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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왜 팔리지 않을까?

by 격암(강국진) 2017. 6. 23.

얼마후에는 내가 쓴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책이 잘 나올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출판사가 손해 보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게되었다. 사실 책이 안 팔리는 시대라는 것은 한두해 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왜 책은 안 팔릴까? 다시 말해서 왜 사람들은 책을 돈주고 사서 소장할만큼 가치가 없다고 느낄까? 


가장 큰 이유는 분명히 다른 미디어의 발달 때문이다. 책은 저자와의 대화다. 우리는 그 대화를 통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지식을 얻거나 알고 있지 못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기를 원한다. 그런데 요즘은 지식과 이야기를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쉽게 제공해 주는 방송이 많다. 심지어 정치운동조차 전에는 책들을 돌려읽고 인쇄물을 나눠주고 읽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면 요즘은 팟캐스트를 만들고 그것을 듣는 시대가 되었지 않은가. 


자동차를 자주 타면 다리가 약해지는 일이 생기기 쉽다. 마찬가지로 다른 미디어가 발달할 때 우리는 글을 읽는 능력과 습관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런데 차를 타는 것은 편하지만 걷는 것에도 장점이 있듯이 편한 멀티미디어도 책을 읽는 것보다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정보를 너무 많이 너무 빨리 제공하는 편이다. 그래서 시청자를 매우 수동적인 입장에 놓이게 만들기 쉽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기고 자신의 내적 반응을 체험하는 능력을 유지하는 것은 현대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누구도 당장 멀티미디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지는 않는다. 멀티미디어 작품은 출간된 책을 기본으로 해서 제작된다. 책이 없으면 멀티미디어도 없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메세지가 오늘날의 세상에 넘치고 그래서 열심히 운동을 해서 엄청난 근육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동부족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책에 대해서도 비슷한 상황에 있는 것같다.  이제 다수의 사람들은 글을 쓰거나 차분히 어떤 작품을 읽기보다는 방송을 보고 듣고 뉴스들을 이리저리 가볍게 보는 일에 중독되어 있고 이것은 특히 어린 세대에서 종종 더 할 것이다. 그들은 뭔가를 쉽게 배우는 일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그나마 팔리는 책들도 종종 멀티미디어의 부록처럼 팔리는 경우가 많은 것같다. 즉 책을 보면서 저자와의 대화에 나서기 보다는 멀티미디어를 통해 일단 그 저자를 접한다. 그리고 나서 그 저자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마음에 그 저자가 쓴 책들을 읽는 것이다. 


