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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라는 말은 왜 지역차별적 언어인가

by 격암(강국진) 2017. 7. 1.

전주에 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부모님이 전주에 내려왔는데 어딜 갈 때마다 시골인데도 참 좋다라는 말을 하셔서 당황했던 적이 몇번 있다.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전주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말을 듣고 모두 기분 나빠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주를 가르켜 시골운운하는 것에 혹시 기분 나빠할 사람이 있을까봐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고장에 대한 애착이 있다. 전주만 해도 전라도 최고의 지역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는 지역민들이 있고 말하자면 신흥도시인 광주보다도 전주를 훨씬 더 높게 생각하는 전주 사람도 많다. 전라도가 전라남북도로 구분되지 않던 시절부터 전라도의 중심은 전주였다는 것이다. 그런 전주를 시골운운하면 기분 나빠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많은 수도권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포항공대로 진학하기 전까지 서울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지방에 대한 서울 사람들의 시각이나 언어를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서울은 물론 수도권 지역에 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시골이라는 말속에 숨어있는 차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가끔 놀란다. 사람들은 종종 시골이나 지방이라는 말을 논하면서 논리적인 면만을 부각시키고 쓸데없이 자신의 언행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쓸데없다는 것은 비록 내가 그런 말을 쓸 때 악의가 없다고 해도 듣는 사람이 기분나빠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런 말을 조심해서 쓸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말조심하는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싸우기 까지 하면서 나는 너를 시골이라고 불러야겠으니 상관하지 말라는 식인지 알 수가 없다.


차별은 말에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 우리는 종종 차별의 핵심이 차별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차별하는 행동의 시작은 차별적인 인식이다. 인식이 없으면 행동도 없다. 그리고 말이 없으면 인식도 없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이거다라고 부르는 언어는 차별의 시작이자 몸통인 것이다. 


시골을 시골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뭘 잘못했냐고 하는 사람은 때로 전주가 제 아무리 잘난척을 해도 서울에 비하면 초라하며 시골이 맞지 않냐고 말한다. 그러면서 뉴욕같은 곳에서 온 사람이 서울을 시골로 불러도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까지 말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한숨이 난다. 특히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비교적 젊은 사람이면 더더욱 그렇다. 벌써 그렇게 사람이 굳어질 수가 있을까?


일제시대에 조선사람을 조센징이라고 불렀다는 말에 논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어떨까? 일본 사람이 내가 조센징을 조센징이라고 부르는데 뭘 잘못했냐는 말을 할 것이다. 심지어 여류작가도 차별적인 단어라고 한다. 왜냐하면 남류작가라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여류작가란 여자작가는 어디까지나 남자작가와 다르며 여자나 쓰는 글을 쓴다는 편견이 들어있다. 그런데도 여류작가를 여류작가라고 부르는데 내가 뭘 잘못이냐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다양한 많은 것을 뭉뚱그려서 어떤 이름으로 단순히 부르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의가 담긴 차별적 언어다. 물론 우리는 그런 말들을 어떤 특정한 문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쓸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악이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우리는 세상에 수없이 많은 분별의 선을 그을 수 있다. 그 모든 선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하는데 그 중에 어떤 것을 유독 반복해서 쓰면서 사실은 사실 아니냐고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차별이다. 


우리는 차별적인 말을 통해서 상대를 수없이 많은 어떤 것중의 하나로 격하시킨다. 나는 한국인이며 스스로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단순히 한국인인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어떤 외국 사람이 나를 계속 어이 한국인, 어이 한국인하고 부른다는 것은 차별이 되기가 극히 쉬운 언사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누군가가 당신을 임대야 임대야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차별이다. 서울지역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지방대학졸업생들을 지방대 지방대하고 부른다면 그것은 분명히 차별이다. 심지어 연예인들이 비연예인들을 가르켜 일반인 일반인하고 말하는 것도 차별적 언어다. 그런 언어를 쓰면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데 왜 기분나빠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다. 뭔가 아주 단순하고 뻔한 것을 보질 못하고 느끼질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불려도 기분나쁘지 않다는 사람은 자신은 차별을 당해도 그걸 차별로 느끼지 못할 만큼 둔감하니 너는 왜 그렇게 민감하냐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완전히 비논리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름도 제대로 없는 지리산 골짜기 마을이나 강원도 산골마을 사람까지 이곳을 시골로 부르는 것은 화가 난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좀 너무 민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나도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에게 시골이란 실질적으로 종종 지방 전부다. 전주를 시골로 부르는 것은 예사고 부산, 인천, 대구도 다 시골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말의 배후에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지방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대중적인 인식이 있다. 서울 아닌 모든 곳은 그저 시골내지 지방인 것이다. 여기든 저기든 구분할 가치가 없다. 


