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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보이지 않는 영웅들

by 격암(강국진) 2018. 5. 11.

18.5.11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고 또한 돈으로 거래를 하는 자본주의에 중독되어져 있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영웅을 보지 못하는 흔한 이유다.  

 

먼저 가진 것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는 산소나 물처럼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도 그것을 구하는 일이 어렵지 않으면 그 가치를 잊을 때가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것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강하게 그리고 훨씬 자주 일어난다.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렙은 그 책에서 보이지않는 영웅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불이 났을 때 그 불을 끄는 소방관을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인사건이 벌어졌을 때 격투를 벌여서 그 범인을 검거하는 경찰을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났을 때 적군을 무찌른 장군이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영웅들은 보이는 영웅들이다. 그들이 눈에 잘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주어진 상황에서 그런 영웅을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불은 이미 크게 번졌고 살인 사건은 이미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검거가 늦어져서 시민들이 공포에 떠는 상황이며 전쟁은 크게 번져서 사람들이 죽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해결할 영웅을 우리는 원하고 마침내 그런 영웅이 나타나면 그들이 영웅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보게 된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영웅은 애초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불이 나지 않게 지역을 순찰하고 위험을 제거하는 소방관, 애초에 살인사건을 막거나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퍼지기도 전에 범인을 검거해서 시민들이 공포에 떨게 하지 않는 경찰, 그 존재만으로도 전쟁을 억압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군대나 전쟁이 벌어져도 간단히 그것을 종결시켜 버리는 장군같은 사람들이다. 

 

이런 영웅들은 생각해 보면 훨씬 더 대단한 영웅들인데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영웅들에게 감사하지 않는다. 실은 그들의 존재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왜냐면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고, 우리가 범죄자에게 위협을 느끼지도 않으며 전쟁도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 결핍도 느끼지 않았다. 이럴 때 우리는 화재나 범죄나 전쟁 없이 잘 살고 있는 것을 오로지 자신의 탓으로 생각하게 된다. 물이 부족하다가 물이 생기면 물을 공급하는 사람을 영웅으로 생각하지만 언제나 막대한 물을 공급해서 사람들이 물이 부족한 일이 없도록 하는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가끔씩 물이 조금이라도 부족해 질때마다 우리는 그 사람을 원망한다. 물이 있는게 당연한데 그 사람이 태만해서 물을 공급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영웅의 이야기는 반드시 거대한 스케일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상 모든 곳에서 모든 규모로 존재한다. 제일 흔한 예는 아마도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는 자식일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부모가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냐고 말할 때 물론 많은 경우 자식들은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되며 자신이 부모에게 많은 것을 받았다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생각은 대개 엄청난 착각이다. 

 

자식은 자신이 부모에게 뭘 받았는지를 모른다. 특히 어린애들은 더욱 그렇다. 부모는 많은 경우에 보이지 않는 영웅으로 존재한다. 즉 어떤 종류의 결핍들을 원래부터 막고 있었다. 그러니 그 역할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같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세상에는 아주 많고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외부에서 관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보는 관점이나 자식이 부모를 보는 관점은 부모와 자식으로 이뤄진 관계라는 세계 내부의 관점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외부의 관점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내부적 관점으로는 그렇게 하기 어려운 포괄적 전망을 쉽게 달성하게 된다. 그 관계의 전체가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를 최근에 뒤흔든 부모와 자식들에는 박근혜 탄핵사건의 최순실 정유라 모녀가 있고 대한항공의 조중훈 조현아 부녀도 있다. 일반국민의 입장에서는 이 부모 자식관계로 인해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생길 정도로 많은 것이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간 것이 보이지만 정유라나 조현아가 그들의 부모에게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어?'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정유라가 최순실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식은 자기 앞에 놓여진 밥상위의 계란 후라이 하나가 거기에 놓여지기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부모가 뭘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들의 상상보다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나만 해도 우리 어머니가 젊은 시절 식당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는 것을 최근까지 알지 못했다. 나는 당시 대학에 입학한 뒤라서 집을 떠나 있었고 어머니는 그저 아버지의 수입으로 집에서 살림만 하셨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야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이따금 받던 집으로부터의 원조는 그런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물론 나는 당시에는 그런 걸 알지 못했다. 