이런 소통은 우리를 극단적인 과격주의자로 만들기 쉽다. 기존의 메세지를 지나치게 반복 학습시키기 쉽기 때문이다.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 오늘날에는 마치 광고가 몇초안에 시청자의 눈을 잡을 수 있을까 없을까를 승부봐야 하는 것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그것을 짧게 빨리 말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관심은 끊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우리는 실은 최대한 천천히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며 결론을 미리 내리지 말아야 하고 때로는 결론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이런 미디어 환경에서 자연스레 배제될 수 있다. 매번 흑백이 분명한 사람의 주장만 듣게 되기 쉬운 것이다.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다. 그런데 소통이란 이쪽에서 같은 말을 한다고 해서 저쪽에서 반드시 똑같이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강의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청중이 어떤 사람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강의를 성공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로서는 재미있거나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도 청중이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반면에 나로서는 별다르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하는데도 청중이 열렬히 반응하면 강연은 예상밖의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우리에게 짧은 시간과 작은 관심정도밖에는 허락되어져 있지 않다면 이야기를 듣는 청중을 이해하는 것은 그 소통의 성공을 결정짓는 데 있어서 더더욱 중요한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멀티미디어는 압도적인 자극으로 시청자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일방적 소통의 도구에 가깝다. 문자로 된 책은 영화나 다큐처럼 충격적 영상으로 시청자를 사로잡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대중을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파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 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마치 과식으로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가장 맛있는 요리를 팔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책을 만드는 사람은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좋은 책을 만들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이 두가지가 같은 것이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좋은 기획자의 힘이다. 오늘날 책이 팔리지 않고 있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한국의 기획자들이 이런 면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된다. 물론 작가도 책을 기획하지만 기획과 집필은 같은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의 능력부재가 아쉬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특히 편집자 혹은 기획자를 생각할 때 한국의 출판상황은 마치 텔레비전이 나오기 전에 유랑극단이 돌아다니던 시절과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하고 생각이 든다. 연예인들은 방송국과 피디가 있어야 진정한 스타로 만들어 진다. 스타작가가 없으며 스타 피디가 없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각 작가가 마치 연예인들이 유랑하면서 재주를 팔던 시대처럼 자기 이름과 얼굴로 스스로 책을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출판사들은 쓸만한 작가가 없다고 한탄할지도 모르지만 방송의 스타는 연예인 이상으로 피디와 방송국이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스타같아 보이지 않는 사람을 발굴하고 키워야 하는 것이야 말로 출판사의 일이다. 어디서 책으로 내든 당장 팔릴 것같은 원고를 들고 찾아올 저자를 기다리는 출판사는 불로소득을 올리려고 하는 것이거나 출판사가 해야할 역할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독서가 소통이며 그 소통은 기획되어져야만 하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한국 출판사업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의 출판문화는 오랜간 기형적이고 식민지스러웠다. 지적이고 문화적인 권위가 외국에 있던 시대에 출판을 한다는 것은 애초에 기획이라는 말을 오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뉴욕이나 파리에서 인기있는 책이니 우리도 읽어야 한다라는 것으로 기획이란게 끝나는 거라면 출판이란 그저 번역해서 인쇄하는 일에 지나지 않게 된다. 국내작가의 책도 만약 그것이 어떤 권위에 의해서 예를 들어 무슨 문학상을 받는 것으로 작가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된다면 마찬가지다. 결국 예쁘게 편집해서 인쇄소에 맡기는 일이 출판일이 된다. 그리고 한 때 한국이 후진 사회였을 때는 그렇게해도 책이 팔렸지만 이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출판업계쪽에서도 할말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고 또한 이런 이야기는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같은 이야기처럼 돌고 돌기가 쉽다. 문제는 지금 책이 안팔린다는 것이다. 이런 일에는 정부에서 해야 할 몫도 있다. 시민들보고 책사서 보라는 캠페인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것은 아주 무의미하다. 독서가 좋으면 안 권해도 하고 현실적으로 독서가 좋지 않으면 권해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후원해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도서관을 많이 만들어 양서를 많이 구입하게 하고 시민들이 그 책들을 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어시장은 작다. 그러니까 한국어 출판시장은 좀 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 순수 시장논리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사회가 의무적으로 책을 사주는 것에 돈을 지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결국 한국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한국어 책을 번역해서 외국에서 파는 일에 지원을 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시장이 커져야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크게 공백을 느끼는 것은 스타 기획자의 부재다. 기획이라는 것이 사회적 현실에 대한 통찰에 기반한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능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보면 유명 영화사는 있어도 유명감독은 없는 영화계같다. 유명 출판사가 있어도 유명 편집인은 없다. 물론 있기는 있다. 그 업계사람들이면 다 아는 유명인. 그러나 대중적인 의미에서는 별 지명도가 없다. 심지어 티비프로그램도 피디이름을 보고 시청을 하는 시대에 책을 기획하는 사람의 능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너무 작다. 이것은 결국 편집인내지 책의 기획자가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중도 그 책을 기획한 사람을 믿고 책을 사보는게 아니라 출판사 이름을 믿고 책을 산다는 뜻이다. 


이걸 영화와 비교하면 꽤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현실은 책의 기획이란 것이 별 의미가 없었던 한국의 과거가 만들어 낸 것이고 바뀌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 책을 만드는데 기여한 사람을 모두 살려야 책도 살아날 것이다. 책에 저자와 출판사 이름말고 주요 편집인들과 기획자의 이름도 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 영화 마지막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양서를 만들어 내는 환경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출판사를 왜 만들까?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어서? 그것들은 다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는 출판사가 만들고 싶은 책을 사주거나 출판사를 부자만들어 주고 싶어서 책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필요한 것이 거기에 있으니까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즐거움이든 유익한 지식이든 아름다운 삽화든 편집이든 책을 시대와 소비자에 맞춰서 제공하는 데 있어서 기여한 사람들은 각각의 책을 자신의 작품으로 삼고 자기 이름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팔리는 책을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일일 것이다.  책이란 멀티미디어와는 다른 미디어다. 그래서 미디어 자체가 가지는 약점도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책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에게 적어도 멀티미디어를 만드는데 참여한 사람들에게 주는 정도의 관심과 보상을 해주고 나서 말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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