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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연애가 힘든 세상은 누가 만들었나

by 격암(강국진) 2017. 5. 28.

얼마전에 나는 최근에 여자친구와 헤어진 한 대학생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속에서 그 학생은 가난한 남자가 연애를 하는 고충을 쓰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의 연애가 구질구질하고 눈물겨운 일이 되기 쉬운 것이야 옛날에도 지금도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어디나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대개 물질적인 댓가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생일에도 케이크 하나 사주기 힘든 형편이라면 케이크를 못 먹어서 슬픈게 아니라 그런 현실이 슬퍼서 사랑은 우울해지기 쉽다. 나도 학위를 하고 취업도 하기 전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대학생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2017년 현재의 한국에서 연애는 시대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거품때문에 더더욱 아름다운 것이 되기 힘들겠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와 함께 나같은 장년층이나 노년층의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왜 연애를 안하냐고 자주 묻는 것이 종종 잔인한 일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을 새삼 반성하게 되었다. 누구나 젊은 때가 있었고 비슷한 시기를 지나왔으면서도 나이든 사람들은 어느 새 젊은이들의 고충따위에는 둔감해지기 쉽다. 


내가 말하는 시대적인 거품이란 이렇다. 가난한 시대에는 가난한 사랑이 그래도 별로 어렵지 않았는데 한국이 부자가 된 요즘 가난한 사랑은 훨씬 더 힘든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라면을 끓여먹는 것도 믹스커피나 자판기 커피를 나눠 마시는 것도 즐겁고 행복하기만 할 수 있다. 그래서 다들 없었던 시대에는 자판기 커피나 마시고 버스타고 시외로 나가서 산책이나 하는 연애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언론을 통해 나오는 사랑 이야기들은 어떤가. 요즘 있는 집 자식들의 연애는 어떤가. 대학생이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이 시대에는 더 이상 놀랄 것도 아니다. 그 차가 어떤 차냐는 것이 질문거리일 뿐이다. 옛날에는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이 돈쓰는 연애를 했고 그게 잘 티도 안났다. 하지만 요즘은 거리로 나가서 직접 보든 집안에서 SNS나 방송을 통해서 그걸 보든 온갖 종류의 옷이며 음식이며 카페며 호텔이며 여행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런 시대를 외롭게 애인없이 살아가는 것도 힘들겠지만 애인이 있으면 있는대로 그런 시대는 살아가기가 더 힘들다.  좋아하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돈 자랑하는 사람들앞에서 구차해 지는 느낌을 받을 때면 차라리 외롭게 혼자 사는게 덜 아프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공주도 왕자도 아니다. 그런데 연애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기가 공주나 왕자 대접을 받을 것을 기대하거나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이럴 때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가난한 연인들을 괴롭히기 마련이다. 빈부차의 증가는 없는 사람들의 사랑을 더 비참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일이 많다. 


내가 말하는 문화적인 거품이란 이런 것을 고려하고도 한국의 상황이 유독 더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사랑이야기가 돈없는 청춘을 더 아프게 하는 어떤 면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랑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얼마전에 인기를 얻었던 도깨비같은 드라마도 매우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도깨비같은 드라마의 장점을 아무리 칭찬해도 도깨비와 내가 좋아하는 또다른 사랑이야기인 비포 시리즈와 비교하면 한국적인 사랑에는 뭔가 거품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거품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모든 판타지는 어떤 의미로 거품이다. 그러나 판타지가 우리를 아프게 할 때는 우리는 우리가 특정한 판타지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어느새 판타지를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비포 선라이즈는 1995년에 나온 영화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랑 영화계의 전설적인 영화니까 안 본 사람은 꼭 볼 것을 추천한다. 비포 시리즈는 1995년부터 시작해서 9년마다 다시 찍었고 그 후속작인 비포 선셋과 비포 미드나잇이 2004년과 2013년에 나왔다. 영화와 함께 주연배우가 실제로 늙어가면서 20대 30대 40대의 사랑을 그려낸 멋진 영화다. 





비포 선라이즈는 유럽여행동안 기차에서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젊은 미국인 남자와 젊은 프랑스인 여자를 보여준다. 이 글의 문맥속에서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비포 선라이즈에 나타난 사랑의 특색은 이렇다. 그들의 사랑은 어느 정도의 물질적 여유를 전제하지만 그래도 내면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설정 자체가 한가하게 유럽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므로 이들의 사랑을 마냥 가난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리하게 돈을 빌려서 하는 단 한번 뿐인 여행이라는 설정인데다가 이들은 레스토랑에 들어갈 돈도 호텔에 들어갈 돈도 없다. 당연히 화장기 없는 얼굴에 구질구질한 옷을 입고 나오고 그들은 사랑에 빠진후 공원에서 밤을 새운다. 


이렇다보니 그들의 사랑에서 나타나는 것은 주로 책 이야기나 사회적 시선의 문제, 인생에 대해 가지는 기대같이 자신의 가치관이 들어나는 것이 중심이 된다. 다시 말해 그들이 서로에게 반하는 이유는 사람 그 자체다. 영화의 분위기로는 어느 한쪽이 돈자랑같은 것을 했다가는 속물이라는 말을 듣고 꺼지라는 욕설을 들을 것같은 분위기다. 