우스운 것은 서울이면 서울이지 수도권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등장해서는 서울 바깥이라도 수도권은 시골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원은 물론 부천같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지방의 대도시를 가르켜 시골 운운하는 경우도 생긴다.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은 좋고 훌룡한 것에 속하는 쪽에 집어넣고 다른 사람은 쉽게 다른 쪽에 집어넣는다. 그러면서 차별은 무슨 차별이냐고 한다. 서울 이외의 지역이 가지는 역사와 문화적 특징을 모조리 깔아뭉게는 발언을 하면서 사실은 사실 아니냐고 강변하기 까지 한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건 기가막히는 반응이 되는 것이다. 


시골이라는 말에는 또다른 문제가 있다. 시골이 단순화하는 차별적 언어라면 그 단순화가 어떤 기준인가가 또 문제다. 시골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그 기준은 지극히 일차원적이다. 그리고 그런 언어는 자연스레 그런 기준이 훌룡함의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강요한다. 시골이라는 말은 전국을 일차원적으로 늘어놓고 서울을 맨 앞에 놓은 다음에 다른 곳들은 서울보다 못하다고 평가하는 언어다. 그것은 자연스레 지방이나 시골로 불리는 지역이 지향해야 할 목표가 서울처럼 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사람은 살 수만 있다면 서울 사람처럼 살아야 사람처럼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고층빌딩도 없고 비싼 카페도 없고, 큰 극장도 없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시골 맞네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키가 곧 그 사람의 훌룡함을 결정한다고 굳게 믿는다고 해보자. 그 사람이 키가 평균이하인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인치고는 훌룡하다던가, 소인인데도 말을 잘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한다면 키작은 사람들이 내가 평균보다도 키가 작은 것은 사실이니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고 할까? 서울과 다르게 살면 시골인가? 그런 사람들도 한국보다 인구밀도가 작아서 고층빌딩도 적고 가게수도 훨씬 작은 서구나 일본의 도시를 가르켜 시골이라고 할 때는 종종 멈칫 멈칫한다. 한국사람은 차별할 수 있지만 선진국 시민들은 차별하기에 망설여지기 때문일까? 한국의 농촌생활은 비참한 깡촌생활이지만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나 스페인의 농촌생활은 대안적 삶인가?


시골이라는 말은 서울 집중을 불러온다. 온 국민에게 서울이 아니면 시골이라고 세뇌하는데,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가야한다고 말하는데 전국에서 가능한 사람은 모두 서울로 가서 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지방이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서울인데 말이다. 


시골이라는 말은 다양성을 무시하게 만든다. 교토는 유명한 관광도시지만 전통적 삶을 지키는 일본의 도시다. 그런 교토를 시골로 부르면서 동경처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식한 발언이 아니겠는가. 모든 사람들이 서울 사람처럼 살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거나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 시골이라는 말이다. 적어도 서울이 아니면 모두 시골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말하는 시골은 그렇다. 


시골이라는 말 이외에도 우리가 쓰는 많은 단어가 차별이거나 그럴 위험이 높은 말들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말이란 어느 정도는 필요악이다. 모든 말을 금지어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본인이 차별당하는 것이 싫다면 적어도 자기가 쓰는 말의 위험성 정도는 인식하면서 살면 좋겠다. 주변 사람의 발은 계속 밟고 다니면서 나중에 자기 발 아프다고 말해봐야 설득력은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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