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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여유있는 삶이란 어떻게 가능한가

by 격암(강국진) 2017. 11. 11.

17.11.11

둘째와 함께 지리산에 다녀오는 길에 나는 차에서 문득 여유있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제와 돌아보니 그렇다.  나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서 풀이 죽은 듯 보이는 아이에게 세상에 대한 관심을 더 가지게 하고 싶은 뜻으로 그런 말을 했던 것같다. 세상에 대한 관심, 삶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여유있는 삶은 모두 연관되어져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한 것은 이렇다. 만약 네가 방안 가득히 만화책이 있고, 만화책들을 읽는 것이 즐겁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는 네 삶에 대해 여유를 가지게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왜냐면 삶에는 만화책을 보는 것말고도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아직 해보지 않은 또다른 일들이 있겠지만 먹고 살 수 있는 한 그 만화책으로 가득 찬 방으로 돌아가 만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삶은 일단 어느 정도 즐겁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즐거움은 말하자면 삶이 주는 여분의 선물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가 작고 소박한 즐거움을 가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수학문제를 풀거나 고전을 읽거나 혹은 드라마를 보거나 어떤 게임을 하는 것이 나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준다면 그것으로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삶의 마지막 의미를 지킬 수 있다. 굶어죽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그 작고 소박한 취미나 삶의 방식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최저선의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고 삶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이 선물같지가 않고 무슨 처벌같은 것이다. 작고 소박한 즐거움이 있다면 우리는 그 이상의 것을 선물로 생각하면서 여유가 있을 테지만 꼭 뭔가를 이뤄야 겠다는 절박함에 빠지면 그 뭔가를 이루지 못할 경우 사는 것에는 의미가 없어 보이게 된다. 마치 싸움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승리를 하면 본전이고 패배를 하면 엄청난 손해를 본 것처럼 느끼게 된다. 복권을 사놓고 벌써 그 복권은 당첨된 상태로 삶에 대한 기준점이 올라가 있다. 그래서 복권이 당첨되도 기쁘지가 않다. 그건 당연한 것이니까 그렇다. 복권이 당첨되지 않으면 나는 이렇게 못산다면서 안달복달하게 된다. 

 

물론 나의 이런 지적에 대해서 팔자 좋은 사람의 팔자좋은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소박한 즐거움을 아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경쟁을 하고 욕망을 가지기는 하지만 그들을 불안감에 빠지지 않게 하는 어떤 것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성공할 수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예에는 이런 것이 있다. 땅바닥에 줄을 긋고 그 위를 걸으라고 하면 우리는 그걸 잘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미터나 이백미터쯤 되는 높이에서 그걸하라고 하면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할 수 가 없는데 그 이유가 바로 그들은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다르게 말하면 바로 여유의 부족이다. 실패하면 죽는다는 생각이 우리의 몸을 딱딱하게 하고 결국 진짜로 실패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유는 팔자가 좋아서 가지는 것이 아니다. 여유는 이미 성공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사치가 아니다. 여유는 오히려 성공하기 위해서 꼭 가져야 하는 필수품이고 재능이다. 여유만 있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유없이 크게 성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이 돈을 가지고는 최고의 도박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전재산이나 생명을 걸고는 같은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실패가 두려워서다.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최고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개 경쟁에 이기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시야가 좁아진다. 그래서 어지간히 운이 좋지 않고는 성공할 수가 없다. 전교1등 하는 학생은 열심히 공부한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성적이 나쁜데도 더 성적에 안달복달하는 학생들은 많다. 공부하지 않고 우등생이 되는 방법은 없지만 최고의 우등생이 되기 위해서는 성적이나 남의 칭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대범함과 여유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지름길을 택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지름길을 택하는 선택이 한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유의 근원은 어디일까? 그것이 소박한 즐거움이고 낮은 눈높이다. 모든 것을 건 것같아도 여전히 내게 남아있는 어떤 것이 우리 삶의 기본은 지켜준다고 할 때 우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작은 기초를 무시하고 크고 빛나는 것만 찾을 때 우리는 오히려 더 가난해 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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