반면에 너무나 불쌍한 처지로 등장하는 도깨비의 여자주인공 은탁은 가난하지만 언제나 화보를 찍는 것같은 깨끗한 옷과 얼굴로 등장한다. 그녀는 돈이 없어서 힘든 우리 시대의 청춘들을 한편으로는 표현하고 있다. 공부와 알바에 바쁘고 돈돈 하면서 사는 것이 은탁이다. 하지만 역시 그녀는 부유하다. 결국 그녀의 애인은 재벌2세를 넘어서는 신급의 도깨비이며 그녀를 온갖 낭만적이고 사치스러운 장소로 데려가 주는 마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습만 보면 그녀는 해리포터 시리즈 속의 해리보다도 훨씬 더 빛나고 있다. 


도깨비라는 판타지를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 드라마를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분명히 우리 시대의 가난하고 젊은 연인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판타지를 가진 면이 있다. 결국 가난한 여자들은 은탁처럼 똑똑하지도 예쁘지도 않으며 삶은 훨씬 더 구질구질하다. 그리고 은탁의 욕망은 상당히 물질적이고 원초적이다. 로또당첨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로또 당첨되는 이야기를 보는 것같달까. 하지만 물론 현실에서 사람들은 로또에 당첨되지 않으니 이런 이야기에 빠지는 것은 현실을 더 암울하게 보이게 만들기 쉽다. 게다가 물론 이 사랑이 어린 여성과 나이든 남자와의 사랑이라는 것도 한가지 문제다. 


사랑이라는 것이 뭘까? 사랑이 도깨비같은 드라마 속의 낭만적 판타지를 재현하는 것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랑은 실패할 운명이며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시작도 못해보고 우울해지기만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랑이 정신적 동반자를 찾는 것에 대한 거라고 생각한다면 가난한 사랑에도 희망은 있다. 


이성의 멋진 모습에 매혹되지 않는 인간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사랑은 정신적 소통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랑은 어느 정도 고의로 가난해 질 것을 요구당한다는 것을 비포 선라이즈는 보여준다. 왜냐면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가난할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라면을 먹고 커피믹스를 마셔도 같이 행복해 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풍요속에서 더 큰 행복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풍요속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사람은 약간의 고난속에서도 나에게 상처를 줄지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싶다면, 사랑이 같이 걸어갈 동반자를 찾는 것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사랑을 하려는 사람들은 불편하고 뭔가가 결핍된 환경속에 같이 있어봐야 한다. 이것은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청춘의 사랑은 가난하고 찌질한 것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요즘 한국에서 넘쳐나는 사랑 이야기들은 그런 게 아니다. 선남선녀가 패션모델같은 옷을 입고 지극히 낭만적인 장소에서 사랑을 나눈다. 그들의 사랑은 좋은 레스토랑에 가고 좋은 펜션에 가고 좋은 차를 타는 것에 관한 것이고 기념일을 지키고 선물을 주고 받는 것에 대한 것이다. 한 홈쇼핑 판매원은 예쁜 옷을 팔면서 후줄근한 옷을 입고 나가면 남자친구가 그냥 들여보낼 테지만 이런 예쁜 옷을 입고 나가면 저녁이라도 사줄거라는 말을 하면서 그런 말속에 스며있는 사랑의 비참함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하룻밤 불장난이나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사람들의 사랑에 가깝다. 상대를 사랑하고 상대에게 사랑받는 다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그냥 그런 척하면서 하루밤 즐기고 내일은 또 부담없이 헤어질 것을 당연시하는 느낌이다. 그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사랑이 본래 그런 것이라고만 말하는 메세지가 세상에 가득한 것이 문제다. 


요즘은 진정한 청춘드라마가 드물다. 요즘 문화물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10대나 20대 초반의 청춘들의 감정이 아니라 30대나 그 이상의 사람들의 감성이다. 그것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아무래도 그러다보니 그런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그러다보면 10대가 30대 40대의 사랑을 흉내내고 사랑이란 본래 그런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오늘날의 사랑에는 과거에 비해 시대적인 거품이 있고 외국에 비해 한국적인 거품이 있으며 인생이 안정되지 않은 청춘이  중장년층과 자기를 동일시하게 되는 세대적인 거품이 있다. 이렇게 거품이 많으니 오늘날 젊은이의 연애가 힘든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어린 학생이 노회한 사회인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인식한다. 드라마 도깨비의 사랑은 현실속에서는 원조교제에 지극히 가깝다. 결국 소수의 복받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즐기고 나머지는 내 주제에 저게 말이 되냐고 하면서 비참하게 살기 쉬울 것같다. 


이건 반성이 필요하다. 특히 기성세대의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들이 만들고 지켜온 세상에서 젊은이들은 불행하고 쓸쓸하다. 그들은 숨실 공간이 부족한데 기성세대가 자기 말만을 하기 때문이다. 물질적 부족보다 정신적 식민지화가 더 나쁘다. 이건 잘못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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