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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연대와 한국 대통령의 가치

by 격암(강국진) 2017. 7. 8.

이런 생각을 해보자. 서구가 온통 기독교 세상이었을 때 우리들 중의 누군가가 그들과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이 기독교인인 경우가 이야기가 잘될까 아니면 어떤 다른 종교를 믿는 경우가 이야기가 잘될까? 서양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국가를 위해 일하겠지만 동시에 그들은 그들이 믿는 종교적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에 기독교인인 서구인과 이야기할 때 우리 측 사람이 기독교인인 경우가 훨씬 더 이야기가 잘 될 것이다. 


이런 말을 듣고 그러니까 대통령은 역시 서구와의 외교적관계를 생각할 때 기독교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 시대에 한참 뒤져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고 서구인들 특히 유럽인들은 지금 기독교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미국은 좀 예외적인 나라로 부자나라이지만 기독교의 영향력이 크다. 하지만 유럽은 기독교같은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난지 오래되었다. 유럽인들보다는 한국인이 훨씬 훨씬 더 독실한 기독교인들이다. 


지금 세계는 서구의 르네상스 시대이래로 발달한 하나의 문화가 주도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의 신흥 종교로 봐도 좋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이 종교에는 이름이 없다. 왜냐면 이것은 통상 종교로 여겨지지 않고 그냥 진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뻔하다. 독실한 기독교인은 그냥 신이 존재한다고 하지, 기독교의 신이 존재한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종교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믿는다고 한다. 이 신흥종교가 종교로 파악되지 않고 이름도 제대로 없다는 것은 이 종교가 지금 얼마나 강력하게 전세계를 지배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서구가 시작시키고 이제는 지구 전역을 지배하고 있는 이 신흥종교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과학이라고 해야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통상 말하는 과학보다 그 범위가 더 크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합리성 그 자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지식의 연대라고 부를까 한다. 지식의 연대의 사제들은 학계의 학자들이고 지식의 연대의 교회들은 수없이 존재하는 연구소와 대학교들이다. 


지식의 연대가 강조하는 것은 세계에는 질서와 법칙이 있으며 그 질서는 일관성과 보편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 싼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단일 지식체계로 파악한다. 모든 것은 이 지식 체계의 한부분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이 지식체계는 앞에서 말한 일관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구체화하고 더욱 간결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바로 전 세계의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이 순간에도 하고 있는 일이며 그들은 학생들을 키워서 세상으로 내보내고 세상에 나간 학생들은 지식의 연대가 인정한 권위있는 지식에 기대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이 세상이 그렇게 운영되어져야 한다 주장하게 된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이 지식의 연대가 지배하는 곳에 가서 샤머니즘적인 발언을 하거나,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거나 어떤 근거가 없는 발언을 한다면 이 사람은 마치 기독교인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가서 굿판을 벌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일을 한 셈이다.하지만 이러한 일을 해도 언제나 문제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는 언제나 아웃사이더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해도 코미디언이 공연중에 한 것과 선생님이 수업중에 한 것은 전혀 다르게 평가된다. 


지식의 연대가 그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직업의 예에는  정치, 학문, 교육 분야들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당신이 스스로를 학자나 정치가로 정의하면서 비지식인적인 행위를 하면 적어도 지식의 연대에게 있어서 당신은 즉각 혐오의 대상이 된다.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연일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것은 이때문이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서구의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는 것도 이때문이다. 


한국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건 지식의 연대의 세계에서 한국의 평가는 이제까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지식의 연대는 폭력을 싫어한다. 폭력이란 이성의 실패라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논리가 통하지 않는 인간 이하의 존재에게만 써야 하는 것이다. 지식의 연대는 기본적으로 계몽주의적이다. 즉 지식의 체계를 널리 알리고 교육하면 이 세계가 더 좋은 세계로 발전하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지식의 전파를 막고 힘으로 누군가를 강압한다는 것은 높이 평가되지 않는 것이다.


지식의 연대가 한국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학계의 세계에서 한국의 입지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은 매우 높은 교육열이 있지만 사실 매우 높은 연구열이 있지는 않다. 학문적인 가치를 위해서 그다지 많은 돈을 써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순수학문에 대한 입장에서 나타난다. 학문이란 본래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교회를 짓는 이유는 헌금을 받고 고층건물을 짓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모독적인 발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학문이 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공공연히 말해지는 상식 수준의 말이다.  이런 나라가 지식의 연대에서 존경받기는 힘들다. 


또하나는 한국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군사 쿠데타 세력에게 지배당해 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세력 그리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그들의 직접적인 후예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제까지 한국의 주류세력이었다. 정치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에는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거대 재벌회사들의 사적 지배도 있다. 이런 정치가들. 기업인들은 지식의 연대의 관점에서는 이교도에 불과하다. 독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권위주의를 만든다. 한국은 전문적 지식이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리와 사람이 권위를 가지는 권위주의적 국가였고 지금도 상당부분 그렇다. 그러니 서구사람들에게 한국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평가가 크게 바뀐 것이 바로 이번 탄핵사건이다. 유럽과 미국에는 지금 테러와 데모가 넘쳐난다. 다시 말해 지금 지식의 연대의 중심을 자처하는 미국과 유럽은 폭력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치에 절망하고 투표율은 떨어지고 반지성주의적인 극우세력이 인기를 얻기도 한다. 그러는 가운데 한국은 폭력없는 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했다. 유럽인들에게 이번의 촛불집회는 큰 충격을 준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영국이 인도독립을 허용하는 가운데 유명해진 간디와 그의 비폭력 정책은 바로 지식의 연대가 누구를 높이 평가하며 스스로의 일관성을 깨지 않기 위해서 누가 승리하도록 돕는가를 보여준다. 비폭력적이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존중해 줘야 한다는 것이 바로 지식의 연대가 가지는 기초적 교리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식의 연대는 오직 말이 통하지 않는 비합리적 상대에 대해서만 폭력의 사용을 허용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시민의 광범위한 참여에 의해서 일어난 비폭력적 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폭력이 넘쳐나는 현재 세계 각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지식의 연대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마치 그 고상해 보이던 유럽인들이나 미국인들이 야만인같고  한국인들이 이성을 상징하는 것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의 정치개혁이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사실 이것도 역대최저의 투표율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렇게 흥분할 만한 일인지 의구심이간다. 개혁은 대개 역대 최고의 투표율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지식의 연대는 서로 돕고자 한다. 지식의 연대는 서로 배우고자 한다. 따라서 지식의 연대의 이상에 따라서 당선된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고 그에게 더 많은 힘을 주고자 하는 흐름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미국의 대통령이고 러시아의 대통령이라지만 트럼프나 푸틴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의지하는 것에는 반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때문에 갑자기 한국이 세계의 주도권을 쥔 패권국가로 바뀌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더이상 박근혜나 이명박 시대처럼 무시해도 좋은 사람들이 대통령으로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그들과 다른 것은 사람이 다른 것도 있지만 어떻게 당선되었는가가 다르다. 그것이 한국에 대한 다른 해석을 가져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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