 싶다. 경험이 있다거나 조금 더 멀리 내다 볼 수 있다는 이유로 고통이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는 열심히 고통을 피할 방법을 조언해 주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은 결국 나의 고통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의 조언을 듣는 일은 거의 없다. 게다가 그들의 반응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은 스스로의 고통을 즐기기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이 날 것같으니 불장난을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면서 또 한번의 화재를 피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조언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지도 않은 불 때문에 귀찮기만 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설사 조언을 어기고 불장난을 하다가 불이 난 일이 있었다고 해도 우리는 쉽게 남의 조언을 따르지 않는다. 다시 한번 이번만은 전과는 다를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것을 보는 입장이 되면 그것은 마치 스스로를 괴롭히기 위해 자해를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불에 손을 넣어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는데 다시 불에 손을 넣는다. 자신만만한 우리의 모습도 누군가가 보기에는 이렇지 않을까? 마치 자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결국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어리석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자기 말처럼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모른다. 듣는 사람은 고통을 겪지 않았는데, 현실에 대한 체험이 없는데 그걸 겪은 사람처럼 행동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듣는 사람은 자기가 남에게 무슨 혜택을 입었으며 자기가 다른 사람의 조언 때문에 어떤 어려움을 피했는지 모른다. 그저 자기가 이룩한 것만을 크게 볼 뿐이다. 열심히 남들이 불을 꺼주는 인생을 살았는데 그게 다 자기 탓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니 어리석은 것이다. 

 

노자 41장에는 하등의 사람에게 비웃음을 받지 않는 도는 참된 도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53장에 보면 큰 길은 지극히 평탄하지만 사람들은 옆길을 좋아한다는 말도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옛 사람들도 앞에서 말한 것과 똑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고통을 피할 수 없고 어떤 때는 고통을 피해서도 안된다. 그걸 알지만 우리는 번번히 여러가지 이유로 고통을 회피하곤 한다. 예를 들어 나이가 들게 되면 아무래도 고통이 더 두려워진다. 변화가 두렵다. 그러니까 변화하기 위해 죽을 것처럼 고통을 받기보다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어야겠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기 쉽다. 젊고 패기에 찬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그렇고 같은 사람도 늘상 새 것만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겁이 없기는 어렵다. 

산다는 것이 이러니 잘 살기 위해 작은 꾀로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일지 모른다. 우리가 설사 큰 지혜를 가졌다고해도 과연 어느정도까지 고통이 피해질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봐야 우리는 시험관 속의 짚신벌레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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