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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논쟁기사를 보고

by 격암(강국진) 2017. 7. 23.

최근에 두 유명대학의 교수가 온라인 상에서 한국이 지옥인지 즉 헬조선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쟁을 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 기사 만으로 보았을 때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어리광부리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교수는 지금의 한국은 그 어느때보다 풍요로우며 과거에 기성세대가 노력해서 만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한국이 헬조선맞다고 말하는 교수는 고도성장기를 살았던 세대가 지금의 젊은 세대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있다는 인상을 나는 받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별로 생산적인 논쟁을 한 것같지는 않다. 그 논쟁은 뭔가 핵심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소통불량으로 생기는 오해로 감정만 생겼던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었다. 한국을 천국으로부르던 지옥으로 부르던 호칭에 대한 논쟁은 처음부터 그 한계가 뻔하다. 호칭이 안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런 현실판단의 배경에 있는 관점이 문제다. 예를 들어 한국을 헬조선으로 부르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대개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 온 게임이 공평했다고 믿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므로 친기득권세력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으며 반면에 지금의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반기득권세력적인 관점을 가지는 면이 있다. 세상에는 불공평이 존재하며 따라서 우리는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진보적 관점이 그 배경에 있다. 물론 아래에서 말하듯이 그것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말의 의미는 문맥속에서 완전히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통불량으로 싸움이 나기 쉬운 것은 이 문맥을 무시하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뭏튼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들이 객관적이고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싶어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나와 주먹싸움을 하자. 지는 놈은 죽는 것이다라고 말한다고 하자. 그리고 당신은 그 싸움에서 지거나 이겼다. 어떤 사람은 승부는 승부니까 진 사람은 죽어야 한다고 할지 모른다. 그건 당연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런 건 당연한 것일까? 애초에 경쟁을 꼭 해야 했을까? 한다고 해도 그 경쟁 종목이 꼭 주먹싸움이어야 했을까? 또한 그 승부의 결과가 생사를 결정짓는 것이어야만 했을까?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서로 다른 판단을 할 수가 있다. 


사실 내가 위에서 말한대로라면 애초에 이런 저런 게임을 하자라고 게임의 법칙을 자기쪽에서 정해버리는 사람이 시작부터 아주 유리한 게임을 하는 것이다. 애초에 주먹싸움에 자신이 없다면 그런 주장을 할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결국 당연한 게임도 당연한 벌칙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삶은 한판의 주먹싸움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과거와 현재에 대한 판단을 할 때 그 결과들이 서로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떤 판단도 당연하지는 않다. 어떤 게임의 법칙도 어떤 승부의 결과도 당연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생각만 하는 상태가 또 당연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사회적 합의가 있고 소통이 있다. 축구의 법칙은 당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축구를 하기로 합의를 했다면 그리고 그 게임의 법칙이 명백히 알려져 있었다면 우리는 축구경기의 결과를 상당히 중요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에 존재하는 진보와 보수간의 갈등은 상당부분 여기에 대한 판단이 다른 것에 기인한다. 


구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이 언론을 통제하고 시민들을 차벽으로 가두고 사람들을 사상적으로 통제한다고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등 권력을 남용한 일 때문에 우리 사회는 공평하게 운영되지 못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누구보다 최순실과 그녀의 딸 정유라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의 산증인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고 그때문에 촛불집회와 탄핵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과거를 언급하지 않은 채 그저 과거의 세대도 열심히 살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은 어차피 불공평한 것이고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불평하지 말라는 말이 되기 쉽다. 이것은 어떤 문맥에서는 나도 동의 할 수 있는 말이다. 물론 지금도 미래에도 모두가 같은 게임의 법칙에 완전히 동의하고 조금도 불공평하지 않은 게임이 벌어지는 때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게 오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생이 쓰다달다 불평하는 것을 자제하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지금 여기서 그랬듯이 과거의 불공정에 대한 언급이 있고서야 제대로된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 않으면 강간당한 여자나 살해당한 사람은 자신이 위험한 곳에 가서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 죄인이 되고 만다. 강간법이나 살인범은 마치 할 일을 했다는 식이 되는 것이다. 범죄자에 대한 비판과 단죄없이 앞으로도 강간이나 살인은 있을 것이니 그런 일 당해도 불평하지 말고 알아서 몸조심해라고 말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크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한국의 경제적 상황이라는 어떤 물질적이고 객관적인 상황의 결과라고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한국이라는 사회가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데서 나오는 사상적 분열의 결과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모두 권력을 남용한 권력자들이었다. 그들은 애국을 쉽게 말하고 그런 기준으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 자신을 희생시키는 모습을 보였다면 공식적인 역사와는 별도로 그들을 인정해 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타인들에게 희생을 요구할 때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좀 억울해도 목숨까지 바치라고 쉽게 말하지만 자신의 생명과 권력을 연장시키기 위해서라면 대한민국이 분명히 상처입고 혼란스러워져도 자신이 희생을 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죽을 각오가 없는 사람이 남에게 죽으라고 말한다면 그런 사람은 인정해 줄 수 없다. 그들은 결국 비겁한 권력자들이었고 내가 곧 국가다라고 생각하는 미치광이들일 뿐이었다.


한국이 헬조선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국민소득도 심지어 취업률도 아니다. 자기 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거리를 채웠던 촛불시민들의 행동같은 것이 헬조선이라는 말을 녹여없앤다. 공정하고 모두가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이 있는 사회라는 믿음이 헬조선이라는 말을 없앤다. 그러니 부패와 불공정이 판치는 과거와 현재를 논하지 않고 우리가 지금 과거보다 혹은 어떤 다른 나라보다 더 잘사니 못사니를 가지고 헬조선이라는 말이 적합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기성세대들 중에는 잘난체 하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현실적이 되라는 둥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마치 젊은 세대들이 기대하는 것이 천국인 것처럼만 말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리 큰게 아니다. 다만 있는 법이라도 지키고 평등하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특권을 누리면서도 내가 무슨 특혜를 받았냐고 말하는 박근혜나 최순실처럼, 그저 약간의 당연한 평등한 조치가 내려지면 그걸 정치적 보복이니 박해니 말하는 보수 정치가들처럼 지금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 무감각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살인범이나 강간범이 제약없이 돌아다니면서 희생자를 양산하고는 내가 뭘?하고 반문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게 바로 헬조선이란 말의 기원이다. 공정하고 상식적인 사회라는 것이 바로 헬조선이란 말에 대한 논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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