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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아무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말에 대하여

by 격암(강국진) 2017. 2. 16.

17.2.16

딸아이가 친한 친구와 싸웠나보다. 엄마와 이야기하는 것을 옆에서 들으면서 뭐라도 말해 줄 것이 없을까 생각했지만 그 순간에는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관뒀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이런 말을 해줄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완벽하지는 않다.

 

나도 이 말이 필요할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얼마전에는 어느 마을 신문에서 글을 써달라고 했었다. 무료로 글을 써달라고 하는 것인데 그거야 별거 아니지만 일처리가 영 엉망이었다. 나중에는 마치 내가 부탁받아서 써주는게 아니라 내 글을 실어달라고 부탁하는 꼴처럼 변했다.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신문에 글을 올린 것을 보니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또 멋대로 분량을 줄이고 다듬은 모양이다. 그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돈도 안 받고 글을 써주니 그 글을 누가 맘대로 만지더라고 하면 입맛이 쓰다. 그래서 나도 위에서 한 말이 필요했다. 아무도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 말에는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흔히 성자같은 사람들이 위에서 하는 말을 하면서 어떤 일이든 다 용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성자가 아니고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로 모든 일을 다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과대망상증 환자거나 바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성자를 오해하고 있다. 

 

아무도 완벽하지 않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누군가를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이라기 보다는 이 세상은 어디나 그렇다는 것이다. 완벽한 사과를 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든 사과가 여기든 저기든 흠이 있다고 할 때 내가 집어든 사과에 흠이 있다고 해서 서둘러 그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잡는 것이 반드시 현명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 사과도 흠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는 완벽한 사과를 목격하는 것같은 때도 있지만 세상 경험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기분이 들 때 오히려 더 조심한다. 그런 사과의 흠이 오히려 더 클 수도 있다. 

 

세상은 우리의 생각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니 어떤 것도 우리의 생각을 기준으로 하면 흠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화가 나고 불평도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우리는 세상을 온전한 것과 흠결이 있는 것으로 나눠서 생각하는 식으로 살 수는 없다. 그보다는 마치 하얀색이 검정색으로 변하듯 수없이 많은 중간단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세상 모든 것은 이 중간단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저런 일을 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언짢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그 언짢은 기분을 빨리 잊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일 자체를 잊어서는 안된다. 잊었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두가 다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화를 내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과거를 완벽히 잊지 않는가. 모두가 다 완벽하지 않다고 해도 또 전부 다 똑같이 불완전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자꾸 같은 일이 반복되고 더 이상 그런 일을 감당할 수가 없어지면 우리는 그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 화가 나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고 책임질 수 없는데 계속 하다가는 화난 기분을 잊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결과는 같아지는데 누군가를 미워하게 된다. 그건 그 사람을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좋은 일이 아니다. 화가 가라앉고 나면 뭘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을 정도로 남에게 상처를 주게 될 수도 있다.

 

다만 이같은 원칙을 따라도 다시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보는 세계의 넓이 때문에 달라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주 사소하게 불공평한 일을 저질러도 상처입고 화를 많이 내는 것같은데 어떤 사람은 다 잊어버리고 그런 것쯤 웃어넘기는 것같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보는 세계의 넓이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우리는 새로운 우리의 의미를 찾는다. 어린 아이는 사탕하나를 두고 죽일 듯이 싸운다. 그들의 눈에는 종종 사탕이 온 세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며 그들에게는 누가 부모에게 더 인정받는가 하는 것이 온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가치가 더 넓은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작은 사탕싸움에는 잘 끼지 않으려고 한다. 어쩔 수가 없으면 그럴 뿐이다. 누군가의 인정을 바란다고 해도 그 시야가 더 넓어지니 나를 부모에게 나쁘게 말하는 행위도 때로는 귀엽게만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모든 것이 누군가는 무한한 관용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그도 결국 그래봐야 완벽하지 않고, 한계가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더 넓은 세상에서 점수를 매기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많은 행동의 자유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세상과 덜거덕 거리는 관계를 유지해 간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세상은 몰인정하고 불공평하다. 그래도 우리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말중의 하나가 말일 것이다. 아무도 완벽하지 않다. 다른 사람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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