 

자식만 그런게 아니라 부모도 그렇다. 부모도 자식이 뭘 해서 자신에게 이런 저런 일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기는 어렵게 자식을 키웠는데 자식이 자기에게 뭔가를 해주는 것은 그저 간단해 보일 수 있다. 자식이 부모를 모르는 것처럼 부모도 자식을 모른다. 결국 부모나 자식이나 모두 인간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영웅의 문제는 이제까지 내가 말한 예보다 훨씬 더 보편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당신이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냐는 말을 늘상하고 있고 설사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친구관계에서도 사업관계에서도 사제관계에서도 부부관계에서도 우리는 사실 무수히 많은 보이지 않는 영웅의 영향을 받는다. 즉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어떤 의미에서 거의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것은 주로 내부적 관점이상의 것 즉 시스템 바깥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외부적 관점을 가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저런 관계의 안쪽에, 이런 저런 사회의 안쪽에 있을 때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런데 돈 중독은 이제까지 말한 보이지 않는 영웅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증폭한다. 이 중독현상은 모든 것의 가치를 돈으로 판단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 중독에 빠진 사람은 1억짜리 연봉을 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이 사회에서 1억짜리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고 3천만원짜리 연봉을 가진 사람은 이 사회에서 3천만원의 존재감을 가진 것으로 생각한다. 거의 같은 노동을 해도 집에서 가사일로 그것을 하면 월급이 없으니까 놀고 있다고 말하면서 나가서 돈을 벌면 수입이 있으니까 그것은 가치있는 일로 여기는 일이 생긴다. 따라서 전업주부들은 자존감을 잃기 쉽고 어떻게 해서든 직장에 나가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여기게 된다. 

 

물론 같은 효과는 남자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적용된다. 집도 놀이도 돈으로 평가된다. 그 집이 50억이래라던가 그 리조트가 들어가는 데 백만원이래라는 말로 우리는 그것의 가치를 말한다. 우리가 돈에 중독되어 있으며 우리는 우리가 결핍한 것만 보게 된다는 것이 합쳐지면 우리는 결국 우리가 행복해지기위해서 진짜 부족한 것은 돈뿐이라는 생각을 굳게 믿게 된다. 이것은 매너없고 못생겼으며 능력도 없는 남자가 자신이 여자에게 인기가 없는 것은 눈썹의 모양이 좋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생각이다. 

 

보이지 않는 영웅효과와 돈 중독이 어떤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하는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 간의 건강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주는 일을 가치있게 생각한다. 그런데 간같은 우리의 장기는 우리에게 월급을 요구하지 않는다. 간은 묵묵히 자기일을 하는 보이지 않는 영웅이다. 우리는 어쩌면 간에게 니가 나에게 해주는게 뭐가 있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간이 고장났다고 해보자. 일을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심하면 생명도 위험해 진다. 치료를 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치료비가 어마어마할 수도 있다. 운신이 어려워지면 그게 또 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돈중심으로 사고를 하다보니 오히려 눈이 더 어두워져서 돈의 기준으로도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나 지금 나가고 들어오는 돈만 보게 되기 쉽다. 보이지 않는 영웅의 금전적 가치는 잊어버린다. 이것은 돈을 벌자고 공기와 물을 오염시켜서 산소와 물을 사서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미친 짓을 가능하게 한다. 보이지 않는 영웅은 엄청난 금전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금전적으로 얼마라고 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돈 중독은 우리로 하여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말그대로 그것은 보이지 않게 된다. 산소가 너무나 중요하지만 결핍이 없을 때 우리가 산소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저것 모두 잊어버리고 있으면서도 스스로가 돈계산에 꼼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자리에 대해서 말씀하는 일이 많았다. 그것은 단순히 정때문에 그리워서만이 아니다. 아버지가 은퇴하신 이후 겉으로만 보면 우리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은 모두 어머니이시고 아버지는 가사노동에 기여하는 것도 별로 없으실 뿐만 아니라 다른 바깥일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책임지는 자리에 앉아계셨다. 우리는 크고 작은 책임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런 자리에 앉아보면 즉각 알 수 있는 것은 하나 하나의 행동과 판단뒤에는 보이지 않는 고민과 부담이 크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책임지는 일 없이 이게 좋다 저게 좋다 말하기는 아주 쉽다. 그러나 책임감을 느끼게 되면 한발 한발의 걸음이 다 아주 무겁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자연스레 어머니는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되셨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는 아버지의 둔한 반응이나 행동이 답답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던 어머니지만 집안에서 책임있는 자리에 앉게 되시고서야 어머니도 그 입장의 어려움을 느끼시게 되셨을 것이다. 큰 일을 하는 것은 없는 것같고 다만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시면서 자식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고 그저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아셨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은퇴한 이후에도 집안의 보이지 않는 영웅이셨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영웅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쓴다. 대표적으로 눈에 보이는 영웅은 바로 돈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웅에 대해서는 너무 관심이 없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목을 올가미 안에 집어넣은채  발디딤대를 걷어차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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