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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주유구 덮개가 준 교훈들

by 격암(강국진) 2017. 8. 21.

17.8.21

아침에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렸다. 그런데 주유구를 덮은 덮개가 열리지 않는 것이다. 이리 저리 힘을 써봐도 덮개는 움직이지 않고 그렇다고 힘을 너무 주면 파손될 것같았다. 순간적으로 내 마음은 어두워졌다. 내 차는 일본에서 타다가 가져온 차이기 때문에 이걸 어디가서 보여줘야 할지도 막막했고 지금 당장 기름이 없는데 이러다가 오도가도 못하게 되면 일이 정말 커진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오늘은 차를 꼭 써야 할 일도 있었다. 단지 연료탱크 덮개가 열리지 않는 것인데 일은 한없이 심각해 보였고 내 마음은 무거워졌다. 그런데 잠시후 내가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덮개는 저절로 열렸다. 덮개를 잘 살펴봐도 뭐가 문제였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기름을 넣고 덮개를 평상시처럼 닫은 후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는 그저 내일 또 똑같은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아주 많은 부분으로 되어져 있다. 너무나 많은 부분으로 되어져 있어서 우리는 대개 그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통상 자동차의 주유구 덮개를 내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열면 열리는게 당연한 물건이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를 일으키면 그것때문에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순식간에 마치 손톱밑에 가시가 끼어든 것처럼 신경이 쓰이고 평상시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그런 작은 일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된다. 

내 주변에 주유구 덮개만큼 중요한 일 혹은 그 보다 더 중요한 일들은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나는 다만 그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서 어제 하던 역할을 오늘도 할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어제 괜찮았던 부부관계는 오늘도 괜찮을 것이고, 어제 괜찮았던 혈압은 오늘도 괜찮을 것이며, 어제 괜찮았던 집은 오늘도 괜찮을 것이고, 어제 괜찮았던 아이들은 오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들 중의 하나가 문제를 일으키면 우리는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우울해 진다. 그러다가 그것들이 또 괜찮아지면 우리는 그저 내일은 같은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세상일이란게 복잡해서 우리는 대개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것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에서 우리는 적어도 두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단순한 삶이란 어떤 신비한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위기 관리를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주사위 하나를 던져서 6이 나오지 않을 수는 있지만 주사위 30개를 던져서 하나도 6이 나오지 않을 확률은 1퍼센트 미만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이 여러 개의 부분으로 되어져 있고 그 중의 하나만 고장이 나도 우리의 삶도 멈춰서는 형태라면 우리의 삶에는 희망이 별로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의 삶에는 중요한 일이 아주 많다. 30개만 되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한껏 우리의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그 중의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인생이 멈춰서게 운영한다면 우리는 지금 휘발유 탱크 위에서 불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복잡한 시스템의 경우에는 그 시스템이 멈춰서는 엄청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비상사태를 대비한 여력을 비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전력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예비 전력을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것은 전력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면 피해가 그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복잡한 시스템은 지불해야 할 댓가가 크다.

 

하지만  우리는 탐욕스럽기 때문에 괜찮다는 유혹에 빠지기 쉬워서 좀 더 복잡하게 일을 벌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우리는 대개 실패하기 전까지는 일을 자꾸 확장만 한다. 인생 계획을 세우면서도 때로 우리는 아주 가느다란 계획을 세운다. 즉 5단계 10단계로 일을 계획하면서 추진하는데 그 과정 과정 중의 하나만 잘못되도 뒤로 돌아갈 길도 없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계획은 대개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현실에서는 거의 언제나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지나치게 꾀를 쓰고 복잡해 보이는 계획은 설사 아무리 천재적으로 보여도 대개는 잘 되지 않는 법이다. 

 

노자 53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만일에 내가 약간의 지혜라도 가졌다면 대도를 걸을 것이며 옆길로 들어설까 경계하리로다.

대도는 지극히 평탄하건만 사람들은 옆길을 좋아하는 도다. 

 

괜히 기기묘묘한 꾀를 부리는 것은 사실은 대개 상식적인 길보다 못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기묘한 꾀를 추구하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현명하다면서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 큰 길을 말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말한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우리가 설사 모든 조심을 다 한다고 해도 결국 우리의 삶은 덜거덕 거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대개 그 문제만 봐서 그렇다. 즉 나의 수없이 많은 다른 주사위에서 6이 안나온 것은 그냥 당연한 것이고 문제의 주사위에 하필 6이 나온 것은 재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잘된 것은 나의 노력탓이거나 당연한 것이고 못된 것은 내가 운이 없어서다. 하지만 모든 방면에서 모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냥 약간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잘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그것은 우리가 대개 좋은 일만 말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렇다. 나쁜 일을 나쁘다고 한탄만 해봐야 좋아질 것이 없는데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좋은 것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에게 우리의 사생활을 보여주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우리의 실제 삶보다 훨씬 더 멋져보이는 착시를 만들어 내고 주변 사람을 종종 우울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보면 뭔가 근사하고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뿐이라고 느끼게 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차분히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면 문제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그 문제는 치매에 걸린 부모를 간병한다던가, 자기가 아프다던가, 아이가 심각한 문제를 만들고 있다던가, 재정적인 문제가 있다던가, 직장에서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겨서 자신의 경력이 위기에 처한다던가 하는 일같은 것이다. 이혼도 흔하고 자살도 흔한 세상이다. 경쟁도 말할 수 없이 심하다. 그러니 아픔이 없고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왕처럼 사는 이건희도 그 딸이 자살한 것으로 나는 들었다. 형제간의 싸움도 심했다고 한다. 남아있는 자식인 이재용도 이부진도 모두 이혼했거나 이혼소송중이다. 과연 그들에게 아픔이 없었을까?

 

우리의 삶은 덜거덕 거리기 마련이다. 나는 아내에게 종종 열대박이 한쪽박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하곤 한다. 이 말은 인생의 여러 측면에서 열개가 뛰어나도 그것이 하나의 큰 문제만 있으면 하나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사회적 유명인사도 하나의 비극적 문제때문에 전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은 대개 그들의 열 대박에 주목하지만 그들의 한 쪽박에는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란 연료탱크 뚜껑이 안 열리는 일만으로도 우울해지는 법이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닌 척해도 그 하나의 문제가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빨아들이고 있을 수 있다. 

 

차는 지금 주차장에 있다. 나는 지금도 연료탱크 뚜껑이 열리지 않다가 저절로 열린 건지 궁금하다. 그리고 내일 똑같은 문제를 겪을까봐 겁이 난다. 아침에 있던 일로 이런 저런 일이 다시 생각이 나서 일을 여기에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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